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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안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죠.”

피아노의 구도자로 불리우는 백 건우 피아니스트의 말이다.  사십 년의 긴 연주 여행동안 그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닮아가려 하지 않고 독특한 그 만의 감성을 싫어 청중에게 전달하기까지
부단히 노력했던 인고의 세월이 그 말 한마디에 다 담긴것 같아 뭉클했다.

MZ세대에 속하는 <서원미 작가>는 예술을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정의 내리며 좀 더 솔직해진 ‘나’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참 당차다. 그리고 부럽다.
젊은 작가가 몸으로 체득하며 풀어가는 삶의 방식이 어리지만 내 눈에 철든 어른 같아 몸만 어른인 나를

‘너, 지금 잘 사니?’

하며 방향감각 유난히 부족한 나를 한번 더
때리고 간다.

유튜브를 통해 들여다 본 두 예술가의 삶은 다른듯 몹시 닮아 있었다. 비록 세대를 달리하고 영역은 다르지만 ‘자아’를 찾아가는 길 위에 사람들 이라는 공통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경건한 그들의 의식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른 결혼으로 ‘나’를 찾을 겨를도 없이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성장이 오랫동안 멈춰있었다.  항상 내 자신에게 빚진듯한 묵직한 마음은 빈 둥지 증후군과 함께 헛헛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젊은 엄마 시절 왜 성장은 아이들만 시키는 거라 생각했을까? 아이들만 닥달할뿐 텅빈
내 내면을 채워 두질 못해 항상 주변 상황에
휘청거리며 살았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 부러운 대상 마냥 쫓아가다 가랭이 많이 찢어졌다.

특히 그 피해는 고스란히 큰 아이에게 집중되었고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아 늘 내 마음속이 덜그럭 거리며 잡음이 많았었다. 내 욕심을 채우려 무리를 하고 아이를 은근 힘들게 한 철부지 젊은 엄마였음을 깊게 반성한다. 그래도 그런 실패의 경험이 나름 다른이의 삶을 이해할 때

‘그럴수도 있지!’

하는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가 내가 얻은 실패의 결과물이다.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본인들의
일상을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잘 ~
감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응원하며 바라볼 뿐이다.

더듬어보면 나의 ‘자아 찾기’ 과정이 이른 결혼 생활과 맞물려 수 없이 충돌했던 시간이었다. 찾지 못한 내 자아를 아이들을 통해 얻고자한 못난 엄마라 잘 참아준 아이들에게 오히려 고마워 하는 중이다.

요즘 나는 변신 중이다.
애써 헛헛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
뒤돌아서면 백지 상태로 변해
좌절감만 안기는 나의 녹슨 뇌에 다시
기름칠 하는 중이다.

가끔 사기가 꺾여

‘이거 뭐하는 짓인가!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대충 살면 안될까?’

하는 마음이 턱밑까지 차오르다가도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후회할 것 같아 다시 배움을 시작했다. 영원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등짝 때리며 시험 공부 하라고 빗 자루 들고 쫓아 올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다. 누구의 압력이 아닌 순수한 내 내면의 갈증을 제대로 채우고 싶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인생 공부에 맛들이기 시작했다.

나의 불완전함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나의 장점을 더 키워가다 보면 앞으로 걸어 간 만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있으리라 믿어보면서 말이다.



                      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거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 <길>,[쓰러진 자의 꿈],
창비,1993-


#자아#백건우 피아니스트#서원미 작가#인생공부#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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