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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서며 미술에 불기 시작한 최고의 혁신은 특정한 운동, '이즘(ism, 주의)'의 등장입니다.
입체주의
미래주의
구성주의
표현주의 (청기사파와 다리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등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용어들이 더 헛갈리게 합니다.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이즘'은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공통된 사상에 뜻을 모은 화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작품 활동에 이론을 도입하고 미술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담론을 이끌어냈다는 얘기지요. 많은 이즘 중 20세기를 맞이하며 가장 열렬한 대응을 보인 것은 미래주의 (Futurism)입니다.
미래주의는 1909년 2월 20일 이탈리아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oppo Tommaso Emilio Marinetti, 1876-1944)가 <르 피가로>의 1면에 '미래주의 창립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마리네티는 동시대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미술활동의 새로운 가치 체계를 만들게 됩니다. 마리네티의 선언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 미래주의 화가는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1882-1916)와 자코모 발라 (Giacomo Balla:1871-1958)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는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 조각가, 무대 디자이너 등 상상력과 통찰력을 지닌 미술가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1910년 두 편의 미래주의 선언문에 서명한 이후, 미래주의 운동의 주도적인 인물이 되고요. 그의 비범한 상상력과 통찰력이 한몫 단단히 하며 근대 미술 양식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발라는 빛의 산란과 굴절에 관한 과학적 이론들을 탐구했습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빛과 움직임, 그리고 속도와 에너지라는 무형의 힘에 관련된 고도의 지적인 묘사를 낳게 됩니다. 또한 그는 안톤 줄리오 브라갈리아,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에티엔주리 마레와 같은 사진가들의 선구적인 작품들도 연구했습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동물이나 사람의 움직이는 모습을 연속적인 사진으로 찍어서 움직임의 형식과 형태를 기록한 것들이지요.
그는 "새로운 시대의 미는 속도의 미다."라는 마리네티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어 고정된 시각과 촉각에 머물렀던 미술의 표현영역에 속도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보아왔던 고전 예술의 화풍과 정신에 반기를 드는 예술 운동인 거죠. 마리네티의 선언은 당시 시대에 뒤떨어진 작업방식(분할주의)에 머물러있던 자코모 발로에게 빛처럼 다가왔습니다. 미래주의 선언은 창작의 모티프를 제공하고, 새로운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었고요. 이 선언은 또한 문학,미술, 음악, 건축, 연극 등 전 예술 분야로 확산한 전위예술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미래파는 기존의 전통적 예술을 거부하고 과학기술이 낳은 속도와 기계의 미를 적극적으로 예술에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주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한 발라는 1895년 토리노에서 로마로 이사하여, 초상화가 겸 삽화가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1900년 그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게 됩니다. 로마로 돌아오자, 발라는 신인상주의의 점묘법과 유사한 표현 기법을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가로등>(1909-1910)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표현법은 그가 계속해서 실험해 오던 빛과 대기, 그리고 움직임에 관한 묘사에 적합했던 거죠.
당시 유럽의 개스등 대신 전기가 들어오며 인공의 빛으로 자연의 빛을 한 번 눌러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요즘처럼 늘 당연한 듯 켜는 전기불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당시 유럽인들이 느꼈을 놀라움 또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기의 등장으로 일상생활의 변화가 이전과 사뭇 달랐을 테니까요. 태양의 길이에 맞게 길들여진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그 나 저마 빛 주변으로 알록달록한 꺾새 모양이 언뜻 보면 화려한 나비 같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보게 됩니다.
그가 색을 화면에 옮기려는 이론적인 노력은 색점으로 표현하는 점묘화로 전개됩니다.색에 몰두했던 화가들의 실험은 형태를 재현하는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 <가로등>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전례 없는 신문물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즉 자연광을 넘어서 전기로 발생되는 인공적인 빛이 과학의 힘과 미래의 발전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비중 있게 다루어집니다.
화가 자코모 발라는 이사를 간 로마의 광장에서 밝게 빛나는 불빛을 보고 <가로등>을 그렸습니다. 하늘의 초승달이 떠 있지만, 그 빛의 힘은 가로등 불빛에 훨씬 못 미치게 보입니다. 마치 초승달 장식 같은 느낌으로 존재감이 작아 보입니다. 인공의 전깃불이 자연의 달빛을 능가하기 때문이지요. 로마에 처음 설치된 전기 가로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림 속 가로등 하나가 발산하는 불빛이 큰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일상의 사소한 재료가 화가의 예민한 눈을 거치니 저렇게 독특한 형태로 작품화되어 놀랍습니다. 노랑과 흰색이 섞인 별 모양의 중심에서 밝은 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나옵니다.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 정도로 말이죠. 자코모 발라는 빛을 다채로운 색으로 분할하고 색들을 중첩시켜 빛의 강약과 변화를 묘사했습니다. 갈고리처럼 뾰족뾰족한 터치가 특이하지요. 갈고리 터치감이 색의 분할과 시각적 혼합을 유도할 뿐 아니라 불빛이 퍼지는 방향과 빛에너지의 역동적 힘까지 보여줍니다.
발라는 전등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묘사해 과학기술의 위대함을 칭송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 전원적 낭만적 예술은 끝나고 현대의 기계 문명에 부합하는 도시적 역동적 예술이 도래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기술로 탄생한 속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기계의 미학을 추구하는 미래주의 예술의 탄생을 알리는 팡파르 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시의 가로등과 달의 대립을 통해 과학과 자연의 병치를 시도했고요.
모든 것은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움직이는 형상들은 끊임없이 여러 개로 보인다.
즉 달리는 말은
4개의 발만 있는 게 아니라 20개의 발이 있다.
-자코모 발라-
미래주의 선언의 영향을 받아 발라는 '미래주의 회화기법 선언'(1910)을 하면서 미술작품에 속도감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부순 거지요. 미래주의 전략 중 정지 상태인 신체와 운동상태의 신체 구분을 무너뜨리고 미술에 운동감각을 입힌 것이 대표적입니다. 요약하면 , 2D평면 캔버스에 3D 입체 구현을 했다는 말이죠.
자코모 발라의 1912년 작품인 <끈에 묶인 개의 역동성>은 회화에 속도감을 표현한 대표 작품입니다. 보이는 개의 다리에 오토 바이가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만화에서 이런 장면들 많이 본 것 같고요. 발과 꼬리를 우당탕 휘젓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합니다. 아마도 강아지가 주인보다 앞장서서 빨리 어딘가로 달려가고 싶은 가 봅니다. 아니면 좋아하는 간식이 눈앞에 아른 거리는 걸까요? 혹시 맞은편 강아지가 맘에 들었나? 은색의 목줄까지 신나게 움직입니다. 줄넘기를 하듯 말이죠. 아니면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목줄에 매여 제자리걸음인 강아지의 상황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아지 옆에 레이스 차림의 견주가 있습니다. 강아지의 움직임만큼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작가 자코모 발라는 강아지와 주인의 그저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한 게 아니라, 여러 개의 반복적인 형상을 그렸습니다. 또한 속도감을 더 느낄 수 있도록 자코모 발라는 바닥의 줄무늬를 대각선으로 그렸고요. 심지어 그의 사인과 연도도 대각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깨알 같은 디테일 덕분에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 배경인 바닥은 진동하는 듯하면서 분홍과 초록의 색감이 대조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발라는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비가시적 세계를 가시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을 그림에 도입했습니다. 점묘법을 유용하게 사용한 거지요. 점묘법은 형태를 점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선과 색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흔들거리는 물체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거죠. 작품 < 달리는 개의 역동성>은 움직임이 있는 물체의 시간차를 점묘법으로 그려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동시성을 보여줌으로써 미래주의의 특징인 역동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지한 사물과 사진 속 움직이는 대상이 만나 활동사진이라 하는 영화에 모티프를 제공했듯이 속도감 있는 움직임으로 평면 속에 담아냈습니다. 발라의 역동성은 흔히 대중 만화에서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신체 부위를 중첩시키는 기법에 영감을 주게 됩니다.
2023.03.28 - [지식&교양] - 47. 신인상주의, 조르주 피에르 쇠라(7)
당시 예술가들은 '산업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산업화로 인한 대량생산, 인간의 창조성보다는 기계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회상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전통과 근대 사이의 충돌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거부감을 표시했습니다. 요즘 AI로 초고속 문명으로 가는 속도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미래파들은 오히려 산업화, 근대화에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세상은 계속 발전해 나가는데 계속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예술이지 못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코모 발라의 양식은 이 시기에 더욱 추상적이 되었으며, 1910년에 발표된 두 편의 미래주의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그는 미래주의 운동의 주도적인 인물로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그의 역동적인 유화 작품들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리듬, 그리고 강렬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속도의 표현이라는 불가능한 일을 시도한 미래주의 미술은 처음에는 카메라의 동작의 분석, 특히 머리 브리지의 동작 분석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그러나 미래주의 미술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역동적인 디자인을 개발하여 차원 높은 수준의 표현 방식으로 속도를 형상화해 냈습니다.
우리(미래주의 화가들)는
역동적인 디자인을 발명해야 하고,
그와 함께 역동적인
-삼각형, 원뿔, 나선형, 타원, 원 등-
형태로 표현해야 한다.
<발코니를 뛰어가는 소녀>는 신인상주의 점묘법에 속도를 입힌 작품입니다. 소녀가 신고 있는 신발 보이시나요? 소녀의 중첩된 신발표현이 없었다면 속도감보다는 단순히 색의 분할을 시도한 작품으로 인식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동작이 더 분할되어 있고 형태가 면으로 추상화되어 있습니다. 속도란 움직임과 동급이죠. 움직이는 물체는 흔들리고 있으므로 형태와 윤곽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그 흔들림의 상태를 반복된 형식으로 효과적으로 그리는 데에는 입체파와 같이 형태를 면으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단 말인 거죠. 한편 움직이는 물체는 그 흔들림으로 인해 색채가 선명하지 않습니다. 떨리는 색채의 표현에는 점묘파의 채색법이 효과적이었던 거지요. 움직임이 더 커지면 형태와 색채는 더욱더 분해되어 추상화됩니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모든 것은 달리고,
모든 것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코모 발라는 새 시대 미술이 기계나 자동차의 활력적인 힘이 나 속도, 역동적인 운동성 자체를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관적인 표현이나 전통적인 공간구성법을 피하고, 그림 속 형태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나타내는 표현 방식을 찾으려 했습니다.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의 물체가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이었지요.
그에게 기계와 속도가 기계의 움직임만으로 표상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마치 자연계의 영원한 반복의 프랙털적 디자인에서 가져온 듯한 리드미컬한 흐름인 듯합니다. 때로는 음표의 연속으로 보이기도 하고, 기계와 자연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질 적인 것들이 생각보다 조화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와 자연은 조화롭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확장은 곧 자연의 위축이고 축소이기 때문이죠. 인간의 욕심이 기후위기를 불러와 요즘 들어 부쩍 자연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은 공존의 개념과는 거리가 좀 먼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연의 약탈과 이용에 의해 성장하지 않으면 문명의 흐름은 단절되기 때문이지요. 조화의 노력은 아주 짧은 순간의 의식 있는 사람들에 의한 노력일 뿐, 지속성을 갖기는 무척 힘듭니다. 예술 작품에 의한 조화와 긍정성의 표상은 그렇기에 이율배반적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1914년경부터 발라는 조각 분야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보초니의 주먹, 1915>을 들 수 있습니다. 1917년 그는 아주 혁신적인 무대 디자인을 제작하기 시작했고요, 몇 편의 연극에도 출연하게 됩니다. 발라는 시각적인 환영과 현상들을 탐구하면서 미술에 대한 추상적이고 과학적인 실험을 계속합니다. 1925년 글자와 숫자들을 소재로 한 작품 연작을 내놓기 시작했고요. 말년에 그의 작품은 초창기에 선보였던 찬란한 추상성에서 멀어져 점묘법으로 더욱 기울어집니다.
https://youtube.com/watch?v=OfqlWphI3TM&si=n6VM1-q_G7Sj75aX
예술은
박물관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은
예술을 포용해야 합니다.
20세기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의 집입니다. 화가 자코모 발라의 손길로 완성된 로마의 아파트는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는 듯 황홀합니다. 그에게 집이란 예술 세계를 일구는 실험실과 동급이었던 모양입니다. 카사 발라에 존재하는 모든 오브젝트는 자코모 발라의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테베레강에서 멀지 않은 로마의 어느 골목, 1900년대 초반 건설된 별 특색 없는 중산층 아파트 4층에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아티스트 자코모 발라 가 창조한 그만의 우주가 비밀스럽게 담겨있습니다. 독특하고 만화경 같은 카사 발라(Casa Balla)의 내부 모습을 보면 눌러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지속적인 창의'라는 미래주의 관념에 따라 자신이 생활하는 평범한 아파트를 살아 있는 예술품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바닥부터 벽지와 천장을 가리지 않고 빈 공간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 찬장 등의 가구들을 직접 디자인했으며, 그릇과 각종 도구, 심지어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장식했습니다.
일상적인 오브제도 예술작품처럼 다룬 셈이죠. 그 덕분에 예술이 어깨높이 정도로 내려온 듯합니다. 발라는 집 안 곳곳에 회화작품, 드로잉, 조각상을 배치하고, 심지어 자신과 딸들이 입을 옷도 직접 구상하고 바느질까지 해 착용함으로써 공간에 머무는 자신 또한 예술의 일부로서 존재하도록 계획했습니다.
오랜 정치적 투쟁 끝에 1861년 새로운 이탈리아가 탄생했습니다. 보다 급진적인 국가 의식도 급도로 성장한 이탈리아의 경제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문제 중 하나는 몇몇 공업도시를 제외하고는 지역 간 경제 불균형으로 인해 남부 지역의 불만이 커져간다는 점이었습니다. 1880년대 세계 불황과 과도한 세금 정책으로 인하여 경제가 악화되며 빈곤해지자 농촌 중심으로 과격한 저항 운동 정치집단이 형성됩니다. 크고 작은 무정부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 혹은 극단적 사회주의자들의 저항 운동이 활개를 치며 1920년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집권을 하며 본격적인 전체주의 정치 체계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게 됩니다.
<Pessimism and Optimism>은 기계와 속도의 뉘앙스와는 약간 다르게 느껴집니다. 1910년대의 미래파의 유행이 끝난 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관주의는 흑백의 뾰족함으로 나타나고, 낙관주의는 청색 계열의 둥그스름한 포용으로 나타납니다.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를 감싸 안으며 다독거리는 모양새입니다. 비관주의는 낙관주의를 예리하게 공격하는 창날을 가지고 있고요. 마치 콕콕 찌르며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두 가지 모두의 관점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어느 하나가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배제할 수 도 없으며, 일방적으로 한쪽을 궤멸시킬 수도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의 중량의 무게가 달라질 뿐인 거죠. 자코모 발라가 살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까지의 세계사의 흐름은 과학기술의 역동성과 전쟁의 공포, 자본주의 팽창에 따른 식민지화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던 시대였습니다. 자신이 어느 편에 섰는가에 따라 비관과 낙관은 달라지죠. 세계에 대한 판단도 달라지고요.
자코모 발라는 산업화 이전의 전통을 부정하고 근대 문명이 낳은 속도와 기계를 찬미했습니다. 과거와 단절하고 다이내믹한 형태를 표현하고자 노력했지요. 새로운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기도 하며 기계의 이미지도 작품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급격한 변화의 감각을 작품에 표현하여 근대 디자인 이론의 발전에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네티의 선언은 오랫동안 특별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예술적 발전을 목표로 국수주의적 성향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 미래파는 후에 파시즘(히틀러의 국가/인종주의)과 연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정된 시간에 머물렀던 회화가 표현에서 외연이 넓어지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그의 예술적 시도 자체는 남달랐으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dqdhUzQZyCs
미래파 운동(1910-1918)은 스피드를 강조했던 만큼 빠르게 사라져 버린 사조입니다. 옴베르토 보초니의 전쟁 중 낙마사고로 사망 이후 추진력을 잃었습니다. 전쟁의 본성을 미화한 마리네티의 미래주의는 파시즘을 옹호해 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정치적 실패를 맛보았고요. 하지만 그들의 이루지 못한 '속도'감은 추상미술의 출발점이 되었고 키네틱 아트나 옵아트로 확장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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