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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kg”
😱
’환상의 몸무게네!‘

일주일을 꼬박 앓고 기운이 생겨 체중계에 올라갔다. 평상시에 보고 싶어도 좀처럼 얻어지지 않는 꿈의 숫자다. !!!

세상은 공평하다. 일주일의 말미를 주며 마치 지끔껏 굳은 나의 낡은 사고 방식, 습관을

‘이래도 안 버릴꺼야, 이래도~‘

하며 종용하는 것 같다.

앓고 있었던 일주일 안에 ‘결혼 기념일’도 끼어 있었다. 선물을 바라지도 않았다. 핸드폰 배경 화면에 각각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 한 편씩을 깔아 상큼한 기분 눈으로 즐기며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다.


CES2023(라스베가스)행사를 다녀온 둘째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남편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바톤이 선물처럼 ‘툭’ 넘겨졌다.
각각 일주일 넘는 시간을 오로지 본인과 작은 전투를 하며 보냈었다.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까! 자신과 self가 민낯으로 만나야만 하는 본능의 시간이었다.


아프다고 하던 일을 안할 수도 없고 가족들 끼니를 거를 수도 없으니 내가 아프면 힘듬이 배가된다. 아픈 몸으로 나도 가족도 돌봐야하니 ’엄마‘라는 타이틀을 안보면 슬쩍 버리고 오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나라는 사람이
’이거 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한번쯤 묻고 성찰하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달려만 왔으니 좀 쉬어거라는 신호같기도 하다. 가족들이  밥 해주는 이의 건강도 소중함을 알아가는 각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옆에 암환자가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일 주일 감기 몸살로 앓아 누운 내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모순을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몸의 눈, 코, 입이 왜 붙어 있는지 신비 체험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입맛을   잃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오들 오들 한기를 느끼며 밤새 열로 끙끙 앓다 열먹은 하마가 된 기분이다. 몇 배는 무거워진 코끼리 몸둥아리를 일으켜 가족을 먹이는 임무 완수하고 나니 정작 입맛 떨어진 나를 위해 죽이라도 끓이려하니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나도 누가 해준 따뜻한 밥 먹고 싶다!‘
하루종일 내 이마 짚어 주며

’괜찮아?‘

하며 물어주는 다정한 손길도 느끼고 싶다.
실컷 짜증도 부리며 뒷일 걱정 하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기도 했다. 현실의 반응은 싸할테지만 말이다.

어디 이런 환자들 응석 다 ~받아주는

“로봇 간호사 없어요?”

하며 외치고 싶다. 만들면 대박 날거라고  장담하면서 말이다.^^



잠이 주는 치유를  몸소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겨울잠 자는 곰 새끼 마냥 자고 자고 또 잤던 것 같다. 밀린잠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나니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잠이 보약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겨울철 모자란 빛을 찾아 나란히 마주 보고 누워 자고 있는 키우는 개 두 마리의 잠 자는 모습속에도 면역력 이라는 치유의 보약이 만들어지고 있으리라.^^




우리집 세 남자의 반응이 흥미롭다.
남편왈,

“물 많이 먹고 쉬어.”

본인이 이겨낸 처방법이다. 다른 사람은 플러스 알파가 더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때도 되었겄만… 표현의 부족일까? 중년의 무던함일까? 어째 2%부족한 저 모습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속에 곁길로 빠져나가는 못된 생각들을 서둘러 칼로 싹뚝 잘라 버린다.

어젯밤 늦은 퇴근을 한 첫째가

“엄마 좀 어때?”

하며 아침 컨디션을 묻는다.
그 별것 아닌 말이 별것처럼 들려
다정함이 새삼 고마워진다. 잘 때 먹을 수 있는 알약을 전해주는 그 손이 이렇게 예뻐 보일수가 없다!

코맹맹이 소리에 눈치 빠른 둘째녀석 자기가 먹고 효과 본 레몬향 품은 티 형식의 감기약 한 박스를 내밀며,

“엄마 이거 티 처럼 마셔.
빈 속이라도 괜찮아.”

슬쩍 포장지를 스캔하다

‘이걸로 될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물만 먹고 뱃속은 텅 비어 음식 냄새가 구역질 반응으로 나타나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인 시간이었다. 이렇게 텅텅 빈 윗속을 레몬티 감기약으로 반복해서 채우고 나니 느낌상 1mm 앞으로 빠져 나온 느낌이다. 티 형태라 부담없이 마셔대서 그랬을까 의외로 효과 만점이었다.

이렇게 가끔씩 앓는 감기 몸살을 통해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보이기 시작한다. 숨을 쉬고, 먹고, 마시는 단순한 동작에서 시작해 점점 밖으로 나선형 계단을 만들며 나, 가족, 그리고 삶으로 뾰족한 가시 달린 질문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놓치고 산 것, 버려야 할 것, 그래도 꼭 지켜야 할 것 등등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따끔하게 회초리 맞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땅에 고개 쳐박고 있지 말고 주변도 살피라는 벌침 한 방 주시는 소중한 시간 같아서 말이다.

아가들이 아프고 나면 이쁜짓이 늘듯이 이제 나이값하며 철좀 들라고 주셨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픔도 죽음도 오로지 혼자 맞이하는 시간임을 가볍지 않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슬슬  내 몸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
를 보내오기 시작한다.

‘이만하면 살만하다.’ 싶다.

이제 생존모드에서 허세모드로 다시 스위치 바꾸는 시간이 돌아왔다.


                       쉰
            
                           김수열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설운 서른에 바라본 쉰은
너무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다
비틀거리며 마흔까지 왔을 때도
쉰은 저만큼 멀었다

술은 여전하였지만
말은 부질없고 괜히 언성만 높았다
술에 잠긴 말은 실종되고
더러는 익사하여 부표처럼 떠다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몇 벗들은 술병과 씨름하다
그만 샅바를 놓고 말았다
팽개치듯 처자식 앞질러 간 벗을 생각하다
은근슬쩍 내가 쓰러뜨린 술병을 헤아렸고
휴지처럼 구겨진 카드 영수증을 아내 몰래 버리면서
다가오는 건강검진 날짜를 손 꼽는다

-김 수열,<쉰>,[생각을 훔치다],삶창,2009

#감기#세 남자#입맛#로봇 간호사#성찰#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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