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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냉장고에 심하게 작은 사과 한 봉지가 눈에 띤다. 그냥 놔두면 상할 것 같다. 건조기에 말리기로 결정하고 사과를  자르기 시작하니  칼 끝에서 사과 향이 난다.

어릴적 엄마 손잡고 따라간 외갓집은 늘~ 과일 향이 났다. 과수원을 하셔서 참외, 수박, 복숭아, 사과 등등 철마다 집안에 퍼지는 향이 매 번 달랐다. 순진한 나는 모든 아이들 외갓 집이 모두 과수원인 줄 알았었다. ^^

사과 향 맡으며 칼질하는 내 손끝에서 잠시나마 유년의 풍성한 기억들이 머물다 나를 훑고 지나간다.
원두막, 기차, 수박 •참외 서리, 사과 봉지,
상처난 복숭아…등등




나를 구해 준 생강향!
새댁인 내가 첫 아이를 임신 하고 구토와   들쑥 날쑥 생체 리듬에 몹시 헤매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음식 냄새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와 피하고 싶었지만 노령의 시 어머니는 전혀 이런 불편함을 이해해 주질 못하셨다. 너만 요란을 떤다는 식으로 바라보셔서 새댁인 나는
명암도 못 내밀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다 시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독대 하나를 여는데 이상할 정도로 구역질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자세히 살펴보니 겨울에 얼지 말라고 갈무리 해둔 생강 꾸러미였다. 매슥 거리며 토하려 할 때 나는 생강 단지를 찾아갔고 뚜껑을 열어 놓고 향을 맡으며 한참을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진정 시키곤 했었다.

그러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새댁이 되어 무섭기만한 시어머니와 함께 밥상 머리에 앉으면 체하기 일쑤였다. 시댁 분위기가 낯설어 물과 기름처럼 섞이는 것이 어려웠다. 거기다 덜컥 아이까지 임신을 하니 밀려오는 파도에 내가 먹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성적인 내가 동서남북 둘러봐도 내 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믿고 의지했던 남편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 별보기 운동을 하듯 늦은 귀가로 내 마음에 마구 스크래치를 냈다. 무탈하게 집 찾아 온 것 만으로도 만족해야했다. 아군이 적군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이렇게 내가 살기 위해 찾아 낸 고마운 생강향 덕분에 입덧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몸이 차가운 나는 요즘은 생강을 말려 가루를 내어 자주 복용하고 있다. 이곳에 의료체계가 별로 다 보니 예방차원으로 작은 병에 담아 늘 ~ 가까이 하는 나의 최고 아이템이다.

동양화에 매, 난, 국,죽 사군자가 있다면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살림의 사군자가 있다.

실란토르, 베이즐, 쪽파, 양파

초록의 싱그러움을 가족들 식탁에 올리고
얼큰한~ 김치찌개에 파 쫑쫑 썰어 마무리를 하면 후각•청각•시각이 먼저 와 시식을 한다.
그동안 씻어 내리고 •다듬고 •자르고 한 파단숫자만으로도 어설픈 집 한칸 지을 지도 모르겠다.^^ 화장품 냄새 나던 실란토르도 멕시코 음식 만들 때면 한 존재한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애지중지 하던 바질도 스파게티에 빠지면 서운하다. 웬만한 음식에 감초처럼 섞여 다른 식재료 맛을 업그래이드 시켜주는 양파는 무림의 숨은 고수같다. 살림의 사군자 덕분에 내 식탁은 오늘도 풍성하고 안전하다.




                      감 꽃

                                   도종환

하늬바람에 감꽃이 노랗게 집니다.
떨어진 감꽃을 모아 아이와 소꼽놀이를 합니다.
감잎으로 부채를 부치며 아이는 좋아라 합니다.
감꼭지도 주위와 돌 위에 쌓으며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봅니다
가끔씩 바람이 몰려가다 감잎에 걸리면
머리 위에서  왁자지껄 감잎이 떠들고
슬픔을 가리듯 감잎으로 하늘을 가리고
혼자 울던 제 울음소리를 아이는
조금씩 잊습니다
하늬바람에 감꽃이 노랗게 집니다.

생김새 모두 달라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들 모습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의 고유의 향을 잘 지켜 나가는 것도 내공이다. 내 향도 잘 지키고 상대방 향도 잘 지켜주며 향기 나는 그 자리가 꽃피고 열매 맺을 자리 인 것을 이제는 안다. 어쩌다 어른이 아닌 괜찮은 어른으로 물들어 가고싶다.

#사과향#생강향#살림 사군자#감꽃#괜찮은 어른#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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