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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로 뒤덮인 뉴욕의 거리를 뒤로 잠깐 돌려 봅니다. 좀 더 인간적인 뉴요커들을 만나보려고요. 

존 프렌치 슬론의 작품을 통해 지금보다 덜 화려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뉴욕의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187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록헤이븐에서 태어났습니다.

 

 

newsteacher.chosun.com

 

 

도시의 한 장면과 뉴욕 생활의 본질을 포착하는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 슬론은 서점이자 작은 활자 판매업체인 Poter and Coates에서 보조 출납원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각종 연하장, 달력 디자인과 일러스트, 그리고 에칭 작업도 했고요. 책과 신문, 잡지 등에 삽화를 그리며 예술가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1892년부터 1895년까지 [필라데리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지에서

1895년부터 1910년까지 [프레스(Press)]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The Philadelphia Inquirer)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지역을 담당하는 아침 일간신문입니다. 이 신문사는 1829년 6월 존 R. 워커와 존 노벨이 <펜실베이니아 인콰이어러>란 이름으로 창간하였고, 미국 내에서 세 번째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일간신문이기도 하고요. 미국 내에서 10번째로 가장 많은 주간 발매량을 가지고 있으며 퓰리처상을 20번 수상하였습니다. 

 

 

 

존슬론은 1904년 뉴욕으로 이주합니다. 그는 1907년경 뉴욕에서 로버트 헨리(Robert Henri), 조기 룩스, 아서 B. 데이비스 등과 함께 8인이 주축이 된 '에이트(The Eight)'그룹을 결성하고 미국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을 전개합니다. 그곳에서 로버트 헨리(Robert Henri,1865-1929)를 만나 당대의 진보적인 화풍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미국의 화가이자 교사입니다. 젊었을 때 인상파 화가들과 강하게 동질감을 느끼고 파리에서 공부했습니다. 열성적인 추종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팀과 함께 도시에서 신선하고 덜 고상한 주제를 찾아 그림을 그렸던  화가입니다. 그리고 이듬해 1908년에 조직된 '애시캔파(Ash Can School)'에도 참여하고요.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들고 회화가 일상생활과 결부되어야 한다는 신조 아래 슬론은 도시의 활기찬 일상과 소란스러운 분위기, 투박하고 거친 생활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Sunday,Women Drying Their Hair>,1912/The New York Times

 

 

 

그의 작품은 뉴욕 길거리 풍경, 식당과 술집 안, 나룻배, 옥상, 뒷마당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뉴요커들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건물 옥상에 세 명의 여인이 머리를 말리고 있네요. 헤어드라이기가 발명되기 전인가 봅니다.   한 가한 일요일 꿀잠 자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밀린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아 바람에 들어 말리니 마음까지 개운할 것 같습니다. 낯익은 포즈들을 바라보며 무슨 얘기들이 오고 갔을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우아를 떨지 않으니 그들 사이에 제 모습도 살짝 보이고 스스럼없이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집니다. 남자친구 얘기, 동료얘기, 가족얘기 등 화제를 들쭉날쭉 바꾸며 웃고 떠들고 공감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습니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뉴요커들의 모습도 보기 좋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인간적인 뉴요커들의 모습도 정감 있어 좋습니다. 

 

 

 

 

<Sixth Avenue Elevated at Third Street>,1928/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1920년대 뉴욕은 부유한 문화와 급속한 혁신의 중심지였습니다.  금주 문화가 번성하며 불법 술집과 지하 도박장이 생기고 있었죠. 한편으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에서 춤과 음악으로 활기찬 시간이 펼쳐지기도 했고요. 아마 그림 속 젊은 직장 여성들은 일 끝내고 어딘가로 놀러가는 가 봅니다. 움직임이 들떠있어요. 재즈바의 마음에 드는 피아노 맨이 있을지도 모르죠.  이 시기는 여성들이 미국에서 투표권을 얻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변화와 동시에 여성들의 자유로운 생활양식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으니까요. 도시의 높은 건물들이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며 모던한 도시의 상징이 되어갑니다. 기술 혁신과 경제 성장 또한 함께 펼쳐지던 시대였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xT08okBIztU

 

 

 

 

 

 

 

슬론은 인간의 삶, 그리고 그 삶의 기쁨을 담아내기 위해 초점을 촘촘하게 확보하고 피사체를 면밀히 관찰합니다.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는 그의 작품이 후기로 갈수록 색채가 밝아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로 슬론은 1920년대 후반 생계가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자 도시 주제의 그림 대신 누드와 초상화를 주로 그리게 됩니다.

 

 

 

 

<Blond Nude with Orange,Blue Couch>,1925/ART&ARTISTS

 

이전작들과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죠? 개인적으로 슬론의 이전 작품들이 더 맘에 들긴 하지만요. 아름답지만 소시민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그런가 봅니다. 그들의 희로애락이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어 그런가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tlE4AwE_g0

 

 

 

 

슬론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 자체에 관심이 많았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는 풍요와 빈곤이 뒷섞여 있는 뉴욕에 살면서 매일 부딪치는 가난한 노동계급의 삶과 맨해튼의 환락가 등 궁핍과 혼란으로 가득 찬 도시풍경을 낙천적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묘사했습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은 인물들의 자세는 신문 삽화가로 일했던 그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슬론은 1914년부터 약 10년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이곳은 1875년 아티스트들로 설립된 곳으로 거의 대다수 학생들이 National Academy of Design in New York에 소속했고 , 상당수 학생들은 여자였다고 합니다.  프로페셔녈 아티스트와 아마추어 아티스트들을 위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드로잉, 수채화, 페인팅, 조각, 파스텔화, 포토샵과 미술사 강좌 등 다양한 클래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트를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연령, 인종, 학력의 제한이 없고요. 자격시험이 까다롭지 않고 입학시험은 없습니다. 수업에 따라 강의료는 다양하고 자신이 원하는 수업 프로그램을 짜서 받을 수 있습니다. 국가, 연령 인종에 상관없이 아트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교입니다.

 

 

 

단, 외국인의 경우 학생 비자가 필요한 경우라면 아트 포트 폴리오와 1년 이상의 미술 전공 자격증과 재정 증명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지원 방법은 온라인으로 한 뒤 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하면 됩니다.

 

 

이 학교 출신자는 이력서에 자신 있게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에서 수학했다고 적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한 유명한 화가 가운데 잭슨 폴락, 리히텐 슈타인, 조지아 오키프, 노먼 록웰, 마크 로스코, 알렉산더 칼더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정식 학위를 인정해주지 않지만 아티스트들이 인정해주는 사랑스럽고 멋진 학교입니다.  슬론은  1951년 뉴햄프셔주 하노버에서 암으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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