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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강으로 배운 영문 캘리그래피를 연습 중이다. 배운 건 두 달 전인데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 조금씩 다시 연습하는 중이다.

초보자 주제에 자꾸 작품이란 걸 흉내 내고 싶어 급기야 일을 저질렀다.
월 마트에 가서 종류별로 캔버스 액자를 한 박스어치 사서 차 뒷 트렁크에 집어 넣으며 작가가 된 것 마냥 함박 웃음을 지으며 신나서 돌아왔다. 명목상 자주 못간다는 이유로 왕창 사서 낑낑 거리며 패밀리 룸에 모셔 놓았다.

끄적 끄적 연습이랍시고 하다가 캔버스 천를 마주하니 하얀 여백이 넌즈시 말을 거는 것 같다.
‘너, 그 실력으로 되겠니?
망치면 어쩌지. 이거 비싼데..’

하며 걱정이 먼저와 나를 맞이한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 손 맛을 보고 싶은 마음에 써보았다. 그리고 알맞은 그림도 넣어 보았다.



‘흠, 역시 내가 봐도 엉성하다. 재료 도구를
마커 팬, 붓펜, 지그 펜 ,에딩펜 등등 실험삼아 다양하게 써 보았다.

면  백프로 캔버스 천이다. 직접 여러 도구를 이용해 써 본 결과는 내 예상과 많이 어긋나 실수가 많았다. 우선 천 캔버스의 우툴 두툴한 면을 내가 가진 펜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래 알갱이 느낌의 조직이 붓 끝에 와 닿을 때

‘헉,이건 내가 아는 그 피부가 아닌데…
매끈한 종이 질감 대신 조그만 여드름 올라온 낯이 선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붓펜은 글씨 굵기는 용이하나 획이 쉽게 뭉개져 폭망했다. 지울 수도 없고 민망해 여백을 그림으로 채웠다.

에딩 펜은 생각보다 발색이 진하지 않아 흐리멍텅한 검정색이 낡은 검정 고무신같다.
붓펜으로 글씨를 덮입혀 봤다. 친구 노트 베껴 쓰기 한 것 마냥 웬지~ 어색하다. 습자지에 그림 베껴본 경험자라면 알것이다.

지그 팬으로 썼을 때 캔버스 천에 쓰는 손 맛이 리듬을 타듯 경쾌했다. 나름 만족스러웠다.

‘아~, 이 천에 이 펜이 딱 이구나!’

나에게 꼭 맞는 구두를 찾은 느낌이다.

시도하지 않았다면 인강 강사가 시키는대로 비싼 재료들만 잔뜩 구입해 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식구들 식사 중에 자랑하고픈 마음에

“이 글씨 어때?”

하고 물었다.

남편은 쳐다 보지도 않고 귀찮은 듯

“응, 좋아 좋아~”

아들은

“구조가 어떻네,
밑에 글씨를 빼는 것이 좋겠네,
이것 스펠링이 왜 이래 못 알아 보겠어.”

등등 꼬치꼬치 찌른다.
어쩌면 그리 내 약점을 잘 잡아 내던지…

나도 내 작품 별로 인 것 아는데 가족들의 따뜻한 날 한 마디 대신 지적이 먼저 나오니
기분이 별로네.

‘ 예수님도 자기 고향에서 예언자 취급 못 받았다. 나라고 별 수 있나.’

나의 헛점을 봐주는 아들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하고 마음 돌려 먹으니 편해졌다.

아직 출발선에 있는 내가 결승선의 승자들 맛을 보려는 것도 오버라는 생각이 든다.
잘 해보려 전문가급 고수들의 서체를 검색해 보다 의욕은 고사하고 쓰고 싶은  사기마저 뚝떨어져  버렸다. 그들의 완성품을 보면 지금 내가하는 이 작은 시작이 별 의미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냥 속 편하게 안 보기로했다.

어쩌랴 ~ 부럽지만 저 분들도 올챙이 시절 있어으리라. 저 고급반 글씨체만 피해서 내 글씨체 하나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나? 이렇게 마음 돌려 막으니 내게 평화가 찾아온다.
남과의 무 분별한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보다 한 뼘 성장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니 나름 이 서툰 시작도 의미있어 보여 좋았다.
이제는  오래 즐기며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누군가의 삶을 흉내만 내다 가랭이 찢어지기 보다 나답게 오감을 뻗어 순간을 챙기며 살고싶다.

오늘 실컷 써 봤고 그려봤다. 초등 시절로 돌아 간 것 같아 유치하지만 즐거웠다. 이렇게 즐겁게 몰입했 던 적이 언제였나 싶다.모처럼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는 타이틀 벗고 내가 나에게 주는 오롯한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무엇과 바꾸겠나!
더불어  내 뇌가 쓰는동안 행복했으면 그걸로 족한거지!

          “CARPE DIEM”(현재를 잡아라!)

당분간 캔버스 천에 작품 하겠다는 무모한 땡깡은 이제 덜 부릴 것 같다.
한 번 해 봤으니까!
내 한계를 봤으니까!
연습만이 살길임을 알았으니까!
‘고고 ‘
하는 마음
‘워워’
하며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무모한 시도 #영문 캘리그래피#캔버스 천#도구들#나답게#초심#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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