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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대등한 위치에 영국의 미술을 올려놓은 개척자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헨리 무어( Henry Moore  1898-1986)입니다. 현대 조소를 크게 발전시킨 알렉산더 칼더(Alezander Calder 1898-1976)와 같은 시기에 태어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요. 

 

 

영국에서  가장 외지고 추운 요크셔 출신입니다. 8남매 중 일곱째 이고요. 12살에 이미 조각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지만, 광부였던 아버지는 그가 선생님이 돼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 바랐습니다. 아버지 희망대로 잠시 교사 생활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1917년 1차 세계대전으로 자원입대 합니다. 최전선 전투에서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부상을 당하여 야전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영국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군대를 제대하면서 결국 자신의 꿈을 좇아 예술 대학에 진학 합니다. 1921년 당시 영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왕립예술대 장학금을 받아 런던으로 간 무어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부지런히 다니며 여러 다양한 문화의 조각을 접하게 됩니다.

 

 

 

 

젊은 조각가로서 
나는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고,
그곳에서  걸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헨리 무어-

 

 

 

 

대영 박물관에 출입하면서 여러 나라의 조각을 접하게 됩니다.  무어는 콜럼버스 신대룩 발견 이전 시대의 아메리카 예술과 오세아니아 예술, 그리고 아프리카 예술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무어의 해외 미술 여행은 1925년 왕립 미술학교의 여행 장학금을 얻어 6개월 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것이 처음입니다.  이때 미켈란젤로나 지오토, 마사치오를 연구하게 되지요. 아메리카 인디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원시예술에서 이상적인 조각미에 대한 영감을 찾게 됩니다. 

 

 

 

 

1920년대에 무어는 런던의 왕립미술 칼리지를 다니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들을 모사하거나 대영 박물 간에서 작품들을 스케치하면서 실력을 쌓게 됩니다. 1928년 , 그는 첫 공공 작품으로 지하철역을 위한 부조 작품을 위촉받았고, 이듬해 같은 학교 회화과 학생이었던 이리나 라데츠키와 결혼하여 런던에 스튜디로을 차립니다. 멕시코의 차크몰 조각에서 영감을 얻어 최초의 와상이 만들어진 것도 이 해이며 그의 작품에 구멍이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다방면에서 남편에게 좋은 조언자 역할을 했던 아내와 함께 살던 신혼 집이 폭격에 의 해 부서지고 맙니다. 둘은 허트 포드셔 시골집에 평생의 보금자리이자 창작소를 만들고 살게 됩니다.  헨리 무어는 기존의 찰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캐스팅을 하던 전통적인 기법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대신 직접, 돌이나 나무 등을 깎는 방법을 선택하여 조소의 새로운 세계를 엽니다.  

 

 

 

1930년대 헨리 무어는 <유닛 원 Unit One>이라는 젊은 예술가 단체와 교류합니다. 이 단체는 현대 미술과 건축 분야의 국제적인 동향을 영국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어서 무어는 1936년에 런던에서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참가함으로써 영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요한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노스런던의 햄스테드에서 살며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국제적 모더니즘에 정통한 미술가들과 가깝게 지냅니다.

 

 

 

 

누워있는 형태가 가장 자유로우며,종합적이고, 공간적이다.
그리고 와상 즉 누워있는 사람은 어떠한 표현에서도 눕힐 수 있다. 
또한 자유롭고 견고하고 영속적인 조각이라는 이념을 갖게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헨리 무어-

 

 

 

 

 

 

 

 

 

 

 

<기댄 형상 :축제 Reclining Figure : Festival>,1951/ Scottish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wikipedia무어의 전작 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 받은 작품. 2016년 6월 30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 에 출품돼 2400만 파운드(약 360억원)에 판매됐다. 무어의 작품중에서는 물론, 영국 조각가의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높은 경매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Yorkshire map/Shutterstock

 

 

 

 

 

<기댄 형상 축제(Reclining Festival, 1951년)>라는  작품입니다. 여인의 상반신은 서 있는 듯하면서도, 하반신은 누운 듯한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누 운상태가 상징하는 죽음과 서 있는 상태를 상징하는 삶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Reclining Figure>,1951, Sculptural Process and Public Identity/ Tate

 

 

 

 

이 작품은 1949년 영국 예술위원회 의뢰로 시작됩니다. 2년후 예정된 대형 문화축제 행사장에 설치하기 위해서였죠. 이 축제의 100주년 기념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최신식으로 지어진 전시회장 입구에 설치될 작품이었습니다. 위원회는 가족상을 의뢰했지만, 무어는 비스듬히 기대어 누운 형상을 제작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인물상이면서 동시에 자연 풍경 같은 독특한 형태가 '사람과 땅의 관계'와 영국의 농경 역사를 보여주려는 행사 취지에 잘 맞아떨어져 큰 문제없이 설치가 이뤄졌습니다.

 

 

 

 

 

<Reclining Figure>,1951/Tate

 

 

 

 

무어는  1920년대 후반부터 기대어 누운 형상에 대해 탐구해왔습니다. 이 주제를 다른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기댄 형상 :축제>는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20여 년이 넘는 선구적인 탐험의 성취를 보여주는 궁극의 결과물인 셈이죠. 예술적, 기술적 성숙의 절정을 증명하는 이 청동 조각은 1951년 제작 당시 그의 기댄 형상 가운데 가장 율동적이고 선적인 형태를 띤 것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시도에 해당했습니다. 또한 2m가 넘는 크기로 기댄 청동 조각으로는 가장 컸습니다.

 

 

 

 

<Reclining Figure>,1951, Broze/ResearchGate

 

 

 

오늘날에는 빈 공간이 포함된 물결치는 듯한 양식이 모던 조각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저항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문화축제 이후, 보수 성향 지역으로 옮겨져 설치됐을 때 파란색 물감으로 조각 전체가 지저분하게 덮인 적이 있습니다. 1956년 원상회복 후,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서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습니다. 총 6개 에디션 가운데 나머지도 테이트 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중 유일하게 개인 소장가 손에 남아 있던 한 점이 2016년 6월 30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출품돼 2400만 파운드(약 360억 원)에 판매됩니다. 이는 무어의 작품 중에서는 물론, 영국 조각가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높은 경매 기록에 해당됩니다.

 

 

 

 

 

 

알렉산드르 아키펭코 Aleksandr Archipenko/ Google Arts & Culture

 

 

 

<Mademoiselle Pogany>, 콘스탄틴 브랑쿠시 Constantin Brancusi/The New York Times

 

 

카르타헤나 콜롬비아의 프리콜롬비아 석조조각/ Freepik

 

 

 

그의 이런 작품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닐 테죠. 무어(Moore)의 뛰어난 학습 능력과 초기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특히 아르키펭코(Aleksandr Archipenko)와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영향이 컸습니다. 동시에 그리스, 이집트, 그리고 프리 콜롬비아의 원시 미술도 그의 제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르네상스 마스터들인 미켈란젤로(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 Michelandelo di Lodovico Buenarroti Simoni  1475-1564), 지오티 디 본도네 (Giotto di Bondore 1267-1337), 지오반니 피사노( Giovanni Pidano 1248-1315) 같은 조각가들의 작품 또한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David of Michelangelo>,1504/wikipedia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wikipedia

 

조반니 피사노( Giovanni Pisano 1248-1315),< The Crucifixion from the pulpit of Saint' Andreas, Pistoia/wikipedia

 

 

 

 

 

미술사에서 종종 등장하는 길게 드러누운 여인이라는 주제가 무어(Moore)의 전형적인 작품형태가 된 것은 1930년대입니다. 유기적인 선만 남기고 세부묘사를 제거하여 원초적인 생명력을 한 층 강조하게 됩니다. 그가  기댄 형상을 선호한 것은 서 있거나 앉은 형상보다 안정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구성과 공간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창작의 자유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기댄 형상 :축제>가 보여주듯 전통을 깨는 급진적인 시도를 가능케 하면서 모순되게도 가장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형태에서 발견되는 조각적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기댄 형상 자체가 가장 오래된 조각의 주제이자 전통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Reclining Figure>/Getty Images

 

 

 

 

이 작품에서  그가 선보인 또 다른 획기적인 발명은 조각 표면을 따라 나타나는 율동적인 패턴에 기하하적 선을 더한 점입니다. 이를 통해 여성의  가슴과 머리 같은 신체 부위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냅니다. 기대어 누운 여인이 곧 산과 계곡, 동굴, 절벽이나 언덕 같은 풍경처럼 보입니다. 물결처럼 굽이치는  율동적인 형태가 신체인 동시에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즉 인물이면서 풍경이자 풍경이면서 인물인 조각인 셈이죠. 그야말로 자연 합일의 극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상과 추상 사이의 경계에 의도적으로 머물면서 안과 밖, 채움과 비움의 우아한 조각적 합성을 보여줍니다. 아즈텍 문명의 조각상 등 원시 미술에서 받은 영향을 자신만의 양식으로 극대화한 이 작품에 대해 무어 자신도 '형태와 공간을 조각적 융합하는 데에 성공한 첫 번째 작품'이라며 자신의 전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과로 평가했습니다.

 

 

 

신기한  부분은 무어가 동물의 뼈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유기적인 곡선과 직선미 그리고 뼈의 안과 밖으로 이어진 조화로운 시각적 공간에 몰입하면서 말이죠. 이후에도 그는 나무, 돌,  조개껍질 같은 자연물과 풍경에서 예술적 영감을 추구하곤 했습니다. 자연물에 영감을 얻어, 언덕과 동굴의 풍경을 닮은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고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무어(Moore)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전쟁화가가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독특한 기념비적인 그림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독일군의 폭격 때문에 런던 지하도에 시민들이 대피하여 생활하는 모습을 그만의 해석으로 표현합니다. 

 

 

 

<Woman Seated in the Underground>,1941/ The Tretyakov Gallery Magaznine

 

 

 

 

<Grey Tube Shelter>,1940/Google Arts&Culture

 

 

 

<Tube Shelter Perspective>,1941/Media roundups-RoseM Home.blog

 

 

 

 

 

 

인체의 형상을 왜곡하고 조각에 급진적인 새로운 형태를 도입하긴 했지만, 무어는 전통적인 조각 양식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작품들에 인간성을 표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공습 때문에 런던의 지하철역 대피소로 대피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린 그의 드로잉들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1,2차 세계 대전을 한 번은 병사로서 또 한 번은 종군화가로서 폭격으로 고통받는 서민과 노동자의 삶을  목격하게 됩니다.  무어의 삶에 찢어지게 가난했던 아버지와 같은 광부의 삶이 무척이나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방공호>  시리즈 데생 스케치 작업은 헨리 무어의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어(Moore)는 기념비적인 청동 조각상들을 제작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야말로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조각가로 스타반열에 오른 거지요. 그런 그의 공로로 영국 왕실의 작위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 그의 성격과 강력한 신념이 잘 드러납니다. 그는 그의 작위를 거부합니다. 그가  왕실 작위를 받게 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비칠 것에 대해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의 이유는 단순 명료했습니다. 

 

 

 

 

 

 

그런 직함은
저와 비슷한 작업을 목표로 하는 동료 화가들과 저를 단절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건 배신이고 옳지 않습니다. 
-헨리 무어-

 

 

 

 

 

 

같은 해, 작위를 거부한 무어는 노동당 정부와 BBC 가 주최하는 브리튼 축제에서 생존 작가 최초로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됩니다.  왕실의 작위를 거부하니 노동당 정부가 홍보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영웅이 되어 돌아옵니다. 

 

 

 

 

 

 

<Three Standing Figures>,1945/Tate

 

 

 

 

 

 

 

 

무어는 현대 조각가 중, 작품을 가장 많이 사회에 기부한 화가입니다. 엄청난 부를 지니게 되고 그의 유산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죠. 그의 조각을 그가 만든 재단을 통해 전 세계에 기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부와 명예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회주의적 공유에 관심이 많았죠. 무어가 생각하기에 돈을 받고 개인이 소장하거나,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보다 공공장소에 모든 이들을 위해 놓여지는 것이 그의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믿어 왔습니다. 

 

 

 

 

<세 개의 부분을 위한 작업 모형 3번:척추 >,1968 /매일경제

 

 

 

 

자갈과 바위는 돌을 작업하는 자연의 방식을 보여준다.
-헨리 무어-

 

 

 

 

 

 

<세 개의 부분을 위한 작업 모형 3번: 척추(1968)> 는 헨리 무어의 후기 작품 중에서 대표작입니다.  여러 개의 부분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총길이 2m가 넘는 크기의 추상 청동 조각으로 2012년 2월 7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500만 파운드 (약 75억 원)에 판매된 적 있는 작품입니다.  그가 평생 탐구해 온 비스듬히 누운 형상이 공간적, 형태적, 유기체적 변형을 통해 더욱 추상적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줍니다. 얼핏 보면 추상 조각으로 보이나 자연의 일부인 인체 척추뼈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입니다. 이에 대해 무어는 "추상적으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전부 유기적 형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분리된 몇 개의 부분이 하나의 형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개념을 조각에 도입해 추상적이면서도 고대 유물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시대를 초월하는 미를 선보였습니다. 

 

 

 

 

 

 

조각은 야외의 예술입니다.
햇빛이 필요하며
제 조각에게 필요한 가장 좋은 환경은 자연입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아름다운 건물 안 보다는 
어디든 바람과 햇빛이 풍성한 풍경에 놓은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헨리 무어- 

 

 

 

 

 

 

 

 

 

<옆으로 누운 사람>/페로 타임즈(Ferro Times)

 

 

 

 

 

 

 

 

무어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도난이나 파손이 높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고철은 자체가 제품이며 원료가 되지요. 한때 고철 품귀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도둑들이 설치게 되지요. 그들의  절도행각도 천태만상입니다.   이 청동 조각상은 시가 520만 달러 (약 52억 원)로 런던 북부 허트포드셔 소재 헨리 무어 재단 건물 정원에서 도난당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3명의 도둑이 트럭 두 대를 동원해 이 조각상을 훔쳐 달아났다고 전합니다. 제일 안타까운 점은 도둑들이 작품을 녹여 고철로 팔아버린 경우입니다.  실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엄청난 미술품이 녹아 사라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2012년에 작품을 훔친 두 명의 범인이 징역을 살게 되기도 했습니다. 글렌클린 조각공원의 시가 46억짜리 <서 있는 여인>도 도난당하는 사건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그가 대중들이 생활하는 공공 공원이나 야외에 자신의 조각품들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는 한 이런 종류의  도난과 파손사건은 계속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야외 대형 조각들이 지닌 가장 힘든 부분 아닐 까 싶습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1498-1499/wikipedia

 

 

 

 

 

 

<Mother and Child>1932/Sainsbury Centre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갖는 특징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마리아의 얼굴이 매우 앳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 다른 작품 들까 달리 이상과 자연주의의 균형을 이룸으로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미켈란 젤로의 작품과 달리  무어(Moore)가 표현한 어머니의 모습은 건강해 보입니다. 어머니의 형상이 둥글둥글한 선으로 제작되어 마치 자연의 일부분인 어머니로 보입니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끄떡없을 것처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두 여인과 아이>. 조각만이 아니라 독특한 방식으로 인체를 3차원적으로 표현한 무어의 드로잉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2019년 5월 13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300만 달러( 약 33억원)에 판매된 바 있습니다.

 

 

 

<가족>1950/예술인-한국예술인 복지재단

 

 

 

 헨리 무어의 작품 <가족>입니다. 단단하고 차가운 돌 위에 유대감으로 굳건한 가족의 사랑을 오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은근하며 깊은 사랑을 영원성으로 승화시킨 듯합니다. 헨리 무어는 기존의 보수적인 영국 조소의 작업 방식이나 조형적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인체나 조소의 아름다움을 찾았습니다. 

 

 

 

<King and Queen,1952>bronze/Tate

 

 

 

1952년에 디자인된 청동 조각품입니다. 이 조각상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성과 여성의 두 인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둘 다 약간 왼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 쌍의 성인 인물을 묘사한 무어의 유일한 조각품입니다.

 

 

 

 

 

 

<Large interior Form>,1953-54, Chicago,IL/Public Art Archive

 

 

 

 

 

https://www.youtube.com/watch?v=xG8Vxb3SV9M

 

 

 

 

 

 

Rotterdam Kunstwerk Wall Relief NO.1, 1955/wikipedia

 

 

 

 

 

https://www.youtube.com/watch?v=As6BE7uNRnw

 

 

 

 

 

 

 

 

 

 

<Nuclear Energy> ,1964-1966(LH526),청동 /wikipedia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Chicago Pile-1 부지에 있는 시카고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헨리 무어의 청동 조각품입니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핵 연쇄 반응이 1942년 12월 2일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조각품은 포장 돌이 조각품에서 바깥쪽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화강암으로 포장된 사각형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인접한 기념비에는 기념 명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벽, 기념지는 국립 역사 랜드마크 이자 시카고 랜드마크입니다. 

 

 

 

 

<대형 스핀들 조각 Spindle Piece>,1968, 일본 센다이 미야기 미술관의 대형 스핀들 조각, 청동,(LH 593)/en.wikipedia.org

 

 

 

 

이 작품은 1968년 런던 하이드파크에 전시된 무어의 스핀들 조각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이 시리즈는 신의 손이 아담의 손가락에 닿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미켈란젤로 그림의 세부 묘사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조각품은 구멍이 뚫려 있고 양쪽에서 튀어나온 점이 있는 무정형의 비틀린 흐르는 형태입니다 무어는 "조각적으로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두 점이 막 만나려는 모습이다. 이 작품도 같은 주제로 두 손가락만 나가고 들어가지 않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PuqDJADlLA

 

 

 

 

 

 

 

<Oval with Points,1969-70>/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cqQIFgd9Cpo

 

 

 

 

 

 

<Large Arch>, Columbus, Indiana,broze, 1969/ Collections-GetArchive

 

 

 

1969년 미국 인디애나 콜럼버스에 설치된 아치입니다. 1963년의 플로렌스 아치를 확장하여 브론즈로 제작하면서, 작품명을 <라지 아치>로 했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켄싱턴가든의 것과 쌍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리오 로저스 도서관 앞 광장에 설치된 라지 아치는 도서관 설계자인 글로벌 건축가 아이엠 페이의 제안으로 이 지역 유력재벌가인 커민스엔진의 어윈 밀러 회장이 헨리 무어에게 제작 요청하여 설치되었습니다. 아치의 여러 버전 중에서 제일 큽니다. 

 

 

 

 

 

 

Henry Moore,<The Arch(LH503b)>,1971, fiverglass cast,in the Fortedi Belvedere , Florence/National Gallery of Art

 

 

 

 

 

 

재료는  화이버글라스입니다. 스무스한 면이 있는 기하면 긁힌 부분이 있고요. 당시 무어는 사람이 지나다니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상징적인 대형 조각물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약 6m 높이로 그전까지의 누워있는 여인상 등, 바라만 보는 조각물에서 탈피하기 시작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9__h9n00tY

 

 

 

 

 

 

 

<The Arch 1979-1980>, 켄팅턴 가든의 아치/wikipedia

 

 

 

 

 

영국 런던의 켄싱턴 가든에 1980년 전시한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헨리무어의 80회 생일축하 전시의 일부로 1978년 전시됐다고 합니다. 켄싱턴 가든의 서펀타인 갤러리에 일정기간 전시하는 기획전시의 일부였죠. 1963년 이태리 플로렌스(피렌체)에 전시할 때처럼 화이버글라스로 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본 런던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서 켄싱턴가든 쪽에서 영구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무어는 영구 배치를 감안해 , 화이버글라스를 내구성이 좋은 석재로 바꾸어 다시 제작해 똑같은 위치에 2년 뒤 설치하게 됩니다. (처음 전시 때 일반 시민들은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 연못에 비치는 아치의 모습도 공원에도 잘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재료는 로만 트래버틴(Roman Travertine )이라는 수려한 색상과 질감의 대리석 일종으로 로마 성베드로 성당 외벽에도 사용된 결이 있고 아름다운 돌입니다.  하지만 5. 74m 높이의 아치는 1996년 구조상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분리해체해서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고 합니다.. 최근 2012년에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여 다시 복구하여 원위치에 설치됩니다. 

 

 

 

 

 

< 더 아치>는 뼛조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내부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생명체의 근본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헨리 무어) 혹자는 스톤헨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Man Enters the Cosmos>,1980,청동, 애들러 천문관 (야외),일리노이 시카고/ Public Art in Chicago

 

 

 

<인간이 우주에 들어가다 Man Enters the Cosmos>는 1980년에 제작된 약 4.0m(13피트) 크기의 기능성 활줄 적도 해시계입니다. 해시계는 이전에 천문관의 주요 입구 광장 계단에서 약간 더 남쪽에 위치했지만 지금은 미시간 호숫가에 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런던의 Printing House Square에 있는 The Times신문의 사무실을 위해 1960년대에 처음 만들어진 작품의 후기 사본입니다. Henry Moore Foundation에 따르면 제목은 'Sundial 1965-66'입니다. 

 

 

 

 

애들러 천문관 (야외), 일리노이주 시카고

 

 

 

 

<Man Enters the Cosmos>/Flickr, 밤풍경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관은 현대 조각을 하는 후배 예술가들에게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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