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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매트릭스 3'<겨울비(Golconde)>(1953)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피레네의 성(Le chateau des Pyreness)>(1959)

<올마이어의 성(Almayer's Folly>(1951)

권오광 감독의 <돌연변이>

CBS 방송사 로고

비틀즈의 사과 앨범

영화 <The Exorcist>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빛의 제국>

 

 

등등 , 이 정도 힌트면 아실 까요? 맞습니다. 

벨기에 레신 출신의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입니다. 그의 얼굴은 자세히 모르지만 중절모를 쓴 익명의 신사의 모습으로 한 번쯤 접하셨을 겁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장르 불문하고 재미난 영감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의 아버지는 양복점을 경영하였고, 결혼 전에 모자가게를 경영하셨 던 어머니 사이에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14살 사춘기 시절 (1912년), 오랜 우울증에 시달리 던 어머니는 샤틀레르의 샹보르에서 투신 자살한 채 발견됩니다. 어머니의 시신이 강으로 인양되었을 때 셔츠로 얼굴이 덮혀 있었다고 해요. 조류 때문이지 아니면 당신 자신의 선택이 옳지 못함을 알고 계셨던 지 그의 그림에 천으로 덮혀진 인물들이 한 동안 등장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영향은 20년대 후반의 몇몇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Georgette at the Piano>,1923/Total History

 

 

화가로서의 출발은 1916년 들어간 브뤼셀의 미술 학교에서 시작됩니다. 1921년부터 한때 세계적으로 유명하 던 벨기에의 벽지회사 UPL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됩니다.  1920년 중반까지 순수미술에 빠져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림 속 작품은 아내인 조제트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입체주의 스타일로 그린 초기 작품입니다. 아내인 조제트를 10대 마을 축제 때 만나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6년간 못 만났다 우연히 재회하며 1922년 결혼을 하고 마그리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고 합니다. 물론 마그리트가 유명해지기 전까지 아내인 조제트가 미술용품점에서  일하며 거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요. 그의 뮤즈이자 후원자 조력자를 든든하게 둔 덕분에 그의 작품 속에 조화로운 유대감이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시대의 다른 여러 화가들처럼 처음에는 인상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화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점차 미래파 화가들의 작품, 특히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으면서 그림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사랑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어둡고 탁한 건축물에 갑자기 나타난 석고상과 고무장갑 그리고 초록색 공까지 이런 이상한 조합과 심오한 분위기의 작품을 보고 마그리트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입니다. 바로 "데페이즈망(depaysemetn)"입니다. 프랑스어로 '추방'을 의미합니다. 사물을 익숙한 장소에서 낯선 장소로 '추방'시켜 사물의 원래 쓰임새를 무너뜨린 다는 말이죠. 전혀 관련 없는 것을 엉뚱하게 조합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둠으로써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 방법입니다. 

 

 

마그리트와 조제트는 3년 동안 파리 근교의 페로 쉬르 마른느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여기에서 파리에 화랑을 연 괴망스의 중재로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미로(Joan Miro), 달리(Salvador Dali) 등이지요. 그는 초현실주의 모든 활동에 가담하였고 "초현실주의 혁명"의 출간에도 힘썼습니다.  이 잡지의 마지막 호에 자신의 회화적 이상을 확실하게 선언한 '단어와 이미지'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요. 비록 뜨겁지도 소원하지도 않은 관계였지만 마그리트는 죽을 때까지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그리트는 자신의 회화관에 충실하여 그의 회화적 독자성을 지켜갑니다.

 

 

 

파리의 초 현실주의자들의 대열에 참여한 지 2년 후인 1929년 12월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기관지로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가능케 해 주었던 "초 현실주의 혁명"에 초현실주의에 대한 그의 주요 공헌이라 할 만한 글을 발표합니다. 이 잡지에 발표한 "단어와 이미지"라는 글에서는 18개의 작은 컷으로 이루어진 경구적이 짧은 내용을 언급한 네모난 구획의 작품을 다루었고요. 여기에서 "대상은 그 이름이나 이미지가 가지는 똑같은 기능을 결코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The Treason of image>,1929/wikipedia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품 <이미지의 배반,1929> 입니다.

"분명 그림에 있는 물체는 파이프임에도 불구하고 르네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궁금합니다. 아니 왜? 하면서 말이죠. 르네는 "이것이 진짜 파이프라면 당장 여기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워보아라."라고 말합니다. 그의 발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지요. 그는 미술의 본질과 사물의 본질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 작품은 파이프의 이미지를 그린 것뿐이지 아무도 이 그림을 가지고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라면서 말이죠. 현실과 묘사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고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고 환상일 뿐 조작된 것이라는 얘길 합니다.

 

 

이런 강력한 선언은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작품의 특성에 대하여 정확한 개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확실하게 믿고 있는 대상들과 그것들의 이름과 의미와 기능에 있어서, 그 관계는 실제로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미약하다는 인식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전쟁이후 기존에 것에 반발하여 '파괴'에 포커스를 두었던 다다이즘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예술 파괴운동을 수정, 발전시키고 비합리적인 잠재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하는 초현실주의 예술 운동이 나타납니다.  초현실주의 예술의 중심은 무엇보다 파리 문필가인 브르통, 아라공, 에드와르, 아르쿠르에 의하여 구성되었고 그 중심적 내용은 꿈과 욕망의 세계를 해방시킴으로써 예술과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동기술법(aitp, atos,)"을 채택하게 되고요. 가장 힘든 것은 자동기술법적 과정들이 조형 예술가들에게는 가능성의 한계로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화가들은 그들의 회화작업의 중요한 원천으로서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세계를 충실히 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다른 초현실주의 자들과는 달리 꿈과 욕망이 그의 회화의 기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오브제를   엉뚱한 공간에 추방시키면서 관객들에게 낯섦을 주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이 때문에 그와 브르통 사이의 관계는 항상 미약했으며 거리감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완전한 결별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요. 또한 이 지점이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그를 구별 짓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세대를 거듭해 인용되고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The Son of Man>,1964/wikipedia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그리트는 마치 광고언어처럼 인접성과 유사성에 의해 대상들 사이에 세워진 연상작용에서 모든 가능한 조각을 뽑아내어 이 개념적 조작을 점점 더 세련되고 복잡하게 만들어 나갑니다. 근접성에 의하거나 또는 대립에 의한 사물들이 가지는 관계성을 지속하면서, 사과나 태양과 같은 둥근 모양으로 사람의 머리를 대신하게 하거나,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잎맥 위에 새들을 앉힌다든지 하여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엉뚱한 결합을 통해 다른 사물로  대상을 변형시킵니다. 

 

 

 

마그리트는 중절모와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의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똑같은 옷차림에 개성은 1도 없어 보이죠. 경직되어 있고요. 사과도 놓아 보고 ,비둘기로 가려보고, 빵빵하게 부풀려도 봅니다. 궁금증도 덩달아 커져갑니다. 무얼 의도한 걸까 싶어서 말이죠. 마그리트는  어울리지 않은 사물이나 자연물을 합쳐 새롭게 하거나 크기나 위치의 변화를 통해 낯선 느낌을 시도합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만이 할 수 있는 엉뚱한 시도들이죠. 덕분에 관람객들은 고개를 갸웃 둥 하면서도 작가의 기발한 생각에 무릎을 탁 치기도 합니다. 친숙한 대상을 생소한 장소에 놓으면서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죠. 상식과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고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거죠. 작가들이 주는 선물인 셈이죠.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튀고 싶어 안달란 예술가들과 달리 평범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절모를 쓴 익명성에 자신을 투영한 거죠. 우리 역시 그 익명성을 지닌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 자신을 작품에 기꺼이 투영할 수 있는거고요. 

 

 

 

마그리트의  이미지는 마치 은유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은유는 시적인 본성을 지니지요. 이미지들은 가끔 불안정하지만 다른 초현실주의 자의 이미지처럼 무섭게 소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어떠한 비극적 신념도 현실과 신비 사이의 경계 없는 연속에 의해 와해시키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v3C5oBeGM

 

 

 

 

 

 

 

1930년에는 다시 부뤼셀에 정착하였으나 파리의 그룹과는 계속적으로 접촉하여 1934년 "초현실주의는 무엇인가"라는 브르통의 책 표지에 '폭력'이라는 작품을 실었습니다. 또 1937년 '미나 타우로' 10호의 타이틀 표지에 작품을 실고요. 또한 여러 다른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에도 참여하여 뉴욕에서 그의 첫 전시를 개최합니다.

 

 

 

<The Voice of Space>,1931/wikipedia

 

 

 

마그리트의 회화는 친숙한 대상들과 재현된 대상들 사이에 비정상적인 관계를 만듭니다. 객관적인 방법에 의한 세부 묘사에 따라 재현되고요. 화면을 꽉 채운 커다란 종이 현실에 가능할까요? 마치 UFO가 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저 커다란 종을 소리 나게 하려면 바람도 힘이 세야 할 것 같고요. 평온한 들판에 묵직한 쇳소리가 깊은  정적을 깰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기 중에 떠 있는 거대한 종들은 20년대 말기의 마그리트 작품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그는 사물의 음향적 속성을 이용하여 시적으로 바람의 속삭임을 표현한 거라 말합니다. 

 

 

 

 

 

<여름>, 1939/Pinterest

 

 

실제로  창문의 개념으로서의 회화론은 르세상스 시대부터 서구회화의 기원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의 창문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많은 그림들에서 보이는 시각적 내용의 주제는 중재역할을 맡은 문 또는 창문입니다. 다른 대상  즉 전환적 요소를 통하여 나타나는 실내와 실외 사이의 관계를 신비스럽게 합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 마그리트는 전이와 변형의 효과로서 그림을 제작합니다. 열린 문을 통하여 슬그머니 구름이 방 안으로 스며들기도 하며, 화병이 창문 안에서 풍경으로 변화되고, 창문 앞에 있는 그림이 창문밖에 보이는 정경의 부분으로 그림 안에 재현되어 대치되기도 합니다. 거울 같은 은유와 무한 대까지 연장될 수 있는 회화와 시각의 본성에 대한 끝을 알 수 없는 사색을 다루고 있고요. 그려진 그림 속 존재하는 대상들은 "동시에 방 안에서, 그림의 안과 밖에서, 실제의 풍경 안에서 그려진 풍경으로서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똑똑 노크하고 들어온 구름 덕분에 빼꼼히 열린 문을 통해 바다를 보고 모래사장을 봅니다. 그저 그림일 뿐인 데 문틈사이로 삐집고 들어 온 빛처럼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1943년과 1948년에 그의 작품에 있어서 기존 작품과는 단절을 보이는 두 시기를 맞게  됩니다. 그 하나는 르누아르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르누아르의 마지막 시기에 그려진 여성 누드의 양식에 가까운 회화적이고 붓자국이 잘 드러나는 양식의 몇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전쟁으로 우울한 시기와 대비되는 밝고 부드러운 색이 돋보이는 자신의 이 스타일을 마그리트는 '햇빛아래 초현실주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원색의 따뜻한 붓터치가 일품입니다.

 

 

 

<보물섬>,1942/출처:생글생글- 한국경제

 

 

 

가장 힘들게 처리되는 전이의 방법들 중 하나는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혼성의 인간과 대상을 실험하고 변이의 현상을 다루고 있는 점입니다 . <붉은 모델> 실물과 똑같은 발가락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개인적으로, 오래전 장례식장에 인사하러 갔다가 발가락 양말 신은 중녀 남자분의 뒷모습에 절 하다 빵 터질 뻔했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사물은 기능적으로 관련된 다른 사물-사람의 발과 사람의 형태를 가진 옷과 신발들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는 형태적 유사성에 의해 혼동을 일으키는 전이형태로  담배로 변화하는 물고기 그림이 있지요.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고기로 대체되거나 물고기의 하반신이 담배로 대체는 등 그의 상상력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이러한 주제는 마그리트의 모든 작품에 뿌리 깊게 존재합니다.

 

 

 

 

 

 

 

 

<위대한 가족>,1947/Toute La Culture

 

 

 

 

"넓은 하늘 안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고 있는 새"라고 시인 앙리 미쇼는 이 그림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의 상호 경계선을 표현한 좋은 예들 중 하나입니다. 

 

창공을 나는 새인가? 새 모양의 창공인가? 헷갈립니다. 주변은 어두워 오는 회색빛인데 새 형상 안의 구름은 환한 대낮 같습니다. 다시 한번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하늘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통 새는 하늘을 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엄밀히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새는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람객은 으레 새를 떠올리지요.  이처럼 부재하는 것(새)이 실재한다(새 모양의 하늘)는 생각은 우리의 습관과도 같은 인식의 태도에서 연유합니다. 그의 이 작품을 통해 하나의 사물이 두 개의 사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인식 태도에 의문을 던지게게 합니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마그리트는 교묘하게도 아주 일상적인 사물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그렇기에 관람자는 의심 없이 감각기관을 이용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참'이라고 믿게 됩니다.  하나의 사물에 잠재하는 또 다른 성질 즉 이중성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The Empire of Light>,1950/MoMA

 

 

 

 

 

이처럼 밤과 낮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으로부터
우리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힘을 느낀다.
나는 이 힘을 시라고 부른다.
-르네 마그리트-

 

 

 

1948년부터 마그리트는 같은 주제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10개 이상을 그림을 그렸는데 그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하게 됩니다. 모든 작품은 <빛의 제국>이라는 공통의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작품에 보이는 것은 창문 안에서 발산되는 빛이나 실외에 있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가로등이 발산하는 빛에 의해 조명되는 잎이 풍성한 나무와 그 사이에 있는 집과 밀집된 건물뿐입니다. 이상한 것은 하늘인데, 밝고 부드러운 구름으로 덮인 대낮의 푸르른 하늘이 그림의 화면을 덮고 있습니다. 전기불빛이 주의를 끌고 있는 밤의 풍경과 양립할 수 없는 푸른 대낮의 풍경은 감상자가 주의 깊게 살필 때어만 인지되지요. 현실에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질 적인 두 요소가 모순이란 생각도 듭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 중 초현실주의에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 <빛의 제국>이란 이름으로 17점의 유화와 10개의 구아슈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그 물건 속에서 상징적 의도를 찾지 않지만,
그림을 볼 때는
그 용도를 찾을 수 없고
회화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되다.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 만한 것을 원한다.
안전하고 매달릴만한 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여 공허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상징적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시적 요소와 이미지의
신비함을 간과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신비함을 
감지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떨쳐 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라고 물음으로써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만약
신비함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다른 반응을 할 것이다.
다른 것을 묻게 될 것이다.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중에서-

 

 

 

 

<피레네 산맥에 있는 성>,1959/wikipedia

 

 

 

 

 

결코 우리가 찾을 수 없는 대상들을
나의 그림에 위치시키는 것

 

 

마그리트는 그의 그림에 가해진 때 이른 질책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합니다. 일상성 안에서 시적 효과를 해방시키기 위한 주요 메커니즘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절규하고 있는 친숙한 대상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상들의 일상적인 관계의 질서를 바꾸는 것이 필수적이다."라고요.  공중부양한 헬멧형태의 바위가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그 위에 성채가 있고요. 불가능한 이 상황에 SF영화를 떠올리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봅니다. 딱딱한 바위와 유연한 파도,  정적인 성채와 동적인 파도소리, 무거움과 가벼움 등 대립 요소를 그림 안에 부각해 긴장감을 주는 듯도 보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천연덕스런 마그리트의 상상력에 그저 웃습니다. 실현될 수 없는 백일몽을 뜻하는 프랑스식 관용어, '허공 위의 성곽'을 비틀어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돌덩이를 자주 등장시킨 1950년대를 마그리트의 '석기시대'라 하고요. 물리학자들이 이 그림 앞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집니다. 

 

 

 

 

 

 

 

<야간보초병의 방>,1959/DailyArt magazine

 

 

 

 

마그리트에 의하면 그림의 중요한 기능은 인식의 도구로서, "일상적인 방식과 다른 방법"으로 보도록 강요함으로 인해 시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림을 구성하는 일상적인 대상들이 초현실적인 성질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고요. 이렇게 하기 위한 여러 과정들 중 하나는 , 일상과 초현실 사이의 갈등 속에 숨어 있는 초월적이고 시적인 힘을 더욱 활동적인 것으로 만드는 거지요. 사물 사이에서 충돌적인 연상작용을 만들어 보는 거죠.

 

 

이런 효과를 성취하기 위한 메커니즘은 위쪽에 있어야 할 사물의 위치를 아래쪽으로 위치시키거나 그 반대로 하여 변화시키는 것이죠. 그 대상을 포함하고 있는 공간과 대상 사이의 비례의 관계를 변화시키기도 하고요. 이러한 조작의 목적은 모든 것이 항상 고정되어 나타나는 곳에 교환할 수 있는 대체물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시각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대상을 내포한 공간과 대상과의 비례의 교체가 가장 명확하게 표현된 작품들 중 한 예입니다. 이런 모순된 조작은 열린 공간의 실외의 사과와 주위 환경에서부터 고립되어 인위적인 방 안의 닫힌 공간 안에 있는 사과의 본성 사이의 대립으로 요약됩니다. 이 그림은 또한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던 그의 어머니가 그와 동생들을 작은 방에 가두었을 때 경험이라고도 하더군요. 공포에 떨고 작은 공간에 갇혀 있어 정신적 학대가 컸을 테지요. 그런 부분들이 그의 작품에 무의식적으로 표현되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The heartstrings>,1960/Arthive

 

 

 

 

 

꿈이 깨어있는 순간들의 또 다른 형태라면,
깨어 있는 순간들도 꿈의 다른 형태이다.
-르네 마가리트-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이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는 캔버스에 등장하는 사물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캔버스에 등장하는 대상은 유리잔과 구름, 그리고 산과 강이 있는 풍경입니다. 이 모든 요소는 누구나 쉽게 접하고, 느끼며, 볼 수 있죠. 그러나 그것들이 이와 같이 조합되는 순간, 각 사물이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어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구름이 얹힌 유리잔은 현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일종의 신비감까지 느껴집니다. 마치 소인국 풍경에 등장한 거인국 사물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저 구름이 셔벗 같아 한 술 떠먹고 싶은 상상도 해 보고요. 이러한 작품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는 유리잔의 크기와는 상관없는 듯합니다. 유리잔이 있어야 할 장소가 구름의 밑이기 때문에 당혹감이 느껴지는 거지요. 그러기에 익숙했던 유리잔이 정말 유리잔일까 하는 의문마저 듭니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이 물씬 풍겨 나와  낯설게 합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을 본래의 위치에서 떼어내 다른 맥락이나 상황에 놓아 충격 효과를 내는 것을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이라고 합니다.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이 "재봉틀과 우산이 병원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아름다움"이란 표현이란 글로 재미있게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낯설게 하기'가 가지는 심리적 요동상태를 잘 보여준 예입니다.

 

 

 

 

<표절>,1960/그린큐레이터

 

 

 

 

 

 

마그리트는 세계로 난 창과 종종 그 창을 대신해서 등장하는 캔버스, 창 대신 선택한 문, 도려내어진 오브제 자리에 풍경이 펼쳐지면서 세상의 안과 밖, 그림의 안과 밖이라는 인식의 이분법을 깨트립니다. 우리가 그의 그림을 보면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그려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쏭달쏭하지요. <표절> 작품에서 처럼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은 '진실'이 어쩌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빚어진 '착각'의 오류일 수 도 있겠다 싶습니다. 한 번쯤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는 마그리트의 철학적 질문 같기도 합니다. 

 

 

 

 

 

 

 

 

 

 

 

 

<저무는 해(Le Soir qui Tombe)>,1964/디 아티스트

 

 

평소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상식 혹은 의식을 '의심해 보게'하는 장면입니다. 믿어 의심치 않은 세계가 어느 날 "실은 당신이 알고 있던 것은 모두 착각이야"라며 뒤통수를 가격하는 듯합니다.  작품 <저무는 해>는 바로 이 의식의 세계가 깨지는 사건, 이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스러움을 표현했습니다.

 

 

 

 

 

 

<The blank signature>,1965/Pinterest

 

 

 

 

이 작품의 제작방법은 창문 앞에 놓인 그림을 표현한 작업들의 또 다른 변이 형태의 작업입니다. 그림 속 숲은 그림 같기도 하고 또 그림 밖 풍경같기도 합니다. 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안과 밖을 구분해 내죠? 자세히 보면 두 나무기둥 사이의 나뭇잎들의 부분은 뜻하지 않게 나무의 기둥과 말을 나타내는데 말의 궁둥이와 왼쪽 다리는 또한 말이 지나가고 있는 나무들과 공간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백지위임장> 작품에서처럼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은 하나의 세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음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저 여인의 몸통 위에 나무를 걸쳐 그리거나 그 반대로 표현했을 뿐인 거죠. 우리가 아는 세계는 어쩌면 우리 지각 너머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관계>,1967/Pinterest

 

 

 

 

 

 여러 개의 전이된 요소들은 하늘에 감추어진 미묘한 우주의 자취인 듯, 우의적인 새로운 의미로 융합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얼굴과 잘 맞지 않는 기구라는 사물은 안구라는 새로운 대상의 의미로 용해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사물이 다른 이름으로 대치되는 마그리트의 창작 원칙 중 하나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좌절과 절망으로 뒤덮인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의 배경이 된 철학, 역사, 문화에 대한 저항이 하나의 예술 형태로 나타났지요. 우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대부분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친근한 사물이라는 점입니다. 살바도르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자는 꿈과 같은 비이성적 행위의 산물을 표현했기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이미지가 캔버스에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대상을 캔버스에 그렸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은 이런 사물을 무심히 지나쳤던 자신의 태도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지요. 일상 속에서 초현실을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또한 이미지와 텍스트 간의 연관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몰두했다는 점이 마그리트 만의 특징입니다.  그의 캔버스에는 사물의 이미지와 더불어 텍스트가 함께 등장합니다. 그는 그 간극에 대한 우리의 인식체계를 뒤흔드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고요. 물론 언어도 일상적인 사물이라고 생각하면 마그리트는 철저히 일상성을 중요시한 작가인 셈이죠. 이러한 독창적인 시선과 해석으로  미술의 새로운 역사를 쓴 마그리트, 그의 작품은 일상 속에 있었기에 세상 이곳저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인용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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