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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바로크 시대의 화가이자 외교관이었습니다. 당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에 꼽습니다. <플란더스의 개.>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성화를 그린 화가입니다. 이만하면 힌트가 충분히 되었죠.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입니다.
바로크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고향인 플랑드르 (Flandre) 안트베르펜(Antwerpen)에서 처음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약 6년여간의 도제 기간을 거치고 그가 향한 곳은 이탈리아였습니다. 루벤스는 그곳에서 고대의 유물과 르네상의 장인의 작품들에 매료되어 수많은 작품을 모사했습니다. 그곳에서 8년 동안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다양한 후원자들을 위한 그림 의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전주의를 답습하는 평범한 화가가 되진 않았습니다. 그에겐 사물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알프스 북부의 화풍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탈리아 고전주의의 특성이 모두 융합되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합쳐질 것 같지 않은 두 화풍이 이 위대한 화가의 붓으로 통합되어 빛나게 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M2xe1yz7A
루벤스의 그림은 역동적인 구성,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사용, 인물의 관능적인 묘사가 특징입니다. 그는 특히 움직임과 감정을 묘사하는 데 능숙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고전 신화와 기독교 종교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루벤스는 또한 외교관 역할을 하며 다양한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영국의 찰스 1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을 정도로 그의 외교 기술은 탁월했습니다.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작품입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미르미돈의 영웅 페렐우수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여러 신들은 성대한 결혼식에 초대 받아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두 사람을 축복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했던 언쟁과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화가 났습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새겨진 황금사과를 연회석에 툭 던집니다. 여신들은 서로 황금사과를 가지기 위해 다투지요. 제우스부인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다툰 장본인들입니다. 세 여신이 제우스에게 심판해 줄 것을 청했으나 제우스는 그 심판을 양치기 청년 파리스에게 맡깁니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각자의 특권으로 아테나는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헤라는 세계의 주권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파리스는 달콤한 세 가지 유혹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황금사과를 그 여신에게 주어야 합니다. 고민이 많겠죠. 개도 그 결정이 궁금한가 봅니다.
핏빛 드레스를 입은 데릴라 는 욕정으로 달아오른 가슴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정욕에 눈이 멀어 델릴라의 품에 잠든 삼손의 남성적인 팔과 매력적인 등판은 사실적입니다. 루벤스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르네상스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화폭에 담아냅니다. 삼손이 잠든 찰나를 놓치지 않고 머리를 자르는 사내와 탐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노파가 들고 있는 촛불은 마치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요. 벽면에 그려진 비너스와 큐피드의 안타까운 표정, 문 밖에서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훔쳐보는 병사들의 표정이 실감 납니다. '쉿 조용히 해. 삼손이 깨면 큰일 난다고'뭐 이런 말들이 소리 없이 오고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작은 불빛 하나로 병사들은 조연역할 제대로 한 덕에 작품을 걸작으로 완성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전쟁이 없었던 해는 4년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루벤스가 활동하던 시기 유럽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화가의 대부분의 활동 기간을 차지하는 1618년부터 48년까지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30년 전쟁에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전 세계가 나의 나라'라고 했던 루벤스는 알레고리적인 의인화라는 기법을 자신의 모국 유럽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세기 내내 이어진 종교 전쟁으로 교회화 미술품들이 파손되어 새로운 작품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습니다. 루벤스는 그의 이력 초기부터 제단화를 비롯한 기독교 주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루벤스의 고향 안트베르펜은 종교전쟁의 격전지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는 안정을 되찾고 파괴된 교회들을 재건하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단장을 시작한 교회는 대형 종교화가 많이 필요했기에 실력 있는 유학파 화가 루벤스도 주문을 많이 받으며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제작된 안트베르펜 대성당의 대형 제단화들은 루벤스 미술의 초기 양식이 잘 남아있습니다.
그중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움>은 루벤스가 북부의 세밀화 전통과 이탈리아 고전주의를 어떻게 통합시켰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들어 올리는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남자들은 미켈란젤로의 인체를 연상시킵니다. 십자가의 세부와 몇몇 구성은 틴토레토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고요. 빛과 색채는 베네치아 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편 군인이 입고 있는 갑옷과 그림 왼쪽 하단에 그려진 강아지의 곱슬곱슬한 털의 세밀한 묘사는 알프스 북부의 표현법입니다. 루벤스는 거기에 대각선 구성과 격정적인 동작, 강한 명암 대비와 피부 표면에서 일렁이는 빛의 움직임 등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을 더합니다. 전체적으로 사선 구도를 취하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습니다. 틴토레토의 그림과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rJu72PzGis
안트베르펜에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높은 노트르담 성당이 있습니다. 1352년 착공해 1521년 완공된 이 건물은 높이 123미터의 첨탑을 가진 고딕 성당으로 벨기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입니다. 그런나 1533년 화재가 나고, 1565년과 1581년에 종교개혁 과정에서 개신교도들이 성상파괴를 주도하여 불운을 겪기도 합니다. 이 성당에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 The Raising of the Cross 1609-1610)를 비롯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The Descent from the Cross,1611-1614>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엔트베르펜 시장이자 길드 조합장이던 로콕스(N. Rocockx)의 요청으로 루벤스가 그렸습니다. <예수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Christ 1611-1612), 그리고 <성모의 승천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1625-1626>의 4개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작품<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은 정적이 감돕니다. 그의 이탈리아 여행의 성과가 반영된 작품이고요.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 <라오콘>을 연구한 흔적이 보입니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조법은 카라바조의 화풍을 느끼게 하고요. 또 하나 십자가에 매달려 천이 흘러내리지 않게 물고 있는 남자는 고귀한 성인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죠.
정적인 분위기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도 천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예수의 시신이 고요함 속에서도 부드러운 운동감을 만들어 냅니다. 이 같은 구성은 수난의 공포와 비통함을 극대화시켜 신자들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감각적인 표현법입니다.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취지와 맞닿아 있기도 하고요. 만약 루벤스가 고전주의자였다면 십자가 세우기가 '완료'된 장면 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시신'을 안고 있는 장면을 담았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크의 대가 루벤스는 어떤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담아냈습니다.
루벤스는 끊임없는 주문에 바빴습니다. 그의 작품으로 기록된 그림은 소묘와 판화를 제외하고도 1300여 점에 이릅니다. 이렇게 다작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공장 시스템에 가까운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벤스가 간단한 스케치와 작은 견본을 그리면 제자들이 그것을 거대한 화폭에 옮겼습니다. 그의 곁에는 실력이 뛰어난 동료화가들이 있었습니다. 정물화에 탁월한 화가, 동물 그림에 재능 있는 화가 등 각종 전문가들이 루벤스와 함께하며 그림의 세부를 담당했습니다. 루벤스는 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는데, 그림의 값을 책정할 때에도 자기가 참여한 비율에 따라 가격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이런 협업 과정의 마무리 작업은 루벤스가 맡았고요. 그의 작업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루벤스가 단 몇 번의 붓질만으로 그림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치게 만드는 장면을 보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림에도 운명이란 것이 있나 봅니다. 미술품에 전혀 무지한 사람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작품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대가의 작품으로 판명이 나면 로또 상금 받는 것처럼 큰돈을 거머쥐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전문가가 대가의 작품일 것으로 보이지만 확증이 없는 작품을 구매한 후 대가의 작품임을 밝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루벤스의 <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 작품은 후자에 속했습니다.
2002년 7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루벤스의 작품이 4950만 6648파운드에 낙찰되면서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습니다. 이 작품은 헤롯왕의 '영아 학살'순간을 그린 그림입니다. 성서에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때 그 당시 지배자인 헤롯왕이 자신의 지위를 위태롭게 여겨 사람을 보내어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다 죽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탐욕에서 비롯된 학살을 바로크 시대의 화가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1609-1611년 사이에 그린 것입니다. 총 8명의 응찰자가 경합을 한 끝에 영국의 기념품 전문 딜러인 샘 포그가 낙찰받았다고 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포그에게 응찰을 의뢰한 사람은 전 런던지부 <타임스> 소유주였던 캐나다 켈렉터 데이비드 톰슨으로 폴게티 미술관을 비롯한 몇몇 미술관보다 가격을 높게 불러 이 작품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 소장자는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89세의 오스트리아 여성입니다. 그녀는 1923년에 유산으로 이 작품을 물려받았지만 작품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오스트리아 북부 라이허스베르크에 위치한 수도원에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경매사 소더비의 플랑드르&네덜란드 미술 전문가인 조지 고든은 이메일로 본 이 작품의 이미지만으로 대단한 작품이라 판단하고 이 작품을 직접 보려고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손전등으로 비춰봐야 할 정도로 어두운 곳에 걸려 있었다고 해요. 고든은 이 작품이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와 비교해 보게 되고, 거의 같은 시기에 그려졌을 거라 판단합니다.
그는 이 작품이 진짜 루벤스의 작품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런던, 옥스퍼드, 앤트워프에 있는 저명한 루벤스 학자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 모두는 이 작품이 루벤스가 그린 작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소장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수도원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작품이 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가가 그린 명작으로 판명된 것이죠. 더불어 세계적인 경매사에 출품되어 올드 페인팅 분야에서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했습니다. 그림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러한 그림을 둘러싼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귀를 쫑긋하게 합니다.
루벤스의 그림 속에 늙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빨고 있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느낌이 좀 이상하지요. 보기에 따라 늙은 노인과 젊은 여자가 부적절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여져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부녀 관계입니다. 시몬의 딸 페로는 굶어 죽게 하는 형벌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아버지를 면회 갔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나 굶주린 탓에 거의 죽음에 이른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마 당국은 그녀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해 시몬을 석방했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cA1Ssl3Rw
루벤스와 그의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입니다. 가정적인 남자였던 루벤스는 가족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이 그림 역시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이고요. 그림 속 여인은 유명한 변호사의 딸로 루벤스는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화가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을 들은 플랑드르 총독 부부에 의해 궁정화가로 임명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MTYsywfdtg
오래 사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루벤스의 가장 사랑스러운 그림들은 그의 가족을 담은 작품들입니다. <아이의 얼굴>은 그의 딸 클라라 세레나를 모델로 그려졌습니다. 루벤스는 이 작은 초상화에서 복잡하고 화려한 구성을 위한 아무런 기교도 사용하지 않고 순진한 어린 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팔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일이 너무 바빠 딸내미 얼굴조차 보기 힘든 딸 바보 아빠가 보고 싶을 때 꺼내보려고 그린 그림입니다.
딸의 옷은 빠르고 거친 붓질로 채워졌습니다. 뒤로 묶은 머리는 한 올 한 올 금빛으로 빛나고요. 맑은 눈망울, 발그레한 통통한 볼, 미소를 머금은 윤기 있는 입술, 콧등의 하이라이트와 이마의 푸른 음영 등 딸의 얼굴에 생기발랄한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는 1623년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합니다. 그리고 삼 년 뒤에는 사랑했던 부인마저 죽게 되고요. 실의에 빠진 루벤스는 슬픔을 이기고자 일에 다시 몰두하게 됩니다. 이때 그가 맡은 일은 고향을 떠나 스페인과 영국의 평화를 위해 양국을 오가며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교양을 갖춘 루벤스는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탁월하게 잘 완수해 냅니다. 그의 말대로 유럽의 평화에 루벤스의 그림 외교가 크게 한 몫했습니다.
터번을 쓴 세 명의 말 탄 사내들이 창과 칼을 들고 일제히 하마의 숨통을 노리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한 하마는 이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입을 벌리고 사력을 다해 방어하고 있고요. 하마만큼 흥분한 눈을 한 말들 또한 기승자의 명령에 따라 포효하는 하마의 등을 짓밟고 올라서려 합니다. 하마 아래에도 동시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네요. 두 마리의 개는 하마를 물어뜯으려 하고 그 아래 악어도 누운 남자와 한 마리 개에게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몸을 틀어 엎어진 남자는 아마도 싸움 중에 공격을 당하고 쓰러진 것 같습니다. 잠시 뒤면 하마의 숨통도 곧 끊어질 것 같습니다. 하나의 그림 안에 3D 화면 같은 입체감과 드라마를 장대하게 엮은 그림 같습니다. 그 당시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했는지 입이 쩍 벌어집니다.
<하마와 악어 사냥>은 1615년 바바리아 공작 막시밀리안 1세의 주문으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사냥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스포츠였습니다. 오직 권력과 부를 가진 귀족과 왕족에게만 사냥이 허가됐었지요. 17세기 유럽 사회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이국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국가나 아프리카에서 포획된 이국적 동물들을 애완용으로 소유하기도 했으니까요. 또 그러한 취미를 권력의 향유물로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말 등에 얹어진 표범 가죽과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악어와 하마, 터번 같은 이국적 요소들로 채워진 이 그림도 막시밀리안 공작의 권세를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뒤틀린 몸과 흥분한 말의 눈동자,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근육, 그리고 쓰러진 남자의 포즈는 어디선가 본 듯합니다. 이러한 표현과 기법들은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 보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를 연상시킵니다. 그런 점에서 루벤스는 소화력이 뛰어난 천재인 것 같습니다.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입니다. '루벤스 그림에 한국인이?' 하며 의아해할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인 소년을 이탈리아 상인 안토니오 카를레티에게 팔았다는 일본 측 기록에 근거하여 조선인 소년에게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소년이 그림 속 주인공이라는 주장이 다수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한복 입은 남자>가 입은 옷은 성인 남자의 의복이라고 합니다. 노예로 팔려간 소년이 성인의 의복을 입고 갈 리도, 따로 챙겨갈 리도 없음은 물론이고요. <한복 입은 남자>의 하단을 보면 속치마를 입은 것처럼 겉옷 밖으로 안에 받쳐 입은 옷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즐겨 입었던 철릭 위에 팔소매 밑단이 없는 답호라는 옷을 덧입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벤스의 이 그림을 보며 그림이 가지는 기록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보게 됩니다. 루벤스라는 화가가 왠지 더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점 하나가 서로에게 연결이 되니 말입니다.
루벤스는 무미건조할 수 있는 주제를 특별하고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리아 드 메디치의 생의 연작>은 그런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장대한 기록화입니다. 이 그림들의 의뢰자 마리아 드 메디치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공주로 프랑스 앙리 4세와 결혼합니다. 그러다 앙리 4세가 암살로 사망하자 아들을 대신하여 프랑스를 다스렸습니다. 그녀는 루벤스에게 자신의 삶의 주요 장면을 기록해 달라고 주문합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여왕의 삶에서 주요 장면이라 할만한 사건이 없었습니다. 탄생과 교육, 결혼식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전부였죠. 그런데 루벤스에게는 이렇게 평범한 일화들을 비범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마리아 드 메디치의 마르세이유 입항>은 마리아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한 항구에 도착하는 장면을 신화와 우의를 동원하여 멋지게 윤색해 놓은 작품입니다. 황금으로 도금된 화려한 배에는 메디치가를 상징하는 여섯 개의 구슬이 있는 방패 문양의 문장이 달려있습니다. 공주가 배에서 내리자 군모를 쓴 남자가 영접을 합니다. 백합문양이 새겨진 푸른 망토를 두른 남자는 '프랑스'를 상징합니다. 선박 아래에는 바다의 신과 요정들이 마리아의 입항을 기뻐하고, 하늘에서는 명성을 상징하는 인물이 두 개의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당당한 모습의 공주와 예를 갖춘 '프랑스', 관능적인 요정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 그림은 피곤한 항해를 마치고 하선하는 평범한 사건에 극적이 인상을 심어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R8nW7RPTlE
https://www.youtube.com/watch?v=wt57QyyYkAM
The Banqueting House- Whitehall Palace 17세기말 화재로 이곳을 제외하고 화이트홀 궁전은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1622년 만들어져 주로 궁정 행사에 사용되었습니다. 1649년 찰스 1세가 이곳에서 사형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고요. 엘리자베스 1세도 런던탑에 투옥되기 전 이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왕실 행사 등으로 사용되는 곳입니다.
이곳에 루벤스의 천장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각종 자연재해에도 훼손되지 않고 400년가량 보존되어 오리지널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68평 정도 총 9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루벤스는 앤트워프에서 그림 작업을 했고 당시 통풍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영국으로 여행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실제 Banqueting House에 설치된 실물은 결국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폭격에도 이 천장화를 보전하고자 작게 잘라서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당시 이미 유럽 내에서 유명 화가였던 루벤스는 외교 사절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냅니다. 런던을 방문하게 되었고 당시 왕이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루벤스에게 이곳의 천장화를 부탁한 것으로 보입니다.
루벤스 천장화는 3개의 테마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1. The Union of the Crowns 왕국연합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신 미네르바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관을 어린아이 머리 위로 모으고 있는 장면으로 어린아이는 영국(Great Britain)을 상징합니다.
2. The Peaceful Reign of Jame 1: 성경 스타일의 배경에 앉아 있는 제임스 1세 풍요와 지혜를 상징하는 인물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3. The Apotheosis of jame1: 신에게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왕이 커다란 독수리 날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루벤스는 첫 부인 이사벨라가 죽은 후, 53세가 되던 1630년 16살의 어린 엘렌과 재혼합니다. 그 후에 그린 <사랑의 정원 >은 당시 그가 지닌 낙천적인 인생관과 즐거움을 표현한 자전적인 그림으로 보입니다. 이 장면은 루벤스의 저택에 모인 그의 친구들의 사교적인 모임이지만 공중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비너스 여신 조각의 분수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요. 가장 왼쪽의 남자는 수줍어하는 여성을 설득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뒤에 큐피드가 떠미는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중앙에 모여 있는 여성들은 즐거운 행복감에 빠져 있습니다. 가장 오른쪽에는 이런 과정과 경험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얻은 남녀가 층계를 내려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 번 관능적이고 풍만한 모습으로 루벤스의 그림에 등장했던 두 번째 부인 엘렌은 이 그림에서도 어느 한 여인의 모델로 표현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이 그림을 루벤스가 어린 부인을 맞이하여 사랑의 여러 단계로 인도하는 과정을 나타낸 내용으로 해석됩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남녀의 사랑과 인생의 즐거움 또는 쾌락의 표현은 서양미술에서 언제나 주요 주제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의 두 번째 아내 헬레나 푸르망, 아들, 그리고 페테르 파울로 루벤스의 초상입니다. 루벤스가 죽기 2년 전 그림입니다. 여자옷을 입은 남자아이입니다. 당시 귀족 남자아이들은 대여섯 살까지 치마를 입었다고 하네요.
아내를 잃은 슬픔은 깊었으나 그의 독신 생활을 길지 않았습니다. 1630년, 53살의 루벤스는 헬레나 푸르망이라는 16살 소녀와 결혼을 하여 행복한 두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루벤스는 그녀를 지극히 사랑했으며 자신의 그림에 비너스여신으로 자주 등장시켰습니다.
<모피를 걸친 여인>이란 제목으로 유명한 헬레나의 초상화는 그녀를 그린 여러 작품 중에서도 독보적인 작품입니다. 욕실에서 막 나온 듯한 여인은 검은 모피만을 두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흘러드는 빛은 그녀의 피부를 부드럽게 비추고 카펫이 반사하는 붉은빛은 여인의 배와 팔꿈치를 분홍빛으로 물들입니다. 고전 조각에서는 팔로 가슴을 가리는 동작이 정숙함과 겸손을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루벤스는 비슷한 자세로 가슴을 드러내며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자세로 그려냅니다.
37살 연하인 두 번째 부인 헬레네 푸르망은 수줍은 표정으로 남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루벤스가 판매용이 아니라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그림 속 여인은 화가인 남편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루벤스 역시 동일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었겠죠.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이 작품의 특징은 X자를 형성하는 구도입니다. 구성 요소들은 그 자태의 방향에 의해 원을 이루고 있고요. 두 여인을 떠받치고 있는 남자는 땅 위에 쓰러지려고 하고 있는 여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또 그 여인은 말에 매달린 사랑의 상징 큐핏의 머리를 돌리고 있고요. 그 방향은 레우키포스를 약탈하는 남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크 예술 양식을 나타내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엉키고 있는 요소들은 율동감이 듭니다. 긴장감을 지닌 채 말이죠. 루벤스가 표현한 여인의 관능과 건강에 넘치는 육체미는 방금 옆에서 벌어지는 일 같습니다. 여인들의 탄력 있는 살결은 거칠고 검은색의 남자들의 피부와 힘찬 근육에 윤기 있는 말의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림의 주제는 그리스 신하와 관계가 있습니다. 제우스 신의 두 아들이 메시나의 두 왕녀를 약탈하는 비극을 소재로 한 것이죠.
형 카스토르가 검은 말 위에 앉아 있습니다. 동생 폴리데우케스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도 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백마에서 내려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잡고 있고요. 카스토르가 말에 앉아 있는 것은 그가 말타기에 능하다는 점은 나타냅니다. 무장하지 않은 동생 폴리데우케스는 불사의 몸이라는 사실을 뜻하고요. 화면 아래쪽에 있는 여인이 포이베입니다. 금빛으로 빛나는 옷이 벗겨진 채 저항하고 있지요.
황금빛 옷은 결혼식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결혼식 예복이 황금색이었거든요. 홀리데우케스의 팔에는 힐라에이라가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팔을 뻗어 하늘을 보고 있죠. 벗겨진 그의 붉은 옷은 카스토르의 어깨에 걸쳐 있습니다. 힐라에이라를 원하는 사람이 카스토르임을 암시합니다. 루벤스의 이 작품에서 사건의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말입니다. 부릅뜬 눈으로 발을 들고 우뚝 서 있는 말은 이 장면에서 동물적인 힘을 상징합니다. 여성의 납치는 17세기 최고 인기가 많았던 그림 주제였다고 하네요.
루벤스의 대표작인 <삼미신>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이 자랑하는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단순한 화면 구성 속에 루벤스의 모든 역량이 주입되어 있습니다. 주제는 이미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자주 다루어졌던 것이고, 그림의 수법은 르네상스의 보티첼리(Botticelli)와 라파엘로(Raphael)등에 의해 이상화하고 미화한 형상의 계승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체의 아름다움이 한층 내적인 충만감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루벤스 예술의 심화버전 작품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헤시오도스의 신들 계보에 따르면 삼미신이란 제우스와 바다의 요정 사이에 태어난 아름다움의 세 여신인 아글라이아(Aglia), 탈리아(Thalia), 유프로시네(Euphrosine)를 말합니다. 이들은 각각 아름다움, 기쁨, 우아함을 상징하는 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반려자로 등장하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삼위일체 사상과 결합되기도 했습니다. 그림에서 벌거벗은 세 여신은 숲 속 광장에서 손과 팔로 서로를 잡고 서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여신들이 벗어놓은 옷들이 걸려 있고요. 나팔을 안고 있는 큐피드 조각상에서는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뒷모습의 여신은 사랑을, 앞으로 보고 있는 여신은 미를, 옆을 보고 있는 여신은 쾌락을 상징합니다.
루벤스는 이 작품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두 번째 아내 헬레네 푸르망을 , 오른쪽에는 첫 번째 아내 이사벨라를 그려 넣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한 화폭에 담아낸 거죠. 루벤스는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자신의 아내 두 사람을 모델로 한 것 같습니다. 루벤스의 누드화는 뚜렷한 선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명암에 의해 표현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림은 루벤스 사망 후 스페인 펠레페 4세가 구입하여 스페인으로 가져갔습니다.
루벤스가 시골에 살면서 자신의 집과 주변 풍광을 그려낸 풍경화입니다. 느낌이 많이 다르죠. '인상파 화가가 그렸나'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이죠. 바로크 적인 구도를 잃지 않고 있는 이 광대한 스케일의 풍경화는 자연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의 결과로 보입니다. 도시생활에서의 해방으로 인한 기쁨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요. 루벤스의 이 그림은 개인적인 이유로 그려진 것이었으며, 판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유럽의 많은 풍경화가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주었고요.
신화에서 전쟁의 신 '마르스'는 사랑과 평화의 신'비너스'의 남편입니다. 불과 대장장장이의 신 '불카누스'를 속이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들을 소재로 한 회화작품에서 둘은 사랑을 나누거나 불카누스의 심판을 받고 마르스가 도망을 치는 장면으로 재현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루벤스의 이 그림에서 이야기는 베제 된 채로 그림의 정 중앙에 갑옷을 입은 마르스가 비너스를 남겨두고 떠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마르스의 붉은색 망토는 비너스의 하얀 살결과 대비되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전쟁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그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너스의 뒤쪽에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 비참한 유럽의 상징으로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더불어, 마르스의 오른쪽에서 기근과 전염병을 상징하는 괴물들이 그의 손을 잡아끌고 있고요. 한편 전경 하단에 아이를 끌어안은 여인은 자비의 상징으로 전쟁 앞에서 이들은 한없이 약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여러 나라를 방문했던 루벤스는 그림을 통해서나마 전쟁의 비참함을 암시하고 평화를 기원했을 것입니다.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는 루벤스의 말년작품입니다. 전투장면이나 영웅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그림은 30년 전쟁(1618-1648) 중에 탄생했습니다. 그림 왼쪽의 야누스 사원에서 전쟁이 신 마르스가 달려 나옵니다. 고대 로마의 야누스 사원은 평화로울 때는 항상 문이 닫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의 신 비너스가 마르스를 붙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소용없습니다. 오른쪽에선 기아와 흑사병을 동반한 여신이 마르스를 끌어당겨 전쟁터로 데려가려 합니다. 마르스는 책을 발로 밟고 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학문과 예술이 황폐해진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바닥의 부서진 악기를 손에 든 여인은 평화의 종말을 상징하며, 컴퍼스를 손에 들고 불현 한 자세로 쓰러져 있는 남자는 건축물의 파괴를 상징합니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는 두려움에 떨며 달아나는데 고통받는 백성의 상징입니다. 맨 왼쪽에서 절망에 찬 몸짓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여인은 유럽의 상징하고 검은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급격히 교차하고 정확한 세부 묘사를 포기한 힘찬 곡선들이 역동적입니다. 오른쪽 아래를 향해 달려가는 동작의 움직임은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까지도 함께 나락으로 끌고 들어갈 기세입니다.
#루벤스는 살아생전에 명성을 누렸고 귀족의 작위까지도 하사받아았을 정도로 크게 성공한 화가입니다. 그는 역사와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궁정사회에서 교양인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웅변가적 언변으로 외교관으로 활약하기도 했고요. 루벤스가 가진 최고의 회화적 재능은 비루한 현실도 신화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과 그것을 화면에 극적으로 구성해 내는 연극적 연출력 같습니다. 그는 남루한 진실보다 화려한 거짓을 현실처럼 만들어 낼 수 있는 화가였으니까요.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에서는 루벤스가 영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제리코와 들라크루아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요. 19세기말 사실주의 와 인상주의 도 각자의 입장에서 루벤스에게 영향받았음을 인정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컨스터블이 루벤스의 풍경화에 존경을 표했습니다. 루벤스가 바로크 미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살아남기까지 화려한 장식과 드라마틱한 조명의 사용, 극적이고 정서적 강렬함이 한 몫했습니다. 인체 해부학, 신화와 우화를 주제로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또한 플랑드르 특유의 디테일과 풍부한 색상 사용은 루벤스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합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예술을 외교 도구로 사용하여 군주 및 기타 중요한 인물의 초상화를 만들어 동맹과 외교 협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서양 미술사에 이만한 화가도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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