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6세기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더 이상 종교적인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졸지에  북유럽의 미술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발견해야 했지요. 결국 자신들의 특별한 솜씨를 보여주는 전문화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작품의 주제를 어느 한 부분으로 한정해서 의도적으로 개발한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풍속화입니다. 그 당시 풍속을 다룬 이런 그림을 뭐라 칭해야 할지 명칭이 따로 없었습니다. 한 때 장르화라 부르기도 했고요.

 

 

네덜란드와 벨기에/ 위키백과

 

16세기 플랑드르(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 최고의 풍속화가는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입니다. 자손들이 다 화가였고 이름도 같은 인물도 있기 때문에 이 화가의 이름 뒤에는 통상적으로 the Elder를 붙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별로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고 작품 수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볼 수록 관심과 흥미가 더 커지는 화가이기도 합니다.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1558/ 위키피디아

 

 

깃털, 밀랍을 이용해 날개를 만들고 하늘을 날개 된 이카루스와 그의 아버지 타이달로스 이야기 아시죠? 이카루스는 태양가까이 가면 밀랍이 녹아서 떨어지고 말테니 조심하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결국 너무 가까이 갔다가 바다로 추락해 버리지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이카루스의 모습을 그린 것에 반해 브르겔은 오른쪽 구석에 이미 떨어져 발만 달랑거리는  추락한 이카루스를 그려놓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조연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처럼 등장합니다. 마치 첫 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농부와 양치기 그리고 낚시꾼이 더 주인공처럼 보이는 그림입니다. 헛된 꿈을 찾아 헤매지 말라는 브르헬의 충고일까요? 아니면 당시 플랑드르 농민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던 걸까요? 발만 대롱거리는 이카루스를 구해 줄 생각도 없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으니 말입니다. 

 

 

 

 

 

<네덜란드의 속담>,1559/위키피디아

 

 

 

 

100개이상의 네덜란드 속담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플랑드르 주민들의 일상을 통해 당시 유행하는 속담들을 그림 속에 표현해 놓았어요.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며 몇 가지 살펴봅니다.

서로 코 잡아끌기 =서로 속고 속인다는 뜻입니다.(2층 창문쪽)

달을 향해 소변보기=불가능한 일을 한다는 뜻이고요.(2층, 초승달 그려진 곳)

악마도 베개에 묶을 수 있다=집요하면 무슨 짓이 든 할 수 있다.(왼쪽 아래, 붉은 옷 여인)

암퇘지가 통 마개를 뽑는다=서투른 일은 결국 대가를 치른다(왼쪽 드럼통 근처 암퇘지)

돌담에 머리박기=안 되는 일을 무모하게 밀어붙이다(왼쪽 칼 들고 머리 박도 있는 남자)

여우와 두루미가 서로 대접한다=사기꾼이 서로 사기당한다(강가 코너의 두루미와 여우)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어렸을 적 동화로도 본 듯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본질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놀이>,1560,빈 미술사 박물관/위키피디아

 

 

 

아이들이 장난감이 없던 시절 어떻게 놀았는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엄청 많죠. 그림 속에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들어있는 건 처음 봅니다. 세어보면 아이들이 250명 정도 된다고 해요. 16세기 플랑드르 지역 아이들은 뭘 하고 놀았는지 한 번 볼까요? 굴렁쇠를 돌리는 아이도 보이고 , 말뚝박기, 공기놀이, 팽이치기, 꼬리잡기 , 드럼통 타기 등 놀이의 가짓수도 가지가지입니다. 어린 꼬마들이 있는 집이라면 같이 찾아보고 얘기를 해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21세기 아이들보다 건강하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더 창의적으로 노는 것 같고요.  한국 김홍도 풍속화 속 아이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브뤼겔은  기록적인  풍속화의 의미도 있지만 어린아이처럼 쓸데없는 시간에 낭비하는 어른들에게 충고하는 의미의 그림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죽음의 승리>,1562,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위키피디아

 

 

종교화를 그릴 때 브뤼겔은 단순히 종교화만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정치적 사회적 특징을 그림 속에 잘 녹여냈답니다. 당시 유행했 던 흑사병을 주제로 그렸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있습니다. 플랑드르 지방이  스페인과 종교 전쟁을 벌였고 독립 전쟁의 성격을 띠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종교적인 갈등 때문에 죽었거든요. 해골군대를 스페인 군대로 풍자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본인이 플랑드르 사람이니 스페인에게 악 감정이 당연히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페인 왕에게 이 그림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하늘에서도 억울할 듯합니다.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플랑드르 지역을 지배했을 때 펠리페 2세가 네덜란드에서 가져왔으니까요.

 

 

 

 

오른쪽 윗부분, 수레바퀴 처형대와 교수대에 시체가 방치되어 까마귀의 먹잇감이 되고 있고, 여전히 누군가의 목을 치는 해골이 보입니다. 희생자는 헛되이 기도하고 있고요. 나무등걸 속으로 숨으려 했던 누군가는 그러나 어김없이 발각되어 등에 창이 꼽혀 있습니다. 도망치던 남자는 붙잡혀서 절벽 아래로 거꾸로 끌어당겨지고 있고요. 꿈에 나타날 까 걱정도 되는 그림이네요.

 

 

왼쪽 위에는 죽음의 종을 치는 해골 둘이 보이고, 곁에서는 다른 해골 둘이 매장된 관에서 해골을 꺼내고 있습니다. 본래 마을의 성채 역할을 하는 건물인데 거꾸로 죽음의 전사들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어버렸네요. 개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수중 생물도 올라와서 저주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걸까? 게임 캐릭터로도 손상이 없을 듯싶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공황상태에서 여기저기 쓰러지고, 아마도 생전에 경건한 사람들이었을 토가를 입은 해골들은 이 끔찍한 장면을 바라보며 마지막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최후의 보루였던 성벽이 뚫리고 죽음의 전사들이 큰 낫을 휘두르고 있다. 귀신이 된 듯한 붉은말을 타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미쳐버린 말은 사람을 가차 없이 발굽으로 밟는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과 아직 숨이 붙은 사람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해골들의 무리에  쓸려오고, 그 기세에 밀려 사람들은 넘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떠밀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향해 호소해 보지만 듣는 이는 없고 해골들의 조롱만 뒤따른다. 그 틈에 한 신사의 겉옷 단추를 푸르는 해골의 바쁜 손동작도 보인다. 그들은 컨테이너 박스와 같은 감옥으로 속절없이 몰려 들어가는데, 연결된 감옥 문을 신이 난 해골들이 힘껏 당겨 열고 있다. 그들의 생명 하나하나는 돈으로 환산되어 쌓이고, 압도적인 숫자의 해골군대는 관짝을 방팻삼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몇몇 기사와 무사들이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으나 그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미 바닥에 쓰러져서 한쪽 팔에 쥔 부러진 칼로 방어를 해보지만 거대한 낫에 금방이라도 희생당할 것 같다. 그 와중에, 방금 전까지 신나는 파티 현장이었던 곳은 함께 놀고 있던 친구들이 사실은 이미 죽은 해골이었음이 밝혀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박판과 주사위 놀음판이 엎어지는 순간이 묘사된다. 그 틈에 식탁 밑으로  도망치는 광대와, 술을 부어버리는 해골, 그리고 방금까지 먹던 맛있는 음식이 사실은 해골이었음이 드러나자 경악한다.  그리고 죽음이 코앞에 와서 이미 자신들과 함께 놀고 있었음을 아직 까지도 알아치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도 함께 보인다. 팬데믹을 거치며 느꼈던 감정들도 어쩌면 비슷한 면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1550년-1850년 사이, 북반구에 이례적인 혹한이 지속됩니다. 소위 '소빙하기'라고 불리는 그즈음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보기만 해도 냉기가 느껴지는 겨울 풍경화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겨울풍경>,1565/위키피디아

 

 

 오른쪽 그림에 새 덫이 보이나요. 새들에게  위기의 순간입니다. 반면  왼쪽 사람들은 여유롭게 동계스포츠를 한껏 즐기는 장면입니다.  그리스 신화나 종교화만 그리다가 사람들의 풍속을 다룬 이런 그림에 대한 명칭이 따로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익숙한 종교화를 보다 일상의 그림을 보고 "이게 무슨 장르야" 하고 물었다는 거지요. 피터 브뤼겔이 1세대 설경 풍경화가인 셈이죠. 종교개혁의 영향도 한몫했습니다. 

 

 

 

날짜와 서명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피터 브뤼겔의 그림 원작은 대부분 그의 아들들에 의해 복제됩니다. 실제로 대다수 그림이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요.  중세말에서  르네상스 초기 시절 플랑드르 모습을 현장에서 본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그림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골프, 컬링, 스케이트... 등 북유럽 네덜란드가 동계스포츠 강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 속에 파묻힌 황량한 대지 위에 앙상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마을을 관통하는 운하를 따라 줄지어 선 건물들 또한 희 눈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두꺼운 회색 구름 뒤로 태양은 자취를 감췄고, 날아가던 새마저 얼어붙은 듯 차가운 대기에는 조금의 온기도 없습니다. 이처럼 세세한 디테일을 전달하면서도 마치 높은 언덕 위에 서서 까마득히 먼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 같은 조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브뤼겔 그림의 특징입니다.

 

 

 

 

 

<눈 속의 사냥꾼>,1565,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위키피디아

 

 

 

이 그림은 원근법을 많이 생략해 세련돼 보입니다. 평면적이라 화이트와 블랙 대비가 명확하게 떨어져 현대미술 같은 느낌도 들고요. 까만 강아지와 나뭇가지는 검정에 가까운 진한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설경의 눈은 화이트로 표현해 대비시켰고요. 개인적으로 일러스트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사냥꾼들이 마을로 돌아가는 장면이네요. 어깨에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전부이고요.  분위기를 사냥을 망친 모양입니다.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으니 말이죠. 사냥꾼 앞에 작은 토끼 발자국 보이시나요. 아마도 잡아던 토끼가 도망갔나 봅니다. 저 깨알 같은 디테일이 플랑드르 지역 화가들의 특징입니다. 정말 섬세하지요.

 

 

네덜란드, 벨기에는 낮은 지역이라 당시 저렇게 놓은 산봉우리가 없답니다. 브뤼겔이 그려낸 상상의 영역인 거지요. 젊은 시절 어느 여행지의 모습이기도 할 테고요. 까치와 까마귀를 그려 다가 올 불길함을 상징하는 듯도 보이고요. 사냥에 실패한 사냥꾼들과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은  동계스포츠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대조적인 모습이라 그림 속 이야기가 더 풍성해집니다.

 

 

 

피터 브뤼겔, <농가의 결혼식>,1568, 빈 미술사 박물관/ 위키피디아

 

 

위 작품은 농가에서 축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잔치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단지 먹고 마시는 잔치에 대한 그림이 아닙니다. 일단 결혼식 장소는 곡식 창고입니다. 식탁과 의자는 임시로 만들어져서 허름한 느낌이고요.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결혼식 자체는 이미 끝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피로연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음식을 나르는 도구가 문짝 같아 보입니다. 아이디어 갑이네요. 흰새, 푸른색, 붉은색 대비가 선명하고요. 그런데 그들이 먹는 건 기껏해야 수프와 음료 그리고 테이블 위에 빵 조각이 전부네요. 그것마저도 앉아 있는 사람이나 문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그리 넉넉해 보이지도 않고요. 요즘 같으면 먹고 남았을 음식들이 결혼식임에도  넉넉하지 않은 당시 농민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그림 같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전체적으로 특별히 주인공이 있는 그림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몇몇 인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브뤼겔 작품의 구도와 놀라운 묘사 덕분일 테지요.  결혼식이니 신랑과 신부를 찾게 됩니다. 가운데 녹색천 앞에 않아 있는 여자는 신부가 분명해 보입니다. 화관을 쓰고 자신의 긴 머리를 과감하게 노출시킨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런데 신랑은 보이지 않네요. 어디로 간 거죠? 그래서 신부의 얼굴이 살짝 구겨져 보이는 걸까요? 즐거운 표정이라 하기에도 뭔가 이상하고 그렇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오묘한 표정입니다. 혹시  술을 따르고 있는 차려입은 저 남자가 신랑 아닐까요? 하객들 대접하느라 저곳에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왼쪽의 백파이프를 들고 있는 남자와 아래에 자기 접시를 손가락으로 긁어먹는 아이를 보면 순간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백파이프 남자는 잔치에 연주를 하러 온 것이 분명한데 그의 시선은 두 남자가 운반하는 음식을 향하고 있어요. 아이는 누구 하나 챙겨주지 않는 상황에서 빈 접시를 끌어안은 채 바닥에 않아 있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축제에서도, 가난한 농가의 잔치는 여전히 허기집니다. 

 

 

이 장소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복장을 하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검은 옷의 남자가 있습니다. 옆에 있는 수도승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는 이곳의 농부들과는 달리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음식을 먹고 있지도 않고요. 마치 이런 별 볼 일 없는 음식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이 결혼식 자체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싶습니다. 깨알 콘셉트 식탁 밑에 강아지 모습도 보여요. 화가의  디테일에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후 얼마 안돼서 화가 브뤼겔은 죽습니다. 그의 나이 40세 정도에 말이죠.

 

 

 

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일상을 알아가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때때로 교훈을 주기도 하고요. 브뤼겔이 살았던 시대는 스페인이 네덜란드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군대와 통치자를 보내 갖은 압력을 행사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풍자와 해학을 그리며 그 시대를 표현해 냈지요. 그 덕분에 16세기 플랑드르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고 시대는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도 살펴본 시간이었습니다. 

 

 

 

반응형

'지식&교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53.비숑 프리제(14)  (0) 2023.12.12
50-51. 시츄(Shih Tzu,13)  (2) 2023.12.10
50-49. 톰 포드(Tom Ford, 7)  (2) 2023.12.05
50-48. 닥스훈트(12)  (2) 2023.12.02
50-47. 루이비통(Louis Vuitton, 6)  (2) 2023.11.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