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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호퍼는 미국 전통적인 리얼리즘에 새로운 시선과 형식을 가져오면서, 단순한 조형과 분위기적인 조명,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관찰 등으로 유명합니다.

 

그림의 표지에 에드워드 호퍼 그림이 나오면 책이 더 잘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도시의 고독을 그린 화가' 호퍼는 한국에도 팬층이 두텁고요. 그의 그림은 인물들의 외로움과 고독, 도시 생활의 불안정한 면모 등을 잘 표현주고 있습니다. 도시의 일상적 공간을 주로 그렸던  호퍼는 당시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던 동료들과 달리 마치 사진 같은 구도속에서 조용한 분위기와 개성 없는 인물,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도심의 고독함을 표현해 냅니다.

 

 

 

에드워드 호퍼<푸른 밤>,1914, Google Arts& Culture

 

 

호퍼의 그림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샘솟을 수 있는 지 는 단편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 (2017)가 증명해 줄 것입니다.  '공포, 스릴러 소설의 제왕'스티븐 킹을 비롯해 호퍼의 팬인 17명의 소설가들이 서로 다른 호퍼 그림 17점에 영감 받아 쓴 단편들을 모은 것입니다. 샌틀로퍼의 <밤의 창문>을 바탕으로 한 단편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초기 주요작<푸른 밤>(1914)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로버트 O. 버틀러가 그림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신비롭고 불길한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푸르스름한 초저녁 카페에 창백하게 분장한 피에로가 앉아 있습니다. 아이들 생일 파티에 불려갔다 온 분위기는 아닌 듯싶습니다. 흰색 옷차림, 빨간 립스틱, 그리고 삐져나온 담배까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요. 뒷 태까지 군기 들어 보이시는 군복을 입은 남자도 보입니다. 옛 시절이라면 어떻게 감히 옆 자리 함께 앉을 생각을 했을까 싶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현대라서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그리고 베레모를 쓴 남자가 무심한 듯  마주 않아 있습니다. 초록 드레스의 여인은 그런 그들 곁에서 다소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내려다보고 있네요. 그 여인 태도 참 불손합니다. 불가능하지 않지만 보기 쉽진 않은 장면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현실의 장면인데도 기묘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말입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버틀러의 단편을 풀어가는 방식도 현실과 심리적 환상의 경계에 묘하게 걸쳐져 있습니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 미국의 신문 언론,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놓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주는 상.

 

Edward Hopper's New York(1925-26),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에드워드 호퍼의 수채화<맨하튼 다리>입니다. 전업 화가가 되는 게 소원이었지만 10년 간 작품을 한 점도 못 팔았기에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때려치울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전환기를 맞은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습니다. 항구도시 글로스터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마침 거기에서 뉴욕예술학교 동창 화가 조세핀을 만납니다. 그녀의 영향을 받아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주선으로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그가 그린 수채화들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호평을 받은 작품이 미술관에 팔리면서 용기를 얻어 호퍼는 드디어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초기에 프랑스 인상주의 아류에 불과했던 호퍼의 유화가 특유의 맑고 넓은 색면의 유화로 진화하는 데 수채화 창작이 영향을 미쳤다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Google Arts&Culture

 



 

호퍼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가장 많이 갖춘 곳은 뉴욕휘트니미술관입니다.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시카고 미술관이 소장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입니다.  미국 회화사에서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이 그림이 완성된  그 달에 단돈 $3,000에 시카고 박물관에 팔렸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대도시의 권태,
텅 빈 거리와텅 빈 창문들의
고독한 황폐함,
햇빛과 바람이
씻어 내린 듯한
하늘과 거리 포장도로등을 표현하는
위대한 시각 미술의 시인이다.

- 미술사가 데이비드 파이퍼(Sir DavidPiper)경

 

 

그가 작품활동하던 시기는 미국에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로, 회사들이 하나둘씩 파산하고 동시에 실업자들이 늘어나는 비극적인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화가의 역할은 그런  시대상을 표현하는 사람들이고요.

 

 

그림 속 레스토랑의 큰 유리창은 인물들의 행동과 보는 이들을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훔쳐보는 외부인이란 느낌이 들도록 말입니다.  한밤 중에 피곤한 사람들이 빛과 유리로 된  깨지기 쉬운 피난처 속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둠 속의 레스토랑은 빛의 원천으로 그 빛은 보도로 새어 나와 거리가 더 텅 비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림 속 세 사람은 서로 하찮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화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인물은 중앙에 수직으로 앉아 침묵에 묻혀 고독하게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커다란 등판에 '나 , 고독'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습니다. 중절모의 밤새는 남자 그는 왠지 건드리면 무너져 내릴 것 같습니다.

 

 

 

그림에서 가장 밝은 데는
밝은 천장으로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내를 환화게 비추는
아주 밝은 형광등 불빛이 가까이 있다.
- 아내 조 호퍼의 기록-

 

 

호퍼가 습작을 할 때마다 아내 조가 상세하게 기록을 남기는 식으로 작품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환한 천장은 손님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명백히 드러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호퍼의 작품에 들어있는 리얼리즘이라고 하네요. 식사를 하는 바깥쪽으로는 밤으로 보이도록 어두운 색들이  지배적이고요.

 

 

 이 그림에 대해 한 가지 알고 갈 사항이 있습니다. 미국의 저작권법상 그림이 그려진 시기 이후 28년이 되는 해에 예술가 본인 혹은 사망했다면 가족, 주변인이 저작권을 갱신해야 합니다. 문제는 호퍼 사망 후 1년 뒤 그의 아내마저 사망을 했고  이들 부부에게 아이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호퍼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신경 쓸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는 얘기지요. 결국 갱신되지 않은 채 몇몇 작품의 저작권은 만료된 상태라고 합니다.  사실상 미국에서는 그림이 상업적으로 사용되어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지요. 바로 이 작품이 그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그의 그림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지만 상업적으로 함부로 사용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밤의 창문,1928>,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Scala, Florence,Digital image copy 2023

 

 

 

누아르 영화를 좋아했던 호퍼와 앨프리드 히치콕은 서로의 팬이었습니다. 히치콕의 공포 스릴러 걸작'사이코'(1960)에 나오는 으스스한 집은 호퍼의 첫 주요작'철길 옆의 집'(1925)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호퍼의 <밤의 창문>(1928) 작품이 히치콕의 또 다른 명작 <이창>(1954)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창>은 다리를 다쳐 한동안 집을 못 나가게 된 남자가 심심한 나머지 건너편 아파트 이웃들의 다양한 일상을 훔쳐보다가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타인의 내밀한 삶을 엿보고 싶은 인간의 관찰자적 혹은 나쁘게 말해 관음증적 욕망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밤의 창문>은 그가 고가 전철을 타고 가다 우연히 본 장면에 인상을 받아 재구성한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감시와 엿보기와 관련한 여러 범죄가 떠오르며 불편함을 주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호퍼의 팬인 소설가 겸 미술가 조너선 샌틀로퍼가 이 그림에서 영감 받아 쓴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한 여성이 성범죄자가 남성의 엿보기 습관을 역이용해서 복수를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Rooms By The Sea,1951>

< Morning Sun, 1952>

<Office in a Small City,1953>

< Second Story Sunlight,1960>

 

 

호퍼의 위 4 작품은 고독함과 도시라는 주제는 같지만, 색감이 너무 예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크게 알려진 바 없는 미국의 한 화가였던 호퍼가 이런 특유의 색감 때문에 한국 한 광고의 모티브가 되어 세련되고 알록달록하고 깔끔한 여상미로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SSG의 TV 광고) 그의 작품과 관련된 그림, 인테리어, 티셔츠 등 지금도 상업적인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Whitney Museum of Amerocan Art, 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출신의 부모 밑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미술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해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지만 한동안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광고회사에 취직했다가 일러스트, 포스트 제작 등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이 와중에도 작품 제작의 끈은 놓지 않고 화가로서의 커리어를 계속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되는 건 없고 그렇다고 멈출 수 도 없고 답답한 가운데 정체된 일상을 반복하던 호퍼의 삶에 한 여인이 다가옵니다.  후에 그의 아내가 되는 조세핀 니비슨(Josephine Nivision)입니다. 

 

 

호퍼가 좋아하는 작품 <이층에서 내리는 햇빛>입니다. 이 그림 속 늙은 여인과 젊은 여인 모두 아내 조를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둘 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조'라는 애칭의 조세핀은 평생에 걸쳐 호퍼의 중요한 조언자이자 모델이 됩니다. 그렇다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 것은 물론 아니고요.

 


그냥 우물에 돌을 던지는 것 같아.
차이점이라면
우물에 던진 돌과 달리
쿵 소리도 안 난다는 거지.(조)
VS
여자 하나와 사는 건
호랑이 두세 마리와 사는 것과 맞먹어(호퍼)


어떠신가요? 글 속의 두 사람의 성격이 느껴지시나요?

호퍼가 매우 자기중심적인 데다가 둘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정반대였습니다. 호퍼는 2m 가까운 키에 돌덩어리처럼 느리고 과묵했고요. 조는 152cm 키에 새처럼 재빠르고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결혼생활이 그러하듯, 사랑 넘치는 부부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몸싸움까지 동반한 격렬한 부부싸움은 기본값이 될 때가 더 많았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부는 해로했답니다. 개인적으로 '호퍼'라는 창작자와 그를 키워내는 매니저 '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퍼의 아내 조는 늘 참지는 않았어도 자신의 커리어를 과감히 희생하고 양보한 측면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아내 조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호퍼의 스케치와 조가 남편 호퍼를 위해 꼼꼼히 기록한  작품 장부들을 보면 같은 예술가 동료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을 보는 듯도 합니다. 둘이 함께 본 수많은 연극 티켓은  그곳에서 영감을 받아 남편 호퍼에 의해 작품으로 표현됩니다. 작품이 막힐 때면  아내 조는 기꺼이 들어주는 청자이자  조언이나  대화를 하며 남편을 격려하는 동료화가였던 셈이지요. 소위  예술가식 사랑법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호퍼가 84세에 세상을 떠나자 불과 열 달 뒤에 조도 세상을 떠납니다.

 

 

 

호퍼의 그림들은 구도가 심플하면서 연극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고 크고 밝은 삭면이 시원스러운 쾌감을 주기에 광고에 잘 녹아든다고 합니다. 호퍼는 전업 화가가 되기 전에 광고, 잡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던 경험이 그의 그림에 녹아들었던 거지요. 보는 이의 눈을 빠르게 휘어잡아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감각이 그의 과묵하고 고독한 그림에 은근히 살아 있답니다. 비록 싫어하는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cQ4JKxxukY

<셸리에 관한 모든 것(Shirley)>, 2013,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영화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의 영화 <셸리에 관한 모든 것, 2013>입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호퍼의 그림을 그대로 세트를 만든 다음 배우가 그 세트 안에서 극히 제한적인 동작만으로 셀리란 여성의 내면을 연기하는 방식의 실사영화입니다. 호퍼의 그림의 색감은 물론, 광선의 각도까지 완벽하게 재연해 냈다는 평가입니다. 호퍼 그림의 텅 빈 건축 공간, 거기에 빛이 만들어 놓은 사각형, 상념에 잠긴 인물들은 한 데 어울려 복합적인 관념과 정서,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창출해 냅니다. 이 그림들을 정교하게 영상으로 재현하고 교묘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 만든 세련미 넘치는 영화입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삶은 어쩌면 '평범함'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다른 예술 거장들처럼 '희대의 난봉꾼'도 아니고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도 아니었으니까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우리 주변에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겪은 이웃의 모습으로 살다 간 화가라는 얘기지요. 평범함 속에 이룬 위대한 예술!!! 그래서 더 위로가 되는 작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도 그의 그림이 누군가에게 패러디되며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보이고 있겠지요.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위키아트, 구글아트 앤 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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