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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도 있다.그남자

‘이런 남자가 또 있구나!’

앞•뒤 •옆까지 꽝 막혀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내내 답답함이 몰려 왔다. 내 짝꿍도 어느 면에서 가끔 그런 적이 있어 미워만 할 수도 없는 캐릭터다.

주인공 오베는 아내 소냐가 죽은 이후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죽기로 다짐할 때마다 오베를 필요로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웃으로 온 패트릭의 차를 고쳐주기도 하고, 갈 곳 없는 고양이을 키우기도 하고, 기차에 치일 뻔한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투박하고 거친 그의 이웃을 향한 고함 소리는 처음에, ‘뭐 , 이런 고약한 영감탱이가 다 있어.’ 하며 전형적인 꽉막힌 꼰대를 연상했었다.
그런데 그의 어린 시절과 끔찍히 사랑하는 아내 소냐를 잃은 결혼생활을 알고 나니 괴팍한 성격과 일방 통행식 사고가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일방적으로 그의 편을 들기 시작하며 그의 마음 속 시선을 깊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남을 도울 수 있을 때는 정성껏 돕는 성격으로 영혼없는 립서비스에 식상한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양파스프’ 같은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죽음을 미루고 문제 해결사가 되어가다. 주인공 오베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다양한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임신부 파르바네의 운전 연습을 돕다가 패닉에 빠져 운전을 하지 못하는 그녀의 차 뒤에서  클럭션을 울려대는 차에 대고 소리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노인네가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나오는 지
젊은 양아치한테 한 방 맞으면 어쩌려구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이런 반응이 우리 같은 소심한 이들에게 정답같은 선택지일텐데 그는 달랐다.

“너는 차에 초보인적 없냐?”

문신을 한 젊은 남자 둘이 오베 아저씨 기상에 멋지게 제압당하는 장면은 통쾌했다. 고속도로에서  옆차 끼어들기도 못해 직진만하다 엉뚱한 행선지에 두리번 거리며 진땀 빼던 나의 초보 시절도 생각났다. 커다란 트럭의 운전자가 클락션까지 눌러 대는 급 당황한 상황은  ‘뿅’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했던 나의 아찔한 경험과 파르바네가  터뜨린 울움은 어쩌면 동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게 젊은이들을 혼내고 운전석
파르바네에게,

“당신은 괜찮은 사람 중에 하나다.“

라고 달래며 운전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배려 해준 모습은 그가 당신 죽은 아내에게 어떤 남편 일지 보여주는 회심의 한 장면같다.

마치 우리 집 남편이 빗자루를 들고 매일 아침  마당 쓰는 소리에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며 일상을 시작하는 내 모습처럼 말이다.
빗자루에 쓸리는 소리, 공기 중에 묻어 나는 흙 냄새, 그리고 빗자루 주변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두 마리 개들이 만들어 낸 꾸불 꾸불 작은 동선이 경쾌한 아침 일상을 만들어 낸다. 주인공 오베는 뚱뚱이 옆집 아이 지미가  어릴 적 가정 폭력에 시달릴 때 친구 루네와 함께 구해내기도 한다.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게이 미르사드를  위해
위스키 한잔 먹으며 아버지와 화해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특히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의 경우 더 그렇다.

게이 아들을 용서 하지 못해 집 밖으로 쫓아 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 당한 채 하룻밤 거주할 곳을 찾는 미르사드에게 오베는 기꺼이 잠자리를 제공한다.

내 아이가 이런 경우면 나는 어떻게 할까?
서로를 이해하려 거리를 좁히는 시간이 양쪽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식의 행복을 부모라고 마움대로 다룰 수 없음을 알기에 그들의 삶을 존중해 주는 것이 먼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양원에 끌려갈 뻔한 친구 ‘루네’를  패트릭과 가까운 이웃들이 ’흰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과 3명의 건장한 남자 간호사로 부터 구해내기도 한다. 어서 빨리 죽어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가고 싶어하는 오베!
인생 최악의 선택을 하는 중에 이웃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가며 최고의 이웃들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조금씩 그들의 이웃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간섭하고 간섭 당하면서 말이다. 이웃들이 똘똘뭉쳐 공무원들의 구린점을 찾고  끝까지 이웃 집 ‘루네’를 지켜 내는 모습은 작은 승리 큰 기쁨이다.

오베는 한 방이 있는 상남자다.

옳은 일은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거나 남자는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남자인 거라는 명언을 날려주는 행동파 상남자다.

오베는 숫자와 수학을 좋아한다. 화학 공장에 다니는 엄마를 7살에 잃었다. 집안을 환하고 아늑하게 해 줄 빛이 사라져 버렸다. 엄마 죽음 이후 세상은 오베에게 흑백의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그의 괴팍함은 어쩌면 모성 부재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들으면서 생각했다. 정직하고 팔 힘 강한 아버지를 그는 16살에 사고로 떠나 보낸다. 오베는 9살 때 아버지와 기차에서 돈이 많이 들어있는 지갑을 주워 유실물 보관소에 맡기고 돌아오면서 정직함의 가치를 배웠다. 가진 것 없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참 귀한 유산인 셈이다. 아버지 동료 톰과는 그일 이후로 악연이 되었지만 말이다. 객차 통로에 떨어져 있던 돈을 훔친 톰이 오베에게 도둑 누명을 씌었지만 조사과정에서 오베는 톰이 돈을 훔친 것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오베의 집이 화재로 홀라당 타 버리고 설상가상으로 집 보험까지 사기꾼에게 다 털려 결국 집을 파는 서류에 서명하고 만다. 그날 오베는 철도회사 탈의실에서 톰과 무리들을 만났고 오베가 샤워 중에 아버지가 물려준 시계를  훔친 톰을 향해 분노의 한방을 휘둘러  때려 눕힌다. 오베의 주먹에 내 마음도 함께 실었다.
얼마나 유쾌•상쾌•통쾌 하던지!
부도덕한 톰을 향해 오베의 한 방은 ‘너, 이 자식 그렇게 살지마!‘ 하는 경고였고 ‘너 , 나 또 건드리면 그 다음은 죽는다.’ 하는 오베식 정의였다. 작가의 이 장면이 없었다면 나는 잠못이루고 뒤척였을 지도 모른다. 너의 책 속 세계관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색을 지닌 여인 ‘소냐’ 남자만 셋인 우리집은 조용한 가족 컨셉이다. 세 남자에게 빛을 구석 구석 쏴주느라 영혼이 탈탈 털리는 중이다.  내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지 않으면 줄 수 없다. 의기소침한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심리학자로, 아플 때 이마라도 짚어주고 입맛 끌어 올리려 애쓰는 간호사, 영양사 컨셉, 싸한 분위기 따뜻하게 데워주는 중재자 역할 등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일곱 빛깔 무지개 총 천연색으로 반짝이는 특수 직업군이라 나는 생각한다. 여자에서 엄마라는  터널을 통과하면 주어지는 훈장 같은 거라 생각한다.

손에 쥘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남자 오베에게 아내 ‘소냐’는 그런 여인이다. 그와는 취향도 성격도 전혀 달랐지만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사이다. 삐죽삐죽 모난 정같은 오베를 살살 달구고 설득시켜 선으로 나아가고 이웃들 속으로 들여 보내려 애쓰는 사랑의 여인 소냐!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해 해 주는 세상에 유일한 여인 소냐!
젖은 비누 하나를 두 손으로 꽉쥐고 넘어질 듯 서있는 오베를 향해 유일하게 웃어 주는 여인 소냐!
친구들의 둔탁한 시선을 사랑으로 녹여낸 여인 소냐! 그런 그녀를 오베는 더 이상 만져 볼 수 없다.

오베와 함께 스페인으로 버스 여행을 갔을 때 버스 기사의 음주운전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고 뱃속 아이도 잃고 만다. 오베 기억속에 손에 꼽을 만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산산이 흝어져 흔적조차 가물가물하다.  소냐는 선을 위해 싸웠고 오베는  그런 소냐를 위해 로마 병정처럼 ‘흰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모든 어둠을 쫓아 버리는 것은 빛 줄기 하나면 돼요.”

“사랑은 집과 같다. 처음에는 집이 자기 소유라는 것에 사랑을 하고 세월이 지나 집이 낡으면 불완전해서 사랑한다.“

소냐가 오베와 나눈 두 대화가 내 삶에도 유효하다고 깊이 공감한다. 서로가 낡아서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그 사랑은 농익은 사랑이 되어 많은 이들을 편안하게 친구로 초대할 것이다.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Fredrik Backman)

스웨덴의 칼럼니스트이고 블로그에 연재하던 글을 묶어 작가로 데뷔하게 된 작품이 <오베라는 남자>이다. 개인적으로 스웨덴 사람들의 문화나 생활 방식을 처음 접하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서유럽 생활과 많이 달라 보인다.

복지가 잘 된 국가의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의외로 ‘흰 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라는 관료들의 이미지는 어느 사회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 주인공 남녀가 아니어서 좋았다.부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감사했다. 마음 따뜻한 일상에서 파르바네 같은 붙임성 좋은 이가 할아버지 곁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스웨덴 차 사브와 볼보를 통해 차를 사랑하는 오베의 흑백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내게도 멀지 않은 노년의 모습을 미리 그려 볼 수 있어 그또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하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삶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데 말이다.

‘꽃’이란 시로 유명한 김 춘수 시인이 수족같은 아내를 잃고 쓴 시 한편을 소개한다.         강우
                
                   김 춘수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김 춘수,<강우>,[거울 속의 천사],민음사,2001- 삶은 수많은 습관으로 이어져 있다. 늘~ 그녀가 거기 그렇게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참 별난 것까지 그리워진다. 돌아 눕는 것 까지도 말이다.

반려자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몰라하는 노 시인의 삶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 하며 무덤가에 꽃을 바치고 넋두리 하는 주인공 오베와 닮았다는 생각은 내 착각일까?

늘 있었던 그녀를 상실한 채  만져 볼 수 없는
그녀의 빛깔을 그리워하는 흑백의 남자 오베!

괴팍하고 지랄맞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과묵하고 정해진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맡은 일을 철두철미하게  처리하는 상남자 오베!

우리 동네에도 이런 오베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꼰대라고 멀리만 할 것이 아니라 멋진 이웃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설 자리도 마련해 두면서 뒷담화를 해도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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