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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스페인 인상주의 

 지중해를 찬란하게 그려낸 화가 

 발렌시아 아카데미의 정회원

30대 중반에 유명한 세계적인 스페인 화가

파리 만국 박람회 대상 수상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1위로 입상

800 통이 넘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

 

 

 

 

 

"소로야만큼 바다의 차가운 파랑을 따뜻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화가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 호야킨 소로야(Joaquin Sorolla)가 만들어낸 스페인의 인상주의는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의 인상주의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나라마다 지역적 , 문화적 특성이 달라서 인지 그의 작품을 보면 이국적인 느낌과 함께 바닷가에 뛰어노는 아이들, 여인들 그리고 파도 소리가 바람에 실려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것 같다. 소로야의 작품은 강렬한 스페인의 태양을 너무도 부드럽게 표현했는데,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붓터치와 색감이 우리들의 마음의 온도를 한껏 올려놓고 간다. 입꼬리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채 말이다. 떠나 보자! 소로야가 부르는 지중해 붉은 태양 푸른 바닷가 근처 마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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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하면 벨라스케스, 고야,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나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인상주의'라는 커다란 카테고리를 채운  화가들 중 '호야킨 소로야'라는 스페인 화가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사람을 보고 너무 좋으면 '첫눈에 반했다.'라는 말이 있듯이 소로야의 그림을  보자마자 반했다고 함이 옳을 것 같다. 마치 생각지도 않은 보물지도를 발견한 것 마냥 횡재한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풍경을 그린 스페인 화가 '호야킨 소로야'는 1863년  눈부신 햇살의 해안 도시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발렌시아'라는 지명만 들어도 왠지 친숙함이 몰려온다. 축구 좋아하는  첫 째가 읊어대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리고 발렌시아 팀 하도 많이 들어 익숙해진 지명이기도 하다. 한국의 이강인 (2018-2021) 선수가 잠시 머물렀던 팀이기도 하다.  소로야가 두 살 때 스페인은 콜레라가 만연했고 그 바람에 양친을 모두 잃게 된다. 그의 이모댁에 입양되어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의 재능은  10대 후반 스페인 미술전에 참여하게 되면서 일찌감치 드러나기 시작했다. 18세에 마드리드로 이주해 프라도 미술관에서 많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작하며 실력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역시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가 보다. 프랑스의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전주의를 비롯한 앞선 사조들의 거장들이 그려낸 그림을 모작했듯이 말이다. 1884년 그가 그린 대형 역사화는 스페인 미술전에 전시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불과 21살이었다. 그후, 로마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해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 나가며 화가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집니다. 특히, 1885년 파리에서 자신의 첫 개인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고, 1884년  그의 작품 <슬픈 유전(Sad Inheritance)>, (1899)이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면서 그의 화가로서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갑니다.

 

 

 

 

 

 

 

 

슬픈 유전,(sad-inheritance, 1899-1900), 파리 만국박람회 대상작

 

 

 

 

 

 

 

벌거벗은 천진 난만한 아이들 속에 유난히 가늘어 진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울퉁불퉁한 바위 길을 목발에 의지한 채 내려가는 두 어린 형제의 모습이 몸놀림이 자유로운 아이들의 모습과 대조되어 짠하다.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놀아도 모자랄 나이에 일찍 현실의 불공평함을 깨달았을 형제의 모습이 짚고 있는 가느다란 목발만큼이나 삶도 위태롭고 불편해 보인다. 바닷 가 강렬한 빛에 눈을 반쯤 가리고 뽈록 나온 배를 자랑스럽게 디밀고 있는 저 동심은 이 두 형제를 보고 무슨 말을 건넬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하다. 도와 주려  팔을 부추기는 검은 옷의 수도자는 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하셨 던 모양이다. 불편한 몸의 두 형제들에게 발렌시아의 강렬한 햇빛과 푸른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고 싶었었나 보다. 밀려오는 파도에 금방 깨질 거품이라도 좋으니 물속에서의 자유를 그렇게 느끼게 해 주고 싶었나 보다. 개인적으로 푸른 파도와 자유롭게 재잘대며 천국에 있는 냥 웃어젖히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귓가를 때릴 것 같다.

 

 

 

 

 

 

 

 

 

소로야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사실적이면서도 슬프고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이 주로 그려집니다. 특히 , 이 작품은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을 그린 작품으로 소로야의 연민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초기 어두운 분위기의 사실주의적 그림들이 후기로 갈수록 빛의 효과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발렌시아 바닷가를 주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깁니다. 특히, 프랑스 여행 후,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에 크게 영감을 받은 소로야는 프랑스의 빛과는 또 다른 발렌시아 지방만의 뜨겁고 찬란한 태양을 자신만의 색감으로 그려내는데, 독창적이면서도 행복감이 묻어나는 작품들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를 외광 회화라고 하며 바다를 집중적으로 그리면서 호아킨 소로야는 유명해졌다. 상상해 보라!

기 다란 빨랫줄에  사이즈가 제법 큰 캔버스를 걸고 푸른 발렌시아 바다를 배경으로 아이들, 이웃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델로 삼아 모랫바람을 맞으며 그림을 그렸을 호야킨 소로야를 말이다.  집은 마드리드였지만 1년에 한 달 이상 정도를 발렌시아 해변에 머물면서 발렌시아 해변의 강렬한 빛과 넓은 수평선에 빠져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야외에서 주로 그림을 그린 탓에 그의 작품 유화물감 표면에 모래알들이 항상 섞여 있었다고 한다.

 

 

 

 

 

 

 

 

 

<바닷가 산책(strolling along the seashore),1909>

 

 

 

 

 

 

 

유학을 마치고 발렌시아로 돌아온 호아킨 소로야는 크로틸데 가르시아 델 카스티요와 결혼을 했고 2년 뒤엔 세 자녀를 두게 된다. 아내인 클로틸데와 그의 세 자녀는 호아킨 소로야의 인생에 큰 영향을 차지했으며 그의 여러 작품 속에 모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그의 가족들은  호아킨 소로야의 든든한 후원자로 그의 곁에서 헌신합니다.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버지였던 소로야는 부모를 잃고 이모와 함께 자랐던 자신의 슬픔 가득한 경험을 자녀들에게는 절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아내 클로틸데와 주고받은 800여 통이 넘는 편지는 '남편한테 이런 지극한 사랑의 편지 한 번 받아 보고 싶다.'라는 부러움도 생길 정도로 그의 아내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당신께 전에 말했지요.

매번 같은 말만 하게 되네요.

그림을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일, 그게 전부랍니다."

 

그가 아내에게 썼던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닭살 돋을 것 같은 소로야의 표현이 진심으로 다가 옵니다.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한 소로야의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이 가슴에 와닿고요.

호아킨은 이 그림을 그리며 굉장히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림 속 두 여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클로틸데와 큰 딸 마리아의 바닷 가 산책 모습을 스냅사진 찍듯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죠.  바닷가의 강렬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흰색 드레스, 양산 그리고 커다란 챙이 넓은 모자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고 산책길을 나온 모양입니다. 바람에 살랑 거리는 얇은 레이스가 두 사람을 마치 여신처럼 보이게 합니다. 주고받는 모녀 사이의 언어도 모델 자세를 주문하는 화가 자신도 무척 기분 좋은 작업 아니었을 까 싶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없던 행복도 옆에 슬쩍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합니다.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이 묻어 나오는 여유로운 일상을 표현해서 일까요? 기회가 되면  소로야가 그려낸 그 바닷가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그림입니다. 해변가를 폼 잡고 걸어도 좋겠죠. 소로야의 작품 성향을 보면 어떤 면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랑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 일본에 두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어  수없이 그려 대는  화가 이중섭의 모습도 살짝 겹쳐 보입니다.

 

 

 

 

 

 

 

 

 

 

Washing-the- horse,1909

 

 

 

 

 

 

 

 

"회화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던 들라크루아의 일기 속 문장처럼 소로야의 그림은 일상 속에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삶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키우던 개를 데리고 바닷가 산책을 한 적은 있어도 화면 안에 꽉 들어찬 흰색의 말을 바닷가에 산책시키는 장면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이국적인 느낌으로 시선을 끌었던 작품이다. 내 어릴 적 마치 커다란 소를 코뚜레에 끼워 '이랴' 하고 몰고 가는 것처럼 스페인의 아이는 말에 재갈을 물려 자기 몸보다 몇 배 큰 말을 훈련시키고 있는 모습이 들라크루아의 일기 속 문장처럼 눈을 즐겁게 한다. 사극에 나오는 달리는 말도 좋고 경주마의 빠른 속도감도 나쁘지 않지만 그림 속 아이에게 유순하게 따라가는 말의 모습도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신선하다.

 

 

 

 

 

 

 

호야킨 소로야는 늘 바빴고 분주하고 고된 전업 화가의 삶 속에서도 그는 그의 고향 해변을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았다고 한다.  그는 해변을 산책하는 숙녀, 물놀이하는 아이, 어부들 그리고 바다 풍경을 그 자리에서 아주 빨리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가 바다를 풍경으로 그린 대표작들과 작은 나무판에 그린 소품들까지 그가 바다 앞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행복해한 화가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시대를 초월해 그의 그림은 여전히 따듯함과 함께   밝은 빛을 덤으로 받은 느낌이 든다. 소로야가 활발히 작업한 시기는 스페인이 필리핀 등지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에서 참패해 온 나라가 우울한 침체기에 빠졌던 때라고 한다.  틈만 나면 마드리드를 떠나 고향 바닷가로 돌아온 화가는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고  희망의 이미지를 얻고자 자신의 고향 발렌시아를 문턱이 달토록 드나들었는지 모르겠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은 위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지 않던가!

 

 

 

 

 

 

1911년에 그의 일생의 대작, 길이 10미터, 총 14개의 작품인 <스페인의 광경>을 1919년 6월에 완성하고 마무리하였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스페인 전역을 다니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완성한 후에 그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지중해 해안인 마드리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바다를 그렸다. 호아킨 소로야가 직접 가꾼 집과 정원은 9년 후 그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내와 세 자녀가 스페인 국립 소로야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다정했던 남편,  자상한 아버지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을 한 시인의 시어를 통해 표현해 본다.

 

 

 

 

 

 

목련후기

 

복효근

 

 

목련 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 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모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 복 효근, <목련후기>, (마늘 촛불),2017

 

 

 

 

 

 

 

유럽에는 예술가들이 태어나 그들이 살았던 집들을 그들의 작품과 함께 그대로 보존한 하우스- 뮤지엄(House-Museum)들이 많다고 한다.  소로야 미술관은 그중에서도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되시면 유명 미술관도 보시고 소로야의 하우스 뮤지엄도 꼭 찾아보길 권해 본다. 소로야가 인류에게 준 이국적인 풍요로움을 한껏 음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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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가기

 

 

 

 

소로야의 그림은 누군가의 설명이 없이도 힐링을 주는 작품이 많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알함브람 궁전의 독특한 기타 선율과 아이들이 있는 발렌시아의 푸른 바닷 가 풍경이 스페인의 강렬한 햇살과 함께 오랫동안 시야를 가득 메울 것 같다. 그림 속 아이들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잊고 있었던 순수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그의 작품에서 받은 따뜻함으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채우며 자신만의 독특함을 재 생산해 낸다. 이것이 좋은 그림들이 주는 순기능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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