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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관계가 있다.

힘든 새댁 시절을 우연히 마주보고 살았다.
별 볼일 없는 서로의 민낯을 수시로 대하고 아이들 문제로 고민하면서 활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와 말 수 적고 내향적인 내가 친구라는 폭넓은 울타리로 묶여 2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때로 아주 가까이 때로 아주 멀리 공간을 달리하며 드문드문 연락하며 지냈다.
몇 살 위인 그녀가 오히려 자존감 약한 나를 위해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표현이 맞는 말같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시집<광휘의 속삭임>(문학과 지성사,2008)

시인의 표현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온다는 말이 그녀에게 어쩌면 찰떡같이 어울리는 표현같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내가 친구 딸 유학 기간 동안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며 그녀와의
뜸했던 관계가 다시 이어졌다.

이곳 추수 감사절  연휴에 그녀의 딸이 쉬어 가기도 하고 내가 한국을 가면 그 집에서 며칠 씩 머물기도 하면서 품앗이 생활를 했다.

겉으로 참 ~ 평탄하게 보였던 외관과 달리
그 친구와 딸을 대면하고 그들이 돌아간 자리에 어김없이 내 내면에 파도가 쳤다. 그들 앞에서면 왜이리 작아지는지 나름 열심히 동동거리며 살았는데 왜 별것 아닌 것처럼 내 자신이 하찮게 여겨지던지 성숙하지 못한 내 마음자리가 요란하게 휘청거렸다.

생각의 차이
능력의 차이
습관의 차이
정서의 차이
등등 따져 들어가기 시작하면 공통 분모가 많지 않아 이해 하는 척 했을 뿐 불편함이 찌꺼기가 되어 차곡 차곡 쌓여만 갔다. 차마 꺼내 놓기에 유치하고 담아 두고 있으려니 화가 치밀고 그렇게 무던하게 어줍잖은 착한 아줌마 가면을 오래 쓰고 살았다.

그러던 내가 긴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며 그들에게 스트레스 받아하는 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No’라고 못하는 내성적 성향
상대를 향한 은근한 질투심
두루 뭉실 예민하지 못했던 감각들
<기생충> 영화의 지하에 살고 있을 법한
눌러 놨던 시컴한 마음 등등
외부로 드러난 나와 진짜 나와의 간극이 너무 커서 마음이 그렇게  파도를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 들였을 때 잔잔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문제의 원인이 그들이 아닌 나의 못난 내면에 있음을 알고 조금씩 토닥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비교하는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고
주어진 내 자리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고
나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릴 방법들을 찾고 일상에서 내 시간을 슬쩍 집어 넣고 균형을 잡으려 몸과 맘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책을 다시 가까이 하기 시작했고 때늦은 이 시간을 가장 적합한 때라 여기며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몰입의 시간도 가지며 부족한 이모습도 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 드렸다. 이렇게 흰 머리 희끗 희끗
중년이 되어 새롭게 찾은 내 정체성에 색깔을 입히니 나름 봐둘만 한 것 같다.

이제는 그들의 방문이 단순히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온다는 말 뜻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스트레스 받으며 끌려가는 내가 아닌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넓은 마음 자리도 한 켠에 마련해 두었다. 그들이 좀더 성숙해져 있다면 우리들의 만남은 껍질이 벗겨진 알맹이의 만남으로 탈 바꿈 할지도 모르겠다.

부서지기도 했을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둥근 마음으로 내 뾰족한 마음의 모서리를 오늘도 갈고 간다.

우리의 묘한 관계도 찐한 우정으로 성숙해지길 바라며말이다.

#방문객#관계#사회적 나#진짜 나#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정체성# 찐 우정# 일상#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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