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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에 소리없이 끼어들었을까?

내가 잘나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내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들렀 던 많은 간이역마다 멈추지 않고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들을 떠올려 본다.

가까이 나의 가족이 있고 공동체의 주변 어르신들도 계시고 친구들이 빈 공간을 채워주고
동료가 내민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내기도 했다.

이 태주 시인에게 외 할머니가 계시다면
나에게 친 할머니가 그 역할을 해 주신 분이시다.

어렴풋한 내 유년의 시간을 지나 결혼을 하기까지 친 할머니는 포근한 쿠션이 되어주신 분이시다. 영아 때 언니를 묻고 3년이 지나 내가 태어 났다. 일찍 혼자되신 친 할머니는 손 귀한 집 손주 태어난 것 마냥  기뻐하셨다고 하신다.

모성이 둘이 될 수 없듯 엄마보다 친 할머니 품에서 더 오랜 시간을 지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말싸움이라고 날때면 어김없이 친 할머니 편을 들어 엄마를 서운하게 했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영정 속 잘 생긴 친 할아버지 자리에 날 끼워 넣기 하시며 사셨던 분이시다.

어렸을 적 엄마는 어설픈 내 눈에도 알뜰 살뜰 살림 잘하는 며느리는 아니셨다.선비같이 꼿꼿한 할머니와 나약한 자아를 가진 엄마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젊은 엄마에게 할머니는 두렵고 무섭기만한 존재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 와중에 젊은 아빠는 중간자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했었다. 오히려 그 애매한 비 무장지대에 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이웃의 손자•손녀가 학교가는 모습이 부러우셨던 할머니는 준비도 안 된 나를 억지로 1학년으로 밀어 넣으셨다. 방과후 따뜻하게 나를 맞아 준 사람도 할머니셨다. 쪽진 머리 비녀 꽂고 앞 치마 질끈 동여맨 키가 큰~ 할머니!

무슨 이유인 지 알 수 없으나 부모님은 남 동생만 데리고 먼 곳으로 이사를 나가셨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 곁에 껌딱지처럼 남겨졌다.
가끔 아빠가 돼지고기 몇 근 끊어 둘둘 말아 손에 들고 할머니를 찾아 오셨다. 어김없이 그날 저녁에 맛있는 김치 찌개가 밥상 머리에 올라 왔었다. 그런데 맛있게 잘 먹고 다음날부터 며칠 간 끙끙 앓았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도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몸이 먼저 알아챘 던 것 같다.

할머니 발길 닿는 곳 마다 영문 모르고 따라 나선 적이 많다. 가까운 마실 나가실 때,
놀러 가실 때 , 친척집 방문 하실 때 등등…
나를 방패삼아 당신의 고단한 삶을 그런 식으로 풀고 사신 것 같다.

먼 곳으로 다닌 고등 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까지 할머니는 든든한 나의 보디 가드셨다.내가 휘트니 휴스턴처럼 능력많은 사람도 아닌데 나만의 케빈 코스트너가 되어 주셨다.
이른 결혼으로 그 역할도 마침표를 찍으셨다.

또래보다 애 어른 같은 내 성격도 어쩌면 할머니곁에 머물 던 유년시절에 형성 된 것 같다.겉은 아이인데 어렴풋이나마 사람들의 오고 가는 마음들을 예민하게 느꼈던 것 같다.

답답하실 때 입에 무시던 기다란 곰방대 생각이 난다. 잎 담배 자른 것을 꾹꾹 누루고 불을 부치고 한 잎 길게 들이키면 공기 중에 퍼지던 흰 색의 연기 주머니!
당신의 고단한 삶을 모락 모락 담배 연기에 띄워 보내고 계셨으리라!

할머니의 쪽진 머리가 짧은 컷으로 바뀌던 날
어색해 하시는 모습 속에 낯 선 여인 하나가 내 앞에 떡 버티고 서 계신것 같았다. 그 생경함과 묘한 흥분을 뭘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 할머니도 여자 였구나!’하며
가슴으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항상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사진한 장이 있다. 동네 어른신들과 봄 맞이 꽃 구경가서 찍은 단체 사진이다. 찐한 연 분홍 철쭉 옆에 대략 10분 정도 되시는 할머니들이 화사한 옷 차림으로 활짝~ 웃고 계신 사진이었다. 키가 크신 할머니는 맨 뒷줄에 서서 이를 드러내며 정말 환하게 웃고 계셨다.

내 남편 내 새끼 챙기느라 발 동동 구르며 앞만 보고 달려가던 어느날 할머니가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전갈을 받았다. 쌀쌀맞고 무심하게 넘긴 내가 할머니를 찾았을 때 이미
정신줄을 놓고 계셨다.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나는 할머니와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다. 할머니의 체온이 뚝뚝 떨어질 때 마다 내 마음과 멀어지고 계셨다.
한 칸씩 한 칸씩 그렇게 이승의 연을 놓고 계셨다.

배은 망덕하게도 할머니 사랑 독차지하며 자란 나는 받았던 사랑을 온전히 이웃과 나누고 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글로라도 할머니를 기억해 드리고 싶었다. 빚진 마음 탕감 받는 기분으로 말이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할머니가 끓여 주시 던 팥 칼국수 한 그릇 먹고 싶어 진다. 따끈한 온기와 사랑 가득한 눈길이 그리워 그런가 보다.

먼 이국 땅에서 내 머리에도 어느새 희끗 희끗 서리가 앉기 시작했다.

내 안의 내적 자산이 되어 내 유년의 기억을 풍성하게 해 주신 분 친 할머니!
이 글을 끝으로 그분과의  추억을 떠나 보내려 한다. ‘할머니 감사했어요,진심으로…’

# 그림자를 꿰매주는 사람들#친 할머니#곰방대#커트#팥죽#철쭉 #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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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가신 엄마가 장녀이고 아래로 여동생 두 분이 계신다.

어릴 적 방학이면 늘상 찾아간 둘째 이모 집!

큰 집도 아니었고 살림살이가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유독 둘째 이모 집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늘~붐볐다. 맛있는 먹거리와 또래 사촌 동생들이 부족함을 메꾸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이모가 내 엄마 였으면 좋겠다.’하고 못된 상상을 한 적도 있다. 딸의 눈에도 엄마는 살림에 재능이 없으셨다. 반면에 이모는 없는 살림에 알뜰 살뜰 식솔들 잘 ~ 살피고 뚝딱하면 근사한 한 상 차림이 나왔다. 나도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이모같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다.

결혼 생활을 하고  내 발등에 불끄기 바빠 자주 찾아 뵙지 못했지만 해 마다 이모 집에서 거르지 않고 치르는 행사가 있었다.
바로 김장 담그기다.

엄마 집, 막네 이모, 결혼해 객지 생활하는 자식들, 그리고 본인 먹을 김장을 이모 집에서 한 꺼번에 며칠에 걸쳐 담그는 고된 일정이다.

산 더미 같은 배추가 앞 마당에 높게 쌓이기 시작한다. 이모 지휘아래 품앗이 하는 동네
이웃 몇 몇과 막네 이모가 힘을 보태
배추 숨을 죽이고 물 빼고 젓갈 넣어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셔 맛있는 김장 김치를 담근다.
내 눈에 축제처럼 보여졌다. 중 노동하시는 그 분들 몸 상태는 아랑곳 없이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침이 꼴깍 넘어간다.

미국으로 건너와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로 정신없이 살다가 10년 만에 남 동생 결혼으로 잠시 한국을 찾았다.  아프신 엄마를 대신해 ‘팥죽’이야기를 했더니 바지런하신 우리 이모는 벌써 가마 솥에 팥 삶고 밀가루로 반죽해 칼국수를 만들어 먼 길 왔으니 먹고 가라며 한 상 차림을 해 주셨다. 당신 딸도 아니고 조카 딸 왔다고 이리 신경을 써 주니 좋으면서도 목이 메였다. 너무 고마워서…

주부들은 알 것이다. 결혼 생활 시작과 함께 내 밥그릇 챙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렁 각시라도 나와 내 대신 세 끼 밥좀 챙겨 줬으면 하는 생각도 자주 했을 것이다. 젊은 나도 이렇게 귀찮아 하는 데 이모는 노년의 몸으로 싫은 내색 하나없이 그렇게 빨간 팥죽을 끓여 주셨다.

몸이 아파 수술하러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수술한 몸으로 지방 병원에 입원한 친정 엄마 를 보러 내려 가야했다. 그때도 아프지 말라며 사주신 ‘생합죽’을 엄마도 나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다시 서울로 올라 갈 시간!
고속 철도 매표소까지 따라 오시며 입구를 통과해 걸어가는 내내 이모의 시선이 따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뒤덜아 섰을 때 이모는 그 자리에 그렇게 서서 걸아 들어가는 내 발길과 함께 시선도 따라 오고 있었던 것이다.
목덜미에 전해지는 따끈한 시선이 늦 가을 찬 바람의 으스스함을 날려주고 있었다.

가을 향 솔솔 나는 초입이다.
11월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이모집 마당에서 김장 담그기는 또 시작될 것이다.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아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이웃에게 보물처럼 택배에 실어 이모만의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줄 것이다.
‘이것 먹고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하는 당부의 말과 함께…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사람으로 남고싶다.


#둘째 이모#알뜰살뜰# 팥죽#생합죽#김장김치#따뜻한 사람#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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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고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 보며 며칠 전 돌이 지난 조카가 떠올랐다.

인생 후반전에 들어선 내게 만약 지금 한 살짜리 조카를 키우라는 미션이 주어지면 잘 키워낼것 같은 엉뚱한 자신감이 들었다. 실수는 최대한 줄이고 아이의 능력은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  어설픈 젊은 엄마를 둔 우리 집 두 아들들의 불평섞인 목소리도 함께 들리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성장시키며 내가 뼈저리게 후회하고 미안해 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로 아이들이 스스로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았다. 특히 큰 아이에게 심했다. 하던 일이 잘못되면 혹시 그 부분이 부족해 그런건 아닐까? 하며 미안하기도 했다.

당시 젊은 엄마인 내 욕심이 저만치 먼저 앞서고 아이는 출발선에서 할까 말까 고민하며 발도 떼지 못하고 항상 엉거주춤 서 있는 모양새였다.

이웃 엄마의 부추김, 아이를 잘 키워 나의
낮은 자존감을 보상받고 싶었던 미성숙했던 내 마음, 내 아이만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등등…이 모든 것들이 범벅이 되어 큰 아이의 어깨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식하게 얹어졌다. 엄마 노릇  이만하면 잘 하고 있다고 나름 자족하면서 말이다.

둘째, 아이의 발달 상황과 마음 자리를 살피지 못하고 늘 성공한 어느 미래에 촛점을 맞추고 현재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했고 즐기지 못했다.

아이의 잘 하는 면을 더 강화 시켜 줬다면 자신감과 자신의 개성을 더 빨리 찾았을 지 모르겠다. 어릴 적 미술학원을 빠져 나온 아이의 표정을 보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실컷 돈을 주며 아이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키고 있구나!’싶었다. 그당시 나의 분별력도 꽝이었고 아이도 순둥이라  상태는 더 심각했지만 그만 둘 용기는 생기지 안았었다.
아이가 행복해야 할 시간을 나는 돈을 주어가며 빼았은 못된 엄마였던 것이다.

셋 째, 아이만 성장시켰지 아이와 함께 엄마도 공부하며 성장해야 함을 간과하고 살았다는 점이다.

누구의 아내 , 엄마로서의 역할은 열심히 하고 살았지만 단 30분도 나를 위한 시간을 끼워 넣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 결과는 뻔했다.
내 작은 틀에 아이를 낑겨 넣기 바빴고 잘못됨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해결책을 찾으려 고민하려 들지 않았었다.

어설픈 젊은 엄마의 시행착오 쳇 바퀴 안에서 그래도 잘 자라 자신의 몫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요즘은 나 역시 잘 늙어 가기 위해 마음 공부 중이다. 재수없으면 백살? 이라는 농담섞인 진담을 들으며 존재감 잃지 않고 인생 후반전좋은 이웃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밑천 떨어지지 않게 충전 열심히 하며 풍성한 열매로 성숙하게 익어가고 싶다.

#엄마의 반성문# 실패할 기회#아이만 성장#마음 공부#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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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캘리포니아에 비가 내렸다.
물기오른 나무들 공기에 묻혀 날아 든 허브향이 상큼하고 풍요롭다.

일하는 매장 가까이 공원이 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꼬맹이들 초등학생들
축구 경기를 한다.온 가족이 편안한 옷 차림으로 쓰던 의자에 걸터 앉아 점수에 상관없이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준다. 언제봐도 기분 좋아지는 장면이다. 과정을 지켜봐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큰 재산인가!

축구에 진심인 히스패닉계 부모님들이 특히
더 열성적인 것 같다. 아이들 일정을 챙기고 먹을 것들 준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을 그들의 아침 풍경이 그려진다. 미국 여자 축구의 기본은 이렇게 넓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기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소소한 아이들 일정에 경찰차도 보이고 꽉 찬 주차장 차량만큼 봉사자로 참석한 아빠, 팀내 아이들 먹을 것 챙긴 엄마, 손주•손녀 보러 시간을 내 참석한 할머니•할아버지 …이들 모두 커뮤니티의 한 구성원으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고마운 눈들이 되어주고 있다.
#비#축구#가족#커뮤니티#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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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데 만날수록 깊이가 있는 사람이 있다.
선인장을 볼때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걸까?

우리 집 담을 버팀목 삼아 나무 처럼 보이는
5년된 선인장이다.

햇볕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자그마한 화분에서 기르다 옮겨 심었는데 어쩌면 저렇게 쑥쑥 잘 자라던지 참 신기했다. 물을 준 기억도 많지 않고 거름을 챙겨 준 적도 따로 없는데 선인장이 우리에게 준 혜택은 많다. 정말 가성비 갑이다.

봄에는 노란빛깔 꽃이 햇빛을 향해 활짝  피었다가 저녁이 되면 다른 여느 꽃들처럼 오므린다. 색깔이 얼마나 선명한 지 한번 보고 또 보게된다. 선인장 겉만 보며 어찌 저런 빛깔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작년 이맘때쯤 선인장 열매를 따 독한 보드카 섞어 담근 술이다. 색이 참~ 곱다.

장갑끼고 안전 장치를 하고 따도 잔털 선인장 가시가 무수히 박힌다. 이탈리아쪽 해안가 주변 주민들은 그 자리에서 열매를 잘라 먹기도 하던데 막상 상상과 다르게 씨가 촘촘이 박혀 잘못 깨물었다가 치과 비용이 더 나올 것 같았다.  남편의 저녁 반주로 가끔씩 밥상에 올라 분위기 살리는 효자 아이템이다.

초록 선인장을 설탕에 재고 몇 달 두면 알로에 처럼 끈적하고 투명한 효소를 얻을 수 있다. 음식할 때 혹은 음료 대용으로 물에 희석해 마시기도 했다. 공동체 모임때 소독한 병에 담아 나눠 드렸더니 인기 짱이었다.

마트에 가면 커다란 병에 피클형태로 만들어멕시코 음식 먹을 때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주변에 연한 잎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잘라
우적 우적 씹는 모습도 본 적있다.

음식 문화에 따라 선호하는 형태는 많이 다르지만 가시 많은 선인장이 인간의 지혜를 만나
삶을 두루 두루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사람 노릇 제대로 못하면, ‘에이, 개만도 못한 인간 같으니라구!’하고 말할 것이 아니라
‘에이, 선인장만도 못한 인간  같으니라구!’로
바꿔 말해 보면 어떨까?^^
#선인장# 선인장 열매# 선인장 꽃# 여린 잎선인장 # 멕시코 음식#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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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7년차 인생 후반이 되어서야 가족 입맛을 찾아 밥상머리가 풍성해졌다.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든다.

당연하게 받아만 먹던 철부지 시절을 지나 나눔이 즐거운 철든 어른으로 한 발짝 옮겨가는 중이다.
오늘 저녁은 대패 삼겹살 하나면 충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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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지금 물 끓는 온도다.

불 옆에 가까이 가기가 싫을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힌다. ‘우렁 각시라도 와서 삼시 세끼 해겨해 주면 딱~ 좋겠다.’ 더위에 지친 가족들 입맛 당길 메뉴를 고민하다 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한 번 고생하면 일 주일 반찬 걱정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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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입양한 털딸 ‘레아’다.
셰퍼드와 허스키 믹스로 둘째가 친구들에게 받은 위로의 생일 선물이다.

2월과 4월 키우던 아빠개 ‘천둥’이와 엄마개’소리’를 각각 간암과 카요티 떼 공격으로 잃고 혼자 남은 아들 진돗개 ‘바람’이의 우울감과 분리 불안증 때문에 입양을 결정했다.
둘째 친구들이 상심에 빠진 친구를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준 강아지다.

아가씨가 잠을 참 ~ 험하게 잔다.^^

데려온 첫 날은 낯설어 구성진 울음으로 아침을 설치게 하더니 며칠 지나 제 집처럼 잘 적응해 고마웠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활달해 잘못하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지도 모르겠다.

에너지 몽땅 채워 달릴 때 보면 기가 찰 정도로 빠르고 잽싸다. 예민하고 소심한 바람이와
사람 좋아하고 활달한 레아를 보면 마치 농촌 총각 도시 처녀 컨셉같다. 앞만 보고 직진하는 ‘고고형’ 레아와 워워~하며 뒤를 챙기는 ‘워워족’바람이의 달콤 쌉쌀음한 동거가 순풍을 달고 항해 중이었다.

높은 곳은 왜 그리도 좋아 하는 지!

넓은 제 집 놔두고 야외 식탁 위에서
아침은 저 포즈로 아래를 내려다 보고
밤에는 하늘을 향해 벌렁 드러누워 시원한
밤 공기와 풀 벌레 소리 자장가 삼아 잠이든다.

그런데 8월의 일요일 새벽 비명소리와 함께
그 자유와 낭만도 끝이났다.

왼쪽 앞 발쪽이 심하게 찢어져 응급실을 찾아 수술을 해야 했고 강제로 집 안에서 심심한 표정 온갖 말짓을 하며 3주 째 치유 중이다.

너무 비싼 수술비용에 아들과 내가 화들짝 놀랐다. 어쩌겠나…

밖은 며칠 째 펄펄 끓는 물 온도다.
저 모양새로 남아도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 집안 나무들 이빨로 강제 이발을 시키고 밖에 물 소리가 나면 장난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가장 난감할 때가 부엌에서 일할때다.
놀아달라며 물기도 하고 제법 컸다고 씽크대에 앞발 올려 놓고 ‘뭐 맛있는 거 없나.’하는 표정으로 킁킁대고 …심할때 파리 채로 위협을 해 오지 못하게 말리기도 한다. 그래도 껌딱지 마냥 쫓아 다닌다.

‘엄마~ 놀아 줘.
물 주세요.
밥 주세요.
왜 나만 혼자 두는 거야!
아~ 심심해.
언제 나갈 수 있지?’

눈칫껏 알아서 인간 엄마가 털 딸을 위해
열심히 시중들고 있는 중이다.
상처가 잘 ~ 아물기를 바라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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