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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kg”
😱
’환상의 몸무게네!‘

일주일을 꼬박 앓고 기운이 생겨 체중계에 올라갔다. 평상시에 보고 싶어도 좀처럼 얻어지지 않는 꿈의 숫자다. !!!

세상은 공평하다. 일주일의 말미를 주며 마치 지끔껏 굳은 나의 낡은 사고 방식, 습관을

‘이래도 안 버릴꺼야, 이래도~‘

하며 종용하는 것 같다.

앓고 있었던 일주일 안에 ‘결혼 기념일’도 끼어 있었다. 선물을 바라지도 않았다. 핸드폰 배경 화면에 각각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 한 편씩을 깔아 상큼한 기분 눈으로 즐기며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을 뿐이다.


CES2023(라스베가스)행사를 다녀온 둘째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남편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바톤이 선물처럼 ‘툭’ 넘겨졌다.
각각 일주일 넘는 시간을 오로지 본인과 작은 전투를 하며 보냈었다.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까! 자신과 self가 민낯으로 만나야만 하는 본능의 시간이었다.


아프다고 하던 일을 안할 수도 없고 가족들 끼니를 거를 수도 없으니 내가 아프면 힘듬이 배가된다. 아픈 몸으로 나도 가족도 돌봐야하니 ’엄마‘라는 타이틀을 안보면 슬쩍 버리고 오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나라는 사람이
’이거 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한번쯤 묻고 성찰하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달려만 왔으니 좀 쉬어거라는 신호같기도 하다. 가족들이  밥 해주는 이의 건강도 소중함을 알아가는 각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옆에 암환자가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일 주일 감기 몸살로 앓아 누운 내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모순을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 몸의 눈, 코, 입이 왜 붙어 있는지 신비 체험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입맛을   잃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오들 오들 한기를 느끼며 밤새 열로 끙끙 앓다 열먹은 하마가 된 기분이다. 몇 배는 무거워진 코끼리 몸둥아리를 일으켜 가족을 먹이는 임무 완수하고 나니 정작 입맛 떨어진 나를 위해 죽이라도 끓이려하니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나도 누가 해준 따뜻한 밥 먹고 싶다!‘
하루종일 내 이마 짚어 주며

’괜찮아?‘

하며 물어주는 다정한 손길도 느끼고 싶다.
실컷 짜증도 부리며 뒷일 걱정 하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기도 했다. 현실의 반응은 싸할테지만 말이다.

어디 이런 환자들 응석 다 ~받아주는

“로봇 간호사 없어요?”

하며 외치고 싶다. 만들면 대박 날거라고  장담하면서 말이다.^^



잠이 주는 치유를  몸소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겨울잠 자는 곰 새끼 마냥 자고 자고 또 잤던 것 같다. 밀린잠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나니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잠이 보약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겨울철 모자란 빛을 찾아 나란히 마주 보고 누워 자고 있는 키우는 개 두 마리의 잠 자는 모습속에도 면역력 이라는 치유의 보약이 만들어지고 있으리라.^^




우리집 세 남자의 반응이 흥미롭다.
남편왈,

“물 많이 먹고 쉬어.”

본인이 이겨낸 처방법이다. 다른 사람은 플러스 알파가 더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때도 되었겄만… 표현의 부족일까? 중년의 무던함일까? 어째 2%부족한 저 모습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속에 곁길로 빠져나가는 못된 생각들을 서둘러 칼로 싹뚝 잘라 버린다.

어젯밤 늦은 퇴근을 한 첫째가

“엄마 좀 어때?”

하며 아침 컨디션을 묻는다.
그 별것 아닌 말이 별것처럼 들려
다정함이 새삼 고마워진다. 잘 때 먹을 수 있는 알약을 전해주는 그 손이 이렇게 예뻐 보일수가 없다!

코맹맹이 소리에 눈치 빠른 둘째녀석 자기가 먹고 효과 본 레몬향 품은 티 형식의 감기약 한 박스를 내밀며,

“엄마 이거 티 처럼 마셔.
빈 속이라도 괜찮아.”

슬쩍 포장지를 스캔하다

‘이걸로 될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물만 먹고 뱃속은 텅 비어 음식 냄새가 구역질 반응으로 나타나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인 시간이었다. 이렇게 텅텅 빈 윗속을 레몬티 감기약으로 반복해서 채우고 나니 느낌상 1mm 앞으로 빠져 나온 느낌이다. 티 형태라 부담없이 마셔대서 그랬을까 의외로 효과 만점이었다.

이렇게 가끔씩 앓는 감기 몸살을 통해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보이기 시작한다. 숨을 쉬고, 먹고, 마시는 단순한 동작에서 시작해 점점 밖으로 나선형 계단을 만들며 나, 가족, 그리고 삶으로 뾰족한 가시 달린 질문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놓치고 산 것, 버려야 할 것, 그래도 꼭 지켜야 할 것 등등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따끔하게 회초리 맞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땅에 고개 쳐박고 있지 말고 주변도 살피라는 벌침 한 방 주시는 소중한 시간 같아서 말이다.

아가들이 아프고 나면 이쁜짓이 늘듯이 이제 나이값하며 철좀 들라고 주셨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픔도 죽음도 오로지 혼자 맞이하는 시간임을 가볍지 않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슬슬  내 몸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
를 보내오기 시작한다.

‘이만하면 살만하다.’ 싶다.

이제 생존모드에서 허세모드로 다시 스위치 바꾸는 시간이 돌아왔다.


                       쉰
            
                           김수열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설운 서른에 바라본 쉰은
너무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다
비틀거리며 마흔까지 왔을 때도
쉰은 저만큼 멀었다

술은 여전하였지만
말은 부질없고 괜히 언성만 높았다
술에 잠긴 말은 실종되고
더러는 익사하여 부표처럼 떠다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몇 벗들은 술병과 씨름하다
그만 샅바를 놓고 말았다
팽개치듯 처자식 앞질러 간 벗을 생각하다
은근슬쩍 내가 쓰러뜨린 술병을 헤아렸고
휴지처럼 구겨진 카드 영수증을 아내 몰래 버리면서
다가오는 건강검진 날짜를 손 꼽는다

-김 수열,<쉰>,[생각을 훔치다],삶창,2009

#감기#세 남자#입맛#로봇 간호사#성찰#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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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결혼 기념일이다. 달력에 아무리 커다랗게 표시를 해 놓아도 우리집 짝꿍은 무덤덤한 중년의 한 사내다. 나역시 뭔가 요구하기에 감흥이 없어진지 오래다. 귀찮아서 말이다. 그냥~ 무탈하게 지나온 시간에 감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늦은 저녁을 먹여 세 남자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설거지를 잠깐 미뤄두기로 했다.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 작가의 작품을 보다 그림 한 점이 눈에 쏘옥~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서툰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꾸 볼 수록 저 단발머리 소녀의 수줍은 듯
보이는 붉은 두 뺨이 자꾸만 내 마음을 과거로 과거로 데려가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그려진 그림 속에 내 모습도 보이고, 친구들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림 속 여백에 채워진 몇 안되는 소품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내게,

‘나, 기억나지?’

하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마음이 적당히 뜸이 들고 나니
그림 앞에 무장해제한 채 서 있는 내 순수했던 마음이 보인다.



단발 머리 소녀를 천천히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친구 하나가 불쑥 얼굴을 디밀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친정 엄마 돌아가셔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결혼을하고 다른 공간에서 서로의 일상을 챙기느라 잊고 있었다. 사람 노릇하며 사느라
내쪽에서 연락을 거의 끊고 살다시피 했었다.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며 말이다.

그녀를 만난 시간은 짧았다. 신기하게도 함께 공유한 추억은 경계를 금방 허물고 그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헤어지며 주고 받은 전화 전호는 또 일상이란 이름앞에 서랍 속에 들어가 언제 꺼낼 지 모를 잠금 상태로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내 성격도 참~ 이상도 하지!
그냥 쉽게 연락하면 될껄 …
미국와서 부치기로 한 내 마음담긴 소포 꾸러미는 아직도 내용물이 채워지지 못한 채 공수표가 되어 마음 한켠을 무겁게한다.
자꾸만 후 순위로 밀려가는 순수라는 이름의 우정!


남도 출신의 작가 ‘신철’은

“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착해지고
순수해졌면 좋겠어요.”

라고 했다. 그런의미에서 그의 그림에 내가 항복했다. 그의 뭉툭한 붓끝에 내 마음이 깊게 찔렸다. 한 번 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으로 이미 시간 여행을 다녀왔으니 말이다.

핸드폰 배경 화면에 그의 그림을 깔고 검지 쓰윽~하고 화면을 넘기니 행복해진다.
질릴 때까지 그의 작품이 주는 순수를 한동안 즐기는 것으로 다가올 결혼 기념일의 밍밍함을 대신하기로 했다. 내가 2023년 새해를 맞이하며 그림으로부터 받은 작은 위로다.
# 신철#순수#동화# 착함# 친구#우정#결혼 기념일# 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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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쏴~~쏴~~
설거지를 하며 오디오 북을 듣는 내 아침 풍경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따로 있나?’
궁금했다.
작가가 70대 야생 동물학자 라고 한다.
😱
더 궁금해졌다.

짬짬이 일 주일 가량 소요된 것 같다. 오랜만에 오감이 만족 스럽고 여운이 남았던 책으로 기억한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한다.

한 줄 요약하면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담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습지 소녀로 불리는 ‘카야’라는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어렸을 때 가족에게 버림받고 세상과 단절된 채 습지대 판자 집에서 홀로 성장한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친 할머니와 살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가끔 아빠가 고깃근 둘둘 말아 할머니 집을 방문하셨다. 김치찌개가 밥상에 올라 왔고 맛있게 먹고 난 다음날 꼭  아파서 할머니 속을 상하게 한 적이 많았었다.

그때는 어쩌다 기름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어 그런거라 생각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마음에 보고 싶고 외로웠던 마음이 표현할길 없어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카야의 외로움이 잠시 내게 머물다간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테이트’라는 이름의 오빠 친구가 글을 가르치고 그녀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의 도움으로 책을 읽고, 습지 생물을 그림으로 남기고, 그리고 특이 생물을 채집하고 사랑도 싹터간다.

오빠겸, 보호자겸, 카야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연인겸…
속속들이 카야를 알고, 마음써 주고, 아껴주는 마을의 유일한 존재다. 취미가 같아 이야기도 잘 통하고 그와 있으면 온 우주가 카야를 아늑하고 행복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런 그가 대학에 진학을 하고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마을의 바람둥이 쿼터백 체이스가 비집고 들어가고 거짓 결혼 약속과  함께  성적 유린만 당한 체 또 다시 거부당한다.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고 계산적이고 탐욕스런 그의 모습은 어쩌면 그의 죽음이 예견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유부남이면서도 집적되는 원초적인 수컷의 허세라고 할까!

그러던 어느날, 체이스는 소방 망루에서 추락사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카야’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법정에 서면서 이야기에 속도감이 붙기 시작한다.

어디서나 정의로운 손길은 있다. 톰 밀턴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카야의 변호사를 자처하고 그녀의 풀 네임을 불러 주며 , 남들과 똑같이 대해 준 유일한 마을의 백인이다. 그의 차분하고 꼼꼼한 논리 덕분에 카야는 무죄로 풀려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69년도 베트남 전쟁과 인종 차별 정책이 심하던 시절이다.
카야를 유일하게 친구로 대하고 도움을 주는 ‘점핑’이라는 흑인이 나온다. 마을 아이들에게 돌팔매질 당해도 고개 숙이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속마음으로 그저 길을 멀리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그의 모습에 ‘카야’가 놀려대는 사내 아아들을 향해 메고 있던 가방으로 야무지게 한 방 먹이는 장면은 통쾌 그 자체였다. 마을의  약자이면서 더 약자인 카야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호해 주려 애쓰던 인정 많은 사람이다.

카야에게 습지는 어머니와 같다. 모두 자기곁을 떠나 갔지만 변화 무쌍한 습지를 통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놀랄만한 성장을 이룬다.

홍합을 채취하고, 귀한 습지 새들의 깃털을 모으고 , 갈매기와 대화하고, 습지 동물을 관찰하며 야생의 생태학자로 변모해 가는 모습은 마음 속 응원을 보이는 독자들에게 뿌듯함을 선사한다. 작가 자신의 오랜 야생 동물 관찰 경험들이 카야라는  한 인물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반딧불이 이야기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반디는 같은 개체끼리 짝짓기를 하는데 어쩔땐 암놈 반딧불이가 속임수를 써 숫놈을 유혹하고 잡아 먹어버린다는 아야기가 충격적이었다. 어린 시절 한 여름 밤을 예쁘게 수놓었던 반닷불이에 대한 환상이 확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재 갈매기 이야기도 또한 흥미로웠다.
새끼들이 어미새 주변에 선명하게 박힌 점을 부리로 찍지 않으면 먹이를 주지 않아 굶어 죽는 새끼도 많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가 경이롭지 않은가! 습지에 관련된 베스트셀러 책들을 내고, 어멜다 해밀턴 가명으로 지방 신문사에 시를 투고 하고, 테이트와 결혼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잠시 행복 무드로 숨고르기를 한다.

그러다 카야의 죽음을 맞고
테이트가 그녀의 유품들을 정리하다  체이스 죽음에 관련된 ‘진주 조개 목걸이’ 를 발견하게된다.

나도 잠깐 이 반전에 숨을 멈췄었다.

‘카야가 체이스를 소방망루에서 응징했구나!’

하지만 이미 둘 다 저 세상 사람이 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냥 그녀의 복수에 공감해 주기로 했다. 소설이니까.^^

이 책을 옮긴이는 마지막 녹음 부분에 이렇게 말했다.

“독자들을 남부 노스 캐롤라이나주로 데려가고, 습지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고,
읽고 난 후에 독자들을 변화 시키는 책이다.”

라고 한 그녀의 말에 나 역시 깊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 가재가 노래 하는 곳# 카야#테이트#체이스#점핑#톰 밀턴#습지 #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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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 절이기

                                 김태정

아침 일찍 다듬고 썰어서
소금을 뿌려놓은 배추가
저녁이 되도록 절여지지 않는다
소금을 덜 뿌렸나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걸까 점심 먹고 한 번
빨래하며 한 번
화장실 가며오며 또 한 번
골고루 뒤집어도 주고
소금도 가득 뿌려주었는데 한 주먹 왕소금에도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소금 한 주먹 더 뿌릴까 망설이다가
그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제 스스로 제 성깔 잠재울 때까지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

상처를 헤집듯
배추를 뒤집으며
나는 그 날것의 자존심을
한 입 베물어본다

-김태정, <배추 절이기>,[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2004

배추를 자르고 소금 쳐 간을 하는 중에 둘째 녀석이 퇴근해 돌아 왔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배추를 보며 한 마디 툭 던진다.

“엄마, 오늘 김치 먹을 수 있어?”
😱
‘소금치는 중인데…’

항상 완전한 형태로 깨끗한 접시에 담겨 식탁에 차려져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아들아, 그런 도깨비 방망이 하나 있으면 엄마 먼저 구해줘!’

하고 말하려다 돌려 말한다.

“아들~, 몸에 좋은 음식은 시간이 걸려!”
이렇게 말을 한들 알아 들었을까싶다.

자르고, 소금 치고, 씻어 물 빼고, 휘휘 섞어 양념 만들고 , 하나씩 양념 묻히고, 그리고 저장 용기에 담아 김치 냉장고에 들어 가기까지
짧으면 하루 ,길면 삼일에 걸쳐 시간이 걸린다. 늘~ 그렇게 떨어지지 않게 공들이는 마음을 먹는 이는 잘  모른다.

김치를 담그는 단순 노동을 통해 우리의 삶 또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이것 저것 해보는 시간이 지나면 집중 할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해줘야 할 때가 온다.

거듭된 되풀이로 부모 인생에 소금치고,
애간장 태우고, 대차 대조표로  따지면 과잉 투자라 손 절매 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눌러야 사춘기가 지나간다. 집집마다 못 생긴 오리들 백조로 성장시키려 부모라는 이름으로 시도 때도 없이 절여진다.

겨우 한 숨 돌리면 내 밥 한끼 벌기 위해 내 몸의 소금기가 다 ~ 빠져나간다. 이마저도 다행이지. 눈 침침하고 몸에 기운 다 빠진 애비는 일이 많아 밤늦게 들어오고 그런 애비 퇴근 시간에 맞춰 일 자리없이 뱅뱅 맴돌다 집으로 들어가는 젊은 아들은 애가 탄다.

“사람은 변한다.”

라는 믿음으로 아리랑 곡선을 살아냈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라는 지혜 하나를 얻는다.

잘 익은 김치를 먹고 싶다면
발효의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야 맛볼 수 있듯이 품질 좋은 사랑도 기다릴 줄 알아야 진짜가 온다. 단, 본인의 노력은 필수 조건이다.^^

#배추 절이기# 기다림# 새해#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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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기 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보았던 직업군이 의료분야다. 밀물 들어 오듯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어 은퇴한 분들까지 현장에 투입되어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희망’이 씨뿌려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 묵묵히 소명을 다한 그들 주변에 사람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코로나 시기 유명세를 탄 책이 실존주의 문학의  대가 알베르 카뮈의 첫 장편소설  <페스트>라고 한다.

야생동물이 옮겨온 병으로 인해
일상이 파괴되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잘못된 종교에 대한 신념으로 바이러스가 더 급속도로 번져가고, 사재기, 극심한 경제상황,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등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얘기가 시간을 달리해 유사한 부분이 너무 많아  그의  선견지명에 새삼 놀랍다. 전염병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 오랑에서 자원 보건대 조직을 만들고 ‘페스트’와 싸우는
의사 리유를 향해 이 도시에 잠깐 왔다가 발이 묶여버린 의심 많은 기자 랑베르의 질문 장면이 나온다.

“도대체 여기에서 왜 이러고 계십니까?”

리유의 대답은 간단했다.

“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다른 고장에서 온 자신은 상관없는 듯이
신문기자 랑베르가 다시 묻는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이 부분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머리에 박힌 몇몇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이국종 응급의와 코로나 시기 자발적으로 의료 봉사를 간 의료진들이 떠오른다.

너무도 성실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향해 인간의 성실성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업의 본질을 앞세우고 자기가 맡은 직분을 묵묵히 완수해 눈앞의 닥친 재앙의 공포에 맞서는 모습은 불가능해 보여 그들을 더 빛나게 했던 것 같다.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누워 있는 환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일단  환자 가까이에서 눈빛을 교환하고 나면,그 환자가 오래 기다린 탓에 힘겨워하고 있다거나, 뒤늦게 나타난 내게 억하심정을 호소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습관처럼 환자에게 다가가 이마에 깊게 푹, 손바닥을 얹는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교수님처럼 그러면 환자의 이마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방금까지 다급했던 땀내와 열기가 훅 밀어닥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 무슨일로 오셨나요?”
그리고 가만히 그의 마음을 느껴본다.
그 사람에게, 같은 사람으로 성큼 다가가는 느낌이다.
-남궁인,<지독한 하루>,문학동네,2017- 이 글의 장면을 떠올려 보면 따뜻해진다. 차갑고 권위적이고 냉소적인 의사가 아니라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환자의 이마를 덮어주는 행위!
아프고 기다림에 지친 환자의 마음을 순식간에 순한 양으로 돌려버리는 마법이 있다.
이마를 덮어주는 이를 향해 늦었다며 화를 낼 수 있겠는가? 할머니, 엄마, 그리고 누군가가 내 이마를 덮어주던 그 따스한 손길을 우리는 공통 분모로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사람 냄새나는  의사라면  기꺼이 맡기고 싶지 않을까? 환자를 돈이나 숫자가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대해주지 말이다.

나의 병원 경험은 늘 유쾌하지 않았다. 이국땅에서 낯선 이방인 의사 앞에 진찰을 받을때면 속시원히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함이 몰려왔다.한국의 의료시설과 비교가 되어 신뢰감도 떨어졌다.

그날도 억지로 정기적인 유방암 검진을 하던 날이었다. 의례적인 서류 작업을 마치고 초조하게 대기실 밖에서 이름이 불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가 되어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에어컨이 켜진 진찰실에 들어가니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마음도 몸도 얼어붙고 살갗에 와 닿는 에어컨 바람이 더 써늘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검사를 끝내고 진찰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예정에 없던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한다.

‘아, 뭐지.혹시…’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이 스파게티가 된다.

다시 환자복으로 갈어 입고 초음파실에 누웠다. 이럴때 누가 옆에라도 있었으면…

의사는 보이지 않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한듯한 앳된 얼굴의 간호 보조원이 나를 향해 괜찮을거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의례적인 웃음이 아닌 가족을 대하는 웃음이 느껴져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내 몸의 온도를 한 칸 올려주는 것 같았다. 의사는 옆 방에서 전달된 초음파 사진을 보며 따로 판독하고 있다고 했다. 의료 시스템이 섬세하게 분화되어 있다보니 어쩌다 방문하는 나같은 환자는 늘 헷갈린다. 어쨌든 그날 나의 치료제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의사가 아닌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 그 어린 친구였다. 그당시 무표정한 얼굴에 타성에 젖은 목소리로 환자들에게 초조함과 소외감을 느끼게 한 스태프보다 업이 아닌 업의 본질을 느끼게 해 준 의료진은 어린 그녀로 기억된다.

솔직히 평상시에 그런 미소를 보았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고마워하지 않았을거다. 불안하고깨지기 쉬운 환자들 마음자리에 ‘환한 미소’와 다독여 주는 말 한마디가 그때 그 장소에서
커다란 위로로 다가왔다.

딱딱하고 무표정한 의료진들 뒷켠에 환자들의 처지를 일일이 공감하다 번아웃된 의료진들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한다. 엄청난 환자수에 밀려 의료진들도 어쩌면 돌봄을 받아야하는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로든 환자들을 향해 다가서려는 노력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그들만의 업의 가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하는 일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옆 사람 떡이 더 커보이기 시작하면 떠올려 보라. 내가 지금 업의 본질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위한 밥벌이가 사실은 상대도 먹여 살리는 중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업의 본질을 지키려다 깨져 나가는 바보같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오히려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허은실,<이마>,[나는 잠깐 설웁다],문학동네,2017

#코로나#의료진# #업&업의 가치#이마얹기#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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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지 않는 캘리포니아 크리스마스 풍경입니다.

눈이 보고 싶으면 북쪽으로 4시간 달리면
스키장이 보이고 신선한 눈을 보실 수 있습니다.

눈 대신 알록 달록 장식으로 아이들의 소망, 어른들의 희망을 표현해 봅니다.


#캘리포니아 크리스마스#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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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때마다 답답하다. 한 숨 한 번 내쉬고

‘나중에’ 하며 다시 닫는다. 그렇게 일 년이 되간다.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질 않는 냉동실 물건들!
살겠다고 꾸역꾸역 갈무리만 해놓고 도대체 뭐가 들었는 지 알수가 없다. 미로처럼 켜켜이 쌓인 먹거리가 얼음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아, 이 망할 놈의 욕심!’

나이들면 줄어들 줄 알았는데 다음에 꼭 쓰일식재료라며 또 챙겨 넣는다. 이제 닫히지도 않는 냉동고 문짝을 뚫어져라 쳐다만보다
이번에 진짜 어떻게 해야할 것 같다.

신문지 쫙 깔고 연말 정산하는 마음으로 정리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

그때 누군가와 나누었더러면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되었을텐데…

한국에서 보내 온 말린 생선이 이렇게 쳐박히지 않았더라면 멀리 사는 동서에게 보낸 큰 형님 마음이 얼음땡이 되어 온기를 잃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미안해진다. 상할까봐 일부러 건조 시켜 말려 보낸 그 시간과 정성이 버려지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진다.

먹고 남은 양념이 아까워 야채에 볶아 갈무리 해 둔 볶음밥은 매일 새 메뉴를 올려  놓아야 하는  식구들의 까칠한 입 맛 때문에 쌓이고 쌓여 결국 내 손끝에서 진단받고 버려져야 할 것 같다. 내 사랑이 거부 당한 느낌이다. 버리려 하니 굶주리는 사람들 생각에 죄 짓는 것 같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나 혼자 다 먹을 수 없지 않은가!
버려야 제대로 된 식재료 몇 개라도 건질 수 있지 않겠나!


사람도 너무 완벽한 것 보다 조금 빈 구석이 있어야 내가 들어가 채워 줄 구석이 있어 더 매력적이지 않던가! 이제 적당히 비워진 냉동고를 열 때 마다
덜어낸 욕심만큼 만족감이 찾아든다.
분류를 해 내 눈에 쏙들어 오니 되찾은 물건 마냥 애정어린 눈길로 한 번 더 열어 보게 된다. 꽉 차있어 답답한 느낌이 없으니 어쩐지 살림 잘하는 고수가 된 느낌이다. 비록 남편 몰래 버리는 것으로 어설픈 살림 솜씨를 눈가림 하긴했지만 유효한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식재료를 향한 집착은 능력없던젊은 엄마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가야할 것 같다. 할 줄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친정•시댁으로부터 음식 원조 받는 것도 노년이 되어가시는 양가 부모님께 내 가족을 억지로 떠맡기는  기분이 들어 영~~별로였다.  

음식 맛은 장담 할 수 없지만 식구들 먹거리 만큼은 내가 직접 챙기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다른 것은 혹시 못 지키더라도  이것  한 가지 만은 꼭 지키고 살기로 마음 먹어었다. 시간이 흘러 이런 다짐도 무한 반복되며 욕심으로 집착으로 번져간것 같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내 욕심의 실체와 마주서보니 우물 안 욕심 사나운 개구리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된다.

가벼워야 뛰기라도 할 것이 아닌가?
양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때로는 내려 놓을 줄 알아야 가벼워질 것이 아닌가?

결과는 나도 남도 제 때 먹지 못해 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요즘 기후 변화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주는 일이 어쩌면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분이 아닌 먹을 수 있는 양만큼만 조리하고
냉동칸은 50%만 채워서 신선도를 유지하고
식품 저장칸에 쌓아 두는 일을 자제하기로 했다. 어쩌다 많이 생기면 주변 지인들과 바로 바로 나눠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되도록 배려하기로 했다. 뭐든 스몰 스텝으로 천천히 가야 오래 오래 할 수 있지 않겠나!


                     &

#냉동고#욕심# 비우기# 베이비 스텝#일상
#X-mas#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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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냉장고에 심하게 작은 사과 한 봉지가 눈에 띤다. 그냥 놔두면 상할 것 같다. 건조기에 말리기로 결정하고 사과를  자르기 시작하니  칼 끝에서 사과 향이 난다.

어릴적 엄마 손잡고 따라간 외갓집은 늘~ 과일 향이 났다. 과수원을 하셔서 참외, 수박, 복숭아, 사과 등등 철마다 집안에 퍼지는 향이 매 번 달랐다. 순진한 나는 모든 아이들 외갓 집이 모두 과수원인 줄 알았었다. ^^

사과 향 맡으며 칼질하는 내 손끝에서 잠시나마 유년의 풍성한 기억들이 머물다 나를 훑고 지나간다.
원두막, 기차, 수박 •참외 서리, 사과 봉지,
상처난 복숭아…등등




나를 구해 준 생강향!
새댁인 내가 첫 아이를 임신 하고 구토와   들쑥 날쑥 생체 리듬에 몹시 헤매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음식 냄새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와 피하고 싶었지만 노령의 시 어머니는 전혀 이런 불편함을 이해해 주질 못하셨다. 너만 요란을 떤다는 식으로 바라보셔서 새댁인 나는
명암도 못 내밀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다 시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독대 하나를 여는데 이상할 정도로 구역질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자세히 살펴보니 겨울에 얼지 말라고 갈무리 해둔 생강 꾸러미였다. 매슥 거리며 토하려 할 때 나는 생강 단지를 찾아갔고 뚜껑을 열어 놓고 향을 맡으며 한참을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진정 시키곤 했었다.

그러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새댁이 되어 무섭기만한 시어머니와 함께 밥상 머리에 앉으면 체하기 일쑤였다. 시댁 분위기가 낯설어 물과 기름처럼 섞이는 것이 어려웠다. 거기다 덜컥 아이까지 임신을 하니 밀려오는 파도에 내가 먹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성적인 내가 동서남북 둘러봐도 내 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믿고 의지했던 남편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 별보기 운동을 하듯 늦은 귀가로 내 마음에 마구 스크래치를 냈다. 무탈하게 집 찾아 온 것 만으로도 만족해야했다. 아군이 적군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이렇게 내가 살기 위해 찾아 낸 고마운 생강향 덕분에 입덧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몸이 차가운 나는 요즘은 생강을 말려 가루를 내어 자주 복용하고 있다. 이곳에 의료체계가 별로 다 보니 예방차원으로 작은 병에 담아 늘 ~ 가까이 하는 나의 최고 아이템이다.

동양화에 매, 난, 국,죽 사군자가 있다면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살림의 사군자가 있다.

실란토르, 베이즐, 쪽파, 양파

초록의 싱그러움을 가족들 식탁에 올리고
얼큰한~ 김치찌개에 파 쫑쫑 썰어 마무리를 하면 후각•청각•시각이 먼저 와 시식을 한다.
그동안 씻어 내리고 •다듬고 •자르고 한 파단숫자만으로도 어설픈 집 한칸 지을 지도 모르겠다.^^ 화장품 냄새 나던 실란토르도 멕시코 음식 만들 때면 한 존재한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애지중지 하던 바질도 스파게티에 빠지면 서운하다. 웬만한 음식에 감초처럼 섞여 다른 식재료 맛을 업그래이드 시켜주는 양파는 무림의 숨은 고수같다. 살림의 사군자 덕분에 내 식탁은 오늘도 풍성하고 안전하다.




                      감 꽃

                                   도종환

하늬바람에 감꽃이 노랗게 집니다.
떨어진 감꽃을 모아 아이와 소꼽놀이를 합니다.
감잎으로 부채를 부치며 아이는 좋아라 합니다.
감꼭지도 주위와 돌 위에 쌓으며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봅니다
가끔씩 바람이 몰려가다 감잎에 걸리면
머리 위에서  왁자지껄 감잎이 떠들고
슬픔을 가리듯 감잎으로 하늘을 가리고
혼자 울던 제 울음소리를 아이는
조금씩 잊습니다
하늬바람에 감꽃이 노랗게 집니다.

생김새 모두 달라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들 모습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의 고유의 향을 잘 지켜 나가는 것도 내공이다. 내 향도 잘 지키고 상대방 향도 잘 지켜주며 향기 나는 그 자리가 꽃피고 열매 맺을 자리 인 것을 이제는 안다. 어쩌다 어른이 아닌 괜찮은 어른으로 물들어 가고싶다.

#사과향#생강향#살림 사군자#감꽃#괜찮은 어른#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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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소복히 쌓인 길!
한 손에 노란 주전자를 들고 아빠 술 심부름을 갔다. 큰 길 반 쯤 왔을 때 얼핏 본 실루엣을 보고 화들짝 놀라 골목으로 얼른 뛰어들어가 몸을 숨기기 바빴다. 콩닥이며 뛰는 가슴,  벌게진 귓볼, 들고 있는 빛 바랜 노란 양철 주전자… 맞다. 내 풋 사랑이 지나가고 있었다.

딸 부자집 막네, 정육점 집 막둥이, 잘 생긴 그 머슴아가 지나가고 있었다. 초등 고 학년 때 일로 기억한다. 지금은 얼굴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옛 이야기이다. 사춘기를 막 시작할 무렵 내게 그 아이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딴 세상에 속하는 아이처럼 보였다. 집에서도 누이들 많은 꽃밭 응석받이에 학교에서도 꼬맹이 꽃밭에 에워쌓여   늘~ 함박꽃처럼 웃고 있었던 아이!
말 한번 건네 보지 못하고 멀리서 부러워만 하던 나!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중학생이 되어 막 졸업한 총각 선생님이 수학 교사로  학교에 오셨다. 학교가 뒤집어졌다. 티 안나게 예뻐 보이려고 여중생들이 난리였다. 총각 선생님은 눈을 어디에 둘 지 몰라 허공을 맴돌고 어쩌다 수업 중 눈이 딱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날 하루는 내 마음이 교실 천장 찍고 바닥으로 내려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은 날이었다. 잘 보이려 수학 공부 좀 하고 있었는데 얼마가지 못했다.
왜냐고?
교무실 나란히 앉아 계신 역사 선생님과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내가 수포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들 중 크게 한 몫 하셨다. 내 탓도 크지만 말이다. 호호 할아버지 •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 재롱 잔치 보며 늙어 가고 계시겠지.



설 익은 일방적인 풋 사랑만 하다 대학 졸업  파티 때 선배 자격으로 놀러 온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2월 졸업 예정인데 1월에 폭풍우 몰아치듯 예상에 없던 인연이 만들어지고 눈 떠보니 어느새 유부녀가 되 있었다. 졸업식때
시어머님이 친정 부모님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나의 환상을 깨는 일은 시댁에서 일상을 시작하는 첫 날 이미 깨지기 시작했다. 내 선택이 옳았던 걸까?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엄마가 되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허리를 펴니 벌써 하얗게 흰 머리가 내려 앉았다.

“남들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내 인생의 바닥과 비교하지 마라.”

남들 인생 곁눈질 안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찾기는 훨 ~수월해진다. 망원경이 아닌 현미경으로 일상을 바라보면 감사할 꺼리가 넘쳐난다. 주워 담아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은 본인의 몫이다. 내 상처를 아픈이와 기꺼이 나눌 때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 나의 내면에 누군가가 들어와 쉬어 갈 방 한 칸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풍요로워진다.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에 보면 ‘올라프 ‘
라는 무한 긍정 캐릭터 눈사람이 있다.

모든 것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리는 괴이한 능력을 타고난 언니와 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심장이 얼어서 죽는것도 마다하지 않는 동생 안나가 있다.

안나를 보호하기 위해 엘사는 일부러 동생을 피한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하나 필요했다.


눈이 오면 엘사와 안나가 만들던 눈사람!
성탄절만 되면 만들어 서로에게 선물하던
눈사람!
마법으로 가장 처음 만든 것도  눈사람!

바로 ‘올라프’이다.

올라프는 안나를 끊임없이 엘사에게로 인도한다.올라프는  엘사의 따뜻한 마음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네가 원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거야.”

“난 아무래도 괜찮으니
당신만 좋으면 돼.”

사랑은 이런 마음 뒤에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 맺어 ‘그래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어닐까?

#사랑#풋 사랑#찐 사랑#올라프 사랑#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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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교과서 밑에 깔고 감질나게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다. 이 책과 올 여름 다시 만났다. 다 큰 어른으로 작가의 나라에서 원문으로 한 여름 땡볕에 시작해 짬짬이 며칠 전 마무리 지었다.

책도 나이를 먹는걸까?
주인공 주디도 보이지만 주변 인물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백년을 훌쩍 넘긴 책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지금봐도 매력적이다. ‘쥬디’가 길거리에 툭 튀어나와 마주하면 금방이라도 깔깔 거리며 말을 건낼것 같다. 이래서 고전의 힘은 위대하다. 마치 묵혀 놓은 포도주가 세월의 흔적을 맛과 향에 담듯이 읽는이의 마음을 담아 멋스럽게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새롭게 변형될 수 있는 여지를 어딘가에 남겨두는 것 같다.

줄거리는 고아 소녀 주디(제루샤 애벗)가 고아원 생활을 하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 생활을 하는 내용이다. 매달 후원자에게 자신이 성실히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편지를 통해 알리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랑까지 얻는다는 내용이다.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 쓴다는 것은 불편함을 전제한다. 그 대상이 가족이라도 예외가 없다. 코로나때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와글 와글 말 안듣는 꼬맹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리는 고된 시절을 보낸 쥬디에게 처음으로 혼자만의 방이 생겼다.

그 당시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나는 축복이라 여긴다.

내 방이 생긴 다는 것!
온전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고 민낯의 내 깊은 자아와 마주하는 시간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야말로 자존감이 싹을 틔우는 공간이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며 안방이 두 아들의 공부방으로 바뀐 적도 있고 이리 저리 이사를 하며 분명 내 집인데 온전히 내가 들어가 쉴 공간 하나 없었던 적도 있었다. 빈 둥지 증후군을 겪으며 접이식 작은 책상이라도 구석에 들여 놓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내 영역을 확보 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엉덩이 붙이고 끄적이기도 하고 읽기도 듣기도 하면서 그 공간을 통해 작은 성취도 맛보면서 설레임과 불안이 뒤섞인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어릴 적 꼬박 꼬박 챙겨본 만화 영화 ‘캔디’, 빨강머리 앤,삐삐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쥬디는 유쾌하고 솔직하다. 마치 통통 튀는 매직볼 두 개를 양쪽 호주머니에 찔러 놓고 다니는 것 같다.

부족한 기본기를 메우려 방학동안 책 속에 푹 파묻혀 지내는 모습이 어쩐지  짠~~하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존재감 약해 맹물같이 무덤덤한  대학 생활을 보냈던 나에 비해 하고싶은 걸 억척같이 해내는 쥬디의 대학 생활이 부럽기도 했다.

저비 도련님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이 고아 출신이라 감히 잡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것 같았다. 연애와 결혼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와 상관없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줄리아 펜들턴이 실크스타킹 신은 모습에
아저씨가 준 용돈으로 사는 장면
버터컵(뿔이 하나 달린 얼룩소)이 과수원으로 들어가 떨어진 사과를 먹고, 먹고, 또 먹다가 너무 먹어 취해버린 이야기
글 사이 사이 그려진 웃스꽝스런 그림들
밀가루 저울로 사람 몸무게 재는 이야기 …
등등 그녀의 위트는 그녀라는 무게 중심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어른스런 모습이 대견스럽다. 어쩌다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그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피터팬의 그림자를 웬디가 바느질 해 꿰매준 것처럼 쥬디 역시 자신의 그림자를
기꺼이 품고 꿰맬줄 아는 당당함이 나는 좋다.
우리 모두가 내려가고 싶지 않은 그래서 꺼내놓고 싶지 않은 마치 ‘기생충’의 제일 깊숙한 곳에 숨어 사는 그 사람 닮은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테니까 !

책 내용중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11월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의 투표권 한 장이 백년 전만해도 택도없는 소리였다. 인권이란 의식 조차 없던 시절 작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세대를 넘어 모이고 모여 귀한 한표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여성이란 이름으로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미래 세대에게 건네준 이 선물에 왠지 뭐라도 해서 갚아야할 것 같은 부채감이 든다.

쥬디의 글쓰기와 나의 글쓰기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쓱삭 쓱삭 글을 쓰고 있으면 멀리 있는 행복이란 녀석이 그때만큼은  내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른 결혼으로 잃어버린 20대를 다시 돌려 달라며 발악을 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후회는 없지만 때로 수정을 하며 속도 조절도 해야함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비교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과 아이들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나를 일으켜 세우며 내가 나를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나를 돌봐줄 부모님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작가 진 웹스터(Jean Webster)는 이 책을 출간 후 미국내 고아들의 복지 문제를 재조명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의 끄적거림이 누군가의 하루를 웃게 할 수 있고
마음 한 구석이라도 따뜻하게 덮혀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키다리 아저씨#쥬디#나만의 방#선거# 솔직함# 글쓰기#정체성#일상#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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