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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들을 당시에는 약간 경멸하는 듯 한 말투로 '일요화가'라고 칭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전통적인 미술의 원칙을 떠나 본능과 무의식을 통해 작품을 제작한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소박파(Naive Art)'라고  불리며 미술사에서 대접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들 작품은 어떤 유파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창조적 동력에 몸을 맡겨 작품이 완성되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현대미술의 원리와 원칙과는 거리가 먼 문외한이며 아웃사이더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미국에서는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 Ar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큐비즘은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표현주의는 남태평양의 원시예술에서 영향을 받았고요. 소박파(Naive Art) 미술도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현대 미술의 2% 부족함을 메워주는 이미지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주류 미술을 통칭해 '아르뷔르(Art burt)'라고 하는데 정신 분열증 환자와 아마추어 화가들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순수하고 꾸밈없이 그려내는 "순수한 미술"을 의미합니다. 2008년 <세라핀>이란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세를 탄 세라핀 루이스의 작품을 살펴봅니다.

 

 


 

 

난 슬플 때면 시골길을 걸어요.
그리고 나무를 만지죠.
새, 꽃들, 벌레들에게 말을 걸어요.
그러다 보면 슬픔이 가시죠.

 

 

 

 

 

<Tree of Paradise>.1928/www.icanvas.com

 

 

 

기존에 보아오던 정물화의 느낌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습니다. 조용한 구도와 정적인 분위기에 길들여 진 우리의 눈을 현란하게 자극시키는 것 같습니다. 나뭇잎의 색깔이 이렇게 다양하며 잎사귀 하나하나가 다 다릅니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 같습니다. 이런 나무를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초록 아니면 연두로 다 통일시켜 생각해 왔으니까요.  

 

 

 

 

간특하지 않음
잘난 체 하지 않음
순수함
-이자벨 스파크(Isabelle Spaak/저널리스트-

 

 

 

 

 

1864년 9월 3일 태어난 세라핀은 7세 이전 부모를 모두 잃고, 큰 언니 손에 자라며 일찍부터 어린 손으로 양치기 등의 노동을 했습니다. 10세 때 성당 신부님의 배려로 들어간 학교에서 문 뒤에 숨어 미술 수업을 몰래 엿들었다는 일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마을을 떠돌며 시계를 고치는 장인이었다는 사실에서 그녀가 물려받았을지 모를  손재주가 짐작될 뿐입니다. 그녀가 가진 어떤 것도 예술적 환경, 혹은 어린이가 받아야 할 돌봄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13세가 된 그녀를 기다린 것은 중산층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면서도 남에게 미루는 일들- 마룻바닥 박박 문질러 닦기, 주기적으로 창틀과 창문 닦기, 세탁물을 삶아 비틀어 짜기, 놋 제품 광내기, 손에 선지를 묻혀가며 소시지 혹은 순대 만들기 같은 온갖 허드레 일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좋지 않은 평판 때문에 20년간 일한 수녀원에서 나와 홀로 마을의 다락방에서 살게 된 이후였습니다. 1905년의 일로 ,세라핀의  말에 따르면 "천사가 성모 마리아를 위해 그림을 그리라는 사명을 전달해 주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로 그녀는 종이뿐만 아니라 각종 병, 도자기, 널빤지, 가구 위에조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권용화의 미술 사이렌, Seraphine Louis/ 광명시민신문

 

 

 

남의 집 허드렛일로 받은 품삯으로 먹을 것과 땔감 대신 흰색 물감을 삽니다. 들판의 꽃과 수초에서 염류를 채취하고요. 푸줏간에서 얻은 동물의 피나 색깔 있는 초의 파라핀을 물감 삼아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도 흰색은 만들 수 없었습니다. 세라핀은 산업용 도료인 '리플린 도료'를 이용해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배합은 아직 비밀로 밝혀져 있고요.

 

 

 

 

주변 사람들은 몇 달째 집세를 밀리면서 골방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는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 마을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멸시와 조롱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그림 그리기가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변변한 붓 하나 없이 캔버스에 손가락으로 쓱쓱 그려나갑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채워가는 세라핀의 그림엔 배경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화폭엔 나무와 꽃,  과일들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녀가 표현한 꽃, 나무, 들판 등의 자연은 무언가에 홀린 듯 강렬합니다. 그 안에는 기괴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아름다움이 엿보였고요. 하지만 그녀의 재능은 빌헬름 우데가 발굴할 때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주 변 사람들은 하녀 주제에 무슨 그림을 그린다는 거야 하는 식으로 최하층 계급이 예술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질시와 냉대가 이어질 뿐이었습니다.

 

 

 

<Grand Bouquet au vase noir et fond bleu>,1929/ wikipedia

 

 

 

 

벽면에 그녀의 그림을 걸면 뻗어가는 에너지로 방안을 가득 채울 것만 같습니다. 영감의 원천은 신이지만 그녀 그림의 스승은 자연입니다. 세라핀은 예쁘지 않습니다. 남자처럼 큰 덩치와 손톱에 낀 검은 때, 상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정수리로 틀어 올린 머리칼, 맨발로 청소를 하거나 강가에서 빨래를 해 주고 동전을 받습니다. 다 해진 옷에 커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군화 같이 투박하고 큰 구두를 철거덕거리며 다닙니다. 빛바래고 닳아 빠진 밀짚모자를 쓰고 다니고요.

 

 

 

꽃과  나무를 수없이 그렸던 세라핀의 작품엔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넘어서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순수한 에너지와 영혼까지 모두 흡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있는 그대로를 모두 받아들인 정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사물을 보고 함께 그들 안에서 머물 수 있었던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도 들고요.

 

 

 

본다는 것이  어떤 경지까지 갈 수 있는 것인지, 보는 것과 느끼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표현하는 것의 경지가 어는 정도 까지 갈 수 있는지. 세라핀 이라는 작가를 통해 자꾸 묻게 됩니다. 

 

 

 

<Bouquet of Flowers>/Etsy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해주세요.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아요.

 

세라핀의 이 그림을 보며 저는 '여자 '고흐'같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흐는 자신을 알아주는 평생 친구이자 동생인 테오가 있어 그래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라핀은  믿을 곳이 신과 자연밖에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세라핀은 마치 중세 시대의 깊은 신앙심을 가진 구도자처럼 이 세상에 최초로 존재할 것 같은 열매와 나무와 꽃들을 화폭에 그려냅니다. 그녀 눈에 아름답고 보석 같은 존재들을 말이죠. 

<Apples with leaves>/Etsy

             

 

 

  세라핀이 50세가 되던 1912년 그녀에게 세상과 이어 줄 행운의 사나이가 나타납니다. 피카소를 발굴한 미술사가이자 미술품 감식가 빌헬름 우데(Wilhelm Uhde)가 주말 휴식 차 상리스의 전원주택을 빌림으로써 그녀 인생에 비로소 봄바람이 붑니다. 

 

 

 

 

그녀는  좋은 것이나  많은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의 노동을 원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성실히 행했을 뿐입니다. 그림이 팔리면서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남의 집 청소와 개울가에서 이불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평생 품삯으로 받은 동전만으로 물감을 사던 그녀의 손에 지폐가 쥐어졌거든요.

 

 


 

 

사진출처:전시/작가 정보- 화방넷

 

 

 

우데가 모임에 초대 받아 갔다가 판자에 그려진 한 신비스러운 사과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자기의 전원주택 허드레 일을 하러 오는 하녀 세라핀의 그림임을 알고 전율합니다. 우데는 막 파리에서 예술적 배경이 취약한 세관원출신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를 소박화가(Naive art)로서 성공적으로 주목받게 하고 온 직후였습니다. 

우데는   카미유 봉브와(Camille Bombois 1883-1970), 루이 비뱅(Louis Vivin, 1861-1936), 앙드레 보샹(Andre Bauchant, 1873-1958) 등 소박파(naive art)의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우데는 이들에게서 자연과 현실에 대한 경건한 태도, 그리고 원시적인 생명력을 발견해 소개했습니다.

 

 

 

 

소박파 화가들은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갑자기 미술양식의 교체나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원근법이나 명암법 등을 무시하고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미술 작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해 온 규범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었던 거죠. 이들의 공통점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술양식이나 운동에 무관심한 현대 미술의 아웃사이더인 셈이죠. 실제로 루소는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파리의 동물원과 식물원을 다니며 본 것을 조합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데가 후원했던 소박파 작가들의 작품들입니다. 

 

 

 

 

<The Dream,1910>, Henri Rousseau/google Arts& culture

 

 

 

 

<Les bas noirs avec journal>,1930, Camille Bombois /Pinterest

 

루이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국내도서-교보문고

 

<Bank of flowerw ina Landscape>, Andre Banchant/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우데는 망설임 없이 세라핀을 전폭적으로 후원합니다. 세라핀은 더 이상 일을 나가지 않고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녀가 그린 그림들은 그려지는 대로 족족 우데가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권용화의 미술 사이렌,Seraphine Louis/광명시민신문

 

 

 

 

 

 

 

 

 

 

https://www.youtube.com/watch?v=HpK_qugNHCM

 

 

 

 

 

권옹화의 미술 사이렌, Seraphine Louis/광명시민신문

 

 

 

 

 

 

               하지만 그녀의 행운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그녀의 남은 생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얼룩져 버립니다. 1914년 8월, 독일인이었던 우데는 쫓기듯 한밤중에 프랑스 국경을 넘게 됩니다. 우데가 프랑스 거주 독일인인 데다 탈영했던 과거사가 있기 때문이었다죠. 상리스 마을 사람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칩니다.오직 세라핀만이 마을에 혼자 남았습니다.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는 비참함 속에서도 버팁니다.   그리고 13년 후인 1927년 상리스를 다시 찾아온 우데와 극적으로 재회하며 감격할 만큼 성장한 작품 세계에 놀랍니다. 우데는 파리에서 세라핀의 개인전을 열어주기로 약속하지만 당시 유럽을 강타한 경제 공황으로 전시회는 또다시 미뤄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라핀은 성당의 마리아상에 온통 분홍색칠을 하고 잠이 듭니다. 세라핀에게 서서히 정신병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세라핀의 무아지경과 정신적 망상은 통제될 수 없는 방향으로 짙어갑니다. 순백의 드레스에 면사포까지 쓰고 자신이 사들였던 촛대와 은 식기들을 동네 집집마다 문 앞에 놓고 돌아다닙니다. 천사들이 자기 전시회를 보러 올 거라고 하며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죠.

 

 

 

 

현대미술의 아웃사이더, 나이브 아트/핸드메이커

 

 

불안과 초조가 더해진 세라핀은 결국 정신착란증으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됩니다. 그녀는 병원에 갇혀 2차 대전 중에 다른 정신이상자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돌봄을 받지 못하며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다 1942년 사망합니다. 세라핀 이 죽고 3년 후, 우데의 노력으로 파리와 전 세계에서 그녀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그녀의 본능, 세상은 예술이라 부른다./오마이스타-오마이뉴스

 

 

 

한 생명으로 움트고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세파핀 작품 속 나무들!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가지에 가지를 뻗어 공중으로 퍼져 나가며 번성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인류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번성의 비밀을 품은 생명의 나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현해 냅니다.

 

 

 

여자이고 후원자도 없이 갖은 편견에 시달리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 세라핀 루이스! 미술사의 유명 대가들 못지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득 산책길에 짓이겨 뭉개버린 작은 들꽃이 그녀의 삶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름다움을 위해 가시를 제거하기도 하고, 향기도 조작하고, 필요에 의해 둥글게 깎여지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는 인기 없는 세라핀 루이스 같은 화가들 이 지금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부디 , 독학하는 미술가들에게도 눈 밝은 미술상 빌헬름 우데 같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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