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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 절이기

                                 김태정

아침 일찍 다듬고 썰어서
소금을 뿌려놓은 배추가
저녁이 되도록 절여지지 않는다
소금을 덜 뿌렸나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걸까 점심 먹고 한 번
빨래하며 한 번
화장실 가며오며 또 한 번
골고루 뒤집어도 주고
소금도 가득 뿌려주었는데 한 주먹 왕소금에도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소금 한 주먹 더 뿌릴까 망설이다가
그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제 스스로 제 성깔 잠재울 때까지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

상처를 헤집듯
배추를 뒤집으며
나는 그 날것의 자존심을
한 입 베물어본다

-김태정, <배추 절이기>,[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2004

배추를 자르고 소금 쳐 간을 하는 중에 둘째 녀석이 퇴근해 돌아 왔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배추를 보며 한 마디 툭 던진다.

“엄마, 오늘 김치 먹을 수 있어?”
😱
‘소금치는 중인데…’

항상 완전한 형태로 깨끗한 접시에 담겨 식탁에 차려져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아들아, 그런 도깨비 방망이 하나 있으면 엄마 먼저 구해줘!’

하고 말하려다 돌려 말한다.

“아들~, 몸에 좋은 음식은 시간이 걸려!”
이렇게 말을 한들 알아 들었을까싶다.

자르고, 소금 치고, 씻어 물 빼고, 휘휘 섞어 양념 만들고 , 하나씩 양념 묻히고, 그리고 저장 용기에 담아 김치 냉장고에 들어 가기까지
짧으면 하루 ,길면 삼일에 걸쳐 시간이 걸린다. 늘~ 그렇게 떨어지지 않게 공들이는 마음을 먹는 이는 잘  모른다.

김치를 담그는 단순 노동을 통해 우리의 삶 또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이것 저것 해보는 시간이 지나면 집중 할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해줘야 할 때가 온다.

거듭된 되풀이로 부모 인생에 소금치고,
애간장 태우고, 대차 대조표로  따지면 과잉 투자라 손 절매 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눌러야 사춘기가 지나간다. 집집마다 못 생긴 오리들 백조로 성장시키려 부모라는 이름으로 시도 때도 없이 절여진다.

겨우 한 숨 돌리면 내 밥 한끼 벌기 위해 내 몸의 소금기가 다 ~ 빠져나간다. 이마저도 다행이지. 눈 침침하고 몸에 기운 다 빠진 애비는 일이 많아 밤늦게 들어오고 그런 애비 퇴근 시간에 맞춰 일 자리없이 뱅뱅 맴돌다 집으로 들어가는 젊은 아들은 애가 탄다.

“사람은 변한다.”

라는 믿음으로 아리랑 곡선을 살아냈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라는 지혜 하나를 얻는다.

잘 익은 김치를 먹고 싶다면
발효의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야 맛볼 수 있듯이 품질 좋은 사랑도 기다릴 줄 알아야 진짜가 온다. 단, 본인의 노력은 필수 조건이다.^^

#배추 절이기# 기다림# 새해#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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