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같은 용모에 곱슬머리와 보조개, 지휘봉을 들면 신들린듯한 놀림, 록스타같은 인기를 누리는지휘자가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구세주' 로 , 두다(Duda)'라는 별명답계 21세기 휘청거리는 클래식 음악계의 혜성처럼 등장한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 그의 카리스마와 스태미나, 곡 해석력은 널리 인정받아 왔지요. 서둘러 그를 만나러 갑니다.
음악은 마법 같은 것으로 음악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살사든 클래식이든 음악엔 경계가 없다.
음악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고,
아이인 나에겐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과 음악을 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수타브 두다멜(Gustavo Dudamel)-
2008년 12월에는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을 이끌고 첫 내한 공연을 가졌는데, 이때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에 참가해 자신에게 지휘를 가르쳐 주었던 한국인 지휘자 곽승을 만났습니다. 앙코르 때는 자기가 입고 있던 베네수엘라 국기 문양의 점퍼도 선물하는 등 훈훈한 사제 관계를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XNKcIx4Gks
곽승 (1941- )지휘자는 고등 학생 시절인 1957년 12월에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최연소 트럼펫 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뉴욕 메네스 음대에서 수석 졸업 후, 지휘법을 배워 1970년대 링컨센터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와 조프리 발레 오케스트라에서 홀동하였습니다.
곽승은 부산시립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며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그의 경력 내내 엄격하고도 균형 잡힌 연주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특히 1983년부터 1997년까지 텍사스의 오스틴 심포니를 이끌며 이 악단을 최고 수준의 교향악단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그는 KBS교향악단에서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며, 여러 국내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1997년 부산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미국 내 여러 도시에서 순회 공연을 하여 한국의 교향악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2008년부터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재직하고 있으며, 젊은 음악인의 양성을 위해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육적 기여는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의 성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UaKSl8OPBA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 1,26,1981- ) 은 베네주엘라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입니다. 살사밴드 멤버인 아버지와 합창단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다멜은 클래식이 아닌 살사의 영향 아래서 자랐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Jose Antonio Abreu, 1939-2018 )는 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촌 아이들을 위한 구제활동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엘 시스테마 (El Sistema)' 운동입니다. 무상 음악교육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 ' 운동은 빈곤과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하여 정서를 함양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엄청나게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이것을 아예 국가적 사업으로 확대시켰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Jose Antonio Abreu, 1939-2018)는 베네수엘라의 저명한 지휘자이자 음악 교육자로, 현대 클래식 음악 교육의 혁신적 접근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루고자 했던 인물입니다. 베네수엘라의 발레라(Valera)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카라카스의 국립 음악원에서 작곡과 오르간을 전공하였습니다. 이후 경제학을 공부하여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75년 그는 '엘 시스테마'라 불리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창립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무료로 클래식 음악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아브레우는 음악이 단순한 예술 형태가 아니라 사회적 통합과 발전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통해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음악적으로 성장하고, 일부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110,000명 이상의 아동을 음악 교육에 참여시키며, 음악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 그의 노력은 유네스코의 국제 음악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았으며, 여러 나라에서 유사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년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공예 및 예술상, 2009년 폴라 음악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국제적인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는 음악 교육과 사회적 균형을 위한 헌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프로그램은 클래식 음악 교육의 모델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엘 시스테마 El Sistema'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계적 지휘자가 바로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입니다.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1981년 1월 26일 베네수엘라의 바르키시메토(Barquisimeto)에서 태어났습니다. 트롬본 연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에 눈뜬 두다멜은 장난감 인형을 모아서 오케스트라처럼 펼쳐 놓고 그 앞에서 손을 저으며 지휘하는 흉내를 내는 등 어린 시절부터 지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11살 때 오케스트라 수업에 교사가 나타나지 않자 두다멜은 바이올린을 놔두고 첫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교실은 웃음바다였다가 진지한 연주장으로 변모했고, 뒤늦게 도착한 교사는 뒤에서 두다멜의 지휘를 지켜봤습니다. 연주 후 교사는 두다멜을 부지휘자로 임명합니다.
두다멜은 열 살 무렵,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운영하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 El Sistema'에 들어가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바르키시메토 청소년 관현악단'과 '베네수엘라 국립 어린이 관현악단'의 제1바이올린 주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국립 어린이 관현악단 단원으로 여러 나라를 순회 공연하면서 바이올리니스트 펠릭스와 비발디의 < 두 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특히 그의 협주곡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발디는 음악가인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며 성장하였습니다. 15세에 신학교에 들어가 23살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나, 건강문제로 인해 미사를 집전할 수 없어 음악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1703년부터 1740년까지 베네치아의 고아원 겸 음악학교인 피에타에서 근무하며, 그곳의 학생들에게 많은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현대 협주곡 형식의 기초를 확립한 것입니다. 특히 독주 협주곡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500곡 이상의 협주곡을 작곡했고요. 비발디의 협주곡은 대조적인 느린 악장과 빠른 악장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형태를 갖추며, 다양한 독주악기의 기법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사계'로 , 각 계절을 음악으로 표현한 협주곡입니다. 이 작품은 각각의 계절을 나타내는 소네트가 첨부되어 있어 음악적 몰입을 더합니다. 또한 그는 52편의 오페라와 다수의 기악곡 및 성가도 작곡하여 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J.S. 바흐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v4YrZbf0NA
위 사진은 베네수엘라에서 세계 최대 오케스트라 8573명이 모여 '슬라브 행진곡' 연주로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한 장면입니다.
당시 12-77세 연주자들 1만 2000명이 수도 카라카스에서 한자리에서 모여 차이콥스키(1840-1893)의 '슬라브 행진곡'을 연주했는데, 260명 심사관들은 이중 8573명이 유효하게 참여했다고 판정했습니다. 이는 종전 기네스 기록이던 2019년 러시아에서의 8097명 동시 연주보다 많은 인원입니다.
이번 기록 경신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출신 음악인들이 참여했습니다. '엘시스테마'는 '시스템'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 빈곤층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가르쳐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시스템입니다. 1975년 11명으로 시작해 40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혜택을 본 엘 시스테마는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빈곤과 폭력 등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기적의 오케스트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기록 경신은 엘시스테마 뿐아니라 베네수엘라 전체의 큰 성취
-에두아르도 멘데스(엘시스테마 음악감독)-
휴고 차베스( Hugo Chavez)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엘 시스테마'를 지원하던 강력한 후원자였습니다. 악기 등 제반 구입비로 연간 1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열열한 지지자였습니다. 그 결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탄생할 수 있었고 2013년 두다멜은 20여 명의 국가 원수들이 참석한 차베스의 장례식 동안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Rdm7OWtHlw
표트르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19세기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계를 포함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피아노에 대한 재능을 어린 시절부터 발휘했으며,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아 언어와 역사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장 과정은 정서적 갈등과 내적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조기 사망은 그의 정신적 상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 그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고, 결혼 후에도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고난은 그의 음악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나중에 법률학교에 다니던 중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음악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1860년대부터 활발히 작곡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특히 오페라와 발레 음악에서 독창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뛰어난 감정선과 서정성을 가진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는 데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고요. 그의 음악은 종종 고독, 애정, 그리고 심리적 갈등에 대한 탐구로 해석됩니다. 교향곡,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비창 교향곡>이 있습니다.
구스타보 두다멜( Gustavo Dudamel)은 '하신토 라라 음악원(Jacinto Lara Conservatory)'에서 작곡과 악기 연주 수업을 들었습니다. 1955년부터 로돌포 사글림베니(Rodolfo Saglimbeni, 1962- )와 '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Jose Antonio Abreu, 1939-2018)로부터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 엘 시스테마' 강사로 활동하던 우리나라의 지휘자 곽승에게도 잠시였지만 지휘를 배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zsYkbvaLR8
이어 두다멜은 '바르키시메토 실내 관현악단'과 '라라 주 청소년 관현악단'의 부지휘자 등을 거쳐 1999년 젊은 나이로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Simon Boli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의 음악 감독이 되었습니다. '시몬 볼리바르'는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킨 베네수엘라의 군사 및 정치 지도자입니다.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1783-1830))는 남미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며, 여러 남미 국가의 독립을 이끈 군인 및 정치가입니다. 그는 스페인령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태어났고, 현재의 콜롬비아, 베네스엘라, 에콰도르, 페루, 파나마, 볼리비아 국가의 독립을 달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엘 리버타도르"또는 "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볼리바르는 부유한 스페인계 혈통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유주의 사상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 매우 특권적이었지만 고립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젊은 시절 유학 중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을 접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을 키웠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계몽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고요.
볼리바르는 1810년 베네수엘라의 독립 전쟁에서 밀리샤 장교로 군사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왕당파 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하였고, 여러 차례 유럽과 카리브해를 오가며 군사 및 정치적 지원을 구했습니다. 1817년 , 그는 제 3공화국을 세우고, 콜롬비아를 해방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볼리바는 1819년까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여 현재의 여러 국가의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그의 유산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며, 그는 영웅이자 문화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볼리바르 공화국)등이 있습니다.
2000년 ,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최초의 유럽 순회공연으로 이어졌는데, 베를린 필하모닉홀에서 데뷔했고 독일 각지에서 찬사를 받았습니다. 두다멜은 시몬 볼리바르 관현악단 음악 감독 취임 직후, 라틴아메리카와 유럽 등지에 악단을 이끌고 공연을 다니면서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1955- )이나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 등 지휘자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먼 래틀(Simon Ratle, 1955- )은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왕립음악원( Royal Academy of Music)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전공하였습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음악적인 기초를 다졌습니다. 1974년부터 음악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였고, 첫 직장으로 본머스 관현악단의 부지휘자로 활동하였습니다.
리틀은 1980년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여, 이 오케스트라를 영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지휘 스타일은 현대 음악과 말러의 교향곡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널리 인정받았으며, 특히 감정적인 해석이 돋보입니다.
2002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평가받는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하였고, 2010년에 임기가 연장되어 2018년까지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현재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2023년부터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직을 맡게 될 예정입니다.
래틀은 그의 뛰어난 음악적 기여로 여러 가지 상과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1987년 대영 제국 훈장 3등급 (CBE)과 1994년 기사 작위 ( Knight Bachelor) 서임이 있었고, 2014년에는 메리트 훈장(OM)을 수여받았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고, 볼로냐에서 80세의 나이로 사망한 이탈리아 출신의 저명한 지휘자입니다.
그는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밀라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후, 빈 국립음악예술대학교에서 지휘를 배웠습니다. 그는 1958년에 첫 공연을 시작으로, 1963년에 미트로폴로스 콩쿠르 우승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특히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오페라와 현대 작품을 성공적으로 공연하였습니다. 또한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그의 지휘 스타일은 대화를 중시하는 민주적 접근을 특징으로 하며, 이는 카라얀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아바도는 고전파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녹음하고 공연하며, 뛰어난 음악적 해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녹음 작업 중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은 특히 유명합니다. 그는 음악과 교육적 기여를 통해 젊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지휘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HSkCrksWII
2001년 , 샤를 뒤투아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했으며, 2003년에는 잘츠부르크와 베를린에서 사이먼 래틀의 보조지휘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마젤/빌라 지휘 콩쿠르에서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렸고, 2004년 독일 밤베르크 교향악단이 주최하는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Bamberger Symphoiker Gustav Mahler '에서 우승하며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이 대회는 지휘 경력을 시작하는 젊은 지휘자들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로 창설되었습니다. 1등 상에는 30,000 유로 상금과 여러 오케스트라와의 계약이 포함됩니다.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 Gustav Mahier Conducting Competition)는 중요하고 권위 있는 국제 지휘 경연으로, 구스타프 말러라는 뮤명한 작곡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유명한 후기 낭만파 작곡가이자 지휘자입니다. 이 콩쿠르는 전세계의 젊은 지휘자들이 그들의 기술과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히, 신인 지휘자들에게 상당한 명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콩쿠르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말러의 작품을 해석하고 연주함으로써 심사위원과 청중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또한 이러한 경연은 젊은 지휘자들이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콩쿠르는 여러 라운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기 라운드에서는 주어진 작품을 원치 않는 청중에게 공연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후 결선에서 상위 지휘자들은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지휘하는 기회를 가지며 최종 수상자를 가리게 됩니다. 콩쿠르에서의 성과는 지휘자에게 향후 여러 기회를 제공하며, 많은 수상자들이 경력을 쌓는 데 도움을 받습니다.
또한 '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도 높아졌고, 관련 다큐멘터리도 꽤 여러 편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본 베토벤 페스티벌에서 프란스 브뤼헨을 대신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 카라카스에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프란스 부뤼헨(1934-20140 은 네덜란드 출신의 저명한 음악가이자 지휘자입니다. 바로크 음악과 고전 음악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낸 인물입니다. 그는 1934년 암스테르담에서 출생했고, 리코더 및 플루트를 전공하였으며, 헤이그 왕립 음악원에서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브뤼헨은 암스테르담의 섬유 공장 소유주 아버지와 아마추어 가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자녀 중 막내입니다. 그는 암스트레담 대학에서 음악학을 전공하며, 리코더와 플루트를 공부하여 초기 음악 연주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음악 경력은 1955년에 헤이그 왕립 음악원에서 교수직을 맡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72년에는 아방가르드 리코더 앙상블인 'Sour Cream'을 공동 창립했고, 1981년에는 '18세기 오케스트라'를 창립하였습니다. 그는 이 오케스트라의 사실상의 수석 지휘자였으며, 여러 고전 음악 작품을 현대의 연주 관행에 맞추어 연주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브뤼헨의 지휘 경력은 네덜란드 라디오 카메로케스트의 지휘자로도 이어졌으며, 그는 이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콘서트를 2013년에 지휘 하였습니다. 부뤼헨은 고전 음악의 전통을 중시하며 소리와 리듬의 유연성, 정서적 효과를 강조한 연주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BlgfvQ4syk
또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은 두다멜의 초청을 받고 카라카스를 방문해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을 지휘하며 어린 단원들의 자긍심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이 교향악단은 두다멜의 성장과 함께 빠르게 유명해졌고,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 호평받았습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유명한 관현악단으로, 1932년에 토머스 비첨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악단은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도 활동을 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32년 10월 7일에 창단식과 기념 공연을 런던 퀸즈 홀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영국 각지의 뛰어난 연주자들을 초빙하여 단원으로 영입하는 데 힘썼습니다. 하지만 1939년 전쟁의 여파로 운영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 이로 인해 악기와 악보의 일부가 손실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클래식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도 활동합니다. 이들은 재즈와 팝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을 통해 폭넓은 음악적 경험을 쌓고 있으며, 영화 음악에 대한 녹음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녹음하며 광범위한 디스코그래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여러 유명 지휘자들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이 중에는 에두아르드 반 베이눔과 에이드리언 볼트 등이 있습니다. 또한 1983년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여 말러의 교향곡 전집 녹음 등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현재는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상임 지휘자로 재직 중이며, 야닉 네제세갱이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으로 1936년에 창단되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스와프 후베르만이 팔레스타인으로 망명한 뒤 결성한 '팔레스타인 관현악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으며, 그 이후 여러 유명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을 해왔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창립 초기부터 텔아비브를 본거지로 하였으나, 이후 예루살렘으로 수도가 옮겨진 후에도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은 주로 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습니다.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말러, 드보르자크 등의 유명한 레퍼토리를 연주합니다. 특히 유태계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에 있어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미국의 작품도 종종 공연에 포함시키며,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망명한 유대인 음악인들이 설립한 단체로서, 단원들 사이의 결속력과 유대감이 강합니다. 반유태주의로 인해 오랫동안 바그너의 작품을 연주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일부 연주 시도를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주요 공연장에서 활동하며, 많은 유명 음반사와 함께 녹음을 진행하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의 음악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5년은 두다멜에게 본격적인 세계 무대로 진출하게 된 의미 있는 한 해였습니다. 국제 지휘자 아카데미의 일환으로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다시 지휘했고,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의 연주는 평단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25살의 두다멜은 2006년 11월 오페라 돈 조반니와 함께 밀라노 라 스칼라 La Scala in Milan에서 데뷔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C4JBD8BuCzo
어릴 때 소꿉친구로 결혼 전 오랫동안 사귄 것으로 알려진 엘로이사 마투렌 ( Eloisa Maturen)는 기자, 발레리나, 안무가 등으로 활약했습니다. 영화 '리즈 인 셉템버 Liz in September'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두다멜과 엘로이사는 2006년 결혼해 세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2015년 3월).
2017년 2월 스페인 출신 배우 마리아 발베르데( Maria Valverde)와 재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2016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두 번째 결혼 후 그는 2018년부터 스페인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부부는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구스타보 두다멜( Gustavo Dudamel)은 건강이 좋지 않은 네메 예르비를 대신해 2008년 8월에는 스웨덴의 예테보리 심포니와 함께 BBC 프롬스 축제에 데뷔하였고, 2007년에 이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가 되면서 해외 관현악단에서 첫 공식 직책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9월 10일 루체른 페스티벌 Lucerne Festival 에서 처음으로 두다멜은 비엔나 필하모닉 Vienna Philharmonic을 지휘했습니다. 그의 나이 고작 26살이었습니다. 같은 해 시몬 볼리바르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두다멜이 카네기홀에 출연해 주목받았고요. 당시 뉴욕 타임스는 '26세의 베네수엘라인 두다멜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연주자 중 한 명입니다.' 라는 기사를 대서특필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4ef_PU7WGQ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Goteborgs Symfoniker)는 스웨덴 예테보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명한 심포니 오케스트라입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1905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스웨덴의 주요 클래식 음악 기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에테보리 심포니는 1905년, 예테보리 오케스트라 협회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이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지역 응원과 지원을 받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음악 감독인 하인리히 하메르부터 시작하여, 많은 유능한 음악 감독들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 왔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윌헬름 스텐하르머는 1907년부터 1922년까지 활동하며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테보리 심포니는 스웨덴과 북유럽의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특히 장기적인 음악 감독인 네메 예르비와의 협업으로 유명합니다. 그 결과, 이 오케스트라는 시벨리우스, 스텐하르머 등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보통 예테보리 콘서트홀 에서 공연을 진행하며,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매년 여름, 슬로트스쿨렌 공원에서 야외 공연을 개최하여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현재, 예테보리 심포니는 109명의 정규직 음악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웨덴의 국가 오케스트라로서 다양한 전통과 현대의 클래식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합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세계 유수의 음악가들과 협업하며 여러 국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BBC Proms는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 (Royal Albert Hall)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일련의 클래식 음악 콘서트입니다. 이 축제는 1895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영국 문화와 클래식 음악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BBC Proms 는 로버트 뉴먼 ( Robert Newman)이 1895년에 설립하였으며, 당시에는 퀸스 홀( Queen's Hall)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현재는 주로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리며 , BBC 의 주최와 방송 하에 진행됩니다. 이 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민주적인 음악 축제"로 불리며, 널리 대중화된 클래식 음악 공연을 통해 더 많은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습니다.
BBC Proms 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프로 (Prom)"이라는 용어입니다. 이는 "프로나드 콘서트 promemade concert"에서 유래된 것으로, 관객들이 관람하는 동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합니다. 특히, 세미자유형 좌석인 '프로밍'이 인기를 끌며, 저렴한 가격에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2024년 BBC Prom는 오케스트라 공연, 실내 음악, 그리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 음악가와 작곡가, 그리고 다양한 세대의 음악을 아우르는 작품들이 공연됩니다. 특히, 여름 시즌 동안 매일 개최되는 특성 덕분에 매우 다양한 레퍼토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년 9월 둘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마지막 밤의 프로미스 Last Night of the Proms'는 특별한 행사로, 일반적으로 경쾌하고 유쾌한 곡들이 포함되며, 영국의 애국적인 곡들이 연주됩니다. 이 밤은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중 하나로, 많은 관객들이 참석하여 축제를 마무리 짓습니다.
BBC Proms 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령층과 문화권의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문화 행사입니다. 이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페스트피엘 메클렌부르크-보르포메른( Festipiele Mecklenburg-Vorpommern), 비스바덴 쿠르하우스( Wiesbaden Kurhaus), 알데부르크( Aldeburgh), 에든버러 음악제에 출연하였습니다.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매년 열리는 공연 예술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주로 8월부터 9월까지 3주간 개최되며,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초청되어 오페라, 연극, 음악 , 댄스 등의 다양한 공연을 선보입니다.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이 주가 되는 행사로, 많은 관객들이 이 특별한 경험을 즐기기 위해 모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2gYusWh8R0
2008-09 시즌은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1 쾰른, 에센, 룩셈부르크, 뮌헨, 비엔나,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샌 세바스탄, 바야돌리드에서의 공연을 가졌습니다.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과는 두 번째 독일 연주 여행을 성공리에 마쳤고,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콘서트무대에도 올랐습니다. 그리고 헬싱키, 잘츠부르쿠, 루체른,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바덴바덴 등의 무대에 서는 유럽 투어도 가졌습니다.
2008년 11월 ,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미국 투어에서 뉴욕의 카네기 홀,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 필라델피아의 키멜 센터, LA의 디즈니 홀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2009년 , 구스타보 두다멜은 에사 페카 살로넨( Esa Pekka Salonen)의 후임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에 올랐습니다. 28살의 나이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역사상 최연소 상임 지휘자에 오른 두다멜은 2009년 10월 8일 월트 디즈니홀에서 취임 콘서트를 열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9년 10월,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28세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그의 첫 콘서트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했습니다. 곱슬머리의 젊고 신선한 지휘자와 묘하게 거칠고 독특한 교향곡이 빚어내는 조화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을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날 이후 구스타보에게 사로잡힌 청중들이 많지요. '두다마니아' 같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팬층을 거느리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4GQ5Ho7MWw
https://www.youtube.com/watch?v=2NBBbnQ8b0c
https://www.youtube.com/watch?v=x_gi7MIQkqo
https://www.youtube.com/watch?v=mbYSRedPvF4
미국 서부의 자존심 LA필하모닉은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두다멜의 역동적인 리더십 아래, 로스앤젤레스는 물론, 전 세계를 무대로 예술성과 비전을 제시하며 가장 흥미로운 오케스트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LA필하모니닉은 1919년 윌리엄 A. 클라크 2세가 창단했으며, 월터 헨리 로스웰이 첫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여 1927년까지 활동한 이래 , 주빈 메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에사 페카 살로넨 등의 세계적인 지휘자가 이 악단을 거쳐 갔습니다.
주빈 메타(Zubin Mehta, 1936- )는 인도의 저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입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발전시켰고, 아버지인 메흘리 메차 (Mehli Nehta)로부터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18세에 비엔나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그의 지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58년 리버풀 국제 지휘 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요.
그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을 역임하며 캐나다에서의 경력을 쌓은 뒤, 1962년부터 1978년까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1978년부터 1991년까지 재직하며, 이 오케스트라와의 관계에서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웠습니다.
주빈 메타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2019년까지 40년 이상 재직하며 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여러 국제 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으며, 대표적으로 케네디 센터 명예상과 일본예술 협외의 프레미움 임페리알 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메타는 음악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뭄바이에 메흘리 메타 음악 재단을 설립하여 200명 이상의 어린이에게 클래식 음악 교육을 제공합니다. 또한 텔아비브에 있는 부흐만-메타 음악학교와 협력하여 이스라엘 내 젊은 음악 인재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 1914-2005)는 이탈리아 출신의 두각을 나타낸 지휘자로, 그의 경력은 20세기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줄리니는 16세에 이탈리아 최고 음악학교인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에서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 복무를 하는 동안에도 그의 음악 경력은 계속 발전하였고, 1944년 해방 후에는 유명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줄리니는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런던 필하모니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습니다. 그는 주로 베르디, 모차르트, 브람스, 말러 등의 작곡가의 작품에서 탁월한 해석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지휘 스타일은 감정적 깊이와 섬세한 표현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마리아 칼라스와의 협연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음악 두 분야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예술적 비전과 높은 기준을 지키기 위해 오페라 공연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고전적이고 세련된"지휘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에사 페카 살로넨( Esa -Pekka Salonen ,1958-)은 핀란드 출신의 저명한 지휘자이자 작곡가입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으며, 헬싱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살로넨은 1983년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3번을 지휘하며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이후 스웨덴 라디오 교향악단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살로넨은 현대 음악의 수호자로 손꼽히며, 그의 지휘 스타일은 동시대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LA필 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던 기간 동안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습니다.
살로넨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우아한 혁신'을 이끌어내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풍부한 색채감과 에너지를 가진 음악을 만들어 내며, 기품과 힘을 동시에 갖춘 이상적인 음악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Wcb7zoLTSus
2008년 그라모폰은 세계 오케스트라 20을 발표하면서 LA필하모닉을 8위에 올렸고, 미국 오케스트라로는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에 이어 제3위에 자리하였습니다. LA필하모닉은 2009년 구스타보 두다멜을 맞아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으며, 월트 디즈니 홀과 할리우드 볼에서 매해 300회 이상의 콘서트를 열어 클래식뿐 아니라 , 재즈, 세계 음악, 대중음악까지 폭넓은 음악으로 청중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로, 189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소화할 수 있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150회 이상의 공연을 개최합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시카고의 음악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어 온 중요한 기관입니다. 테오도어 토마스 ( Tjeodore Thomas)에 의해 설립된 이 오케스트라는 시간과 함께 많은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매년 계절마다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며, 여러 장르의 음악과 더불어 현대 작곡가의 작품도 포함하여 많은 청중과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빈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와의 협업을 통해 세계적인 음악가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지향합니다. 현재 클라우스 메켈라( Klaus Makela)를 음악 감독으로 두고 있으며, 그는 2027년부터 정식 음악 감독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본부를 둔 유명한 오케스트라입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제공하며, 클래식 음악의 연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루고 있습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191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초기는 기초가 되는 음악 교육과 지역 음악 커뮤니티의 지지로 성장하였습니다. 이후 빠른 시간 안에 미국 내에서 가장 저명한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지역 사외화 함께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음악적 재능을 개발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음악 교육의 중요성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음악 공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폭넓은 음악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12년 초, 두다멜은 말러의 9개 교향곡을 전곡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완주합니다. 그때 나이 31세. 세계의 수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말러 사이클에 도전했지만 그렇게 젊은 지휘자가 3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곡을 연주한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그 긴 교향곡들을 거의 전곡 암보하여 지휘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10대 때부터 이 곡을 100회 이상 지휘했어요.
연주할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던 어린 시절을 마주하게 돼요.
이 작품에는 '거인'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내가 거인 같다고 느껴지는 에너지가 담겨 있어요.
-구스타보 두다멜-
그의 말러와의 인연은 10세 시절로 올라갑니다. 크리스마스 때 한 친구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라며 CD를 선물했는데 열어보니 말러의 5번 심포니가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레코드점의 실수였나봅니다. 열살 소년에겐 너무 길고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반복해 들으면서 사랑에 빠졌고, 때마침 집에서 발견한 말러 1번으 트롬본 파트 악보를 보고 독학으로 트럼본을 연주했을 정도로 말러 광이 되었습니다. (두다멜은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가 트럼본 연주자)
이후 두다멜은 틈난 나면 9개의 교향곡을 하나씩 다시 연주하며 보완하고 재해석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연주한 심포니가 1번이고, 음반으로 나온 것은 1번, 5번, 7번, 8번, 9번 입니다.
말러 교황곡은 실황으로 들어야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타악기가 등장하는 거대 오케스트라 편성에 엄청난 굉음이 터지는가 하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가 깔리기도 하고, 먼 효과음을 위해 무대 뒤에서 연주되는 등 음반으로는 그 폭넓고 섬세한 다이내믹이 살아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말러를 지휘하려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엘 시스테마'창립자)-
https://www.youtube.com/watch?v=7mW_h6yCZM0
LA필하모닉은 콘서트장 안에서의 공연뿐만 아니라 학교, 교회, 다양한 커뮤니티의 문화 센 테에서의 공연들을 통하여 로스앤젤레스 도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베네수엘라 ' 엘 시스테마'에 영향을 받은 'LA 유스 오케스트라'를 통하여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600명이 넘는 소외계층의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무상을 대여해 주고, 음악 교습 및 장학금 등을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전 세계에 음악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LA 필하모닉의 공연을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실황 방송되고 있고, 도이치그라모폰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음반들이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현재 두다멜은 LA필하모닉과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초청을 받아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비엔나 필하모닉과 함께 유럽과 아시아 투어를 가졌습니다.
바렌보임, 얀손스, 래틀 등이 총출동한 '2014년 루체른 페스티벌'의 마지막 3일 콘서트는 두다멜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에 돌아갔으며, 이러한 왕성한 활동으로 LA필하모닉은 그의 임기를 2018-19 시즌까지 확정했습니다. 두다멜은 겸손하고 유연한 자세로 단원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소통하는 열린 지휘자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권위 중심의 과거의 지휘자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래가 기대되는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루체른 페스티벌 (Lucerne Festival)은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국제 클래식 음악축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과 다양한 아티스트의 공연을 제공합니다. 이 축제는 전통과 현대의 음악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을 특징으로 하며, 매년 다수의 해외 오케스트라와 유명 솔리스트들이 참여합니다.
Lucerne Festival 은 193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주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 축제는 매년 여름, 루체른 문화 및 회의 센터(KKL)에서 100개 이상의 콘서트를 포함하는 대규모 축제로 발전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이름이 루체른 국제 음악 축제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축제는 매년 여름, 일반적으로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 진행됩니다. 여름 축제는 약 30개의 심포니 콘서트를 포함하며,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솔리스트들이 참여합니다. 또한 특별 게스트 아티스트들이 "아르티스트 에투알"및 "작곡가인 레지던스"자격으로 초청됩니다.
루체른 축제는 매년 당시 사회적 이슈나 주제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 예를 들어, 2021년 여름 축제의 주제는 "미친 crazy"이었습니다. 또한, "미래의 음악 Music for Future"캠페인을 통해 젊은 관객과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데 힘 쓰고 있습니다.
루체른 아카데미는 2003년 피에르 불레즈와 미하엘 해플리거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현대 음악 작품에 대한 마스터 클래스와 연주를 진행하여 현대 음악의 창작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 2021년에는 루체른 축제 현대 오케스트라(LFCO)가 설립되어 현대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rKsAr2QDoY
2006년, 두다멜은 도이치 그라모폰사와 전속 계약하여 베네수엘라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과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교향곡 7번>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말러 교향곡과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음반으로 발매하는 작업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_twvWsgDCU
두다멜은 2007년 그라모폰 특별 공로상, 2009년 글렌 굴드상, 2011년 그라모폰지 선정 올해의 아티스트상, 2012년 그래미상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 부문에서 수상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BYwZQLsL74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두다멜은 어디를 가나 모서리가 접힌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의 고백록( Confessions)과 낡은 니체의 소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Also sprach Zarathustra)를 늘 갖고 다닌다고 합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자라던 청년시절부터의 습관인 거지요.
음악은 내 인생과 베네수엘라에서 위험에 빠져있던 수천명의 삶을 구제해주었다.
음식처럼, 의료보험처럼, 교육처럼
음악은 모든 시민에게 권리가 되어야 한다.
-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
지난해 2022년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상황이 약간 개선된 후 그는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빈민층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El Sistema'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두다멜도 30여 년 전 이 엘 시스테마 센터에서 첫 음악 레슨을 받았던 이유입니다. 그의 음악 여정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음악을 필요로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말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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