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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는 늘 아침이 100m달리기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시간를 단축해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매 번 우선 순위에서 자동적으로 밀려난다. 식사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족들 아침 준비를 하며 조리대 앞에서 간 보며 한 번, 도마 위에 썰면서 한 번 , 그릇에 담아 올리면서 한 번 이런식으로 선채로 아침을 해결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식탁에 앉아 다소곳이 먹기보다 후다닥 헤치우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겨 식사하는 즐거움을 매 번 놓치고 만다. 천천히 씹는 즐거움, 여유있게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스마트 폰을 켜고 눈을 화면에 고정 시킨채 엉뚱한 곳에 내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만다.

가족들이 있으면 먹일 생각에 몸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도 정작 혼자 먹는 밥상은 부실해진다. 나를 위한 밥상은 더 단촐해지고 설거지의 부담을 덜고자 잔머리를 굴린다.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오히려 영영실조 걸리기 쉬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것 같다.

어릴 적 친정 엄마의 급하게 뚝딱 해치우는 식사법이 어린 내 눈에도 품위없어 보여 싫었었다.

‘왜 저렇게 먹지?’
‘좀~  앉아서 먹지
저게 뭐야.’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거야.’

하며 다짐했었다.

그런데 웬걸!
바쁜 미국 생활은 우아함을 사치롭다며 밀어 내고 그 자리에 나를 생활의 달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을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 방과후에 다시 데리러 가는 반복되는 일상은 하루를 더 길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곳 의료체계가 허술하다 보니 예방차원으로 식재료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현지인들의 다양한 식재료를 한국식 입맛에 맞게 슬쩍 슬쩍 바꿔 보기도 하고 아이들 입맛에 맞춰 한국 식재료를 현지인 입맞과 비슷하게 맞춰보기도   했다. 무한 반복의 시행착오의 시간이었다.
가족들의 입맛은 기를 쓰고 노력해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내 입맛은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식구들 남은 음식을 살짝 변형해서 먹는 방법으로 내 입맛을 그렇게 달랬던 것 같다.

이제는 나를 챙길때도 되었건만 오래 몸에 베인 습관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가끔 허겁지겁 먹고 있는 뒷 모습이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들킬때면 초라하고 속상해진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나를 챙길것인가!
닮지 않으려 했건만 무의식적으로 닮아가는 모습에 돌아가신 친정 엄마의 모습까지  겹쳐 더 서글퍼진다.


                        찬밥
            
                                  문정희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훑던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를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문정희,<찬밥>,[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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