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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32살)
21세기 피카소
파카소와 고흐
무대디자이너
수영장 화가
iPad 그림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80번째 생일(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파리의 퐁피두 센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생존작가 중 가장 비싼 화가
이 정도 힌트면 감이 오실 것 같습니다. 예. 맞습니다.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입니다.
호크니의 그림은 파노라믹하고 아이코닉한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처음에는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나중에 영화 같은 그림을 그린 작가지요. 영화처럼 움직임을 품은 그림이란 화가가 모델을 이쪽에서도 보고 저쪽에서도 보느라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는 뜻입니다.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이미지를 모아 한 군데에 배열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거지요. 전통적으로 화가 지망생들은 그림을 그릴 때 한자리에서 그리도록 배웁니다. '원근법'때문이지요. 원근법은 가까운 사물은 크고 뚜렷하게, 먼 곳에 있는 사물은 작고 흐릿하게 그려서 입체감을 나타내는 기법입니다. 가깝고 먼 비율을 정확하게 하려면 화가의 위치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화가가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그림을 그리면 멀리 있던 것이 가까워지고 가깝던 것이 멀어질 테니까요.
데이비드 호크니는 브래드퍼드 예술학교 학생 시절 실물 드로잉과 외부 세계에 대한 충실한 관찰에 입각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음산한 색과 환영적 공간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와 석판화를 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한창 각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크니는 추상과 재현적 이미지를 구분하는 경계를 흐려가면서, 도식화된 인물의 형태, 그라피티 등을 사용해 성과 사랑에 관한 주제를 그렸습니다.
호크니의 많은 작업에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한 쌍의 인물들입니다. <나의 부모님 My Parents>(1977)은 그의 엄마와 아빠를 그린 작품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이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호크니가 그들의 성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세요. 어머니는 다소곳한 자세로 똑바로 단정하게 앉아 계십니다. 백발의 온화한 미소, 두 손과 발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이 '참, 곱게 나이 드셨구나.'싶습니다. 화사한 색감이 매력적입니다. 살짝 들린 구두 뒤꿈치, 집에서도 일을 놓지 못하고 열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양새입니다. 모델 서시는 날은 아들과 눈 맞춤이라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쑥스러우신 건지. 관심이 없으신 건지. 오랜 습관의 관성이신지. 두 분 사이에 센스 있게 놓아진 튤립 화병만큼이나 집안은 밝고 청량해 보입니다. 부모님을 향한 호크니의 정성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1937년 7월 9일 영국 브래드 포드 (Bradford) UK 출생의 영국계 미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이 시기 호크니는 추상화를 풍자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 작품같은 대상을 다른 스타일로 그린 4개의 연작 중 하나인데, 호크니는 이 연작에 대해 "나는 의도적으로 피카소처럼 4개의 전혀 다른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했다."라고 제작 의도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영국 왕립 예술 학교 재학 중이던 호크니는 영국의 '타이푸(Typhoo)라는 브랜드와 차 포장 용기를 보고 이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가곤 했다. 거기에서 차를 마시곤 했는데, 항상 타이푸(Typhoo)였다. 티백 포장용지가 쌓여갔는데 어느 날 그게 정물화처럼 보였다. 지극히 평범하고 대중적인 브랜드 차의 포장용지였고, 나는 그것을 모티브로 사용했다. 이건 내가 지금껏 했던 작업 중 가장 팝아트 다운 것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
이 작품은 호크니가 처음으로 맞춤 캔버스 (shaped canvas)를 제작해 그림을 그린 것이기도 합니다. 왕립 예술 학교의 학생들 중 전통적인 사각형의 캔버스로부터 탈피해 위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하네요. 이 일화는 화면구성과 공간에 대한 여러 개념, 전통에 대해 탐구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간 호크니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로로 긴 좁다란 화면에 사람처럼 보이는 도상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차의 겉 포장 용기가 그렇듯, 제품 설명 등이 적혀 있습니다. 측면에는 'TEA'가 아니라 'TAE'라고 잘못 적혀있기도 합니다. 이것에 대해 호크니는 "나는 맞춤법에 약하다. 그래도 3글자 짜리 단어를 틀리다니! 하지만 이걸 원근법에 따라 그리기란 쉽지 않았다. 이를 그리기 위해 오랫동안 계획했고, 내 마음이 오로지 '평면성'과 '추상성'만을 향해 있어 오타가 났다."라며 유쾌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영국 사회를 풍자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이자 판화가였던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동명의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제작한 판화입니다. 호크니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현대 사회상과 시대에 맞게 내용을 교훈적으로 각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61년 첫 뉴욕 방문 시 작품 구상을 위한 이미지를 수집했고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정체성을 잃는 과정, 미술계의 부패와 타락 등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이 시기에 무엇이든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호크니는 , 피카소처럼 다양한 양식과 여러 그림 제작 방식을 의도적으로 실험하고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왕립예술 학교를 졸업한 후 더욱 성숙한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특성을 작품에 부여하고 양식 상의 자유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호크니는 무엇이든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피카소처럼 다양한 양식과 여러 그림 제작 방식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영국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성숙한 예술가로서 작품에 자신만의 특성을 부여하고, 양식상의 자유를 발전시켜나갔다.
1960년대 호크니는 작품 스타일과 매체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며 계속하여 다작을 이어갑니다. 사진, 연극 무대 디자인, 중국의 화권(두루마리 회화)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면서 일시적으로는 판화로 관심을 돌려 입체주의 ,회화공간,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다른 실재들을 2차원 평면에 어떻게 재현하는 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사진에 대해 "외눈박이 순간을 포착하는 것과 같다."라고 이야기하며 사진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시공간을 표현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합니다.
호크니가 움직이는 초점이라고 지칭하는 이 시기의 아이디어는 원근, 기억, 공간을 제안하는 복합적인 실내 풍경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운데 우물이 놓여 있고 그 주위를 둥근 기둥들이 둘러싼 장소를 그린 작품입니다. 마치 볼록 거울로 비춘 듯 기둥들이 우리를 향해 튀어나와 보입니다.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보이는 원근법과 반대되는 효과를 낸 것이죠.
1990년대 초, 카메라가 세상을 동질화하고 능동적으로 보는 행위를 퇴화시킨다고 결론을 내린 호크니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는 실험적인 방식들을 계속해서 모색했습니다. 이 시기에 호크니는 추상적 패턴과 형태가 조합된 이미지로 회귀하였습니다. 선명한 색감과 다양한 패턴의 면,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은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심지어 작품을 고정하고 있는 액자 틀에도 붓질해 3차원의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추상적 화면을 만들어갔습니다.
2021년 6월 24일 수요일 밤 필립스 (Phillips)는 뉴욕에서 '현대 미술 이브닝 세일'을 개최하여 1억 1,19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그중에 팔린 호크니의 '깔끔한 잔디밭'입니다.
그는 '로스엔젤리스의 영국인'으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눈부신 캘리포니아에서 보냈습니다. 수영장에 이어 호크니는 초상화라는 전통적인 장르를 택합니다. 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인 초상화를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스냅 사진처럼 보여줬습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한낮에 부부가 자기 집에 편안하고 느슨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막 사진을 찍으려는 화가의 카메라를 향해 눈길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의 모델은 오시 클라크와 셀리아 버트웰로 호크니의 절친한 친구이자 1960-70년대 런던 패션 산업을 선도한 디자이너 부부입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호크니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세계에 상당히 감성적으로 반응하며 이미지를 제작했습니다. 그가 오랜 시간 관찰을 통해 느낀 빛과 그림자, 인물, 그리고 공간과 깊이를 표현하는 데 보다 집중합니다.
특히 이 시기에 그려진 2인 초상화 시리즈는 영국 테이트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입니다.이 작품들은 오랫동안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면밀히 관찰하고 다수의 습작 드로잉을 거듭한 끝내 탄생했습니다. 특히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1971)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실물 크기로 제작되어 마치 관객이 서 있는 실제 공간에 대상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2vPPviP9B8
1964년부터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인근에 거주하며 이 도시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로 유명한 영국에서 살아온 호크니는 뜨거운 햇빛과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로스앤젤레스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묘사'에 관한 문제에 계속해서 몰두했습니다. 바로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포토리얼리즘과 회화 사이에 세 내적 갈등했던 거죠. 호크니는 실재를 구축하는 문제에 질문을 던지며 "이것이 관객을 좁은 원근 체계에 가둘 뿐만 아니라 관객을 그림과 단절시키고 그림으로부터 분리시킨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위 작품을 보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튀어 오른 물벼락만 하얗게 두드러져 있습니다. 누군가 막 다이빙대 위에서 '풍덩'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나봅니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을 그림으로 포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호크니는 '풍덩'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그걸 보면서 그렸다고 합니다. 정지된 순간이라는 느낌을 그림에서 강하게 받게 됩니다.
그는 기술적인 면에서 회화가 사진에 비해 사실성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는 점을 직시하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리의 투명성이나 계속해서 움직이는 물의 특성을 포착하는 방식 등에 천착합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하던 어느 시점부터 호크니는 빠르게 건조되고 캔버스에서 벗겨지지 않는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재료로 사용하게 됩니다. 덧칠할수록 색의 청량함이 반감되는 아크릴의 특성 때문에 그는 최대한 수정 없이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고, 더욱 작품의 표면에 집중했습니다. 철저한 계획과 세심한 붓질이 요구되는 작업이 작업 속도는 늦었지만 결과적으로 관찰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2018년 2월 7일 그의 수영장 첨벙의 풍경 '더 큰 물보라 The Splash'가 2,980만 달러 ( 369억 원)에 판매되었습니다.
그가 오늘날 현존 아티스트 중 가장 비싼 작품의 주인공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2018년 11월 15일 열린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호크니의 작품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 >(1972)이 9030만 달러 (약 1019억 원)에 팔렸습니다. 예상 낙찰가는 8000만 달러(약 910억 원)였으나 실제 경매에서 <예술가의 초상>은 1000만 달러나 더 비싸게 낙찰되며 현재 살아있는 작가 중 최고가 경매 낙찰 기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술가의 초상>은 1972년 제작된 호크니의 '수영장 시리즈'중 하나입니다. 물속에서 평영을 하는 남자와 빨간 재킷 차림으로 수영장 밖에 서서 물끄러미 수영하는 남자를 지켜보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있는 남성은 호크니의 11살 연하 애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호크니 자신이 또 다른 자신을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요. 정적이면서도 많은 사연이 담긴듯한 분위기의 그림은 호크니 작품의 정수로 현존 작가 최고액이라는 기록을 낳았습니다.
호크니의 파트너인 조지 로손 George Lawson과 댄서인 웨인 슬립 Wayne Sleep의 모습입니다. 출입구에 서 있는 웨인이 조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호크니가 느꼈던 사랑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가 포착한 많은 그림 중 여러 작품이 그가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특별한 남자 친구들'의 초상들입니다. 그런 그림들에서도 부모님을 표현할 때 그림처럼 호크니는 사랑하는 남성들에게도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마음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친구도 그렇고, 그가 존경하는 다른 커플 역시 만찬가지입니다.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한 이후 그의 화풍과 예술 세계가 호크니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기타 The Old Guitarist form The Blue Guitar,1976-7> 시리즈에서는 피카소에 대한 호크니의 경외심과 탐구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자연주의 (사실감, 현실성)' 바탕으로 하는 회화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호크니에게 피카소와의 유대감은 위안을 줍니다. 양식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요. 비록 본인은 판화가가 아니며 단지 약간의 판화 작업을 일삼는 화가일 뿐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 판화를 통해 호크니는 20세기 후반 판화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한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홈 스튜디오는 할리우드 힐스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선셋 브리버드 (Sunset Boulevard)에서 운전하여 협곡 쪽으로, 1920년대 아르데코 주택들과 산비탈 사이에 자리 잡은 한 코너 하우스에 살고 있었죠. 니콜라스 캐니언 <Nichols Canyon>(1980 ) 캘리포니아 호크니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할리우드 드라이브의 계곡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더비 Sotheby's에서 2011년 1,175만 달러 (120 억 원)에 낙찰된 작품이고요. 10년 뒤인 2020년 12월 필립스 Phillips에서 무려 4100만 달러 (500억 원)에 다시 낙찰됩니다.
1980년대 호크니는 작품 스타일과 매체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며 계속해 다작을 이어갑니다. 사진, 연극 무대 디자인, 중국의 회권(두루마리 회화)에 대한 연구에 집중합니다. 일시적으로는 판화로 관심을 돌려 입체주의, 회화 공간,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다른 실재들을 2차원 평면에 어떻게 재현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게 됩니다.
1990년대 초, 카메라가 세상을 동질화하고 능동적으로 보는 행위를 퇴화시킨다고 결론을 내린 호크니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는 실험적인 방식들을 계속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1천 개의 시점이 존재한다.
-데이비드 호크니-
21세기 전환기에 제작된 호크니의 그랜드 캐니언 풍경화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nDAidgLZiE
호크니는 런던에 살고 있지만 캘리포니아에 다른 두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와 영국은 매우 다른 장소이며 대조적인 곳이죠. 그의 작업이 '하늘과 땅 차이'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캘리포니아는 영국에 비해 맑은 날이 많지요. 우중충한 영국 날씨는 항상 변합니다. 따라서 호크니가 영국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변화하는 계절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개로비 언덕을 올라가기 Going up Garrowby Hill '(1998)에서 호크니는 그가 자란 요크셔의 풍경을 캔버스로 그렸습니다. 계절을 그린 그의 그림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색상으로 가득합니다.
빛에 대한 현란한 집착, 솔직한 평범, 사실주의 팝 아트와 사진, 기술과 표현의 경제성. 이 모든 것들이 호크니를 독특하게 만드는 '미술의 힘'입니다. 호크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놀이와 즐거움과 기쁨, 눈부심을 경험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팝 아티스트 호크니의 그림 스타일은 바로크에서 입체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소스를 포함하며 최근에는 컴퓨터 그래픽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대 화가이며 이미 거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젊은 기분으로, 인습을 깨고 우상을 파괴하는 이콘 파괴자 iconoclast로 종횡무진 활약 합니다. 비례, 선형 관점 및 색상 이론의 해체를 즐깁니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은 고전을 숭상하면서도 현재의 모든 규칙을 고위적으로 깨뜨리며 활동합니다.
호크니는 1980년대 붓을 잠시 놓고 아예 사진만으로 그림을 구성해 보기로 합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 144장을 퍼즐 맞추듯 구성한 작품입니다. 사진을 이어 붙인 '포토 콜라주'이지만 이 그림부터 호크니는 작품에 움직임을 반영합니다. 144컷 속에는 144개의 서로 다른 시선이 숨어 있으니까요. 화가가 서 있던 자리를 조금씩 옮겨서 찍은 사진들이거든요. 호크니는 피카소의 복수 시점, 한눈에 보기에는 너무 커서 걸어 다니면서 봐야 하는 중국 두루마리 그림 등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z5vWgKy2Sc&t=81s
아무리 사진이 발전해도
사진은
결코
천국이나 지옥을 찍을 수 없어
미술과는 경쟁할 수 없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호크니는 50여 년 전 1970년대에는 사진작가를 꿈꾸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화가를 시작하기 전, 아니 화가를 계속하면서도, 조이너스 Joiners라고 불리는 사진 콜라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가 말했듯이 호크니도 사 진 이의 한계성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찰칵 한 방과 끊임없는 붓질이 주는 깊이감은 분명 다르니까요. 그는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미술, 사진이 할 수 없는 미술을 위해 붓을 다시 듭니다. 그것이 그만의 성공 비결이 됩니다.
호크니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로스 앤 제레스, 런던, 파리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는 1974년 파리 센 강에서 만난 그레고리 에번스 Gregory Evans(그림 왼쪽), 그와 함께 1976년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서 10년이 넘도록 개인적인 특별한 관계를 함께 했으며, 오랜 연인 관계였습니다. 그레고리 에번스 Gregory Evans는 캘리포니아의 옆집에 살면서 호크니의 아트 비즈니스를 위해 활동했고, 수많은 작품 속에서 모델로 재탄생합니다. 50년이 넘는 특수 관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2021년 현재도 비즈니스 파트너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호크니가 게이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영국에서 게이 섹스가 여전히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이 게이라는 섹슈얼리티를 '내놓고' 표현했습니다. 1967년까지 영국은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영국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간 가장 큰 이유 역시 자신의 '성'에 제한받기 싫어서이기도 합니다.
1937년 7월 9일 영국 브래드 포드 Bradford, UK 출생의 영국계 미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우리 나이로 87세 (2024년)이지만, 요즘에 그는 캘리포니아 보다 고향 요크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영국 요크셔에 머무르면서, 매일 6-7시간 동안 여전히 왕성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지요. 미술에 대한 많은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호크니의 미술 작업이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iPad로 그립니다. 아이패드 그림은 누워서도 작업이 가능합니다. 스마트폰은 사용하기 쉬웠고요. 화가의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아침 일찍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침에는 넓은 선으로 인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낮이 되면 아이패드 화면에 직접 눈부신 색상을 그렸습니다. 아이패드의 가장 큰 장점은 작업이 완료되면, 즉시 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든 과정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시간을 돼 감는 것과 같이 말이죠. 그림의 복제도 가능하고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림 보관을 위해 커다란 수납 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캔버스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물감 값이 들지 않습니다. 그는 완전히 예술적 매체로 새로운 그림 세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2010년 과 2011년에 북부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동안 호크니가 iPad에서 만든 3부작 David Hockney Paints <Yosemite iPod>, 뉴욕타임스( The New York Times)입니다. 호크니는 더 큰 화면으로 그의 예술적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색상, 빛 및 선의 더 복잡한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iPad를 사용해 그림을 그립니다. 좋아하는 주제인 산사나무 꽃이 특징인 합성 사진 작업을 해서 해마다 사시사철 변화는 화려한 창밖의 모습인 계절을 풍성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원근법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쓰였습니다. 정확한 원근법은 고정된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본 한 방향의 시선, 즉 단일 시점을 전제로 합니다. 원근법은 600년 가까이 서양 미술을 지배했습니다. 원근법은 그림의 사실적 느낌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됐지만 대부분의 그림이 엇비슷한 구도가 되게 만들었지요. 19세기 후반부터 화가들은 원근법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호크니에게 큰 영감을 준 파블로 피카소는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본 후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의 그림이 여러 개의 시선을 가졌다고 해서 이를 복수 시점이라 부릅니다. 호크니가 복수 시점을 잘 표현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2000년대 태어난 고향으로 관심을 돌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전원 풍경을 그립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호크니는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계절의 변화와 그 경이로운 광경에 감동을 받고 영국 요크셔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호크니는 풍경을 그릴 때 수없이 반복하며 그렸는데 드로잉과 수채화로 먼저 풍경을 그려보고 다시 유화를 그렸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풍경화를 그리면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에서 정점을 이 웁니다. 가장 큰 규모로 높이 4.5m 폭 12m의 크기로 총 50개의 캔버스가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룹니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봄이 오기 직전 와터 근처의 새순을 머금은 겨울나무를 그린 것으로 화면의 중심에는 가지를 뻗은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있고 키가 큰 나무들과 수선화들이 피어있고, 오른쪽에는 두 채의 집이 보입니다. 또한 배경에는 분홍빛 숲이 보입니다.
이 작품은 커다란 규모로 인해 앞에 다가서는 순간 마치 실제 나무숲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호크니가 말하는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한 복판에 자리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처음 작품을 접할 때는 요소들의 다양성과 복잡한 관계를 한눈에 포착하기는 어렵지만 이로 인한 약간의 불안감은 곧 작품 곳곳을 탐색하게 되는 즐거움과 환희로 바뀌게 됩니다. 또한 호크니는 이 풍경화를 그릴 때 배경의 숲을 염두에 두고 그렸는데 큰 나무 뒤에 있는 공간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겨울나무를 그리게 되었고요. 나무의 잎이 무성한 여름철이 배경이 되면 뒷 배경의 공간이 보이기 힘들겠죠. 그와 우리를 구별 짓는 그만의 독특한 시선을 느끼게 합니다.
평범한 나무들을 보면서
가지에 달린 몇 개의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 환상적인 형태를 생각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을 잃으면서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도 잃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데이비드 호크니-
https://www.youtube.com/watch?v=q4TaBiSro4o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림이야말로 저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60년 동안 계속 그렸습니다.
호크니가 요크셔 집의 창문을 통해 계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적인 작품과 안목 있는 예술 애호가를 위한 작품, 그의 요크셔 집 창문 밖에서 변화하는 계절에 대한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의 iPad 그림이 또 다른 감성으로 다가옵니다.
이제 미술 도서 출판사 타센 TASCHEN에서 그의 표현대로라면 '일본 스모 선수만큼 큰 책'에 화려한 해상도로 인쇄 한 새 책, '나의 창문 My Window'이 나왔습니다. 작가가 연대순으로 정렬 한 iPad 그림 120 개 작품이 들어있습니다.
나의 창문 My Window'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의 iPad 그림 한스 베르너 홀츠 워스 Hans Werner Holzwarth 편저 아트북 전문 출판사 타셴 TASCHEN, 가격 1,750( 책 한 권 무려 280만 원)
https://www.youtube.com/watch?v=qW76WLCgQJo
1980년대에 복사기와 팩스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듯 2010년 이후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청력이 좋지 않은 그는 전화 통화 대신 문자를 주로 이용하는데, 매일 아침 친구들에게 싱싱한 꽃 그림을 그려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이패드의 훌륭한 점은 스케치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된 물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
그렇다고 그가 첨단의 매체만을 추구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는 영상매체는 새로운 매체이고 낡은 매체라는 생각이야말로 낡은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즉 새로운 매체와의 만남을 시도하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매체인 캔버스와 붓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는 최근 런던에서 83점의 새로운 페인팅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이번에는 풍경화가 아닌 초상화들이죠.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서양화라기보다는 동양화에서 느껴지는 구도와 원근법에 더욱 가까우며 색채는 여전히 신선한 밝은 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o4y4gF5ang
그는 담배 한 개비가 관에 박는 못 한 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올해로 흡연 역사는 70년입니다. 1960년대 초 그가 런던의 왕립 미술학교 (Royal College of Art ) 재학 시절, 동기생 알비키 타지 R.B. Kitaj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해골 그림을 5파운드에 팔았다고 합니다. 호크니는 그 첫 그림 판매 수입으로 담배 20 갑을 샀던 기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아들의 지독한 흡연을 걱정하던 그의 아버지는 , 담배 대신 초콜릿 비스킷을 자주 주셨지만, 담배를 즐겨 피우는 그보다 10년 먼저 75 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서른 살, 나의 화실로 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uBPaKSCsIU
우리는 마음과 기억으로 본다
호크니는 캘리포니아 시기에는 평면성을 강조하며 그렸습니다. 영국으로 넘어간 노년에는 공간을 살리는 풍경으로 변화했고요. 그는 나무, 잎사귀, 풀 등을 그리면서 "더욱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바라보기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기는 호크니 삶과 예술에서 궁극적인 행위이며 이를 통해 그는 가능한 왜곡 없는 실제를 올바로 보고자 갈망한 예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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