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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가신 엄마가 장녀이고 아래로 여동생 두 분이 계신다.

어릴 적 방학이면 늘상 찾아간 둘째 이모 집!

큰 집도 아니었고 살림살이가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유독 둘째 이모 집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늘~붐볐다. 맛있는 먹거리와 또래 사촌 동생들이 부족함을 메꾸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이모가 내 엄마 였으면 좋겠다.’하고 못된 상상을 한 적도 있다. 딸의 눈에도 엄마는 살림에 재능이 없으셨다. 반면에 이모는 없는 살림에 알뜰 살뜰 식솔들 잘 ~ 살피고 뚝딱하면 근사한 한 상 차림이 나왔다. 나도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이모같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다.

결혼 생활을 하고  내 발등에 불끄기 바빠 자주 찾아 뵙지 못했지만 해 마다 이모 집에서 거르지 않고 치르는 행사가 있었다.
바로 김장 담그기다.

엄마 집, 막네 이모, 결혼해 객지 생활하는 자식들, 그리고 본인 먹을 김장을 이모 집에서 한 꺼번에 며칠에 걸쳐 담그는 고된 일정이다.

산 더미 같은 배추가 앞 마당에 높게 쌓이기 시작한다. 이모 지휘아래 품앗이 하는 동네
이웃 몇 몇과 막네 이모가 힘을 보태
배추 숨을 죽이고 물 빼고 젓갈 넣어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셔 맛있는 김장 김치를 담근다.
내 눈에 축제처럼 보여졌다. 중 노동하시는 그 분들 몸 상태는 아랑곳 없이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침이 꼴깍 넘어간다.

미국으로 건너와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로 정신없이 살다가 10년 만에 남 동생 결혼으로 잠시 한국을 찾았다.  아프신 엄마를 대신해 ‘팥죽’이야기를 했더니 바지런하신 우리 이모는 벌써 가마 솥에 팥 삶고 밀가루로 반죽해 칼국수를 만들어 먼 길 왔으니 먹고 가라며 한 상 차림을 해 주셨다. 당신 딸도 아니고 조카 딸 왔다고 이리 신경을 써 주니 좋으면서도 목이 메였다. 너무 고마워서…

주부들은 알 것이다. 결혼 생활 시작과 함께 내 밥그릇 챙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렁 각시라도 나와 내 대신 세 끼 밥좀 챙겨 줬으면 하는 생각도 자주 했을 것이다. 젊은 나도 이렇게 귀찮아 하는 데 이모는 노년의 몸으로 싫은 내색 하나없이 그렇게 빨간 팥죽을 끓여 주셨다.

몸이 아파 수술하러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수술한 몸으로 지방 병원에 입원한 친정 엄마 를 보러 내려 가야했다. 그때도 아프지 말라며 사주신 ‘생합죽’을 엄마도 나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다시 서울로 올라 갈 시간!
고속 철도 매표소까지 따라 오시며 입구를 통과해 걸어가는 내내 이모의 시선이 따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뒤덜아 섰을 때 이모는 그 자리에 그렇게 서서 걸아 들어가는 내 발길과 함께 시선도 따라 오고 있었던 것이다.
목덜미에 전해지는 따끈한 시선이 늦 가을 찬 바람의 으스스함을 날려주고 있었다.

가을 향 솔솔 나는 초입이다.
11월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이모집 마당에서 김장 담그기는 또 시작될 것이다.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아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이웃에게 보물처럼 택배에 실어 이모만의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줄 것이다.
‘이것 먹고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하는 당부의 말과 함께…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사람으로 남고싶다.


#둘째 이모#알뜰살뜰# 팥죽#생합죽#김장김치#따뜻한 사람#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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