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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My Portrait, 1885>, 파리 살롱전 수상

나비파(Les Nabies)

목판화

장식성 뒤에 숨은 긴장감

신비로운 색채로 풍경을 담은 화가

보랏빛 풍경화를 남긴 작가

 

 

 

 

 

 

2. 생애

 

 

 

 

 

그림이 주는 장식성에 몰두했던 화가 펠릭스 발로통(Felix Vallotton,1865-1925)입니다.

펠릭스 발로통은  스위스 로잔의 평범하지만 조금은 보수적이었던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중등 교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엄격하게 대했지만 아들이 꿈과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덕분에 17세 때인 1882년 발로통은 고전 연구로 로잔 대학을 일찍 졸업하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파리에 도착한 발로통은 쥘리앙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구스타프 블랑제와 쥘 르페르브 밑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당시 쥘리앙 아카데미(Academie Julian)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 미술학교로 학구적인 교육 방식을 추구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옛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는 작업이었지요. 발로통 역시 루브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홀바인, 뒤러, 앵그르의 작품에 크게 매료되었던 시기 이기도 합니다.  이 세 화가들은 그 후 평생 동안 발로통의 예술 세계의 기준이 되었으며 특히 초기 작품을 보면 그 영향을 뚜렷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젊은 발로통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탄탄한 화가로 성장합니다.  1885,1886년 연달아 파리 살롱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합니다. 바로 자신을  그린 <My Portrait,1885> 그림으로 말이죠. 살롱전 수상후 발로통은 매우 공격적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림도 많이 그렸고, 비평가로도 활동했으며, 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목판화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26살 때 목판화를 시작했고 얼마 뒤 에칭 분야에도 도전합니다. 이렇게 판화를 연구하고 발전시킨 중요한 인물이 바로 발로통입니다. 그의 목판화 작품 하나 감상하실까요.

 

 

 

 

 

 

 

 

 

 

<폴 베를린의 초상,(1891)>

 

 

 

 

 

 

 

 

 

오로지 흑백의 색깔이 전부인데 화가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재질이 나무라서 그럴까요?  깜깜한 밤에  이글거리는 불 앞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켜는 한 남자의 뒷 모습을 봅니다. 악기와 한 몸인 듯 코드를 누르는 왼 손과 활을 켜는 오른손  끝에 바이올린 선율이 예민하게 가슴을 파고 들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흑백의 정갈함이 품격으로 다가와 취향 저격입니다. 이 작품은  발로통이 완성한 첫 목판화 작품으로  그동안의 심차원적 구성의 목판화가 아닌 15세기적 단순성과 대담하고 솔직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지요. 

 

 

 

"Simple is Best."

 

 

 

옷 입을 때 통하는 규칙이 그림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라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졌던 목판화는 새로운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커다랗게 분할되지 않은 검은 면 위에 흰색의 면이 공간을 나누는 발로통의 목판화는 일본 판화를 연상케 합니다. 절제된 화면구성, 감각적이지만 실제와는 다른 진한 색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발로통은 자포니즘(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을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에 선택적으로 수용합니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회화의 사실성보다는 형식에서 발견되는 조형미와 장식성 었다고 보입니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화가의 예술 세계는 자연스럽게 '나비파"로 연결되게 됩니다.

 

 

 

 

 

 

 

 

나비파(Les Nabis)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뜻이라고 해요. 초창기 주로 종교적인 주제와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나중에는 일상까지도 주제로 포괄하여 다루게 됩니다. 1888년 발로통과 함께 쥘리앙 아카데미 학생이었던 세루지에 , 보나르, 드니 등이 마음이 맞아 결성한 예술 집단이기도 합니다. 고갱의 영향으로 색채 분석에 의존해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인상파에 싫증을 느낀 이들이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인 묘사와 굵은 유곽선을 통한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기법으로 자신의 사색을 화면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들에게 있어 회화는 사실적 표현이 아닌 그보다 더 높은 사상적이고 심경적인 것을 담고 있어야 했고 이에 동의한 발로통은 1890년부터 본격적으로 나비파에 합류하게 됩니다. 캔버스의 화면은 또 다른 창조이고 따라서 형태나 색채가 모두 작가의 해석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긴 발라통은 토포스를 해석하기 위해 자신의 사색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함을 명확히 알고 아주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그것은 나비파를 관통하는 개념이었고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비대칭균형 같은 대담한 구도와 넓게 칠한 단색, 이분법적 화폭 등은 나비파의 대표적인 특징이 됩니다. 나비 파는 공통된 아이디어와 목표를 공유했지만 그들의 스타일은 상당히 다르고 개인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이즈음 발로통의 그림은 평평한 색상 영역, 단단한 가장자리 및 세부 묘사의 단순화를 추구하는데 집중합니다. 그의 그림은 명확한 형태 파악과 아라베스크에 의한 화면구성으로 나비파의 특색을 나타내었으며 주제의 취급에 있어 사회주의의 독특한 풍자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표현의 단순화와 굵은 윤곽선을 통해 장식적 기법을 차용한 나비파는 20세기 초의 추상과 비구상 미술 발전의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The ball(1899)>, 오르세 미술관

 

 

 

 

 

 

 

빨간 띠를 두른 노란 모자를 쓴 소녀가 공을 주으러 갑니다. 소녀의 그림자가 짧은 걸 보니 정오쯤 되나 봅니다. 소녀는 엄마와 함께 지인의  집으로 놀로 왔나 봅니다. 엄마와 가까운 친척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저 멀리 서 있네요. 산책 중인 가 봐요. 또래 친구가 없는 소녀는 혼자 공을 가지고 놀다가 어른들로부터 떨어져 멀리 나오게 되었습니다. 잔디밭과 나무 사이를 벗어나 모래밭까지 나왔으니 말입니다. 햇볕이 내리쬐든 아랑곳하지 않고 공만 보고 뛰고 가고 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어른이라면 그 자리에 멈춰 그냥 굴러가게 놔두었을 텐데 말이죠. 언뜻 보면 모래밭이 경계가 되어 소녀가 있는 곳은 어린이들의 세계, 숲은 왠지 어른들의 세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소녀가 서 있는 그곳에 누군가의 있음 직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 올려 보게 됩니다. 소녀의 걸음걸이가 어쩐지 빨간 공을 따라가기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오늘 안으로 저 공을 주울 수 있을까요? 저 공이 멈추는 곳에 무엇이 있을까요?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발로통의 이 그림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하고 있어요. 이러한 시선은 일본 목판화인 우키요에의 파격적인 시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키요에는 과감하게 사물을 잘라버리거나 위에서 아래를,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등 대담한 시선을 구현한 작품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키요에는 인상파 및 나비파에게 색채, 구도, 표현 방식 등에서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1899년 발라통은 세 자녀를 둔 파리의 젊은 미망인 가브리엘 베른하임 죈과 결혼을 합니다. 그녀는 부자였고,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들은 인상파 화가들과 관계가 깊었던 유명한 화상 알렉산드르 베른하임 쥔(Alexandre Bernheim-Jeune)과 조스 베른하임 죈, 가스통 베른하임 죈이었습니다. 가브리엘과의 결혼은 발라동에게 날개나 다름없었고 그는 이 행운을 매우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예를 들면 베르넘에서 소유한 갤러리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된 경우이지요. 결혼과 동시에 주 수입원이었던 목판화 작업을 그만두고 회화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결혼 초 발로통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의 표시로 아내와 아이들, 처가 가족들의 모습을 종종 화폭에 담았는데 1902년 처가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더 이상 그림 속에 처가 식구들은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The Poker Game>,1902

 

 

 

 

 

 

 

<카드놀이>는 처가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직전 그려진 작품으로 왼쪽에 보이는 이들이 발로통의 장모와 그녀의 친정 가족들입니다.

작품은 사실 등장인물보다는 왜곡된 화면 구성이 특징인데, 높은 소실점으로 바닥은 마치 상승한 것처럼 느껴지며 전경을 꽉 채우는 테이블과 램프는 작품에 답답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당시 발라통의 불편한 심기를 이렇게 드러낸 걸까요? 코너에 카드놀이를 하며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친정식구들을 발라통은 아마 반대편 코너에서 마음적 거리감을 느끼며 그렸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어딘지 모를 불편함을 그들 세계와 격리된 발라통의 복잡한 마음이 이해도 됩니다. 오래전 보았던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2010>의 막내딸과 아일랜드 출신 집안 운전 기사였던 막내 사위가 상류층 문화에 속하지 못하는 장면이 떠올려 지기도 합니다.

 

 

 

 

 

 

 

 

발라통의 작품은 시대의 감각을 기민하게 담고 있었지만 스타일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갈라졌다고 합니다. 마니아층이 있었던 반면 작품이 너무 건조하고 긴장 속에 묶여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발라통은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1700여 점의 그림과 200여 점의 드로잉을 완성합니다. 예술 비평 또한 꾸준히 발표를 했고 8편의 희곡과 자서전을 포함 3편의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Felix Vallotton, <The Neva with light fog>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예쁜 두 눈엔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

언제나 우리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얘기들을 만들어가요

외로움이 다가와도 그대 슬퍼하지 마

답답한 내 맘이 더 아파오잖아

길을 거다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대 나에게 사랑을 건네준 사람

 

 

 

 

강수지 <보랏빛 향기>

 

 

 

 

 

 

색채 때문에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화면 가득 채운 보라색과 코너에 외롭게 서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보라색이 주는 묘한 신비감이 도시를 삼켜버린 안개의 이미지와 어쩌면 이리도 딱인지 모르겠습니다. 공간의 빛을 볼 수 있고 자유자재로 내뿜을 수 있었던 작가가 바로 발로통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발라통의 작품은 지금 봐도 전혀 시대의 간격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감각적입니다. 주제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화풍도 매우 당양하게 변화했습니다. 부르주아들의 생활을 과장하게 표현한 연작과 산업화 이후 사람들의 욕망을 표현한 그림에서는 사회풍자, 비판의식도 엿보이니 말이죠. 말년에 연속적으로 그려낸 일련의 풍경화에서는 삶을 관조하는 시선도 느껴집니다.  발라통은 60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합니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신선한 매력과 색채의 순수함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작품은 간결하지만 복작한 듯 느껴지고 대담한 색으로 단순화된 인물들에게는 묘한 생동감이 느껴지지요.  불안과 희망이 묘하게 교차한 느낌이랄까? 이러한 패러독스야말로 발라통 작품이 가진 진짜 매력이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듭니다.

 

 

 

 

 

 

3. 나가기

 

 

 

 

호기심 충만하고 자기 연구에 성실한 발로통 덕분에 우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품 성향을 관찰해 볼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일찍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다작을 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던 발라통!

 목판화를 발전시켰고 감히 쓰기 어려웠을 보랏빛을 사용해 풍경화를 남긴 독특한 작가 발라통!

보는 이의 인생을 신비한 보랏빛으로 물들여 주는 화가 발라통!

그의 그림을 맛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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