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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절대적으로 원시적이며,
빵을 갈망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이다.
빵이 없다면 굶어 죽겠지만
예술 없이는 지루해 죽는다.
국제화단에서 뉴욕이 성과를 높이면서 파리의 위상은 예전에 비해 현저히 추락하게 됩니다. 그래도 프랑스 파리에서 계속 활약하며 유럽미술의 자존심을 지킨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장 뒤뷔페(Jean Du buffeet, 1901-1985)입니다. 뒤뷔페는 생전에 기존의 예술전통을 거부하고 파격적인 예술실험과 독창적 스타일로 당시 서구 미술계에 혁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20세기 미술사를 장식한 '앵포르멜'미술을 개척하며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엥포르멜:정형화되고 아카데믹한 미술에서 벗어나 비정형적이고 서정적인 회화를 지향하는 게 특징입니다.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01-1985) 하면 '쿠쿠바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쿠쿠바자는 패션과 퍼포먼스, 입체와 평면, 가면, 오브제 등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 예술입니다. 움직이는 그림 공연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뒤뷔페는 쿠쿠바자에 대해서 '더 이상 눈으로 보는 그림이 아닌, 실존하는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장 뒤뷔페가 '발포 폴리스티렌'이라는 재료로 조각을 만드는데, 이 조각으로 의상을 제작해서 배우들이 입고 공연을 합니다. 1973년에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하고요. 이 쿠쿠바자 공연은 계속해서 대중과 만나면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작품을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 거리로 걸어 나오게 합니다.
1901년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 부모가 와인 도매상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30대까지 와인 업에 종사하게 되지요. 41살의 어찌 보면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비록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었지만 일찍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만의 화풍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자유분방한 선의 사용과 마치 어린아이 같은 스타일로 작업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장 뒤뷔페는 '알르부뤼'라는 개념을 창시하면서 현대미술에 큰 획을 긋고요. 이 개념을 바탕으로 비 주류미술, 즉 아웃사이더 아트에 무게를 두고 작업을 이어 나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e-Zn58M794
장 뒤뷔페는 정말 뛰어난 최후의 파리 화가다.
프랑스 회화는 뒤뷔페 이후로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구상과 비구상을 초월하여 모든 정형을 부정하고 새로운 조형의 의미를 창조해내고자 한 그는 가공 되지 않은 날것, 원초적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아르 브뤼(Art Brut: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 개념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예술작품이란 존재 저 깊숙한 곳에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투영이 일어날 때 비로소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원시적인 상태에서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예술의 창작 과정을
오직 이 '아르 브뤼' 안에서만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아웃사이더의 대 사제 Grand Maitre of the Outsider, 장 뒤뷔페, 1947>구상적인 아르뷔루( Art Brut), 캔버스 위에 에멀션 도료와 유채 혼합
장 뒤뷔페의 위 작품을 보면 조잡하고 어린아이 같은 낙서 그림이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 저 걸 그림이라고 그린거야.'하며 갸우뚱 하실 것 같고요. 이 초상화는 그림이 발표되자마자 파리 화단에 거대한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뒤뷔페의 새로운 미술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그림은 아스팔트에 도료와 유채 혼합 작품으로 '오트 파트 hautes pates '입니다.
오트 파트(hautes pates)는 "높은 반죽"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회화에서 두껍게 물감을 바르는 기법을 가리킵니다. 이 기법은 1945년 장 뒤뷔페가 자신의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발라 올려 부조와 같은 입체적인 효과를 만듭니다. 물감에 모래. 자갈, 작은 돌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사용합니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레이스, 파편, 조각 등을 넣어 질감을 만듭니다. 이 기법은 평면적인 이미지를 넘어 촉각적이고 공간감 있는 표면을 만들어내어 관람객에게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합니다. 장 뒤뷔페 외에도 장 포트리에, 브람 보가크, 안토니 타피에스 등 여러 현대 미술가들이 이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회적 명성이나 경쟁 같은 것에 속하지 않은 채로 진정한 창작 욕구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작가가 그린 그림보다 소중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장 뒤뷔페는 어린아이의 그림이나,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그림에 주목했습니다. 뒤뷔페는 주류 문화가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발전을 흡수하기도 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르 브뤼( Art Brut)만이 이런 문화의 권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한 동기로 창작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눈사람을 닮은 장 뒤뷔페의 <모나리자>(1948)입니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원작 모나리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독특한 해석입니다. 원작과는 아주 다른 스타일로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말이죠. 뒤뷔페의 특유의 거칠고 원시적인 스타일리 적용되어 있습니다 . 원본의 고유성을 파괴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현재 약 110억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며, 해당 전시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뒤뷔페의 해석에서 '모나리자'는 아주 귀여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모나리자>도 대단하지만 눈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 곁에 다가 온 뒤뷔페의 '모나리자'역시 신선합니다. 전통적인 미술의 틀을 깨고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 두뷔페의 '모나리자'를 보며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기존 명작에 대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재해석이 용기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1951년 그는 한 강의에서 '반문화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문화를 분석하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자연의 형태에 가깝게 바라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개념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는 예술이 제도권 안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갈라진 틈이나 반짝이는 자갈, 풀 포기 같은 것들에게 찬사를 보내라고 하면서 '원시 예술'을 지향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쫓는 게 아니라, 순수한 창작 충동에 집중하는 어린 아이나 정신 질환자 혹은 문명권 밖에 있는 사람들의 그림에 주목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현대의 비주류 예술, '아웃사이더 아트'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신장애인 등의 작품을 주목한 뒤뷔페는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예술이란 의미의 '아트 브뤼트(Art Brut)'란 용어를 만들었고, 이는 거리 예술을 포함한 '아웃사이더 아트'개념의 기반이 됐습니다. 그는 장르를 뛰어 넘는 이른바 크로스오버 작업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뒤뷔페는 사실 정규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습니다. 미술에 관심은 컸지만 가업인 포도주 상을 하다가 40세가 돼서야 전업 작가의 길로 들었섰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비주류 작가인 셈이죠. 어쩌면 비주류였기에 그는 기존의 예술전통에 맞서 혁신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장 뒤뷔페는 1918년 파리로 나와, 아카데미 쥘리앵(Acacemie Julian)에서 공부하였으나 약 6개월 동안 에 불과하고 학교를 때려치우고 주로 혼자 독학하였습니다. 이 시절 유대계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막스 자코브 (Max Jacob 1876-1944)를 만나게 됩니다. 시인 막스 자코브(Max Jacob)는 독특하고 실험적인 시 스타일로 유명했습니다. 종교적 주제와 초현실적 이미지를 자주 사용했고요. 그의 대표작으로는 시집 "Le Cornet a des"(주사위 컵)가 있습니다. 유대인 출신이었던 Jacob은 1909년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이후 그의 작품에 종교적 요소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나치 점령기 프랑스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드랑시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막스 자코브(Max Jacob)는 파블로 피카소, 기욤 아폴리네르 등 당대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20세기 초 프랑스 문학과 예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시인 자코브는 생전에 뒤뷔페에게 파리의 몽마르트에서 아폴리네르, 피카소 등 당대의 시인과 화가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뒤뷔페도 모범 화가로 전통주의적 기법의 그림에 열중하던 시절입니다.
그러다 장 뒤베는 갑자기 그림을 중단하고 아버지를 도와 가업인 포도주 도매상을 10여 년 정도 하게 됩니다. 그는 다시 미술을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으나 41살 되던 1942년 그는 다시 파리에 나타나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요. 1944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때 화랑에 등장한 그의 그림은 달라졌습니다. 그의 그림은 특히 재료에 의해 큰 변화가 있었는데, 화방에서 구할 수 없는 것, 우리들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들, 예컨대 쓰레기나 폐물들, 이른바 정크( junk) 들을 모아 쌓아 놓은 마티에르 (Matiere) 변화했습니다.
장 뒤뷔페는 캔버스나 종이나 패널에 우아하게 그리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종종 타르나 유지, 자갈이나 숯과 모래 같은 재료들을 니스나 아교 같은 접착제에 버무려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를 만들어 거기에 어린아이들 그림 같은 (낙서 같은 ) 소박한 (아니 유치한 ) 그림과 소묘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아직 미완성된 것' 같은 그림이었죠.
장 뒤뷔페 , 그는 미술의 어떤 카테고리에 들어가기를 희망하지 않았지만, 그의미술은 '원시 예술, 아르브뤼 (art brut) 라 부릅니다.
1946년 1월에 제작된 유화 작품으로, 오일, 자갈, 모래, 유리 , 밧줄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괴상한 남성 누드 형상이 있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질감, 육중한 비율, 박힌 돌 이빨, 유리 파편으로 만든 눈 등이 특징접입니다. 이 인물은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동시에 손을 등 뒤로 한 자세로 인해 취약함도 드러냅니다. 작품 제목은 니체의 철학에서 차용한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 개념을 가리키지만, 뒤뷔페는 이를 통해 파시즘의 권위와 남성성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뒤뷔페의 '아르 부뤼(Art Brut)' 스타일을 잘 보여 주며, 전통적인 미적 기준에 도전하는 그의 예술 철학을 반영합니다. <will to Power>(1946)는 뒤뷔페의 독특한 재료 사용과 표현 방식, 그리고 사회적 비판을 담은 예술적 접근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검은 인디아 잉크를 사용하여 스크래치보드 위에 그려졌습니다. 작품의 대상은 앙리 미쇼(Henri Michaux, 1899-1984)로 , 벨기에 출신의 시인이자 화가입니다. 뒤뷔페의 특유의 원시적이고 거친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초상화입니다. 이 초상화는 뒤뷔페의 '아르 부뤼(Art Brut)'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통적인 초상화의 개념을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뒤뷔페는 이 시기에 여러 작가와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 작품도 그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장 뒤뷔페가 한 낱 말썽쟁이 아웃사이더로 끝나지 않은 것도 '시대적인 행운'이 있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1948년, 이른바 파리 몽파르나스(Monparnasse)를 중심으로 뜨내기 화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중심으로 형성된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즉 파리파에서 비정형성 추상 운동인 '앵포르멜 Informel 운동'이 시작되자, 때마침 시작한 그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고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운 좋게도 뒤뷔페의 비정형 회화들이 파리의 미술 평론가로부터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 중에 가장 선구적인 추상 운동 선구자로 추앙되었습니다.
장 뒤뷔페의 <Large Black Landscape>(1946)는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원시미술 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거칠고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검은색 사용이 특징적입니다. 뒤뷔페는 전통적인 미술 기법을 거부하고,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추상화된 풍경을 통해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느낌을 전달하며, 전후 유럽의 황폐화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뒤뷔페의 아트 브뤼(Art Brut) 스타일의 초기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로 여겨집니다.
그가 공격하는 기성 화단은 엘리트주의와 자본가의 힘이 만든 허상, 가식과 인공적이고 모방적인 자기선전으로 가득 찬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아하고 멋진 박물관에 양반다리를 하고 걸려 있는 미술 개념 대신 우리 주변에 흔한 것 , 생짜들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을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상한 코뚜레를 한 암소 The Cow With The Subtle Nose>
마치 기원전 1만 5천 년 전 라스코 동굴 벽에 그려진 야생의 들소가 오늘의 현세에 환생한 것 같습니다. 아이차럼 순진무구하고, 자유로우면서 야만적인 이 그림과 제목을 보면, 고귀한 문명에 대한 그의 계산된 조롱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히 미술사조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고급 미술'에 대한 심한 농담과 야만적( savage )인 돌진 같은 거지요. 그 스스로도 전체적으로 문명화 시대를 향해, 미래의 세대를 향한 전진, 그 재확인 작업이라고 하네요.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Soul of the Underground>는 1959년 12월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흙과 땅바닥"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뒤뷔페의 독특한 예술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뒤뷔페는 이 작품에서 재료 자체를 미술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미술 재료에서 벗어나 흙과 같은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그의 "야만적인 현대 원시 미술"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 작품은 지하의 영혼을 표현한 작품으로, 땅속 깊은 곳의 신비로운 느낌을 전달합니다. 뒤뷔페는 이 작품을 통해 문명화된 세계 아래에 숨겨진 원시적이로 본질적인 요소들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반문화적이고 비 관습적인 예술 접근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물감에 모래나 석회, 알루미늄 호일, 아스팔트 등을 오일과 섞어 만들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런 물감을 뿌려 그리는 그림을 태시즘 (Tachisme)이라고 부릅니다. 화면에 두꺼운 반죽을 두른 풍부한 느낌의 이 재료들은 거친 텍스처를 가진 부조처럼 중후한 질감을 만들어 냅니다. 마치 옆집 벽이나 마당을 파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지요. 이런 미술을 '오트 파트 (Hautes pastes)'라 부릅니다.
그의 누드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구상인지? 추상인지? 분류하기 어려운 일련의 작품들이 계속됩니다. 이 무렵 그의 작품을 일컬어 재질학 (Texturologies)이라 분류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두꺼운 반죽 미술로 짓이겨서 화면 질감의 물질의 회하적 요소를 창출해 냅니다. 1950년부터 그가 오트 파트 (Hautes pates) 방식으로 '귀부인의 신체 'Ladies' Bodies'연작 시리즈를 연속적으로 그려 나갔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캔버스에 무정형의 여성 신체가 나체로 펼쳐져 있으며, 멍든 듯한 분홍색, 보라색, 빨간색 등의 색상을 사용하여 살덩어리 풍경을 통해 흐르는 체액을 연상시킵니다.
뒤뷔페는 이 시리즈를 통해 전통적인 미의 개념에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나 광택 잡지에서 확립된 "허구으 아름다움 개념"에 항의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만들어 관람자로 하여금 일상생활의 기이함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장 뒤뷔페( Jean Dubuffet , 1901-1985)는 비난받고 경멸 당하던 원시미술 운동 (the art movement Art Brut) 작업을 줄기차게 진행합니다. 미국과 프랑스를 베이스로 풍부하고 다량의 작품 생산을 즐기면서 자신의 미술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그의 창작 활동은 기존의 모든 미술적 전통을 회피했고, 자본시장에 찌들고 엘리트주의에 빠진 기존 서구 미술을 경멸했습니다. 차라리 길바닥이나 동네 거리의 낙서나 쓰레기에서 영감을 받았고 발끝에 닿는 하찮은 것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그는 차츰 장식성이 강한 조각 그림 맞추기 '지그소 퍼즐(Jigsaw puzzle: 그림 조각 맞추기)을 시도합니다. 그의 후기 작품 중 하나로, 1950년대 후반부터 발전시킨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앵포르멜 미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며, 뒤뷔페가 '날것'의 예술에 주목한 그의 예술 철학을 반영합니다.
< Comings and Goings>는 추상적이고 원시적인 형태를 사용하여 인간의 움직임과 일상적인 활동을 표현한 것 으로 보입니다. 뒤뷔페의 작품 특성상, 거칠고 텍스처가 풍부한 표면, 강렬한 색채, 그리고 단순화된 형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960년대는 작곡과 건축 환경 조성을 함께 실험합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형상과 바탕이 되는 화면과의 종합적 시도를 꾀합니다. 회화와 조각의 다양한 재료로 계속 아르 브뤼의 가능성을 탐구하였습니다. 만년에는 공공장소에 놓은 흑백의 유리 섬유로 만든 대형 조각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장 뒤뷔페의 1962년 작품 'Court Les rues' 는 그의 중기 작품으로 앵포르멜 미술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의 제목 'Court Les rues'는 프랑스어로 '거리를 달리다' 또는 '거리를 누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대 도시 생활의 복잡성, 인간의 움직임, 그리고 일상의 단면을 뒤뷔페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새로운 예술이란 문화적 인습과 가치에 길들여지지 않은 ,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 것, 야만적인 것,야생적인 것(sauvagerie)에서 새로운 순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배우거나 훈련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야 그것이 예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인생 완숙기이던 1940년대부터는 파리와 뉴욕은 물론 유럽 전 지역에서 수많은 전시회가 줄을 이었습니다. 수많은 저술과 연구 논문들이 봇불을 이루었고요. 2001년에는 '퐁피두센터'에서 '장 뒤뷔페 탄생 100주년 전'이 대대적으로 열렸으며 프랑스에서는 현재 제1의 국민화가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qafW9rXMpg
우를루프(L' Hourloupe)는 장 뒤뷔페의 대표적인 시리즈입니다. 우를루프라는 단어는 '외치다, 울부짖다. 늑대'를 뜻하는 각각의 프랑스어를 합쳐 만들었 습니다.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에너지를 담은 이름입니다. 뒤뷔페는 이 작업에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검은 선과 함께 주로 붉은색과 파란색, 흰색을 사용했습니다. 선은 자유로우면서도 색은 제한적으로 사용해 조화를 이루고 있고요. 무의 식적으로 연결된 이 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인물이나 형상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피아노나 계단, 탑, 배, 찻주전자 등 일상의 사물들을 해체해 검은색 굵은 테두리를 가진 비 정형의 모습으로 재구성하고 흰색과 붉은색, 파란색으로 조각 맞추기처럼 해체해 놓았습니다. 이 시리즈는 1962년에 처음 시작되어 수십 년 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쿠쿠바자 공연에서 이 우를루프 시리즈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다양한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TfFfzEJYVM
미국 시카고에<Monument with Stanging Beast>라는 대형 공공미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톰슨 센터 앞에 놓여 있는 작품으로, 현재 미국에 존재하는 장 뒤뷔페의 3개의 기념비중 하나입니다. 높이만 약 8.8m에 달하는 대형 조각입니다. '스탠딩 비스트'라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서 있는 동물과 나무, 건축 양식 등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뒤뷔페의 시그니처인 우를루프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요. 예술을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장 뒤뷔페의 신념에 따라, 이 작품은 누구나 만지거나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대중들 뿐만 아니라 이곳을 오가는 관광객들에게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뒤뷔페의 '우를루프' 시리즈는 파랑,빨강, 흰색, 검정 등 극히 제한된 기본 색깔의 자유분방한 선들이 특징으로 그의 미적감각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사람이나 물건, 배경 등 모든 것의 구별이 쉽지 않을 만큼 함께 어우러져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i0zrIdZSlQ
'쿠쿠바자'는 뒤뷔페가 우룰루프 축제, 환상무도회라는 의미로 지은 제목이자 종합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요즘의 퍼포먼스로 분류되기도 하지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1973) 등에서 선보이기도 한 '쿠쿠바자'는 회화와 조각, 다양한 재료로 제작한 의상, 무대장치 등으로 구성된 시나리오 없는 무대 예술,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앙상 블라주 기법의 작품들을 비롯해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도 기존 예술에의 저항, 새로운 예술의 모색을 갈망한 뒤뷔페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빌레글레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두 예술가의 예술적 교류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거리 벽보를 찢어서 자신만의 미적 감각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당대의 시대상 등을 보여주며 흥미를 끕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inu_oldN1k
뒤뷔페와 20여 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혼을 교류한 자크 빌레글레 (Jacques villegle' ,1926-2022)는 프랑스의 혼합 미디어 예술가이자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 운동의 주요 인물입니다. 그는 찢어진 광고 포스트를 사용한 "데콜라주(decollage) 기법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빌레글레는 1947년 시작해 처음에는 찢어진 광고 포스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시그니처 매체가 되었습니다. 동료 예술가 레이몽 아인스(Raymond Hains)와 함께 작업하며, 빌레글레는 1950년대에 울트라 -레트리스트 사이코 지오그래픽 하이퍼 그래픽(Ultra0Lettrist Psychogeographics)을 개발했습니다. 그의 예술적 과정은 포스터를 여러 겹으로 쌓고, 그것을 찢거나 찢어서 아래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복잡하고 텍스처가 풍부한 구성을 만들어 냅니다. 이 기법을 통해 빌레글레는 현대 프랑스 문화와 사회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공했으며, 차용된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비판을 자주 포함했습니다.
빌레글레의 작품은 문명의 익명성과 주변부 잔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의 예술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에 의해 헤르만 브라운 -베가(Hermam Braun-Vega)와 마놀로 발데스(Manolo Valdes)와 함께 "액체 예술(liquid art)"로 묘사되었습니다. 1960년에 빌레글레는 누보 레알리즘 그룹에 합류하여 전위 예술 장면에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예술 제작 접근 방식은 예술 작품의 경계를 재정의하며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0ooUVvJw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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