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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 중반 어느날 옷장문를 열다 같은 청바지가 잔뜩 쌓여 있는 모습에
때가 왔구나 싶어 옷장을 한번 대대적으로 뒤집었다.

쌓인 청바지 갯수를 세어보니 20벌!
😱
구입한 시기, 상점도 다~다른데 어쩌면 이렇게 같은 옷을 20벌 그것도 똑같은 스타일로 사놓은건지!  아~~ 심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면 안될것 같은 생각도 들고 옷 입는 것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뒤지며 나와 결이 맞는 채널을 꾸준히 보기 시작했다.

나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유행이라고, 이뻐서, 세일이라고…등등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기분에 맞춰 사서 걸어 놓으니 옷장을 열어도 도대체 매번 입을 옷이 없이 쩔쩔매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지금은 더 이상 보지 않지만 내가 그당시 꽤 유용하게 보았던 유튜브 채널이 ‘패션 힐러 최유리’였다.
그녀의 이야기 중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옷을 입을 때 패션이 힐링이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간과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란 것을 깨닫고 반복해서 틈만나면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제시하는 네 가지 법칙이 두고 두고 내 생활에 유용하게 쓰였다.

겉옷은 디테일을 최소화해서 입는
빼기의 법칙

시계, 목걸이, 팔찌, 스카프 등으로 엣지를 첨가하는 더하기의 법칙

얼굴 주변에 되도록이면 흰색이 올 수 있게 입어 보는 여백미의 법칙 위•아래 같은 색이라도 질감을 달리해서 입는
반대의 법칙 위의 네 가지 만으로도 내 의생활은 훨씬 합리적이 되어갔다. 나의 정체성을 나름 규정하고 맞지 않는 옷은 과감히 정리해 ‘Goodwill’같은 곳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옷장안을 비워갔다. 대신 슬림해진 옷장안에 꼭 필요한 기본 아이템을 실수도 해가며 추가하고 파격가 세일이라도 곁눈질 행동을 더이상 하지 않았다.내 스타일을 알고 나니 의생활이 많이 심풀해지고 옷장문 열고 한숨 내쉬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무턱대고 사던 충동 구매도 많이 줄어 경제적으로  필터 역할을 해주어 나름 만족 스러웠다.

캡슐 옷장을 만들어 놓고 열고 닫을 때 마다 선택의 시간이 줄어 유쾌했다. 기본 아이템이 많아 이것 저것 믹스해 안 입어 본 스타일도 만들어 내니 창조주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입고 간 옷이

“멋있다!”

하는 주변인들 반응이 오면 내 정체성이 인정 받은 것 같아 콧대가 높아지고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은 구름위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비싼 명품으로 돈들여 치장해서 멋있다가
아니고 내 감각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은거다.

이것이 바로 ‘힐링’ 아닐까!


오늘도 내 옷장에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옷들을 향해 나의 매직 지팡이를 친다.
“너의 오늘 컨셉이 뭐니?”



#옷#청바지#한심# 옷 입는 법칙# 정체성#힐링#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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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복도 달아날 것 같은 말투를 가지고 계신 분이 지인 분들 중 계시다.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가지고 계신 복도 차는 느낌을 받아 거북할 때가 많다.

‘도대체 저 분은 눈 높이를 어디에 두고 계신거야? 하늘 높은 줄 모르시네!’

본인이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 지 조목 조목 적어 코앞에 드리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남들은 그만큼 갖추려고 기를 쓰고 노력해서 겨우 얻어내는데 복에 겨운 그분의 불평은 들을 때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손에 쥐고 있는 남은 복도 저렇게 고마운 줄 모르고 불평만 하시면 저분한테서 달아나 버리지 않을까 괜한 걱정도 든다.
나이가 더 드시면 철이 드실까?^^

이렇게 사람의 말투에는 뜻밖의 정보들을 많이 담고 있다. 상대방의 지식,성품, 배경…등등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각보다 많다.

때때로 툭 던져진 말 한마디가 어려운 대화도 쉽게 풀어가는 실마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상대방의 진정성 있는 말투는 머리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가 오래 머물다 간다. 그 따뜻한 온기로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좋지못한 말투를 호감가는 말투로 바꾸는 방법은 없을까?
답은 Yes~.

남 인숙 작가의 유튜브 영상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 째 문장 마무리까지 분명하게 말하라.
둘째 헷갈릴만한 단어를 또박 또박 말한다.
셋째 적당히 천천히 말한다.
넷째 책을 소리내서 읽어본다.
다섯 째 내가 말하는 것을 녹음해서 들어본다.

언급한 내용 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보는것이다. 성당의 독서자로 제대위에 자주 올라가면서 무대 공포증을 없애려고 시작했던 방법이다.

여러번 소리를 내어 읽다보면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글의 톤을 느낄 수 있다. 발음이 구강 구조상 꼬이고 안되는 부분은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는다.

성경 말씀을 신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또박 또박 끊어 읽기를 해야할 때도 있고 글의 흐름상 빠르게 읽어 내용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비록 짧은 말씀이라도 많이 읽고 연습하고 올라갈 때 마이크 앞에 훨씬 여유있고 자연스런 목소리가 나와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눈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십 년이 훌쩍 지나갔다. 지금도 성경 말씀을 읽기 위해 독서대가 있는 제대위에 오르지만 그때의 떨림은 어느새 설렘임과 불안이 혼합된 두근거림이 되어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하고있다.

“Practice makes perfect.”


           너의 목소리

응, 나야
그래, 알았어

목소리만으로도
너는
나의 푸루디푸른
그리움이다
나를 부르눈
너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들어 있다
바람이 가득하다

네가 몹시 보고 싶을 땐
혼자서
가만히 너를 흉내 낸다

응, 나야
그래, 알았어

-이 해인, <너의 목소리>-

#말투#목소리#고치는 방법#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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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쳐진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을 때 꺼내 입는 옷이 있다. 짧은 가죽상의, 검정 목티, 발레리나가 연상되는 샤스커트, 그리고 검정 부츠를 신고 콧 바람을 쏘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내 안의 특별하고 싶은 욕구를 잠깐 충족시키는 의식같은 행동이다. 특히 이렇게 바람 몹시 불어 대는 날이면 그런 마음이 더 하다.

내가 사는 서든 캘리포니아(Southern Califirnia)의 가을은 미친년 머리 풀어 헤치듯 귀곡성을 내며 부는 거센 바람과 함께 시작된다.

일요일 아침 !
일어나자마자 날씨 확인부터 한다.성당가려 옷장 문을 열고 망설임 끝에 그냥~ 꺼내 입기로 했다. 말많은 왕언니 자매님들의 입방아에 오르 내릴 지도 모르지만,

‘이 나이에 눈치 볼일 뭐 있어.
그냥 입고 싶으면 입는거지.’

하며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만족을 먼저 챙겨주기로 했다.

차려입고 거울속을 들여다 본 나는 만족했다.
비록 숫자상으로 50대 이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쥬디 마냥 톡톡 튀는 젊음이 느껴진다. ^^물론 보고 싶은 것만 쏙쏙 뽑아 보며 나르시스같은 행동이 과하면 병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오늘만은 예외로 하기로 했다. 의상이 주는 힘으로 나의 쳐진 마음을 추켜 올려주기로 했다.

기름이 떨어져 성당 근처 ‘Shell’주유소에 들렀다.현금$40 손에 쥐고 편의점 문쪽으로 다가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 가려던 남자 종업원이 위 아래를 훑으며 웃음띤 눈으로 문지기마냥 문을 열어 젖혀주기까지 한다.

‘캬~ 이맛이지!’

옷이 주는 힘때문에 특별 손님 대접 받은 것 같아 턱을 힘껏 치겨세운다. 기분이 좋아져서말이다. 명품으로 치장하려는 심리 뒤에 숨겨진 인정욕구를 십분 이해하면서 오늘은 그들을 향한 손가락 질을 내려 놓고 나를 달랜다.

‘하루 쯤 괜찮아.’

하며 신데렐라 될 시간을 체크하며 남은 시간을 즐긴다.

미사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가기가 아쉬워 ‘Home Good’ 매장에 들러 추수 감사절과 성탄절에 맞춰 진열된 제품들을 훑어보았다.
당장 사야할 품목과 내년 1,2월 이월 상품으로 사면 좋을 것들을 대충 눈도장 찍어 놓고
챨리 브라운이 그려진 크리스마스용 쟁반 하나를 사서 집으로 왔다.

오늘 실컷 달랜 내 self 이만하면 됐다.
기분 업된 마음으로 내일은 평범한 일상으로
신데렐라 일상으로 복귀다.

               단추를 달 듯

                           이해인 수녀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고 있는
나의 손등 위에
배시시 웃고 있는 고운 햇살

오늘이라는 새 옷 위에
나는 어떤 모양의 단추를 달까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새옷을 갈아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듯
제자리를 찾으며 살아야겠네

보는 이 없어도
함부로 살아 버릴 수 없는
나의 삶을 확인하며
단추를 다는 이 시간

그리 낯설던 행복이
가까이 웃고 있네

#가죽옷#기분전환#신데렐라#단추를 달듯#일상#캘리 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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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안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죠.”

피아노의 구도자로 불리우는 백 건우 피아니스트의 말이다.  사십 년의 긴 연주 여행동안 그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닮아가려 하지 않고 독특한 그 만의 감성을 싫어 청중에게 전달하기까지
부단히 노력했던 인고의 세월이 그 말 한마디에 다 담긴것 같아 뭉클했다.

MZ세대에 속하는 <서원미 작가>는 예술을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정의 내리며 좀 더 솔직해진 ‘나’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참 당차다. 그리고 부럽다.
젊은 작가가 몸으로 체득하며 풀어가는 삶의 방식이 어리지만 내 눈에 철든 어른 같아 몸만 어른인 나를

‘너, 지금 잘 사니?’

하며 방향감각 유난히 부족한 나를 한번 더
때리고 간다.

유튜브를 통해 들여다 본 두 예술가의 삶은 다른듯 몹시 닮아 있었다. 비록 세대를 달리하고 영역은 다르지만 ‘자아’를 찾아가는 길 위에 사람들 이라는 공통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경건한 그들의 의식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른 결혼으로 ‘나’를 찾을 겨를도 없이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성장이 오랫동안 멈춰있었다.  항상 내 자신에게 빚진듯한 묵직한 마음은 빈 둥지 증후군과 함께 헛헛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젊은 엄마 시절 왜 성장은 아이들만 시키는 거라 생각했을까? 아이들만 닥달할뿐 텅빈
내 내면을 채워 두질 못해 항상 주변 상황에
휘청거리며 살았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 부러운 대상 마냥 쫓아가다 가랭이 많이 찢어졌다.

특히 그 피해는 고스란히 큰 아이에게 집중되었고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아 늘 내 마음속이 덜그럭 거리며 잡음이 많았었다. 내 욕심을 채우려 무리를 하고 아이를 은근 힘들게 한 철부지 젊은 엄마였음을 깊게 반성한다. 그래도 그런 실패의 경험이 나름 다른이의 삶을 이해할 때

‘그럴수도 있지!’

하는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가 내가 얻은 실패의 결과물이다.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본인들의
일상을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잘 ~
감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응원하며 바라볼 뿐이다.

더듬어보면 나의 ‘자아 찾기’ 과정이 이른 결혼 생활과 맞물려 수 없이 충돌했던 시간이었다. 찾지 못한 내 자아를 아이들을 통해 얻고자한 못난 엄마라 잘 참아준 아이들에게 오히려 고마워 하는 중이다.

요즘 나는 변신 중이다.
애써 헛헛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
뒤돌아서면 백지 상태로 변해
좌절감만 안기는 나의 녹슨 뇌에 다시
기름칠 하는 중이다.

가끔 사기가 꺾여

‘이거 뭐하는 짓인가!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대충 살면 안될까?’

하는 마음이 턱밑까지 차오르다가도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후회할 것 같아 다시 배움을 시작했다. 영원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등짝 때리며 시험 공부 하라고 빗 자루 들고 쫓아 올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다. 누구의 압력이 아닌 순수한 내 내면의 갈증을 제대로 채우고 싶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인생 공부에 맛들이기 시작했다.

나의 불완전함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나의 장점을 더 키워가다 보면 앞으로 걸어 간 만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있으리라 믿어보면서 말이다.



                      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거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 <길>,[쓰러진 자의 꿈],
창비,1993-


#자아#백건우 피아니스트#서원미 작가#인생공부#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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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지난주 IT관련 유튜브 채널에  유명한 모 대학의 교수님이 나오셨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예, 경제적 부 기타 등등 소위 성공한 사람에 속하는 그런 분이셨다. 세상사람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더 낮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고 자신의 선택에 만족해 하시는 모습이었다.

그 분이 새로운 비젼을 소개하실 때 그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는 신이 났고, 흥분해 들떠 있었으며, 온 몸의 감각이 살아 움직여 인터뷰 내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보는 나도
의외의 보기 드문 장면에 몰입해서 보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그의 시도에 박수 쳐 주고 싶었다.

그 분의 인터뷰가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보다 좋을 수 없는 안전 지대를 벗어나자신이 가야할 방향과 속도를 다시 묻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여지껏 쌓아 올린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둥지를 옮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도 가족이 있는 중년이 말이다.

소위 높은 곳에 좌표를 두고 올라가기 바쁘고 정상에 안주한 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주변이 썩어 들어가도 못 본척 책임지려 하지 않는 뻔뻔한 엘리트들을 또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너무 많이 보고 식상해 그 교수의 선택이 밝은 한 줄기 희망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희망에 싹이 트고 잡다한 것들을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다보면 열매 맺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 그 열매를 본인은 맛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있어 소개한다. 주인을 잃은 개가 주인의 담요 위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웠다고 한다. 보다 못한 가족은 조련사를 불렀고 그 조련사는 주인의 담요를 가져다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그 뒤로 언제 그런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밥도 잘 먹고 잘 자더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고수하고 있는 담요 같은  안전 지대가 무엇일까?’

하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돈, 가족, 명예,학벌…등등 각자 다양한 형태의 ‘담요’들이 있으리라.

내가 경험해 본 삶은 결코 이분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언제나 모호한 회색지대에 뿌연 안개 속 같았다. 잡힐 것 같은데 금새 사라져 버려 서 있는 자리를 헷갈리게 만들고 꼬이게 해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하고 무리를 해서 무조건 뛰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멈추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해결점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요즈음 소위 <쓸모 있는 것>으로  불리우는 직종에 종사하는  고급 인력들이  <쓸모 없는 것>으로 무시당한 인문학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허탈해 하거나 인간을 대하는 예의를 갖추지 못해 구설수에 쉼없이 오르 내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된다. 그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과 속도를 꾸준히 물어 보는 자기 점검의 시간을 무시한다면 그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적어도 그 자리가 국민들을 대표한 자리임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헐렁한 어른#안전지대#속도#방향#쓸모있는 것#쓸모 없는 것#자기 점검#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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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는 늘 아침이 100m달리기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시간를 단축해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매 번 우선 순위에서 자동적으로 밀려난다. 식사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족들 아침 준비를 하며 조리대 앞에서 간 보며 한 번, 도마 위에 썰면서 한 번 , 그릇에 담아 올리면서 한 번 이런식으로 선채로 아침을 해결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식탁에 앉아 다소곳이 먹기보다 후다닥 헤치우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겨 식사하는 즐거움을 매 번 놓치고 만다. 천천히 씹는 즐거움, 여유있게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스마트 폰을 켜고 눈을 화면에 고정 시킨채 엉뚱한 곳에 내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만다.

가족들이 있으면 먹일 생각에 몸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도 정작 혼자 먹는 밥상은 부실해진다. 나를 위한 밥상은 더 단촐해지고 설거지의 부담을 덜고자 잔머리를 굴린다.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오히려 영영실조 걸리기 쉬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것 같다.

어릴 적 친정 엄마의 급하게 뚝딱 해치우는 식사법이 어린 내 눈에도 품위없어 보여 싫었었다.

‘왜 저렇게 먹지?’
‘좀~  앉아서 먹지
저게 뭐야.’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거야.’

하며 다짐했었다.

그런데 웬걸!
바쁜 미국 생활은 우아함을 사치롭다며 밀어 내고 그 자리에 나를 생활의 달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을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 방과후에 다시 데리러 가는 반복되는 일상은 하루를 더 길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곳 의료체계가 허술하다 보니 예방차원으로 식재료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현지인들의 다양한 식재료를 한국식 입맛에 맞게 슬쩍 슬쩍 바꿔 보기도 하고 아이들 입맛에 맞춰 한국 식재료를 현지인 입맞과 비슷하게 맞춰보기도   했다. 무한 반복의 시행착오의 시간이었다.
가족들의 입맛은 기를 쓰고 노력해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내 입맛은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식구들 남은 음식을 살짝 변형해서 먹는 방법으로 내 입맛을 그렇게 달랬던 것 같다.

이제는 나를 챙길때도 되었건만 오래 몸에 베인 습관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가끔 허겁지겁 먹고 있는 뒷 모습이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들킬때면 초라하고 속상해진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나를 챙길것인가!
닮지 않으려 했건만 무의식적으로 닮아가는 모습에 돌아가신 친정 엄마의 모습까지  겹쳐 더 서글퍼진다.


                        찬밥
            
                                  문정희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훑던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를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문정희,<찬밥>,[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찬밥#식사법#선채로 식사#닮아감#나쁜습관#내 입맛#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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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치다.

초등시절 넓게 느껴지는 운동장에서 어른 자전거를 배우려다 실패했다. 나를 잡아주던 그림자가 없어진 걸 알아채고 불안한 나는 축구 골대로 직진해 볼상스럽게 넘어졌다. 오른쪽 발목 부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흉터로 남은 그 날 이후로 자전거 타기는 내게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휴일 산책을 나온 이들 틈에 한 무리의 자전거 부대가 지나간다. 라임칼라 형광빛 상의 딱 달라붙은 검정 바이커용 바지에 핼맷을 쓰고 운전자들 사이를 거침없이 지나간다. 경쾌하고 자유로운 그들 모습이 차안에 앉아 있는 나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오히려 그들이 휘청거릴까봐 옆 차선으로 옮겨 천천히 지나간다.

두 바퀴에 몸을 의지한 그들의 몸놀림이 신기할 뿐이다. 투실한 살집의 남성분 몸을 지탱해 주는 두 바퀴의 힘이 사실 더 놀랍다.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들 옆을 조심 조심  스쳐가는 내가 얼마나 그들을 시샘하고 있는지 말이다.

어릴적 아빠뒤에 타던 자전거에 든든함이 있었다. 아빠 땀 냄새 맡으며 온전히 의지한 체작은 꼬맹이는 신이 났었다. 젊은 아빠도 수없이 넘어졌을 그 길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알고 가는 길이 아니라 수 없이 선택해서 가야하는 난감한 길임을  알아채지 못해 더 영웅같은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모를 일이다.

대학 후배뒤에 타고 가는 자전거에 설레임과 낭만이 있었다. 귀신같이 용돈 타온 날을 알고 저녁을 사달라하고 무슨 마음이었나 나는 거절 못하고 타온 용돈의 절반을 식사 비용으로 내고 후배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고까지 해야했었다. 중간 고사 시작하는 3학년 봄학기
불쑥  찾아 온 후배는 자전거를 태워 주겠다며 나를 불러냈고 그렇게 후배 등 뒤에 벗꽃 날리는 알싸한 봄 햇살을 만끽하며 시험 스트레스를 잊고 있었다. 이 감성을 가지고 어디서  마누라랑 잘 살고  있으리라.^^

아이들과 함께한 산책길에서 다리가 아픈 시늉을 했더니 큰 아이가 자기 저전거 뒤에 타라며 눈짓한다. 염치불구하고 어린 아들 뒤에 올라타 강변 산책로를 씽씽 달렸다. 아이취급하던 내 시선이 놀랍고 기특한 마음으로 바뀌는 감동의 순간이기도 했다. 운전대 잡은 큰 아이의 시선을 따라 내 마음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큰 아이의 자전거 사랑은 대학 4년 내내 이어졌고 자기 차를 갖고 나서야 낡은 자전거는 뒤뜰로 고이 모셔졌다. 이 아이도 알고 있겠지 !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무수히 넘어지고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고전적인 저전거 타기

                                            복효근

넘어져보라 수도 없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르팍에 상채기를 새기며
제대로 넘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하리라
요즘처럼 아주 작은 어린이용 저전거 말고
페달에 잘끝이 닿지도 않는
어버지의 삼천리호 자전거를 훔쳐 타고서
오른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더욱 오른쪽으로 핸들을 기울여보라
왼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왼쪽으로 핸들을 더욱 기울여보라
그렇다고 어떻게야 되겠느냐
왼쪽 아니면 오른쪽밖에 없는 이 곤두박질
나라에서 수도 없이 넘어져보라
넘어지는 쪽으로 오히려 핸들을 기울여야 하는 이치를
자전거를 배우다보면 알게 되리라
넘어짐으로 익힌 균형감각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아비들을 이해할 날도 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에 사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네가 아비가 되어 있으리라

#자전거#휴일 자전거 모임#아빠의 자전거# 후배의 자전거#아들의 자전거#넘어짐# 고전적 자전거 타기#균형#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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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는 지인 분이 다녀가고 한 달 뒤
택배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작은 꾸러미들 속에 섞여왔다.

남편의 20대 후반 사진이었다. 머리 숱도 많고 이목구비 뚜렷한 청년 시절의 남편을 보니
참 ~ 낯설다. 바로 사진 속 그 청년이 태평양 건너 미국이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될 줄 어찌 알았겠나!

어제는 남편의 60세 생일이었다.
옛날 같으면 식구들 불러 큰 잔칫상 차리고 배불리 먹이며 축하해 주었을 텐데… 낯선 땅에 17년 째 살다보니 더 좁아진 인간 관계에 늘 허기를 느낀다.

삼 십년이란 세월은 설레임을 간직하며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던 연인을
길 위에 어깨동무 하고가는 평범한 동료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아내 역할은 아직 유효하니까!
새벽녘 일찍 눈을 떠 예쁜 꽃 다발 사진에
심쿵한 캘리그래피 찾아 합성해 남편 카톡에 보내 주었다. 큰 아이는 멀리 있어 빵파레 축하 메세지로 둘째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늦은 저녁 귀가를 알리며 립서비스로 한 마디

“아빠 , 생일 축하해!”

하는 건조한 말을 남기고 출근을 서두른다.

남자만 셋인 우리 집 쿨한 생일 아침 풍경이다. 각자 직장생활을 하니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 남편과 운영하는 가게의 폐점시간이 늦다보니 음식점을 가도 그들의 끝나는 시간과 맞물려 환영받지 못한 손님으로 낙인 찍힐 때가 많아 눈치가 보인다. 올해도 그냥 맹숭 맹숭하게 둘이 앉아  닭다리 튀김,오뎅국, 잡채, 그리고 좋아하는 열무 김치와 맥주를 곁들인 생일상  차림으로 입막음 해야할 것 같다. 이혼 부부가 대부분인 이곳에서 ‘30년’이란 숫자는 현지인들에게 “amazing”하다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이번 달 초에 남편 친구로부터 카톡 사진 7장이 날아들었다. 철인 삼종경기를 치르고 아내와 찍은 사진이었다. 한 컷 한 컷 손으로 넘길 때마다 거친 숨소리와 내면의 투쟁이 느껴지는 것 같아 뭉클했다. 비장함, 자랑스러움, 그리고 승리한 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표정 뒤에 일상을 쪼개어 연습을 해 낸 그 노력에 박수쳐 주고 싶었다.

남편의 댓글은 “큰 일 했네. 존경한다.”였다.
친구 사이에 이런 말이 쉬울까?
그런 댓글을 달아준 남편의 마음 한 켠에
아쉬움, 부러움 등의 마음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친구들 곁에 머물고 있는 남편임을 알기에 왠지 쓸쓸함도 느껴진다.

남편은 한창 시절  마라톤 광신도였다. 경기 열리는 곳 마다 동료들과 우루루 몰려 다니며 죽을만큼 뛰어 완주한 기억을 푸르른 시절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고 뒷 풀이로 동료들과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먹고와 마라톤을 왜 하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몸 상할까봐 잔소리도 많이 했었다. 동료들과 함께한 그 시간들이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다 포기하고 가족들을 챙겨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수없이 부대끼고 외로웠으리라!

여보!
잘 ~ 버텨줘서 고마워!!!



                              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슨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길>,[쓰러진 자의 꿈],창비,1993

#사진 한 장#60세 생일#철인삼종경기#마라톤#길#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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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가는 길 !
눈길이 머문 길 위의 사람들 풍경입니다.

내리막길
라임칼러 형광 빛 스포츠 웨어, 검정 바이킹 반 바지 차림의 백인 남성이 신나게 질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옵니다. 자전거 못타는 저에게도 열린 조수석 바람을 타고  경쾌함이 전해집니다.  볼때마다 신기합니다. 두 바퀴가 통통한 삼각형 모양 사람도 잘 버텨주는 걸 보면 말입니다.

좌회전을 하고 직진을 하다 신호등이 걸리네요. 무작정 횡단보도를 건너려하는 불독 한 마리와 안전하게 보도블럭 위로 끌어 올리려는 견주와의 실랑이로 우회전 하려는 차량들이 잠시 기다려 줍니다. 일요일 아침은 개들에게도 바깥바람 여유롭게 쐬며 주인과 룰루랄라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황금시간이지요.
무조건 직진 하려는 걸 보니 활달한 녀석인가 봅니다. 저희 집 개 두 마리도 성향이 정 반대입니다. “Sit”을 외쳐도 그 자리에 주인 말을 듣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튀어 나가려는 녀석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주유소 입구로  한 무리의 오토바이족들이 몰려 듭니다.
값비싼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는 아니더라도 나름 성능 최고 오토바이를 끌고 잠시 휴식하는 저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궁금해 집니다. 가죽 옷에 팔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지만 지나가며 보니 젊은이들이 아닌 중년을 훌쩍 넘은 분들이네요.^^
마음은 푸르른 청춘 어느 시절에 머물러 있겠지요. 무탈하게 집으로 귀환하시길 …

세 번째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을 때
산책을 나온 운동복 차림인데 쥐고 계신 스마트 폰에 연신 손가락을 눌러대고 있는 걸 보니 누군가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있나봅니다.
저렇게 걸으시다 사고 나지 않을까 괜히 걱정이 드네요.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스마트 폰 으로 인한 길 거리 사고를 막으려 공공 미술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이곳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싶네요.

네 번째 신호등을 만났을 때 학교 운동장만한 크기의 캐톨릭 공동 묘지가 보입니다. 항상 이 시간에 알록 달록 꽃을 싣고  히스패닉계 차량이 입구에 기다립니다. 흰 국화 꽃도 보이는 걸 보니 가을이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는 것  같네요. 그들의 망자를 대하는 모습은 꼭 슬프기만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살아 생전 망자가 좋아하는 꽃 몇 송이 사들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서로의 얘기를 나누며 부담없이 즐기는 것 같습니다.

학교 성당 입구 키를 훌쩍 넘은 옥수수대와 해바라기가 반겨주네요. 일주일만에 어쩜 저렇게 쑥쑥 잘 크는지 신기합니다. 다음 주 할로윈이 있어 호박 쇼핑하러 오는 차량들이 농장 안으로 들어가네요.

성당 입구 게이트에서 일찍 나온 경비원이 반갑게 손짓하며 차단기를 올려주네요. 매 주 얼굴이 바뀌는 걸 보면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는 가 봅니다.

이렇게 집을 출발해 다니던 성당까지 오는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제 글감의 조연으로 등장한 그들도 자신의 자리로 돌어가면 주인공의 삶을 살겠지요.이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 감사한 일요일 아침 이었네요.❤️

#일요일 아침# 자전거 타는 사람# 개와 견주# 오토바이족# 공동 묘지# 옥수수대# 성당#길 위의 사람들#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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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끗 희끗 머리에 서리가 온 듯하고 축축 파마가 풀리기 시작하면 버티다 가는 곳이 미장원이다.

공공의 장소지만 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앉아서 서비스를 기다리는 손님의 숫자만큼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다르고 처지가 다르고 연령도 다양하고 인종도 다양하다. 마치 옛날 빨래터에 온 동네 여인들이 식솔들 빨래를 두들기며 왁자지껄 자신들의 사는 이야기를 풀어 놓고 해소하고 쓸만한 정보를 얻어가는 특별한 공간처럼 말이다.

몇 시간을 머리에 롤을 말고 앉아 있다보면 당연히 옆 사람과 간단한 얘기가 오고 가고 마음이 맞는다 싶으면 몸을 좀더 기울여 상대의 이야기를 내가 열심히 듣고 있다는 몸짓을 취한다.

미장원 가운을 골라 입고 민낯의 얼굴을 마주 하고 있으면 모두가 평등해 보인다.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면 상대의 개성이 여과없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오늘도 파마약 냄새 맡으며 흘러 나오는 노래 소리에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중년의 여자 손님 목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려왔다. 눈을 떠 그곳을 바라보니 백인 남편과 나란히 앉아있는 까만 단발 머리의 중년 여성이 보였다.

‘영어가 유창한 걸 보니 한인 2세인가?’

잠시후 빈 의자가 있는 내 옆으로 그녀가 왔고
처음 만난 그녀에게 목소리가 너무 좋다며 말을 건넸다. 이렇게 별 뜻없이 시작한 대화는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짧고 강렬하게 펼쳐 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들은 내용을 짜집기하며 열심히 머리속에 블록쌓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 아이들, 자신의 직업, 소신, 요즘하는 일 …등등
고구마에 주렁 주렁 달려 나오는 생각지 않은 굵직한 얘기들이 민낯의 그녀를 다시 한 번 쳐다보게 했다. 적당히 추임새도 넣어가며 그녀의 이야기에 나 역시 몰입해서 들었고 그녀의 굵직한 삶이 남자로 태어 났으면 훨씬 좋았겠다 싶었다.

그녀와의 대화중 인상 깊었던 세 가지는
이것이다.

첫째, “고양이는 호랑이를 절대 키울 수 없다.” 이 말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 나왔을 때 나는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자식의 성공을 무기로 나를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어리석은 젊은 엄마 시절의 내 모습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둘 째 ,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의대 공부하는 아이들의 힘듬을 함께 나누고자 50세대 변호사 공부를 시작해 변호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많지만 직접 자식의 힘듬을 공감하겠다며 실천에 옮기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있겠나!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리며 헛헛한 중년을 엉뚱한 곳에 쏟는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
고정 관념을 깨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그녀의 뒷 모습에 어느 자식이 힘들다고 포기하겠는가?

셋 째, 머리를 건강하게 길러 어린 암환자들에게 줄 머리를 도내이션 하신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건강하게 모발을 잘 관리해 기부한 머리카락이 예쁜 가발이되어 암 환자 아이들에게 보내지고 그 가발을 쓰고 찍은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하신다.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훨씬 행복함을 알고 계신 분이셨다. 그녀는 남은 시간을 세상의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했다.

짧은 시간 의외의 장소에서 나이를 잘~  살아낸 성숙한 어른 한 명을 만난 기분이 들어
꼼짝없이 앉아 있던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새로운 길을 내고 열심히 소신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에게 화려하지 않아도 특별함이 있다.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에게 몸에 베인 태도는 겸손으로 드러난다. 배나 사과 크기의 능력을 가진이들이 앵두 크기로 낮아질 때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을 사회의 낮은 곳으로 환원하고자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신앙을 가진 나도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일상에서 결코 만나 볼 수 없는 사람을 미장원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만나 짧지만 강한 인상으로 내 삶에 조연으로 등장한 그 분들께
고맙다는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해드리고 싶다. 너무 바빠 볼일은 없을테지만…^^


#미장원#목소리#끌림#대화# 고구마 줄기#고양이•호랑이#본보기#가발#암환자#약자##겸손#조연#잘 산 어른#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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