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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나비파(Navis)

원근법보다 더 깊은 평면성의 창조

신비주의자

상징주의자

종교와 예술에 대한 사명감

"보라고 가르치는 대로만 보고,

하라고 해놓은 길만 가는 작가는 되지 않겠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폴 고갱의 영향

 

 

2. 생애

 

 

작가들의 개성과 창조력이 넘치는 시대 19세기 후반의 미술!

그 시대에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하려 한 또 한 명의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모리스 드니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폴 세뤼지에를 주축으로 고갱의 영향을 받아 폴 랑송, 에두아르 뷔야르, 피에르 보나르와 예언자 히브리어를 뜻하는 나비(Nabis) 파를 결성하여 활약한 화가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쁜 '나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비파(Les Nabis)는 19세기말 사회적으로 팽배해진 물질주의의 한계와 색채분석에 의존하여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인상파의 작품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종합적인 구성을 시도하여 자신의 사색을 화면에 전개하는 사조를 일컫는 말이다.  미술에서 색채는 사물의 원래 색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고갱의 관념에서 나온 나비파는 현의 단순화를 통해 그 속에 영원성을 부여하였으며 굵은 윤곽선을 통해 장식적 기법을 차용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예언자를 뜻하는 말 때문이었을까? 이들은 세상에 없던 색깔, 세상에 없는 장소를 그림으로 묘사하고자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해 본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부분은  신비주의자, 상징주의 자들처럼 인간의 상상력과 주관적인 감성에 집중한 화가들로 봐주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드니는 1889년에 <신관습주의 선언(Manifeste du neo-traditionnisme)>을 발표했는데, 그는 1880년대에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자연주의의 사실적이고 묘사적인 회화 방식을 배척하기도 한다. 이 선언서에서 가장 유명한 첫 번째 문장을 살펴보자.

 

드니가 말하는  작품이란

 

 

전쟁터의 말이나 옷을 벗은 여인,
또는 어떠한 일화가 되기 전에 조합된 확실한 질서 속에서
색채로 덮인 평평한 표면'이라고 선언한다.

 

 

 

 

 

 

 

 

 

<부활절의 신비,1891,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그래 나는 그리스도교 미술가가 되어야 해,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자를 기념하는 그림을 그려야 해.

 

 

 

모리스 드니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다짐을 노트에 옮겨놓은 내용이다. 내용만 보아도 그가 종교와 예술에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훗날 조르주 데 발리에르(Georges Desvallieres)와 함께 아르 사크레 아틀리에((les Ateliers d'art sacre)를  만들어 종교미술의 혁신과  발전에 큰 공헌을 하기도 한다. 저작자이기도 했던 그는 <모던 아트와 아르 사크레에 관한 새로운 이론(1922)> 등의 책을 통해 입체파와 야수파, 그리고 추상미술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론을 펴내기도 한다. 순수한 선과 평면적인 형태, 그리고 단순하고 조화로운 색채가 화면에서 이뤄내는 질서는 바로 자연의 성화를 나태 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흰색 옷의 언뜻 보면 유령처럼 보이는  이들이 뒷배경으로 지나간다. 정면에 여인 하나가 밖에서 기다리는 남자들을 향해 뭐라 말하는 듯하다. 그림은 성경의 <마르코 복음서(16.1-8)>의 나오는 '빈 무덤' 내용을 그린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을 찾은 장면이 그려져 있다. 향유를 발라드러러 온 그들은 뜻밖에도 예수님 대신 한 천사를 만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듣자 겁에 질려 땅에 엎드린 모습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그러나 화면의 윗부분은 성경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져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 아래로는 이층 건물이 서있고, 유연한 나뭇가지들 뒤편으로 녹색 들판에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모리스 드니는 부활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빈 무덤이야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살던 생 제르맹 앙레(Saint-Germain-en-Laye)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한 그림 안에 과거와 현재를 녹여 작품전체를 현대적 이미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깨알 재미 하나 더 보태면, 그림에 흰 옷을 입은 사람들 앞에 작고 하얀 동그라미가 다린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나 있어 다소 기괴한 느낌도 든다. '이건 또 뭐지?' 하며 고개가 갸웃 해지기도 한다. 

 

 

 

 

상징주의 작가인 모리스 드니는 그림 곳곳에 종교적 상징을 배치했는데, 공중에 나타난 손의 이미지는 매우 오래된 그리스도교 도상으로서 '하느님의 손'(MunusDei)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하느님의 손'은 이사악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나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에 자주 그려지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때로는 모리스 드니의 작품에서 나타난 손은 성체를 분배하는 사제의 손을 상징하기도 하고, 좀 더 넓은 의미로 성자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는 성부(하느님)의 손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령처럼 보이던 이들은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내며, 또한 생명의 빵인 예수님을 모시는 성체성사의 행렬, 구체적으로 첫 영성체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상징한다고 한다. 모리스 드니의 깊은 종교적 성찰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과거에 지나간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 우리에게 매 순간 벌어지는 지금 여기의 사건이라고 그림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소장되어 있다.

 

 

 

 

 

 

 

모리스 드니, 뮤즈들(The Muses in the Sacred Wood,1893

 

 

 

 

 

 

 

 

당시 모리스 드니는  그림 제 일 앞에 그의 아내 마르트를 두 번 그려 넣는다. 보이시는 가! 쌍둥이처럼 비슷한 느낌의 여인을 말이다. 그녀는 1893년 결혼 후 드니가 사망할 때까지 줄곧 그의 뮤즈였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마르트는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과 옆모습으로 두 차례 그려진다. 나중에 모리스 드니가  남긴 글에서 밝혀진 내용이라고 한다. 그림의 배경은 드니가 평생을 살아던 고향 생 제르망 앙레의 숲이다. 수 백 살 된 마로니에 나무들은 자연의 모습이라기보다, 그것을 기반으로 디자인된 장식 미술처럼 그려져 있다. 이국적인 벽지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말이다. 이 그림에서 소위'뮤주들' 뒤에 보이는 나무들은 원근법을 적용해 배치한 것이 아니라 마치 앞으로 끌어당겨 일부러 모델 뒤에 배경처럼 세워 놓은 것 같다. 공간감보다는 평면적인 느낌을 강조한 부분이다. 원래 벽화라는 것이  공공미술의 성격이 강한데, 이 그림은 평면적이고  단순한 표현으로 벽화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개인적인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드니는 루브르를 다니면서 완고했던 당시 전통주의자들의 교육보다 더 오래된 거장들을 찾아 그들의 그림을 연구하고 모사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가 특히 끌렸던 작가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프라 안젤리코였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지역의 수도사로 본명은 귀도 디 페에트로(Guido di Pietro)인데 본명은 잊히고 프라 안제리코라는 이름으로 미술사에 남아있는 인물이다. Fra(수도사), Angelico(천사 같은)으로 '천사 같은 수도사님'이란 뜻이다. 동료 수도사들이 천사 같다고 불러서 어느새 그것이 이름이 되어 버렸다네요. 그의 그림의 특징은 '인간미'가 느껴지는 따뜻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수태고지>,1432-1446, Italy- Cortona , 핑크빛 옷에, 어린 아이 같은 얼굴을 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어때요, 스승의 그림과 비교해 보니 느낌이 더 확 와닿지 않나요. 모리스 드니의 작품에 프라 안젤리코 화가의 느낌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 같네요.  아직 견고하게 고정되지 않은 원근법과 벽화 같은 느낌, 그리고 뭔가 인물에 집중하게 만드는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든 드니는  자신의 작품에도 이 점을 열심히 반영하기 시작합니다. 잠시 사사한 다른 스승으로부터  벽에 그리는 느낌 같은 표현과 고풍스럽고 독특한 채색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드니의 작품들에서 벽화같이 장식적인 느낌이 풍기는 것은 선배 스승들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난 신이 행하시는 모든 기적을 그림으로 표현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리스 드니, <세잔에게 바치는 경의 (1898-1900)>,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이 그림에는 한때  고갱이 소장했던 세잔의 그림 <과일 그릇이 있는 정물>이 그려져 있다. 왼쪽부터 오딜롱 르동, 뷔야르, 루셀, 볼라르, 모리스 드니, 세뤼지에, 멜라르오, 랑숑, 보나르, 모리스 드니 부인

 

 

 

 

 

 

당대의 주요 화가들이 다 모였다. 작품에 몰려든 그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오고 가는 의견들로 담배 연기가 사그라질 때까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발음조차 쉽지 않은 그들 특히 보나르와 뷔야르, 발로통, 폴 랑송과 공유했던 상징주의와 신비, 음악과 문학에서 파생한 드니의 그림들을 보며 그들은 드니를  '아름다운 성상의 나비'라 불렀다.

 

 

 

회화란 군마나 여인의 누드 혹은 어떤 일화이기 이전에
하나의 질서에 걸맞게 배열된 색채들로 뒤덮인 평면이다."

 

 

 

 

 

 

3. 나가기

 

 

나비파의 일원으로 인상파 이후의 신선한 색채 감각과 고갱의 평면적인 장식성을 추구하며 19세기와 20세기를 살아낸 모리스 드니!

파리에서 PER를 타고 생베르맹앙레 역에 내려 20분을 걸어가면 드니가 죽을 때까지 30년간 거주하며 작업했던 모리스 드니 미술관이 나타난다고 한다. 17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드니가 소유하기 직전까지 왕립병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의 세계를 통틀어 흐르는 종교적인 색채의 그림들과 신비하고 상징적인 그림들 속을 수수께끼 풀어가듯 즐겼던 시간이었다. 성경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더 보이는 것들이 많았을 작가의 그림이기도 하다. 숭고하고 검소한 어느 수도원처럼 석조로 지어진 그의 미술관에 운 좋게 들린 다면 유독 신심이 뜨거웠던 드니의 작품 앞에 저절로 십자 성호를 그리지 않을까 싶다.

 

 

 

2023.03.24 - [지식&교양] - 46. 인상주의 화가, 고갱(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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