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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존재는 모든 것을 대변한다.
-미카 요시타케( Yoshitake Mika)-

 
 
2023년 새해부터 루이 비통과의 협업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바로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현재 9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아직도 매일 그림을 그리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봅니다. 
 
 

 

일명 '땡댕이 무늬'의 대명사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1929- ).  그녀는 팝아트, 미니멀리즘, 페미니즘, 아트 무브먼트 등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조각, 회화,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 온 아티스트입니다. 2016년 타임지에 의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에는 모국인 일본에서 문화훈장을 받는 등 그녀의 몸값이 생존 여성 작가들 중 탑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쿠사마의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낙인으로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객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했지요. 쿠사마의 작품은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전시 때마다 인파 관리가 필요할 만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2013년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 전시 때 관람객이 몰려 이례적으로 관객 당 감상시간을 45초로 한정해야 했습니다. 2012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의 전시 1년 치 티켓이 예매 시작 몇 분만에 매진되었고요. 로스앤젤레스 브로드 미술관에서 열린 2018년 전시에 첫날 하루에만도 9만 개  표가 팔리는 등 쿠사마는 현재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eyesmag.com

 
 
 

 

 

쿠사마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를 기묘하게 조합하며 우리를 새로운 세계와 차원으로 끌어당기는 선수입니다.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유년시절에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을 추구할 뿐이다.
 - 쿠사마 야요이, 1985-

 
 
 
 
 
 
 

Yayoi Kusama wax model at Louis Vitton for 2012 Collection unveiling/wikipedia

 
 
 

 

일본 나가노현/ 위키백과

 

 

 

 

한국경제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4인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종묘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꽃과 나무를 스케치하는 것에 익숙했다고 해요. 그러나 그녀는 소녀 시절부터 조현병을 앓으며 반복해서 환각이나 환청에 시달렸다고 합니다.쿠사마의 자서전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가한 사람이라고 해요. 어머니는 어린 쿠사마에게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아버지를 미행하고 자신에게 보고하게 시켰다는데 이것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고 적었습니다. 
 
 

 


7살부터는 제비꽃, 호박, 개 등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환청과 꽃에 사람 같은 얼굴이 있거나 주변 사물에 환하게 불이 켜지는 등의 환시를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는 조현병 (Schizophrenia)의 증상으로 의심되는 지점이지요.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리웠던 조현병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나이에 시작하여 만성적 경과를 보이는 정신적으로 혼란된 상태로, 현실과 현실이 아니 것을 구별하는 능력의 약화를 유발하는 뇌 질환을 말합니다.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뇌의 기질적 이상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쿠사마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내가 본 것을 그렸다. 본것을 기록하는 것은 발생한 에피소드의 쇼크와 공포를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이것이 내 회화의 근본이다."라 밝힙니다.
 
 

 


보고 들은 기묘한 것을 기록하고자 낙서에 몰두하는 어린 쿠사마를 위해 아버지가 물감, 붓 등 재료를 사주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여성은 얌전히 커서 결혼하고 가정주부가 되어야지 화가가 돼서 안된다고 꾸짖으며 쿠사마의 그림을 찢어버리곤 했고요. 아동기의 쿠사마에게 정서적인 학대로 작용했을만한 부양자의 폭력적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쿠사마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 공장에 차출되어 일했는데 낮에 고된 노동을 해도 집에 돌아오면 밤에도 늘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죠.
 
 

 


1948년 전쟁이 종료되고 쿠사마는 쿄토시립예술 대학에 진학하지만 전통적 교습 방식과 니혼가 (일본화)만을 고집하는 커리큘럼에 강한 반감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편 부모가 자신을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정략결혼을 시키려 하여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요. 쿠사마는 자신의 20대를 회고하며 신경쇠약증에 수없이 시달린 시기였다고 고백합니다. 
 

 


 
 조현병 환자는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득이 불가능한 망상에 시달리는 일이 잦은데, 청년기의 갑작스러운 변화들과 맞물려 증상이 더 심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작품활동에 몰두하여 1952년 첫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이 전시가 마츠모토시의신슈대학 의학대학 정신과 교수인 니시마루 시호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업을 분석하여 정신병학 학회에서 "조현병 경향성을 가진 천재 여성 아티스트"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쿠사마에게서 조현병 증상은 매우 명확히 드러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편 니시마루는 쿠사마에게 신경증이 악화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가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 조언했다고 쿠사마는 적고 있습니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고요. 1955년 미국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화집을 보고 매료된 쿠사마가 자신의 수채화 그림을 동봉하여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연이 되어 미국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거지요.
 
 
 
 

500억 짜리 꽃...사막에서 다시 태어난 화가 조지아 오키프/ 매일경제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 1986)는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주요 화가로, 독특하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오키프는 꽃을 대형 캔버스에 확대하여 그림으로써, 일상적인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추상적 요소와 사실주의적 묘사를 결합하여 미국식 사실주의인 정밀주의와 연관성을 보입니다. 미국 남서부의 사막 풍경을 단순화하고 본질적인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강렬하고 대담한 색채 사용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순수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자연의 본질적 형태를 탐구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독창적인 접근으로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쿠사마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되려고 한 것은 이니었습니다. 강박신경증과 편집증 그리고 불안신경증으로 인한 병을 자신 스스로 이려 내고자 하는 노력에서 그녀의 활동이 예술이 되어버린 것이죠. 어둠 속에서 밀려오는 공포와 같은 영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괴로움, 하얀 좁쌀들이 벽을 타고 흐르던지 평면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들, 하나하나 모두 벽에서 끄집어내려고 하기 위해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잠을 잘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살아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Accumulation>, 1952/Arthive

 
 
 
 
1952년  23살로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틀뿐인 전시였지만 200점을 넘는 그림들로 벽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이 전시에서 그녀는 니시마루 신조 라는 신경정신과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이 소개로 다른 정신과 의사를 소개받기도 하고, 그것이 인연으로 도쿄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니시마루 교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녀의 정신병에 대해 조언하며 주치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A Flower(NO. 14)/ICA Boston

 
 
 
 
 
 
 

저의 예술,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싸우며
우리가 무엇인지,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예술에 있어 
일본은 너무 작고,
너무 노예적이고,
너무 봉건적이며,
여성을 경멸했습니다. 
제 예술에는 더 무한한 자유와 더 넓은 세상이 필요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1952년  마쓰모토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에는 더 넓은 곳으로 나가길  원했습니다. "제 예술을 위해 무한한 자유와 더 넓은 세상이 필요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쿠사요는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게 됩니다.  미국행은 작가의 인생에 전환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후 회화, 조각, 공연,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아시아의 여성 작가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드러냅니다. 
 
  
 
 

<태평양 Pacific Ocean>, 1960/ Design DB

 
 
 
 
 
 

더 이상 어린 소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던 암울한 전쟁의 시기,
제가 살던 집 뒤에는 수백만 개의 흰 돌이 놓인 강이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태양 아래 '존재' 하나하나를 각인시키던 돌의 모습은 
제가 빠져버린 환상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 외에도, 
저는 마음속 욕망의 이미지와 함께 
정신의 신비한 세계에 사로잡혔습니다. 
- 쿠사마 야요이-

 
 
 
 
 
 
 
 
 조지오 오키프의 도움으로 시애틀로 정착하여 1년을 보낸 후에는 뉴욕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1957년 뉴욕으로 이주 후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화단, 그리고 전후 미국 내 강한 반일감정과 맞서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금 그림에 몰입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종종 음식을 섭취하지도 수면을 취하지도 않으며 50-60시간씩 그림에 골몰했습니다. 아마 이 시기 양극성 장애 (Bipolar disorder)의 조증 단계가 발현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조증은 심한 흥분에 따른 고양감, 불안감, 충동성, 사고의 비약과 같은 증상을 특징으로 하며, 심한 조증 삽화(Manic episode)의 진단을 위한 단서로는 수면 욕구 감소, 목표 지향적 활동의 증가, 쾌락적인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 과장된 자신감, 주의 산만 등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름은 <무한 망 (infinity Net)> 시리즈입니다. <무한 망Infinity Net>은 검은 바탕 위에 흰 물감으로 작고 균질한 크기의 호(arc)를 촘촘히 연결하여 멀리서 보았을 때  마치 흰 레이스 천이 검은 캔버스 위에 올려진 듯 보이는 회화입니다. " 나와 내 주변 사이에 불특정 회색의 얇은 실크커튼 같은 막이 생기는 환상을 보게 되어 " 이를  시각화한 것이었다. 
 

 


캔버스 전체를 망으로 뒤덮다 못해 점차 그걸 책상에도 그리고 바닥에도 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몸 위에도 그렸습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망이 무한으로 증식하더라고 쿠사마는 회고합니다. 1959년 브라타 갤러리 (Brata Gallery)에서 이 작품들을 선보이며 뉴욕 화단에 성공적으로 입성했지만 쿠사마는 자신의 조현병 증세가 심화되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매일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날 아침에 깨서 눈을 떠보니 전날 그린 망이 창문에도 있더라는 것이다. 이에 손을 뻗어 만져보려 했더니 그 무늬가 살아 움직이며 기어서 자신의 피부로 옮겨 오더라고 그녀는 회술 한다. 이로 인해 공황장애 발작(Panic attack)이 오고, 스스로 앰뷸런스를 불러 벨뷰(Bellevue)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이후로도 며칠에 한 번씩 같은 일이 반복됐다. 
 

 

며칠씩 멈추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안정을 찾는 쿠사마의 이러한 행위는 점점 더 강박적으로 그림을 그림으로써 세상은 마음대로 되는 곳이 아니라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피하고자 애써 노력하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무한 망과 유사하게 속칭 " 땡땡이" 점 무늬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폴카닷(Polka dot) 시리즈 또한 이 시기에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쿠사마는 그러한 끝없는 반복을 통해 자신의 증세를 경감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반복적으로 그려내는 행위를 "자기말소(Self-Obliteration)"라 칭하고요. 끝없는 반복이 머릿속의 시끄러운 잡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삶의 불안을 지워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느꼈다는 것입니다. 
 
 
 
 

 
#검은색 바탕 위에 흰색으로 그린 미세한 고리는 그물 패턴처럼 캔버스를 균일하게 덮고 있다. 그 위에 흰색으로 얇게 칠한 터라 멀리서 보면 빈 캔버스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제법 두껍고 유기적으로 쌓인 물감이 드러나며 미묘한 인상을 준다. '그물망' 사이사이 빈 곳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검은색 배경이 점처럼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물망과 점의 관계는 쿠사마가 생각하는 무한한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위치를 상징했다 이 작품은 곧장 뉴욕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lt;Infinity Nets Yellow&gt;, 1960/Flickr

 
 

 

당시는 아트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바뀌며, 추상표현주의의 제 2세대의 전성기였습니다. 쿠사마는 앤디 워홀이나 클래스 올덴 버그 등의 작가들과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하며 전시를 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의 쿠사마의 성공은 빨랐습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무한 망>은 첫 개인전에서 프랭크 스텔라가 구입해 자택에 두었다고 하며, 도널드 저드 또한 그녀의 무한 망 작품을 소장했었고, 2008년에는 그 작품이 경매에서 510만 달러에 팔려 쿠사마는 생존하는 여성화가 중 가장 비싼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녀는 조셉 코넬과 만납니다. 
 
 


 

미술나라의 이상한 앨리스/NYCultureBeat

 
 
 
 
 

자신이 무한대로 확장된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무한한 공간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없음을 느낍니다. 
-쿠사마 야요이-

 
 
 
 
 
 
 
 
 
1961년의 쿠사마는 전위적인 무브먼트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합니다. 1960년대의 그녀의 대표적인 스타일은 '축적(accumulation)과 '강박관념(obsession)'으로 무한망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의자나 소파, 부엌용품 등 온갖 사물에 남근 형상의 오브제(soft-sculpture)를 축적해 붙인 것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남근들판 Phalli-Field>, Infinity Mirror Room/ Afterall.org

 

 

 

<남근 들판 Phalli-Field> 또한 정신적 문제에 대한 쿠사마의 대응기제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은 일종의 소프트 스컬프쳐(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조각)로 천에 솜을 채워 만든 수백 개의 남근 형태의 오브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쿠사마는 어린 시절 받은 가정교육의 영향으로 성 (Sex)에 대한 공포증(phobia)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혼 전 방종을 막기 위해 어머니는 성이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아버지의 바람의 현장을 목격해와 어머니에게 보고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과정을 겪으며 성을 터브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쿠사마는 이 오랜 공포증을 물리치기 위해 공포의 대상을 작고 다루기 쉬운 사물로 치환하고 그것의 반복 생산 및 설치합니다.  일종의 의식처럼 미술관 혹은 갤러리 공간 한가득 남성 생식기 모양 조각을 채워 넣다 보면 어느덧 성은 두려울 것도 없고 오히려 재밌고 즐거운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 쿠사마에게 예술은 발산의 기회이면서 정신적 문제에 대한 치유의 방편이 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동기 학대는 만성적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 양극성 장애를 조기에, 그리고 더 중도로 발현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장기간 혹은 심한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동의 경우 영구적으로 뇌구조와 기능 상의 변화가 생기고, 면역체계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주며, 신체 및 정신 이상에 쉽게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 심리학자 퍼피츄아 니오(Perpetua Neo)는 어린 시절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던 아티스트들의 경우를 분석하며 "그들 중 대다수가 고통받은 자아를 의미 창출을 위해 사용하고 그것을 예술을 통해 실행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즉 정신질환으로 인해 천재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관련 증상을 유발한 과거의 경험을 발판 삼아 그것에 대한 대응기제( coping mechanism)로 예술창작을 행하는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낸 작가들이 여럿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더 작절한 것 같습니다. 

 

 


 
쿠사마는 도전적인 작업을 맹렬하게 선보이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극심한 불안과 피로에 시달리게 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쿠사마는 예술 없이 삶을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1965년에는 가장 실험적인 작품 중 하나인 <무한 거울 방 >시리즈를 전개합니다.  요즘에야 무한히 서로를 비추는 거울의 방은 결코 낯선 공간이 아니지만, 무려 60년 전에 '무한 거울 방'의 철학을 상상했던 쿠사마의 선택은 가히 과감했습니다. 무한히 서로를 비추는 거울은 쿠사마의 예술 철학을 극대화했습니다. 설치 작품 속 쿠사마의 극적인 초상에서 볼 수 있듯, <무한 거울방 > 이후 쿠사마의 작업에서 퍼포먼스와 자아 이미지의 분열은 더욱 강화됩니다. 
 
 
 
 

 뉴욕 시절의 쿠사마는 '쿠사마 해프닝'이라고 칭해지는 야외에서의 누드 데모 등의 과격한 퍼포먼스나 인스터레이션을 표현했습니다. 남녀의 성차별을 부정하는 것을 베이스로, 자본주의나 베트남전쟁에도 반대하는 운동을 리드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신체에 물방울 무늬를 그린 누드 퍼포먼스로, 월가나 UN 본부 같은 보수적인 장소에서 행하여 기성세대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나무위키

 
 
 
 
 
 
 
 1966년 베니스 빈엔날레에서 그녀는 초청받지 못한 작가로서 전시장 앞 잔디에 약 1500여 개의 물방울무늬 오부제를 깔아놓습니다. <나르시스 정원> 플라스틱제의 미러볼 1500개로 이탈리아의 파빌리온 밖의 잔디 위를 가득 채운 것으로, 개당 2달러로 작품을 파는 퍼포먼스이기도 했습니다. 이 게릴라 전시는 비엔날레 측에 의해 중지당했으나 그녀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다 되었고, 또한 자기 자신을 머천다이징 한 아티스프로 평가받게 됩니다. 

 
 
 

Artist Yayoi Kusama in the Orez Gallery in the Hague, Netherlands, 1965 in KUSAMA-INFINITY/ Artnet News

 

 

 

 

약 16년간 미국에서 거주하며 회화라는 장르에서 벗어나 조각, 영화, 신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합니다. 특히나 당시 미국에는 반전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였는데 예술활동을 통한 반전시위에도 앞장서게 됩니다. 
 

 
 
 
 
 

Self-Obliteration(1966-1974), Yayoi Kisama/objects/M+

 
 
 
 
 
 
 
 

물방울무늬로 공간과 우리 몸을 지울 때 
비로소 우리는 환경의 일부가 됩니다.
-쿠사마 야요이-



 
 
1966년부터 일본에 돌아간 직후인 1974년까지 작업한 <자기 소멸>은 자아의 증폭과 소멸 사이에서 요동치는 시리즈 입니다. 쿠사마는 뉴욕에 거주하며 반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기에 <자기 소멸>을 제작했습니다. 물방울무늬로 뒤덮인 마네킹은  공연자의 나체에 점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수십 번 이어가던 행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불길한 느낌을 주는  '자기 소멸'이란 제목은 눈앞에 펼쳐진 다채로운 장면과 유쾌하게 대비됩니다. 쿠사마는 자신의 예술 세계 전반에 걸쳐 '지우기'라는 개념을 탐구했는데, 이는 부정과 긍정이 하나가 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둡니다. 마네킹으로 제시한 인간의 존재에 물방울무늬를 가득 채울수록 자연스럽게 더 큰 전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Kusama and Cornell: A fusion of Art/Pinterest

 
 
 
 
쿠사마 야요이와 조셉 코넬은 예술적 관계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쿠사마는 코넬의 콜라주 기법을 존경하며 자신의 작품에 이를 도입했습니다. 코넬은 주로 콜라주와 상자 작품으로 유명하며, 다양한 사진과 오브제를 상용해 독특한 콜라주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쿠사마는 소프트 조각과 반복적인 패턴을 사용한 설치 미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코넬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강하며, 일상적인 오브제를 통해 꿈같은 세계를 표현합니다. 쿠사마는 강박적 반복과 무한을 주제로 하여, 점과 거울을 사용해 무한한 공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요. 코넬의 작업 방식은 쿠사마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그의 기법을 통해 추상에서 벗어나 형상을 나타내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쿠사마는 코넬과의 관계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이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73년에 절친하던 파트너 조셉 코넬의 사망 후, 건강이 나빠지고 환각 증세가 심해진 쿠사마는 일본으로 귀국합니다. 스스로 신주쿠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병원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소설과 단편, 시 등을 발표했지요. 78년에는 소설 <크리스토퍼 스트릿의 매춘굴>로 일본 신인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Pumpkin>, 1983/MutralArt

 
 

 
 
 
 
 

저는 제 위치로부터 무한한 우주를 가늠해보고 싶었습니다.
입자들의 축적을 그리며 저의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곧 이런 수백 만개의 입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쿠사마 야요이-

 
 
 
 
 
 
 

<인간의 이미지 Imagery of Human Beings>,1987,Acrylic on Canvas, triptych,Lito and Kim Camacho collection/ 기아 디자인 매거진

 
 

 


 
1987년 작 <인간의 이미지(Imagery of Human Beings)>(1987)에는 물방울무늬 철학의 연장선으로 서로 연결된 존재에 대한 쿠사마의 관점이 녹아 있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동그란 흰색 점이 보라색 면을 뒤덮었습니다. 대부분의 점에는 작은 꼬리가 달려 있고, 때로는 다른 점과 연결됩니다. 올챙이를 닮은 점은 마치 남성의 정자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은하계의 장면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보는 거리와 방법에 따라 작품 속 점의 밀도와  간격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고요. 눈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살펴보면 점들이 흩어지며 움직이는 듯합니다. 이는 에너지의 변화,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한 재생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점 하나가 하나의 생명을 상징할 때 이 작품은 서로 연결된 우리가 모두 우주적 하나라는 더 큰 차원으로 이해의 폭을 넓힙니다. 태초부터 우리가 무수히 많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는 불교의 눈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수많은 생애 동안 다른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윤회 개념은 쿠사마의 세계관에서 큰 축을 차지합니다. 우주의 먼지이면서도 저마다 고유한 존재인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예술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세포로 구성된 것처럼 인류 전체가 하나의 존재이며, 하나의 세포 안의 우주 전체가 들어 있는 것이죠.
 
 
 
 
 
 
 
 

Yayoi Kusama/MoMA 'Yayoi Kusama, Love Forever'Poster(아트상품),1998/ MutualArt

 
 
 
본격적으로 재평가 받게 된 계기는 1989년에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의 회고전'Love Forever:Yayoi Kusama, 1958-1968)입니다. 이 전시로 다시 쿠사마는 세계에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Yayoi Kusama at 90's : How the 'undiscobered genius' became an international sensation/CNN

 
 
 
 
 
 
 
 

1993년 제 45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단비뉴스

 
 
 
뉴욕을 떠난 후로 예술계에서는 잊히는 듯했던 쿠사마가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부터 시작된 회고전으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93년에는 과거 초대받지 못해 게릴라로 참가했던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정식으로 일본 대표로서 참가하기도 합니다. 
 
 
 

 
 
 

Yayoi Kusama Art Exhibition at National Gallery,2005 /Lady Porcelain-Weebly

 
 
 

 
 
 
 
 

어느날 , 책상 위의 붉은 꽃무늬의 식탁보를 본 후,
시선을 천장으로 돌리니
온 천장에, 창문에도 기둥에도 같은 붉은 꽃의 모양이 달라붙어 있었다.
온 방, 온몸, 전 우주가 붉은 꽃 모양으로 뒤덮어져,
결국에 나는 소멸해버린다.
그리고 영원한 시간의 무한과 , 공간의 절대 속에서 나는 회귀하여, 환원되어 버린다.
이 것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경악했다. 

-<무한 망, 쿠사마 양요이 자서전 >,2002년-

 
 
 
 
 
 
 

Yayoi Kusama의 인생예찬: 삶과 꿈 사이에서/NYCultureBeat

 
 

 

현재도 여러 나라를 돌며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은 현재 생존해 있는 여성 아티스트 중 가장  고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9년부터 그려온 대형 회화 시리즈 <내 영원한 영혼> 132점 등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궁지에 몰린 스스로의 열기 같은 것으로,
아마 예술에서는 먼 곳에서부터 원시적, 본능적으로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내 영혼의 편력과 투쟁>(예술 생활)1975년-

 
 
 
 
 
 
 
 

Yayoi Kusama/Infinity-Nets(ENNO)2011/Mutual Art

 
 
 
 
 
 
 

루이비통&amp; 쿠사마 야요이 콜라보레이션 , 2012/디자인 DB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1997년 이후 줄곧 그는 예술과 콜라보레이션등 유명 예술작가와 협업을 한 바 있습니다. 예술가와 브랜드 간 콜라보레이션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고, 브랜드에 있어서는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상품,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또한 일부 지정된 매장에서 한정된 수량을 판매하기 때문에 소장의 가치가 있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84b8D-k_ERk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쿠사마 야요이/ 교보문고

 
 
 
 
 
 
 
 
 

쿠사마 야요이<무한 거울방 Infinity Mirrored Room- 수백만 광년 너머의 영혼 (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 2013, 뉴욕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미주 한국일보

 
 
 
 
 

<자화상>,2015, Acrylic on canvas/ 기아 디자인 매거진

 
 
 
 
 

저는 때때로 이상하리만치 기계화되고
표준화된 획일적인 환경에 놓인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문명사회라는 낯선 정글과 사람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정신적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저는 항상 사람과 사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배경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저의 예술적 표현은 언제나 이런 바탕에서 성장했습니다.
- 쿠사마 야요이-

 
 
 
 
 
https://www.youtube.com/watch?v=CfzdQQuYq_0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 일반 사단 법인 신주쿠 관광 진흥 협회/신주쿠

 

 

 


 
2017년 10월 개관했습니다. 약 2회 쿠사마 작품의 전람회를 실시하는 공간입니다. 강연회 등을 개최하는 것으로, 쿠사마 씨가 작품을 통해 반복해 호소해 온 세계 평화화 인간애라는 메시지를 널리 세계에 전해, 많은 분들에게 현대 미술에 익숙해져 주시는 미술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The moment of Regneration>/ 나무위키

 
 
 
 이 빨간 촉수처럼 생긴 것은 남성의 성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소멸의 방>,Yayoi Kusama, 5.11.2020/Arthive

 
 
 
 
 
 
<소멸의 방>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고 스티커를 붙여나가는 과정에서 도트가 채워져 최초의 방의 모습은 소멸되어 버립니다.
 

 

 


뉴욕에서 어느 날 캔버스 전체를 아무런 구성없이 무한한 망고 점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내 붓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캔버스를 넘어 식탁, 바닥, 방 전체를 망과 점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내 손을 봤을 때, 빨간 점이 손을 뒤덮기 시작했고 내 손에서부터 점이 번지기 시작해서 나는 글 점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점들은 계속 번져가면서 나의 손, 몸 등 모든 것을 무섭게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고 응급차가 와서 벨뷰병원에 실려갔다. 의사가 진단하기를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고 정신이상과 심장수축 증상에 대한 진단이 나왔다. 이러한 사건 이후에 나는 조각과 퍼포먼스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방향 변화는 언제나 내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결과다. -쿠사마 야요이-
 
 
 
 
 
https://www.youtube.com/watch?v=KYRegEz7CgY

 
 
 
 

 

 


 

달도 물방울무늬고,
태양도 물방울무늬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물방울무늬죠.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우주에서도
무수한 물방울무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물방울무늬를 통해서 저는 삶의 철학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물방울무늬는 결코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서로 소통하는 삶처럼
두 개, 세 개 그 이상의 물방울무늬가 모여 움직임이 됩니다.
지구는 우주의 수많은 별 중 하나의 물방울무늬에 불과합니다.
물방울무늬는 무한으로 가는 길입니다. 
-쿠사마 야요이-

 
 
 
 
 
 
 
 
 
 
 
 
 

Ascension of Polka Dots on the Trees was created by Yayoi Kusama/Dezeen

 
2021, 4, 21
 
그녀는 집안의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본 뒤, 눈에 남은 잔상이 온 집안에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 둥근 물방울무늬로 변형되어 계속해서 시선과 자신의 신체에까지 따라붙었던 물방울무늬 무늬는 그녀가 평생에 걸쳐 하게 되는 작업의 중요하고도 유일한 소재가 된다. 
 
 
 
 
 

Yayoi Kusama,<; Infinity Mirror Rooms&gt>, 2020/ LA Infused

 
 
 

그녀의 작품에서는 무한성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바로 <무한 거울방>이라는 설치작품인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한 속에서의 반복과 그 속에 있는 나의 반복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쿠사마는 여러 인스터레이션 작품을 제작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거울을 사용한 무한 거울의 방과, 의자나 테이블이 설치된 심플한 가구의 방에 UV로 빛나는 물방울무늬가 있는 방 등, 무한한 공간이 넓혀져 있는 듯한 공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lt; Infinity Mirror Rooms&gt;/Pinterest

 
 
 
 
 
 
 

Dancing Pumpkin is made of painted bronze/Dezeen

 
 
 
 

 호박에 대하여

호박은  애교가 있고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호박은 말을 걸어준다.

호박, 호박, 호박

 

내 마음의 신선한 모습으로 

세계의 전 인류가 살고 있는 생에

대한 환희와 근원인 것이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 쿠사마 야요이-

 

 

 

 

쿠사마 야요이가 호박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녀는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인해 정신적인 혼란과 불안감을 겪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호박이 가득 찬 창고에 숨곤 했습니다. 호박의 안정감 있고 유머러스한 형태는 그녀에게 위로와 안정을 주었고, 이는 그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호박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으며, 그녀의 예술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 자리 잡았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세계/아트인사이트

 
 
 
 
 
 

My Soul Blooms Forever in the Enid A. Haupt Conservatory/Dezeen

 
 
 
 
 
최근 몇 년 동안 쿠사마는 작품에 시를 암시하는 긴 제목을 붙인 적이 많습니다. 사랑, 예술, 평화를 위한 기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화면에 텍스트를 새겨 표현한 작품으로 예술을 향한 헌신, 사랑과 죽음에 관한 기도를 담은 자작시를 함께 선보입니다.

 

 

 

한편 쿠사마의 가능성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많은 사람에게 각인한 계기는 2012년에 루이 비통과 함께한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쿠사마는 루이 비통의 트렁크에도 도트 패턴의 핸드 페인팅을 더하며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일회성으로 그칠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부활했습니다. 이번에도 무한함을 상징하는 모티브를 메종의 프로덕트에 가미해 실제 작품의 텍스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도트 무늬를 구현하면서 패션계와 아트 신의 호응을 동시에 이끌어냈습니다. 
 

 

 


 

Yayoi Kusama/Dots Obsession/Rice Gallery

 
 
 
 
 
https://www.youtube.com/watch?v=a58e9OCvx4Y

 
 
 
 

 

 

 

 

쿠사마 야요이는 평생에 걸쳐 자기 작품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길 염원했습니다. 더 나아가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세계에 관한 안목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랐지요. 100년 후에도 감동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계속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던 쿠사마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지금도 그의 병실이자 작업실에서 자기 자신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삶을 지속 중입니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란 생각에 잠긴다는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   ) . 삶과 예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매번 처음인 것처럼 자문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는 언제나 시작만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무한히 펼쳐지는 시작 그 자체가 의미의 종결점이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gSBtXNJj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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