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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교과서 밑에 깔고 감질나게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다. 이 책과 올 여름 다시 만났다. 다 큰 어른으로 작가의 나라에서 원문으로 한 여름 땡볕에 시작해 짬짬이 며칠 전 마무리 지었다.

책도 나이를 먹는걸까?
주인공 주디도 보이지만 주변 인물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백년을 훌쩍 넘긴 책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지금봐도 매력적이다. ‘쥬디’가 길거리에 툭 튀어나와 마주하면 금방이라도 깔깔 거리며 말을 건낼것 같다. 이래서 고전의 힘은 위대하다. 마치 묵혀 놓은 포도주가 세월의 흔적을 맛과 향에 담듯이 읽는이의 마음을 담아 멋스럽게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새롭게 변형될 수 있는 여지를 어딘가에 남겨두는 것 같다.

줄거리는 고아 소녀 주디(제루샤 애벗)가 고아원 생활을 하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 생활을 하는 내용이다. 매달 후원자에게 자신이 성실히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편지를 통해 알리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랑까지 얻는다는 내용이다.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 쓴다는 것은 불편함을 전제한다. 그 대상이 가족이라도 예외가 없다. 코로나때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와글 와글 말 안듣는 꼬맹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리는 고된 시절을 보낸 쥬디에게 처음으로 혼자만의 방이 생겼다.

그 당시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나는 축복이라 여긴다.

내 방이 생긴 다는 것!
온전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고 민낯의 내 깊은 자아와 마주하는 시간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야말로 자존감이 싹을 틔우는 공간이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며 안방이 두 아들의 공부방으로 바뀐 적도 있고 이리 저리 이사를 하며 분명 내 집인데 온전히 내가 들어가 쉴 공간 하나 없었던 적도 있었다. 빈 둥지 증후군을 겪으며 접이식 작은 책상이라도 구석에 들여 놓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내 영역을 확보 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엉덩이 붙이고 끄적이기도 하고 읽기도 듣기도 하면서 그 공간을 통해 작은 성취도 맛보면서 설레임과 불안이 뒤섞인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어릴 적 꼬박 꼬박 챙겨본 만화 영화 ‘캔디’, 빨강머리 앤,삐삐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쥬디는 유쾌하고 솔직하다. 마치 통통 튀는 매직볼 두 개를 양쪽 호주머니에 찔러 놓고 다니는 것 같다.

부족한 기본기를 메우려 방학동안 책 속에 푹 파묻혀 지내는 모습이 어쩐지  짠~~하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존재감 약해 맹물같이 무덤덤한  대학 생활을 보냈던 나에 비해 하고싶은 걸 억척같이 해내는 쥬디의 대학 생활이 부럽기도 했다.

저비 도련님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이 고아 출신이라 감히 잡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것 같았다. 연애와 결혼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와 상관없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줄리아 펜들턴이 실크스타킹 신은 모습에
아저씨가 준 용돈으로 사는 장면
버터컵(뿔이 하나 달린 얼룩소)이 과수원으로 들어가 떨어진 사과를 먹고, 먹고, 또 먹다가 너무 먹어 취해버린 이야기
글 사이 사이 그려진 웃스꽝스런 그림들
밀가루 저울로 사람 몸무게 재는 이야기 …
등등 그녀의 위트는 그녀라는 무게 중심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어른스런 모습이 대견스럽다. 어쩌다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그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피터팬의 그림자를 웬디가 바느질 해 꿰매준 것처럼 쥬디 역시 자신의 그림자를
기꺼이 품고 꿰맬줄 아는 당당함이 나는 좋다.
우리 모두가 내려가고 싶지 않은 그래서 꺼내놓고 싶지 않은 마치 ‘기생충’의 제일 깊숙한 곳에 숨어 사는 그 사람 닮은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테니까 !

책 내용중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11월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의 투표권 한 장이 백년 전만해도 택도없는 소리였다. 인권이란 의식 조차 없던 시절 작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세대를 넘어 모이고 모여 귀한 한표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여성이란 이름으로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미래 세대에게 건네준 이 선물에 왠지 뭐라도 해서 갚아야할 것 같은 부채감이 든다.

쥬디의 글쓰기와 나의 글쓰기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쓱삭 쓱삭 글을 쓰고 있으면 멀리 있는 행복이란 녀석이 그때만큼은  내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른 결혼으로 잃어버린 20대를 다시 돌려 달라며 발악을 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후회는 없지만 때로 수정을 하며 속도 조절도 해야함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비교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과 아이들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나를 일으켜 세우며 내가 나를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나를 돌봐줄 부모님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작가 진 웹스터(Jean Webster)는 이 책을 출간 후 미국내 고아들의 복지 문제를 재조명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의 끄적거림이 누군가의 하루를 웃게 할 수 있고
마음 한 구석이라도 따뜻하게 덮혀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키다리 아저씨#쥬디#나만의 방#선거# 솔직함# 글쓰기#정체성#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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