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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보다 더 뛰어난
다가오는 새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
-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파울 클레에 대한 논고> 1957-1958-

 

 

 

 

추상인듯 추상아닌, 추상직전에 멈춘 듯한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면과 색으로 형태를 이룬 강렬한 대비가 특징입니다.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고 엉뚱해 보이는 그림을 그렸고요. 보이지 않는 이면을 그리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61년 평생 1 만 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캔버스에 그린 것은 적고, 신문지, 판지, 천, 붕대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한 소품이 많습니다. 스위스 화가이자 판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작품을 살펴봅니다. 

 

 

 

 

그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처럼 완전한 추상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클레의 작품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구상화를 최대한 틀은 유지하되 구체적인 형상은 변형시켰고 추상화 직전에 멈춘듯한 그림들입니다. 

 

 

 

클레는 일생 동안 미술 재료부터 다양한 화파의 연구까지 평생 실험하고 실천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갔습니다. 어떤  한 예술 화파에 머무르지않았고요. 어떤 스타일이나 재료에만 빠져있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하며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다양하게 시도해보려면 미리 테스트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클레의 작품은 대부분 작은 사이즈가 많습니다. 모든 미술 사조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작가의 내면이 반영되지 않은 예술은 속임수다
예술작품에는 감동이 있어야한다.
-파울 클레-

 

 

 

 

 

 

Senecio,1922, Kunstmuseum Basel, Basel

 

 

 

 

 

이 그림은 세네치오(Senecio, Head of a Man Going Senile)라는 이름의 작품입니다.  노인의 얼굴을 유쾌하게 형상화했습니다.  1922년에 제작된 입체파 양식으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동그란 원 안의 평평한 도형으로 마치 가면을 쓴 느낌이  듭니다. 그 안에 빨간색  눈동자자 고개를 조금만 갸웃하면 또르르 반대편으로 기울어질 것 만 같습니다.  눈에 리듬감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클레는 화가도 연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세네치오입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동심을 갖고 있어서  어떤것이든 만들어 내고 그려내는 연주자 같은 화가라는 뜻이죠. 세네치오는 클레 입장에서 나이들어가는 어른들의 초상화일수도 있고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자화상이기도합니다. 인물이 얼마나 다양하게 예술적으로 표현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다양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합해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만의 동그라마로 그린 얼굴입니다.  삼각형의 눈썹과 직사각형에 가까운 턱과 뺨, 이마 등 크게 여섯 조각의 면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화사한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따뜻함과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파울 클레는 색으로 면으로 형태로 다양하게 그림에 리듬을 줍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마치 자신이 작곡을 하는 것처럼 기하학적 형태로 리듬감을 줍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진짜 예술은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보이지않는 내면을 드러내 조합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음악을 작곡하는 것과 새로운 그림을 캔버스에 그려내는 것을 같다고 본것입니다.

 

 

 

단순하고 생략된 선, 부드럽고 편안한 색, 평면적이지만 말을 건네면 미소를 띨 것 같은 입체감, 어린아이에게 동화를 읽어 주는 것 같은 순수함이 화면에 베어나옵니다. 아이들 그림에서 느끼는 가식없는 모습이 감동을 선사하듯 그의 그림에 눈이 한 번 쉬어갑니다. 

 

 

클레는 색에 대한 개념도 자연에 보이는 색 그대로 쓰는 것을 의미없다 생각했습니다. 색 조합이 벌써 다르죠? 빨강,노랑, 그리고  분홍. 게다가 대담하게도 빨간 눈동자를 그렸습니다. 밝은 색으로 인해 가벼울수있는 색채의 느낌을 표면 질감을 무겁고 거친듯이 표현하면서 조화를 이룹니다.

 

 

 

 

 


 

 

 

 

 

Bern/ 몽트래블 유럽여행 스위스여행

 

 

 

https://www.youtube.com/watch?v=xnLa6sJsGNw

 

 

 

 

 

1879년 파울  클레는 스위스 베른  인근의 작은 마을 묀헨부흐제(Munchenbuchsee)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문학,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요. 독일인 아버지는 베른 국립음악학교 교사였고 스위스인 어머니 또한 성악가였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시죠? 파울 클레는 7세에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해 열한 살에  이미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여는 베른음악협회의 명예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정도로 프로급 바이올린 연주실력을 갖췄다는 얘기지요. 그와 동시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으니 보통 재능이 아닌 거지요. 가족들조차 그가 나중에 무엇이 될지 궁금해 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이 음악가의 길을 계속 걷기를 바랐으나 클레는 미술을 선택합니다. 

 

 

 

그가 음악이 아닌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 당시 음악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할 정도로 주류 예술이었고, 미술은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재능이 다양한 그는 비교적 더 발전시킬 것이 많은 미술이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미술계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술을 선택합니다. 

 

 

 

20세가 되던 1898년 미술 공부를 위해 아버지의 나라 독일 뮌헨으로 떠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HahN6f3Xy8

 

 

 

 

 

 

 

 

뮌헨 지도/나무위키

 

 

 

 

20세기 뮌헨은 다양한 역사적, 경제적 변화를 겪은 도시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뮌헨은 서독의 재건과 함께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많은 기업들이 동독에서 이사를  와 산업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1938년에는 뮌헨 협정이 체결된 역사적 장소이고요. 나치당의 중요한 활동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뮌휀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최대 도시이자 경제,사회,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경제적으로는 IT, 생명공학, 출판 등 다양한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요. 높은 소득과 낮은 실업류을 자랑합니다. 문화적으로 옥토버페스트와 같은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FC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가 위치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안정적인 제도와 낮은 범죄율로 삶의 질이 높아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Hilterfingen, Ink on paper, 9.5*16.9cm, July 19, 1895/ Guggenheim Museum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를 추상화 작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으나 초기엔 사회를 풍자한 캐리커처, 판화, 선화, 드로잉을 주로 선보였습니다. 특히 드로잉에서 진가를 발휘했죠. 베른주의 힐터핑겐(Hilterfingen)마을 풍경을 잉크로 그린 이 드로잉도 그의 수준급 묘사력을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완성한 당시 그의 나이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후 추상화 작품에서 드러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안정적인 구도는 탄탄한 드로잉 실력이 바탕이 됐습니다. 파울 클레가 컬러에 몰두하기 전 1980년대 후반에 제작한 드로잉과 1900년대 초의 에칭 작업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거 소장하고 있습니다. 

 

 

Two Gentlemen Bowing to One Another by Paul Klee, 1903/ Guggenheim Museum

 

 

 

 

국적도 아버지의 나라 독일을 선택한 파울은 곧바로 뮌휀 미술학교에 입학합니다.   클레는 뮌휀에서 Heinrich Knirr와 상징주의 화가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의 지도를 받습니다.  이후 3년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자신의 미술적 시각을 넓힙니다. 그는 이탈리아로 연구 여행을 떠나서 제노바, 나폴리, 피렌체, 로마 등지에 머무르며 작업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클레는 고대 로마나 르네상스의 미술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보다도 해양도시의 풍경과 나폴리 수족관의 풍경이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내륙지방에서 자라온 그의 회화의 모티브로 배나 고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 여행의 체험에서 였을것입니다.

 

 

 

프란츠 폰 슈트크(Franz von Stuck)는 독일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건축가로, 주로 고대 신화를 주제로 한 상징주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1863년 독일 테텐바이스에서 태어나 뮌헨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1892년 <The Sin>으로 큰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뮌헨 분리파를 공동 설립하고, 뮌헨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폴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등 여러 유명 예술가들을 가르쳤습니다.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Stuck, The Sin, 1893, symbolist painting, Decadentism, Neue Pinakothek, Munich/wikipedia

 

 

 

 

초기의 경향은 어둡고 괴이한 세기말적 분위기의 판화를 많이 제작했습니다. 클레는 1906년 피아니스트 릴리 슈툼프(Lily Stumpf)와 결혼 후 뮌휀에서 살았습니다. 아내가 피아노 교습을 하고 같이 아들을 키우며 음악 연주와 그림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뮌헨으로 돌아온 그는 표현주의 사조의 태동을 느끼며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등과 '청기사파'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는 1911년부터 1914년까지 활동한 독일 표현주의 화풍의 하나이다. 1911년 바실리 칸딘스티와 프란츠 마르크를 중심으로 결성된 독일 표현주의 그룹이죠. '푸른 기사'라는 어원은 칸딘스키와 마르크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했던 두 요소인 푸른색가 말을 상징합니다. 마르크에게 말을 비롯한 동물은 순수한 영혼성을 대표했고, 칸딘스키는 푸른색을 현대의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시원희 색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사실주의를 거부하고 색채와 형태의 과장을 통해 정신적, 초자연적 세계를 탐구했습니다. 청기사파는 1차 세계대전 전까지 활동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해산되었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파울 클레(Paul Klee), 가브리엘레 뮌터, 아우구스트 마케( August Macke) 등이 있습니다. 

 

청기사파 멤버들의 작품 특징과 대표 작품을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바실리 칸딘스키: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색채와 형식의 조화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Wassily Kandinsky,1913, Tretyakov Gallery,Moscow/wikipedia

 

 

 

 

프란츠 마르크: 동물을 영적인 순수함의 상징으로 표현하며, 강렬한 색채 사용이 특징입니다. 

 

 

 

 

Franz Marc, The Tower of Blue Horses, 1913/wikipedia

 

 

 

가브리엘레 뮌터: 풍경화와 인물화를 통해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를 사용했습니다. 

 

 

가브리엘레 뮌터, Portrait of Marianne von Werefkin, 1909/ Meister Drucke

 

 

 

 

 

아우구스트 마케: 색채와 빛의 조화를 통해 일상의 장면을 밝고 생동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August Macke, Lady in Green Jacket, 1913, Museum Ludwig, Cologne/wikipedia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k36jLW-hLPU

 

 

 

 

   1910년 파울클레(Paul Klee)는  August Macke, Franz Marc 및 Alexej von Jawlensky 그룹의 동료 멤버들과 함께 전시를 했습니다.  1911년 아우구스트 마케와 바실리 칸딘스키, 그리고 프란츠 마르크와 만나면서 <청기사파>화가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파울의 예술은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단순화하는 작업 위주였습니다. 흑백의 판화, 혹은 단색의 파스텔 정도의 작품에 매진하고 있었지요. 이는 점차 그가 표현주의에서 입체파, 상징주의, 추상미술 쪽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알프레드 바( Alfred Barr, 1902-1981)의 <현대미술사 도표> 참고하세요(1910년).

 

 

 

 

Alfred barr modern art diagram/ Edward Tufte

 


 

 

 

 

 

 

 

로베르 들로네, Formes Circulaires Soleil, 1912-13/Alamy

 

 

 

 

제 2회 청기사파 전시회부터 참가한 파울 클레(Paul Klee)는 1912년 로베르 들로네( Robert Delaunay)와의 만남 이후 색에 대한 고민에 빠집니다. 입체주의에 근거한 들로네의 색채 배열은 파울 클레 (Paul Klee)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르피즘 화가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의 회화에서 영향 받은 것은 색채의 리듬과 패턴을 화면의 구성적 요소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 색채의 생동감 있는 사용과 기하학적 형태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입니다. 그는 색채와 추상을 성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강조한 오르피즘(Orphism)예술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들로네의 작품은 종종 리드미컬하고 역동적인 구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큐비즘의 요소를 그의 독특한 색채 접근 방식과 결합합니다. 그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큐비즘에서 추상 미술로의 전환을 반영하는 대형 장식 작품들을 포함합니다. 이는 그의 혁신적인 스타일과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잘 보여줍니다. 
로버트 들로네는 주로 강렬하고 밝은 색상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노란색, 주황색, 파란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상이 두드러지며, 이러한 색상들은 천체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습니ㅏㄷ. 들로네는 색채의 조화를 통해 형태와 공간뿐만 아니라 운동감까지 나타내고자 했으며, 이는 오르피즘 스타일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오르피즘(Orphism), 또는 오르픽 큐비즘(Orphic Cubism)은 20세기 초에 등장한 예술 운동입니다. 큐비즘에서 파생되었고요. 이 운동은 순수한 추상성과 생동감 있는 색채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는 야수파(Fauvism)와 신인상주의 (Neo-Impressionism)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르피즘은 인식할 수 있는  주제를 넘어 형태와 색상을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감각을 불러일으키려 했습니다. 이 용어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가 명명했으며, 추상적이고 다채로운 스타일을 신화 속 음악가 오르페우스(Orpheus)에 비유하여 음악과 유사한 조화와 리듬을 강조했습니다. 

 

 

 

 


 

 

1914년 4월 친구들과의 12일간 튀니지 여행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됩니다. 다양한 색이 존재하는 튀니지 문화를 통해 색채의 리듬과 패턴에 대한 영감을 얻은 그는 입체파, 상징주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Flower Myth,1918/Paul Klee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
-파울 클레-

 

 

 

아프리카 튀니지 여행을 하면서 고민하고 있었던 색채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점,선, 면과 같은 단순한 형태와 원시미술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파울 클레는 색채를 하루 중 어느 때인지를 알려주는 수단이나 감정적인 반응들을 유도해내는 도구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구성적 요소로 사용했습니다.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작을 위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파울 클레. 파울은 그가 가진 음악적 재능과 여행을 통해 얻은 색채 영감을 단순한 형태로 결합해서 자신만의 회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강렬한 빨간색이 매력적인 1918년 <Flower Myth>를 시작으로 독창적인 그림들을 만들어 냅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몰락의 위기에 허덕이던 유럽의 미술계에 색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클레의  그림 제목들은 종종 시의 한 구절처럼 보입니다. 그는 작업을 하는 동안 작품 제목을 미리 결정해 놓았습니다. 클레는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림에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지도 않았고요. 색과 선으로 시작된 그의 그림은 자연 속 식물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순수한 느낌의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실제로 아이의 심성을 가지지 않고선 그릴 수 없는 그림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서인지 , 그의 그림은 문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이한 제목의 그림들이 많습니다. 파울 클레가 문학적 재능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겠죠.

 

 

 

 

 

 

 

 


 

 

 

미술이 대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느다면
문학과 같은 세부 묘사로 머물면서
모방의 노예가 될 것이다.
-파울 클레-

 

 

 

 

 

 

 

 

https://www.youtube.com/watch?v=-c9SrqFSREk

 

 

 

 

in the Style of Kairouan, 1914/LACMA

 

 

튀니지/위키백과

 

 

 

파울 클레의 "카이로안 스타일"는 1914년에 제작된 중요한 추상 표현주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클레가 순수 추상 작품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으로, 튀니지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자연광에 매료되어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림은 직사각형, 다각형, 원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와 다양한 파스텔 색상을 특징으로 하며, 음악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종종 이 구성을 악보의 시각적 표현으로 해석하며 , 색깔 있는 직사각형이 음악의 음표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이 작품은 스위스 베른에 있는 미술관인 쿤스트뮤지엄 베른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2일 동안의 짦은 튀니지 여행에서 귀한 순간을 경험한 클레가 집으로 돌아와 그린 위 그림이 앞으로 펼쳐질 그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색채의 리듬과 패턴 , 그리고 단순한 형태가 결합된 독창적인 추상 회화의 시작이지요.

 

 

 

1914년 8월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클레는 전쟁에 참전한 친구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를 잃었습니다. 친구를 전쟁으로 잃은 사건은 이념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가져와 급진적인 개혁 성향을 갖게 됩니다. 아버지가 독일 국적이었던 클레도 징병 되었으나 다행히 전선에 배치되지 않았고 항공기에 페인트 칠을 하는 곳에서 복무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PUxZ4qrKLM

 

 

 

 

 

 

 

Mount Niesen, 1915/Pin Page

 

 

 

 

 

파울 클레의 '니젠 산'(1915)은 스위스 산악 풍경의 본질을 포착한 표현주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기하학적 형태와 생동감 있는 색상 팔레트를 사용하여 '니젠 산'의 장엄한 존재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 클레는 종이에 수채화를 사용하여 자연 경관의 유동성과 역동성을 강조했습니다. 추상과 자연 요소를 결합하려는 그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풍경에 대한 클레의 탐구의 일환으로,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합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
파울 클레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Once Emerged from the Gray of Night, 1918/WiKiOO.org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타오르는 불처럼 강렬하며
무겁고 귀한 존재가 되어
신의 기운으로 충만한 저녁에 기운다. 
이제는 푸른 하늘에 에워싸여
만년설 위를 떠돈다
별을 찾기 위해

<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그가 아니라면 감히 생각할 수 도 없을 법한 아름다운 제목입니다.  파울 클레는 그림을 그린게 아니라 캔버스에 시를 쓰는 화가란 생각을 합니다.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습니다. 빛과 어둠, 길고 짧음, 넓고 좁음, 뾰족함과 뭉툭함, 동그라미와 네모... 채도와 명도가 다른 파랑과 초록과 빨강과 갈색과 노랑들... 사이사이에 있는 글자들, 글자들의 배열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클레는 아마도 어떤 의미를 숨겨놓았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밤의 깊은 회색은 가고 검푸른 새벽을 지납니다. 다시  검푸른 저녁을 지나 밤의 깊은 회색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돌고도는 것이 우리 삶을 닮았습니다. 

 

 

 

 

이 작품은 파울 클레가  예술과 시의 독특한 융합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클레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색색의 사각형 그리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검은 선들을 자세히 보면,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아라비아 대문자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림은 시의 연에 해당하는 은색 띠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색상 구성은 회색에서 밝은 파란색으로 전환되고요.

 


 

 

 

 

 

 

 

Red Girl with Yellow Bowl, 1919/Alamy

 

 

 

 

 


 

 

 

1920년대 작가는 바이마르와 데사우 캠퍼스에 새로 형성된 바우 하우스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1921년  파울은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함게 당시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제의를 받습니다. 청기사파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 칸딘스키와 함께 10년간 바우 하우스 교수직을 역임합니다. 

 

 

 

Redgreen Violet-Yellow Rhythms,1920/ Redbubble

 

 

 

추상적인 작품으로, 클레가 색채 이론과 리듬에 대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색채 간의 상호작용과 그들의 감정적 영향을 탐구한 결과로, 음악과 로베르 들로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주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클레는 이 작품에서 생동감 있는 색채와 리드미컬한 패턴을 사용하여, 단순한 형태와 색을 결합해 역동적인 시각적 경험을 창조하는 그의 혁신적인 추상 예술 접근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아이가 그린 것 같은 형태와 다양한 색채를 배열하며 특이한 화풍을 시도한 그림들이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17년부터입니다. 음악가이면서 글도 잘 쓰는 시인이었던 그는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품도 제작했습니다. 연이은 전시의 성공으로 1920년 무렵에는 이름이 꽤 알려진 예술가가 되었으나 당시 미술시장은 유동적이어서 클레의 경제적 불안감은 여전했습니다. 

 

 

 

 


 

 

나무가 있는 율동적인 풍경 속의 낙타,1920/ galleryart.com

 

 

 

 

낙타가 있는 율동적 풍경 속의 나무를 그린 것처럼도 보입니다.  작품의 핵심은 기하학적 무늬 속에 숨은 낙타 한 마리입니다. 사막을 횡단하지 못하고 낙타는 어딘가의 담벼락, 나무들 사이 갇혀있습니다. 그럼에도 낙타의 표정은 밝아 보입니다. 무언가 홀가분하게 보이는 것은 색색깔의 나무들이 주는 부드럽고 동화적이며 따뜻한 느낌 때문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 클레는 항공기 유지보수 관련 작업을 했습니다. 항공기의 위장용 카무플라주를 복원하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후로도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 1917년  즈음, 미술 비평가들은 클레를 독일의 신예 예술가 중 최고라고 극찬했습니다.

 

 

 

파울 클레는 새로 설립되는 학교 <바우하우스>의 교수 제안을 고민끝에 받아들이고 바이마르로 갔습니다.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꿈꾸는 혁신적인 성향의 조형 학교 <바우하우스>에서는 칸딘스키를 다시 만나 우정을 나누고, 강의와 출판을 병행하며 학생들에게 10여 년간 미술이론을 가르쳤습니다.

 

 

 

 

바우하우스 BAUHAUS, The Bauhaus building in Dessau was designed by Walter Gropius. It was the longest-serving of the three Bauhaus locations(1925-1932), UNESCO World Hertiage Site/나무위키

 

 

 

 

The Three Bauhaus locations/History of Graphic Design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는 바우하우스 학교에서 강의하게 됐는데, 1921년부터는 독일 바이마르에, 1926년부터는 데사우에 있었습니다. 바우하우스 학교에서 클레는 광고용 자료를 만들기도 했고, 책 제본, 스테인드 글라스 및 벽화 페인팅 워크샵도 진행했습니다. 

 

 

 

 

Bauhaus founder Walter Gropius(1883-1969)

 

 

 

 

바우하우스는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1883-1969)에 의해 독일 바이마르에서 설립된 예술 및 디자인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예술과 공예, 기술을 통합하여 새로운 산업적 미학을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바우하우스는 1925년 데사우로 이전하면서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현대적 건축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곳에서는 타이포 그래피, 그래픽 디자인,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69wOKg6yp4

 

 

 

 

Geometric Posters Bauhaus Cover Templates with Abstract Geometry Retro Architecture Minimal/iStock

 

 

 

 

 

https://www.youtube.com/watch?v=NMs0ksuLmDE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수도:베를린)/위키백과

 

 

 

 

 

 

 

 

https://www.youtube.com/watch?v=uVRix0yLmuE

 

 

 

 


 

 

 

 

 

https://www.youtube.com/watch?v=vjPjDEIJ3dU

 

 

 

 

 

Angelus Novus, 1920, monoprint, Israel Museum, Jerusalem/wikipedia

 

 

 

 

 

 

 

 

파울 클레가 자신만의 오일 전사 기법을 사용해 만든 모노프린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넓게 뜬 눈, 벌어진 입, 펼쳐진 날개를 가진 천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관조하면서도 진보를 상징하는 폭풍에 의해 미래로 밀려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철학자 발터 벤야민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연관성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벤야민은 자신의 글에서 이를 "역사의 천사"로 해석하며 역사를 일련의 재앙으로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출처:인문학서원 에피쿠로스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문화 비평가, 수필가로 , 현대 철학과 문화 이론에 깊이 있는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경험, 언어, 기억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변증법적인 철학 접근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벤야민은 근대성, 역사적 유물론, 미학이라는 주제를 깊이 탐구했습니다. 종종 복잡한 아이디어를 탐구하기 위해 아포리즘과 "사유 이미지"같은 혁신적인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신학과 정치와 자주 교차하며 계몽주의 개념에 대한 독특한 비전을 제시하고 역사와 경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옹호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McxfA0Lzn0

 

 

 

 

 

 

 


 

Cold City, 1921/Artvee

 

 

 

 

 

 


 

 

실재로 그의 작업들을 감상하다보면 그 시대의 미술사적요소들을 가능한 다양하게 실험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욕심이 많은 작가이기도 하고요.  클레는 작곡과 회화는 동일한 창조 과정이라는 원칙을 출발점으로 자신의 작업을 실험적으로 전개해 나갔습니다. 음악과 미술의 근본 구조는 동일하다는 생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파울 클레의 "미술은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볼 때 그의 생각이 독일의 이상주의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생각의 변환요점을 말해주는 문맥이기도 합니다. 보이는 것을 묘사하기보다 이미 내 감정안에 생성된 이미지들을 표현해내는 것이죠. 클레의 작품 중에 구성상으로 볼 때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색채 조합이 있고 , 색 바탕 위에 굵은 선만으로 그려진 작업들이 있는데 이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많은 소리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합니다. 색채의 이미지는 곧 그에게 음의 이미지가 표현된 것이었습니다. 

 

 

 

 

 

 

 

칸딘스키의 음악적 회화처럼 파울 클레의 그림에도 음악과 접목된 그림들이 많습니다. 음악을 소재로 한 몇 작품을 모아 보았습니다. 

 

 

 

붉은 색의 푸가 Fuge in Rot, 1921/이코노미스트

 

 

 

 <붉은 색의 푸가 Fuge in Rot>(1921) 작품은 푸가의 구조와 조성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음악적인 구조로 표현 했는데,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들이 정확히 배열되었습니다. 색들의 움직임을 느낄수있지요.  클레는 눈에 보이는 대상에 의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조화로운 색채와 그가 사량했던 음악적 요소를 자유롭게 구성하였습니다. 선과 단순한 조형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기하학적이면서도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동심이 느껴지는 작업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푸가(Fugue) 는 다성음악의 한 형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여러 성부가 순차적으로 모방하며 발전시키는 대위법적 기법입니다. 주제는 처음에 한 성부에서 제시되고, 다른 성부들이 이를 모방하여 응답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로 구성되며, 각 성부가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하여 연주합니다. 푸가는 바흐와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정점에 이르렀으며, 이후에도 다양한 음악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3mG0zF8rpA

 

 

 

Rhythmisches,1930/Wikimedia Commons

 

 

<Rhythmisches>(1930)작품은 모방과 반복을 통해 리듬을 구현한 작품입니다. 

 

 

 

 

Polyphony,1932, tempera on linen, Kunstmuseum Basel/Wikipedia Commons

 

 

 

<Polyphony>(1932) 작품은 음악의 다성부를 시각적으로 해석한 작품입니다. 클레는 색채를 통해 음악적 아이디어를 표현하며, 배경의 색상 블록은 깊은 베이스 화음을 시뮬레이션하고, 표면에 다양한 색상의 작은 점들을 배치하여 바흐의 폴리포니 구조와 유사한 대위법적 요소를 구현했습니다. 이 점들은 서로 다른 색상과 크기로 배치되어 다양한 음의 흐름과 조화를 시뮬레이션하며, 복잡한 음악적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템페라 기법으로 린넨에 그려졌습니다. 스위스의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Emanuel Holffmann Foundation/Schaulager

 

 

엠마누엘 호프만 재단(Emanuel Hoffmann Foundation)은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예술재단입니다. 현대 미술 작품의 수집과  보존을 목적으로 합니다. 1933년 마야 호프만-슈테흘린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에마누엘 호프만의 예술적 관심을 이어받아 설립되었습니다. 이 재단은 바젤의 공공 미술 컬렉션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습니다.  현재는 샤울라거(Schaulager)에서 작품을 보관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manuel Holffmann Foundation/ The Art Newspaper

 

 


 

 

 

 

https://www.youtube.com/watch?v=8ORjZG0UKM4

 

 

 

 

 

Ghost of a Genius, 1922/google Art&culture

 

 

 

 

<Ghost of a Genius>(1922)는 카드 위에 놓인 종이에 오일 전사와 수채화를 사용하여 제작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림에는 작은 몸체 위에 놓인 커다란 머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클레의 자화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형 같은 모습의 이 인물은 축 늘어진 팔과 기울어진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클레가 그의 아들을 위해 인형을 만들면서 탐구했던 인형극에 대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빨간 풍성, 1922/유로저널

 

 

 

 

 

파울 클레의 작품 <빨간 풍선>은 다양한 기하학적 요소와 색채의 조화 속에서 붉은 풍선을 중심으로 표현된 그림입니다.  클레 특유의 상징적이고 시적인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강렬한 빨간 풍선을 태양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클레는 무명천에 초코를 입히고, 종이에 검은색 유화 물감을 칠한 뒤 그 위에 깨끗한 종이를 덮어 제작했습니다. 

 

 

 

튀니지의 풍경을 보고 색채를 다양하게 혼합해 강하게 시선을 끌어들이는 밝은 톤의 작품을 다수 발표했습니다. 또 초기으 판화나 드로잉과 달리 점차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상징을 드러내며 추상화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풍선, 나무, 집 같은 고유의 모양을 드러내면서도 원, 사각형 , 삼각형 등 기하학 형태로 승화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구상화와 추상화 양식을 동시에 취하는 독창적인 추상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빛바랜 듯한 색채도 이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지저귀는 기계 Twittering Machine, 1922,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wikipedia

 

 

 

 

 

파울 클레는 점을 움직이면 선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레는 단 하루도 선이 없는 날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도 그림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는 말이지요. 클레는 여러 가지 특이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천과 석고 위에 색칠을 하기도 하고, <지저귀는 기계 Twittering Machine>(1922)에서처럼 '오일트레이싱'이라는 기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오일 트레이싱을 하기 위해 그는 종이의 한쪽 면을 검게 칠했습니다. 그런 다음 검게 칠해진 쪽을 밑으로 해서 다른  종이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위에 놓인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모든 선들이 밑에 있는 종이에 눌려서 찍히게 됩니다. 몇 개의 검은 얼룩과 함께요. 요즘의 먹지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기법입니다.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 1923, 바젤, 개인 소장/X.com

 

 

 

 

 

 

 

클레가 1923년 완성한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은 숲속의 밤 풍경을 동화처럼 묘사한 작품입니다.  어두운 숲속에 신기하게 생긴 다양한 색의 식물들이 흔들리듯 서 있습니다. 일곱 마리의 노란 새는 숲속 여기저기에서 지저귀고요. 어떤 새는 구름에 거꾸로 매달려 있고, 어떤 새는 예쁜 꽃잎 위에 살포시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거대한 밤은 노란 새들에게 동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다양한 색감의 식물에는 몽상적인 그림자 역할을 부여합니다. 춤추는 식물, 노래하는 새들과 어두운 밤이 선율처럼 변주되며 크고 작은 진동으로 공명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상상의 세계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현해 주고 있습니다. 

 

 


 

 

 

Portrait of Mrs.P. in the South, Watercolor and Oil Transfer Drawing on Paper, with Couache and ink on Paperboard Mount,Sheet,1924/Guggenheim Museum

 

 

시칠리아,이탈리아/위키백과

 

 

 

 

1924년 여름 파울 클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해에 제작한 이 작품이 말해주듯 시칠리아에서 마주한 황금빛 태양과 붉은 노을은 튀니지 여행과 마찬가지로 파울 클레의 작품에 새로운 틀을 제시했습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을 종이에 그대로 옮긴 듯한 붉은색과 오렌지색의 활동은 이전 작품에선 볼 수 없는 대담함입니다. 그는 주인공의 모자를 삐뚤게 그려 신분을 짐작할 수 없게 했고, 가슴에는 하트 문양을 더해 생명력을 상징했습니다. 이 문양은 그가 이 시기 작품에 종종 활용한 이미지로, 때로는 입,코,몸통에 유사한 모양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작품 표면에 퍼져 있는 어두운 얼룩도 파울 클레가 자주 사용한 전사 기법으로 완성했습니다. 구상화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마치 카툰처럼 코믹하게 그린 초상화도 그의 전매특허 스타일 입니다. 

 

 

 

 

 

 


 

 

 

Actor's Mask,1924/Flickr

 

 

 

 

 

 

 

회화의 대부분은 작은 사이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이 한 가지 스타일이 아나라 다양하고요. 어린아이의 시점이 보이는 형태와 음악적인 느낌의 구조물에서 장난스러운 유머와 재치가 느껴집니다. 특히 인물이 주제인 것은 짖궂은 표정이 묘하게 여운이 남습니다. 

 

 

자신이 접했던 미술사조와 추상미술의 결합 가능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끈질기게 탐구한 클레는, 유화, 수채화, 파스텔, 잉크, 에칭 등 한 가지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섞는 혼합매체를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동화 같고 때로는 환상적인 꿈 같은 이미지 속에서 문자와 기호, 동물과 식물, 사람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말이죠.


 

 

 

 

 

 

 

 

Fish Magic, 1925/wikipedia

 

 

 

 

 

환상과 현실을 결합하여 꿈 같은 수중장면을 묘사합니다. 파울 클레가 그린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수중, 천체, 지상의 요소들이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색소 위에 검은 표면을 섬세하게 덧입힌 후 긁어내는 기법을 사용하여, 마치 어린이들의 크레용 놀이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중앙에 붙여진 모슬린 천 조각은 콜라주 같은 느낌을 더해 작품의 수수께끼 같은 특성을 강화합니다. 물고기, 식물, 시계탑과 같은 기발한 요소들은 클레의 환상과 자연 경험에 대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작품은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Around the fish,1926/Paul Klee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가 그린 작품으로, 중앙에 있는 정교한 물고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상징과 물체들이 둘러 싸고 있는 신비로운 그림입니다. 이 작품에는 십자가 , 보름달과 초승달, 느낌표, 갈라진 물체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구성은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들이 혼합된 느낌을 줍니다. 클레의 독특한 상상력과 공간 활용을 잘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p0_UfkBLbA

 

 

 

 

 

뒤셜도르프, 독일/위키백과

 

 

Black Knight, 1927/MeisterDrucke

 

 

 

검은 기사(1927)는 파울 클레의 표현주의 그림으로, 어두운 기사의 형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주로 검정과 회색톤을 사용하여 신비롭고 음영이 짙은 구성을 보여줍니다. 유화로 그려졌으며, 흰색 템페라로 코팅된 캔버스를 나무에 장착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 뒤셀도르프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Pastorale(Rhythms), 1927, MoMA, NYC,Tempera/Flickr

 

 

 

 

'목가(리듬) Pastorale (Rhythms)'(1927)은 파울 클레가 바우하우스 시기에 창작한 추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템페라를 사용하여 캔버스에 그려졌습니다.  크기는 69.3*52.4cm입니다. 클레는 이 작품을 통해 리듬과 추상을 탐구하며,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의 조화를 통해 음악적인 특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그림은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Cat and Bird, 1928,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wikipedia

 

 

 

 

 

<고양이와 새>(1928)는  표현주의 화풍의 그림으로, 고양이의 이마 위에 새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새는 고양이의 꿈이나 욕망을 상징합니다. 클레는 어린이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단순한 선과 형태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창의성을 강조합니다. 그림은 핑크, 갈색, 파랑, 초록, 보라 등의 차분한 색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트 모양의 빨간 코는 "사랑의 욕망"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클레가 영적 진리와 무의식에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며, 게슈탈트 심리학을 통해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20세기 초 독일에서 발전한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이 학파는 인간의 정신 현상을 개별적인 감각 요소의 집합이 아닌, 전체로서의 구조와 특질에 중점을 두고 이해합니다. '게슈탈트'라는 용어는 독일어로'형태' 또는 '모양'을 의미하며, 전체가 부분의 단순한 합 이상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주요 연구자들로는 막스 베르트하이머, 볼프강 쾰러, 쿠르트 코프카 등이 있습니다. 

 

 

 

 

 

 


 

성과 태양, 1928/The Historyof Art.org

 

 

파울 클레의 <성과 태양 Castle and Sun>(1928)은 기하학적 형태인 삼각형과 사각형을 사용하여 도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따뜻한 색조를 사용하여 햇빛을 받는 성의 인상을 표현했습니다. 표현주의 , 입체주의 , 초현실주의 요소가 결합된 이 그림은 추상적인 형태와 인식 가능한 형태를 융합한 클레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_HdKYF_7g

 

 

 

 

 


 

 

 

Monuments at G, 1929/Artvee

 

 

 

 

 

 

 

 

 


 

 

 

1931년, 그는 뒤셀도르프의 미술대학교에서 강의하기 위해 바우하우스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들은 클레의 작품을 '체제 전복적'이고'미쳤다'라며 비웃었고 그가 더는 강단에 서지 못하도록 낙인을 찍었습니다. 

 

히틀러가 장악한 독일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탄압하면서 자유로운 예술작업이 박탈이 됩니다. 독일 미술에 헌신하던 그는 결국 1933년 추방되어 다시 스위스로 돌아갑니다. 나치는 파울을 추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을 몰수하고 불태웠습니다.  예술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 대한 절망감에 일부 독일 화가들은 미국으로 망명했고, 다리파 화가 키르히너는 자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Pine Tree,1932/MeisterDrucke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Pine Tree(1932)는 클레의 고전적인 현대 미술 스타일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졌으며, 추상적인 형태와 알아볼 수 있는 자연 요소를 결합하는 클레의 능력을 잘 나타냅니다. 아마도 기하학적 형태와 생생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여, 자연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려는 그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Colors from a Distance, 1932/ Arthur.io. A Digital Museum

 

 

 

 

 


 

 

 

 

 

 

https://www.youtube.com/watch?v=4f7zhuCkgoY

 

 

 

1931년 뒤셀도르프의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일하던 클레는 새로운 색칠 기법을 시도했습니다. 미리 색칠해 놓은 배경색 위에 물감을 한 방울씩 찍어 발랐습니다. 모자이크처럼 생긴 이 그림은 클레의 작품 가운데 두 번째로 큰 크기를 자랑합니다. 주황색과 노란색이 차가운 느낌을 주는 파란색과 보라색에 대비되어 따뜻한 빛을 냅니다. 그림 제목인 '파르나소스'는 그리스에 있는 산 이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와 음악의 신인 아폴로가 그곳에 산다고 믿었지요.

 

 

 

파르나소스산에서 Ad Parnassum,1932/Wikimedia Commons

 

 

 

 

 

 

 

1923년부터 클레는 '매직 스퀘어'라고 칭한, 상징적인 색상을 사용한 상상 속의 색상으로 구성된 일련의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이 시리즈 중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파르나소스산에서Ad Parnassum>(1932)입니다. 이 그림은 현실과 기억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의 조화를 이루며 그려졌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그리스 델포이 인근이 파르나소스산에서 따왔습니다. 파르나소스산은 아폴론 신과 아홉 뮤즈의 신전으로 여겨졌습니다. 산은 예술에 봉헌되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신성한 것이었습니다. ' 파르나소스산에서'를 의미하는 작품 제목은 아치형의 문을 통과한 후 펼쳐지는 파르나소스산에 이르는 길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클레가  <파르나소스산에서>를 그린 시기는 바우하우스 학교의 교수직을 포기한 직후였습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 중에서 기본적인 기하학적 도형으로 작업하는 연습이 있었는데, 이 그림은 그런 요소를 상기시킵니다 .  클레는 단지 기억에 의한 풍경을 그렸을 뿐이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 조각나고 색깔에 의해 정의되는 이 작품이 클레가 보기에 화음으로 특징지어지는 음악과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빛나는 주황색으로 그린 원은 태양을 연상시킵니다. 긴 대각선으로 형성된 큰 정상은 지붕, 산 또는 피라미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클레는 자신의 그림들이 추상적이지만 기억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그림은 클레가 1928년에 이집트를 방문하여 직접 본 대피라미드 또는 클레에게 매우 익숙했던 스위스 알프스산맥 툰 호숫가의 니센산을 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Ad Parnassum, 1932,detail/Ocean's Bridge

 

 

 

 

이 작품은 보기  드물게 클레의  대형 작품 중 하나로,  '매직 스퀘어'시리즈의 마지막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그가 거친 공정은 정교하고 복합적이었습니다. 전통적인 흰 바탕의 캔버스에 톤을 죽인 카세인 페인트로 그리드 형식의, 큰 평면의 사각형을 그렸습니다. 그런 다음 흰색 유화 물감으로 작은 사각형을 톡톡 두드려서 추가했습니다. 이 작업을 테레빈유로 희석한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계속 반복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주황색 원과 선을 추가했습니다.

 

 

 

 

아치와  대각선에 사용된 검은색은 그림 전체에 일종의 역동성을 만들어냅니다.  클레는 색상 스펙트럼의 모든 색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색상 배치를 개발했습니다. 이 작품의 보색인 주황색과 파란색의 대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주요 색상 층은 두 가지로, 밝은 색상에서 어두운 색상으로, 파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다양하게 변조됩니다. 톤을 죽인 색상의 그리드를 먼저 배치한 후 형태를 나타내는 레이어를 마치 모자이크처럼 깔았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작곡가 요한 요제프 푹스(Johann Joseph Fux)가 쓴 책 <파르나소스산으로 오르는 계단 (Gradus ad Parnassum)>(1725)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음악 이론서로, 음악적 테크닉과 작곡 기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주로 대위법과 화성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푹스는 이 책을 통해 작곡가들이 음악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원리와 실습 방법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폴리포니'라는 음악적 개념을 정의하는데, 이는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멜로디가 함께 음악적  배열로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파울 클레는 이 책을 알고 있었으며 폴리포니를 '여러 독립된 주제의 동시성'으로 이해했습니다. 클레가 서로 다른 색상과 모양을 오케스트라의 다성음악에 비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두드려서 만들어진 점으로 구성된 이 캔버스에는 작은 색색의 블록들이 마치 파도처럼 펼쳐집니다. 이  이미지는 클레가 자신만의 점묘법으로 모자이크를 연출한 것처럼 보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조르주 쇠라가 발전시킨 분할주의를 생각나게 하지만, 클레는 과학적이지는 않으나 색상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색상은 이탈리아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성당의 모자이크 작품에서 볼 수있는 영성과 화려함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클레가 남긴 붓 자국은 조밀하고 균일하면서 화려한 질감을 자아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FEpKh3-PI

 

 

 

 파울 클레의 위 작품과  점묘법으로 유명한 신 인상주의자 조르즈 쇠라( Georges Seurat, 1859-1891)와  폴 시냑(Paul Signac, 1863-1935)작품을 비교해 보세요. 

 

 

 

점묘법: 작은 점들을 사용하여 색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서로 다른 색의 점들이 시각적으로 혼합되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냅니다.

조르주 쇠라는 프랑스 화가로, 점묘법을 창시한 신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이 대표작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이러한 점묘법을 통해 빛과 그림자를 과학적으로 표현하며, 다잇 사회 계급의 모습을 담고 있스비낟. 쇠라는 색채이론을 예술에 적용하여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폴 시냑의 작품은 신인상주의와 점묘법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는 조르주 쇠라으 ㅣ영향을 받아 점묘법을 발전시켜, 점을 크게 그리고 사각형의 모자이크처럼 표현하는 색채 분할주의를 완성했습니다. 시냑의 작품은 색의 병치를 통해 대조를 이루며,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여 풍경과 인물을 표현합니다. 

 

 

A Sunday Ar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by Georges Seurat (1859-1891),1884-1886, Art Institute of Chicago/wikipedia

 

 

Women At The Well by Paul Signac(1863-1935), 1892/ Artchive

 

 

 


 

 

Small Room on Venice,1933/MeisterDrucke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바우하우스는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학교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하는 등 탄압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학교는 존재하기가 힘들어졌고 결국 클레는 바우하우스를 떠나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의 교수로 갔습니다. 그러나 1933년 뒤셸도르프로부터 갑자기 해직 통보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나치가 클레를 급진적인 미술가로 분류하고 유대인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애써 쌓은 미술가로서의 가치를 모두 잃은 듯 느낀 클레는 태어나고 자란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했습니다. 

 

 

 

 


 

 

 

 

스위스로 돌아온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그렸습니다. 원래 다작을 하던 파울이지만, 귀향 후 1940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유독 이 3년간의 작품이 많습니다. 파울 클레가 스위스로 돌아 가 그린 작품들입니다. 

 

 

 

Flowering, Oil on Priming on Canvas on Stretcher, 81.5*80cm,1934/ MeisterDrucke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작품은 스타일, 테크닉, 주제, 재료 면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모자이크 패턴이 마치 물결처럼 흐르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이 작품은 그가 색채의 명암과 채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형태와 색채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이 작품처럼 형태뿐 아니라 색채를 작품의 주요 구성 장치로 사용하면서 점차 고유한 추상화의 틀을 구축했습니다. 색의 명암과 채도를 달리하며 색 자체로 그림에 리듬감과 숨을 불어넣어 색채 활용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이 시기에 그는 컬러 자체의 고유한 성질과 순수성을 탐구했으며, 색채를 정신성과 영혼,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해 추상화에 정신성을 담아냈습니다. 

 

 

 

 

 

 

 

Hardy Plants,1934,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Google Arts & Culture

 

 

 

 

 

파울 클레의 작품 <Hardy Plants>(1934)는 그의 추상적 형태와 생생한 색채 탐구를 반영하는 작품입니다 이 시기에 클레는 바우하우스 운동과 나치 정권의 정치적 압력 등 개인적인 어려움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예술의 표현력을 믿었던 그의 신념을 구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자연과 추상을 널리 탐구했던 클레의 작업 중 하나로, 식물 모티프를 사용하여 회복력과 성장을 전달합니다. 

 

 

 

 

 

 

 

Mountain Village, 1934/Craftfineart.com

 

 


 

 

 

Sparse Foliage,1934/MeisterDrucke

 

 

 

 

 

 

<Sparse Foliage>(1934)는 표현주의 스타일로 제작된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유화, 구아슈, 수채화, 목탄을 종이에 혼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클레의 혼합 매체 사용은 자연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그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반영하여 질감 있고 층이 있는 구성을 만들어냅니다. 작품의 제목인 "Sparse Foliage"는 식물 생명의 최소주의적 묘사를 암시하며, 이는 클레의 예술적 스타일의 특징인 단순함과 추상화를 강조합니다.

 

 

 

 


 

 

At the Core, 1935/Pinterest

 

 

 

 

 

추상적인 스타일로 잘 알려진 표현주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과녁 같은 구성을 특징으로 하며, 색상이 짙은 갈색에서 밝은 색조로 전화되어  붉은색 중심에 이릅니다. 이는 클레가 표현주의 운동 내에서 색채와 형태를 탐구한 특유의 거칠과 낡은 외관을 만들어냅니다. 

 

 


 

 

 

 

Walpurgis Night,1935/ Reproduction Gallery

 

 

 

 

 

스위스 베른으로 돌아간 클레는 1935년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려 했으나, 원인 모를 병에 걸렸습니다. 피부가 딱딱해지고 세포막의 점액이 건조해져서 나중에는 몸에 부종이 생기고 마비가 되는 '피부경화증'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깊은 무기력에 빠져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다가, 2년 후에는 치료를 받으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피부 경화증(경피증)은  피부가 단단해지는 만성 자가면역 질환으로, 피부뿐만 아니라 폐, 심장, 위장관, 콩팥 등 여러 내부 장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질환은 면역계의 이상으로 콜라겐이 과도하게 생성되어 조직의 섬유화를 일으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정 화학물질과의 연관성도 보고되고 있고요. 증상으로는 레이노 현상, 피부 두꺼워짐, 관절 및 근육 통증, 소화기 문제 등이 있으며, 치료는 주로 증상 완화와 장기 손상 예방에 중점을 둡니다. 

 

 

 

 

 


 

 

 

 

Characters in Yellow,1937/wikipedia

 

 

 

파울 클레가 죽기 3년 전 완성한 이 그림은 말기 작품 중에서도 컬러감과 율동감이 돋보이는 명작으로 꼽힙니다.  그의 작품을 다수 보유한 바이엘러 재단도 이 작품을 대표 소장품으로 인정할 정도입니다. 그는 작품 전반에 음악적 구조를 대입, 캔버스에 율동적인 선과 색채를 얹어나가며 규칙과 불규칙 사이를 조율했습니다. 193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기호를 주로 표현하면서 특히 선과 도형의 리드미컬함이 도드라졌습니다. 그에게 캔버스는 곧 악보였고, 물감은 음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194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듬과 패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캔버스에 다양한 색조와 율동감을 드러낸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Harbor with Sailing Ships,1937/The Art Print Company

 

 

 

Legend of the Nile,1937/Alamy

 

 


 

 

Revolution of the Viaduct,1937/ wikimedia commons

 

 

 

 

 

 

파울 클레의 작품 <고가다리의 혁명(Revolution of the Viaduct,1937)> 는 그의 독특한 예술 스타일을 잘 보여줍니다. 클레는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종종 환상적이고 추상적인 형상들을 특징으로 합니다. <고가다리의 혁명>은 이러한 클레의 스타일을 보여주며, 나치 정부에 의해 "퇴폐미술'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클레의 예술적 비전과 그의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입니다. 

 

 


 

Candlestick, 1937-38/BestofBharat

 

 

 

 

그렇게 다시 그림에 집중하던 클레에게 들려온 최악의 소식은, 히틀러의 나치가 주관한 <퇴폐미술전>이었습니다. 나치는 1937년 뮌헨에서 열린 <퇴폐미술전>에서 클레와 칸딘스키 등, 여러 화가들을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고 작품 제작을 금지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몰수하고 많은 작품을 불태웠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한 미술가들은 큰 충격에 빠졌는데 다리파 화가 키르히너는 자살했고 몇 명의 예술가는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퇴폐미술전에 '광기와 정신병'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된 클레의 그림은 7점이 전시 되었고, 나치는 일반 대중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 102점을 몰수했습니다. 

 

 


 

 

 

나는 울지 않기 위해 그린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유다.
-파울 클레-

 

 

 

 

A Woman for Goods, 1938/Google Arts & Culture

 

 

 

Park Bai Lu,1938/King&McGaw

 

 

 


 

 

 

 

 

The Vase, 1938/PubHist

 

 

 

 

 

 

54.5*88cm크기의 올리브유와 삼베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클레의 특유의 추상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며, 종종 생생한 색상과 기하학적 형태를 통합합니다. 클레의 예술은 일반적으로 음악과 리듬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하여 형태와 색상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을 만들어냅니다. 


 

 

 

 

Heroic Fidding, 1938/Kanvah Art

 

 

 

새의 섬 Insula dulcamara, 1938, Zentrum Paul Klee, Bern/wikipedia

 

 

 

 

1937년부터 1940년 사망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어느 때보다 많은 작품을 그린 클레. 그는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인정받았으나, 스위스 정부로부터는 무절제하고 너무 혁명적이라고 감시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Heroic Roses,1938,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Dusseldorf/wikipedia

 

 

 

 

영웅적인 장미들(Heroische Rosen)는 스위스-독일 화가 파울 클레가 1938년에 그린 표현주의 회화입니다. 이 작품은 물감이 스며든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졌습니다. 크기는 68cm*52cm입니다. 그림에는 추상적인 빨강 장미 세 송이가 흐릿한 녹색과 파란색 배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붓질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스케치 같은 느낌을 줍니다. 클레의 삶의 마지막 시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그의 경화증과의 싸움을 반영하며, 후기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상형문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독일 뒤셀도르프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Oh! These Rumors!, 1939, Beyeler Foundation/wikimedia Commons

 

 

 


 

 

 

색은 우리의 생각과 우주가 만나는 장소다. 
- 파울 클레-

 

 

 

 

 

Untitled(Still Life),1940, Zentrum Paul Klee, Bern, Switzerland/Artchive

 

 

 

 

1940년 6월 29일, 61세에 사망한 클레의 집, 테이블 위에는 위 그림이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그전과는 또 아주 다른 분위기의 그림 속, 아랫부분 왼쪽에 있는 형태는 천사라고 하는데, 병에 걸린 후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천사를 자주 그렸다고합니다.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중에서 가장 지적이고 창의적이었던 파울 클레. 초기부터 말기까지 그림을 찾아보면서 새삼 그의 재능에 감탄하게 됩니다. 보통은 한 가지 맥락에서 시작해서 일정하게 가지를 뻗어나가는데 그의 회화는 종횡무진으로 경계를 넘는 실험의 연속인 듯, 구상과 추상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음악과 미술의 거리를 넘고,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이것들을 하나로 융합한 파울 클레( Paul Klee, 1879-1940).  그를  통해 우리는 눈이 즐거운 그림의 시대를 지나 고민하고 사유하는 그림의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다. 
내가 편안하게 머무는 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통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창조의 핵심에 다가가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파울 클레의 묘비에 새긴 글-

 

 

 

 

 

 

 

 

 

 

 

 

Death and Fire, 1940,Zentrum Paul Klee, Bern/wikipedia

 

 

 

 

클레는 몸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죽을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2500여 점을 그렸습니다. 발병 후부터는 두꺼운 검정 크레용과 거친 선, 칙칙한 색감으로 그림을 채웠고요.  죽은 해에 그린 <죽음과 불>을 보며, 예전의 유쾌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해골 같은 흰색 얼굴이 중심에 있고, 입과 눈은 독일어로 죽음을 뜻하는 T,o,d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전신 경화증 투병 끝에 사망한 해에 그린 <죽음과 불Death and Fire>은 스위스 바젤 미술관,베른 젠트럼 파울 클레 미술관 소장 되어 있습니다. 

 

 

 

 

 

 

 

 

2005년 스위스 베른에 그의 업적을 집대성한 파울 클레 센터( Zentrum Paul Klee)가 세워졌습니다. 음악적 재능이 많았던 그의 특성을 잘 나타낸 기하학적  건축물이 눈에 띕니다.  비록 독일 나치에 의해 폄하되었지만, 독일과 스위스 사람들은 그에 대한 그리움과 위대함을 이런 건축물로 표현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H85mG9AZ5HI

 

 

 

 

음악적 재능이 타고났던 파울은 이미 발전한 음악계가 아닌 미술계에 자신의 재능을 쏟을 정도로 새로운 모험을 즐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음악과 미술의 경계,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화가 "파울 클레'.  독특한 그의 삶을 이해하고 미를 이해하는 중심적 요소에 음악과 여행이 있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시대에 태어났으면 실컷 실력 발휘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파울 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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