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은퇴한 선배가 작은 아들을 데리고 1박을 하고 갔습니다. 예전 같으면 귀찮다고 궁시렁 거릴텐데, 이젠 그들을 대하는 제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선배의 지난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같은 역사가 내 삶 안으로 잠시 걸어 들어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흐트러졌던 일상을 부리나케 정리해야 했습니다. 치우고 버리고 그리고 갈무리하면서 제 일상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외부로부터 누군가 와야 긴장이 생깁니다. 알면서도 관성에 의해 못 본 척 , 아닌 척했던 살림살이를 원 위치 시켜 놓느라 부산을 떨게 됩니다.
이제 몇 번을 서로 보고 살 지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그 쓸모를 알아가기 위해 남은 시간을 공들여 살아겠지요. 30년 넘게 '아비'노릇 하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엄지 척해드렸습니다. 버텨온 시간은 영광일 수도 상처일 수도 있는 흔적들을 몸에 남기죠. 선배 역시 억지로 채식주의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좋아하던 술친구들 뒤로 하고 이제 혼자 등산을 한다고 합니다. 술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니 자연히 인간관계의 가지치기가 저절로 되었고요. 서로 가끔씩 오래 보는 관계로 선배의 인생 컨셉이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시대를 거슬러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테인(Jan Steen , 1626-1679)의 삶을 살펴봅니다.
얀 스텐(Jan Steen)은 렘브란트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다 간 화가입니다. 렘브란트보다 20년 뒤에 태어나 그보다 10년 뒤에 죽었으니까요. 그는 렘브란트처럼 무겁고 비장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가정과 일상을 주제로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 친근한 그림을 많이 그렸지요. 인간의 심리에 대한 그의 통찰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물론 야심을 지닌 화가로서 그는 풍속 주제뿐 아니라 종교, 역사, 신화, 풍경, 초상, 정물 주제 등 회화의 거의 모든 주제와 장르에 관심을 갖고 그 모두를 넘나들었던 화가 입니다. 그러나 그를 오늘날까지 유명하게 해 주고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은 것은 대부분 당대 네덜란드의 일상풍속을 다룬 풍속화들입니다. 네덜란드 판 김홍도 같은 화가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얀 스텐(Jan Steen)은 세태를 꼬집는 당대의 속담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663년에 그린 <사치를 조심하라> 또한 네덜란드 속담에 기초한 그의 걸작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일이 잘 풀릴수록, 상황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이를 경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권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풍족할 때 조심하라. 그리고 회초리를 두려워하라.
-네달란드 속담-
아수라장이 따로 없습니다. 아주 번잡해 보이는 실내에서 한 여인이 앉아 졸고 있습니다. 값비싼 반코트를 입은 그림 왼편의 여인이 그 주인공이죠. 그녀가 졸고 있는 사이, 집안은 개판이 되었습니다. 소란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여인은 여전히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모릅니다. 왼쪽 창가부터 살펴볼까요. 테이블 위의 차려놓은 음식은 개가 먹어치우고 있는 중입니다. 아기는 음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값비싼 목걸이를 가지고 놀고 있고요. 뒤쪽의 남자아이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어른 흉내를 냅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인 듯한 남자는 화면 중앙에서 하녀와 시시덕거리며 수작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빨리 일어나라고 안주인의 어깨라도 잡아 흔들고 싶을 정도입니다. 망조가 들어도 큰 망조가 든 집안입니다. 다른 등장인물들과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 음식들, 그리고 등장한 돼지까지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집안의 형편을 생생히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그리며 얀 스텐(Jan Steen)은 염두에 둔 속담을 그림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놓인 석판에 써 놓았습니다.
졸고 있는 부인이나 하녀와 수작을 부리는 남편이나 다 잘 차려입었고 세간도 이만하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이죠.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건실한 삶을 살지만 성취하고 난 다음에는 패가망신하기 쉽습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 좋은 일이 있을수록 스스로 돌아보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 를 기울여야 하지요. 이 집은 바로 그 교훈을 잊고 있기에 이처럼 뿌리부터 허물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죠. 얀 스텐(Jan Steen)은 그 속담을 강조하기 위해 천장에 매달린 바구니에 칼과 목발을 그려 넣었습니다. 칼과 목발은 징벌의 상징입니다. 집안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여인이 계속 졸고 있다면 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물론 징벌은 여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집안사람에게 뻗칠 수밖에 없죠.
이 그림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그림의 중심이 주부라는 것이죠. 서양회화에서 주부들의 일상이 본격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시민사회의 부상과 더불어서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이렇듯 주부들의 중요한 소재로 조명 받기 전, 유럽에서는 오로지 귀족 여성들의 화려한 이미지만이 캔버스를 수놓았습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애당초 귀부인 초상은 일반적인 주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평민 여성은 그려진다 해도 주부로서 보다는 농촌 일에 바쁜 농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려지곤 했습니다. 가정 안에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부지런히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때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기도 하는 전형적인 가정부부의 모습은 도시 부르주아의 등장 없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입니다. 시민 공화국을 형성한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 서양 미술사상 처음으로 주부 주제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자상한 어머니만큼 가정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존재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자연히 주부의 덕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이 그려졌지요. 물론 이런 의식은 당시의 네덜란드를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안에 다소 가부장적인 편견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치를 조심하라>의 바람을 피우는 남편에서 보듯 집안의 문제에는 남편의 잘못도 큰데, 그 모든 원인이 아내에게 있는 듯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zJlu2Q4kSg
https://www.youtube.com/watch?v=YLDe6uMr5o4
얀 스테(Jan Steen)은 레이덴(Leiden)에서 잘 나가는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제가 몇 명이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8명 이상 되었던 듯합니다. 그래도 집안이 유복한 편이었기에 라틴어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후 위트레흐트에서 독일인 화가 니콜라우스 크뉘페를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얀 스텐의 독특한 구성과 색채는 무엇보다 크뉘퍼에게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큽니다. 크뉘퍼 외에 농촌 풍속을 즐게 그린 오스타데 형제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1648년 유명한 풍경화가 얀 판 호이옌의 조수가 되었다가 이듬해 호이옌의 딸과 결혼합니다. 이런 밀접한 관계로 인해 장인인 호이예와는 네덜란드의 미술시장이 침체되는 1654년까지 줄곧 협업을 했습니다. 얀 스텐(Jan Steen)이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풍속화를 그리게 된 바탕에는 무엇보다 가업 등 집안 배경이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조부에 이어 2대째 양조업을 했고, 얀 스텐 또한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으나 한때 양조업을 했습니다. 당시 양조업을 하노라면 보통 선술집도 같이 운영하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선술집 풍경에 익숙했던 그로서는 그곳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후에 야조장과 선술집 대신 여관을 운영해 가정 경제를 보완했습니다. 여관 또한 선술집 못지않게 인간을 관찰하는데 그만인 곳이었죠.
한 가정이 식사전 빙 둘러앉아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금처럼 음식이 넘쳐나 오히려 단식을 통해 인위적인 조절을 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었죠. 비록 흰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이 빵과 버터 그리고 끓고 있는 수프가 전부인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두 손을 모으고 가족이 올리는 감사기도가 위에서 보시기 기특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만큼 귀한 것도 없을 테니까요. 이 와중에 테이블 아래 강아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떨어질까 싶어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개한테까지 돌아갈 빵 부스러기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람 속에 고이 잠든 아기의 모습, 촘촘하게 짜인 요람형태 바구니가 집에 하나 있었으면 할 정도로 탐이 납니다. 모자를 벗고 위를 향해 드리는 진지한 기도, 아가의 고사리 손으로 드리는 기도, 안주인의 두 손가락을 마주 모은 기도, 가장의 두툼한 손을 모은 기도 등 기도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등을 돌린 채 가족의 맛난 수프를 끓이고 있는 여인의 바쁜 손놀림, 그 사이 삐집고 들어온 붉은 화덕의 온기가 단출한 집안의 차가운 공기를 따뜻하게 덥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골 결혼식 피로연 풍경입니다. 그림 맨 왼쪽의 두 남녀는 좀 진한 애정 표현 중입니다. 남자가 나이든 걸로 봐서는 썩 유쾌한 관계는 아닌 것 같고요. 어린 소녀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줍니다. 아니면 춤추는 두 남녀의 모습에 넋 놓고 계시는 할머니 것을 슬쩍 빼앗아 가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동작이 신이 나야 분위기가 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나 봅니다. 의자 위로 올라간 걸 보면 말입니다. 그 옆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미 술이 거나한 모습들입니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죠. 안부를 전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다락방에 있는 사내에게도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아주머니는 잘 굽혀지지 않는 몸을 힘껏 뻗고 있습니다.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렵게 무대로 끌려 나오다시피 한 아주머니가 수줍은 듯 그러나 싫지 않은 듯 남자의 발재간에 자신도 스텝을 옮겨 봅니다. '나는 잘 못하는데~ '하는 표정입니다만 혹시 모르죠. 그녀가 퀸카 일 수도 있을지.. 조금 뒤가 궁금해집니다. 그나마 초대받지 못한 아이들은 창 밖에서 멍하게 보는 것 이외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오래간만에 강아지도 뼈다귀와 인간들 흥 구경에 넋을 놓고 있네요. 자리를 제대로 잡았는데요.
12절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입니다.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 째 되는 날을 말하는데, 대개 1월 6일입니다. 이 날이 의미가 있는 것은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만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죠.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이날 와플을 먹었다고 합니다. 식탁에 빙 둘러 않은 사람들의 표정이 유쾌합니다. 가운데 켜 놓은 촛불을 등을 보이는 사람이 막고 있어서 입체감이 더 커졌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 자리에 참석한 듯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는 아이들끼리 그렇게 아기 예수가 세상에 도착하였음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아픈 여인을 위해 의사가 왕진을 왔지만 분위기는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프다는 환자나 맥을 짚고 있는 의사나 표정이 묘합니다. 아마 여인이 앓고 있는 병은 상사병일 것입니다. 상사병에 별 다른 약이 없지요. 하녀가 들고 있는 노란색 액체가 든 유리 병이 '상사병'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고 해요. 애가 탄 하녀는 표정이 어둡지만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의사는 차마 상사병이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더구나 의자 뒤에 앉아 있는 활을 든 꼬마의 모습은 큐피드를 떠올리게 합니다.
얀스텐(Jan Steen)이 연극을 좋아했던 것도 '인간 극장'을 즐겨 그린 그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그가 연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수사학회 멤버들을 자주 그렸던 데서 잘 드러납니다. 네덜란드의 수사학회 (Chambers of rhetoric)는 극회로 , 그 멤버들을 수사학자(Rederijkers, 영어로 Rhetoricians)라 부르던 데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은 연극과 서정시에 주로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도시의 권력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공공 집회에서 도시 홍보의 일환으로 시를 낭송하고 연극을 공연하곤 했습니다. 연극에 대한 얀스텐의 이런 호감은 그의 그림이 일종의 연극적 전개로 표현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풍속화적인 주제와 연극적인 표현은 매우 잘 어울리는 것이어서, 그 적절한 조화를 이룬 그의 그림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카드놀이가 끝났지만 두 사람은 참지 못하고 서로의 무기를 빼 들었습니다. 바닥에 나 뒹구는 카드와 그릇을 보니 누군가 놀이판을 뒤집은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가 됩니다. 왼쪽의 사내는 옷도 그럴듯하고 칼을 찼습니다. 아이와 여인이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고요. 반면에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은 비록 송곳 정도의 작은 칼을 들고 있지만 아주 강해 보입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서 있는 사내가 당한 모양입니다. 오른쪽 구경하는 사람들은 이런 광경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들입니다. 자기보다 배운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깔보았다가 아주 심하게 당한 모습입니다.
어른들이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도 재잘댄다.
-네덜란드 속담-
얀 스텐(Jan Steen)의 또 다른 걸작인 <즐거운 가족>도 속담에 의지한 작품입니다. 온 가족이 왁자지껄 음악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격식을 갖춘 공연은 아니지만, 세상 그 어느 공연보다 흥이 납니다. 할아버지는 술잔을 높이 치켜든 채 노래를 부르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함께 악보를 보며 정답게 음정을 맞춥니다. 아빠와 아들도 백파이프와 피리 연주에 깊이 빠져 있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어린아이들은 딴짓을 합니다. 심지어 담뱃대를 빠는 아이도 있고요. 여자 아이들은 술 따르는 시늉을 하고 한 잔 받아 먹는 소꿉놀이 중인가요? 쟁반과 숟갈 등이 바닥에 떨어져 난장판이 되었지만 그것에 신경을 쓰는 가족은 아무도 없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장단을 맞추는 이 시간이 그저 즐겁고 행복할 뿐이죠. 그림 오른쪽 상단에 속담이 적혀 있습니다.
아래 세대는 윗세대를 따라 하기 마련이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속담이라하겠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어른이 먼저 본을 보이는 게 중요하지요. 그림에서 어른들이 저렇게 인생을 즐겁게 사니 아이들도 장차 삶을 유쾌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즐겁게 놀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죠. 이 그림에서처럼 바닥이 어지럽혀져 있고 심지어 아이가 담뱃대를 들고 있는 복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된다면 자칫 삶을 낭비하는 잘못된 습관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인생을 즐기되 그것이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얀 스텐(Jan Steen)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림입니다.
가정을 주제로 한 얀 스텐(Jan Steen)의 그림들 가운데 1664년 작품 <아기 탄생 축하 Celebrating the Birth >입니다. 방금 산모가 해산을 한 산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 여성들이죠. 화면 왼편 뒤쪽으로 이 사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산모가 침대에 누워 죽을 받아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주 작게 표현되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 앞으로 친척과 하녀로 보이는 여성들이 방금 전까지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덜려는 듯 식탁 주위로 모여들어 술과 음식을 나누려고 합니다. 물론 이 축복의 자리에는 남성도 함께 하고 있고요. 대표적인 인물이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의 아버지 입니다. 그는 화면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그림에서는 보통 아기 엄마가 조명을 받는데, 이 그림에서는 오히려 아기 아빠가 크게 부각되어 있습니다. 화가는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요?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이가 아기 아빠 왼쪽에 그려진 남성입니다. 지금 방에서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려 하는 그는 아기 머리 위에 특이한 제스처로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입니다. 언뜻 보면 'V'자 같기도 하고요. 젊은 이의 이 손짓은 아기의 아버지가 오쟁이 진 남편 , 곧 '부정한 아내'를 둔 남편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의 탄생으로 누구보다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남자가 실은 진짜 아버지가 아니며, 어리석게도 그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갓난아기의 아버지 치고 남자는 꽤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그는 어린 여자와 결혼해 이렇게 노년에 손자 같은 아기를 품에 안게 되었지만 , 실은 그가 성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을 화가는 그림 여러 곳에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를테면 그림 왼편 바닥에 놓여 있는 온열 팬은 이 부부의 침대를 덥히는 게 두 사람의 뜨거운 육체가 아니라 바로 이 팬뿐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편 벽난로에 소시지가 축 늘어진 형태로 매달려 있는 것도 남자의 성적 무능력을 상징하는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오쟁이(자기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다) 진 남편이 되었음에도 그는 그 '출생의 비밀'을 까맣게 모른 채 그에게 수고비를 달라는 산파와 요리하는 여인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꺼내 주려 합니다. 이 그림이 이런 유머에 실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 무렵 나이 든 남자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정략결혼이죠. 이처럼 돈이나 욕심을 앞세운 결혼은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하게 만든다는 거죠. 좋은 가정을 이루려면 먼저 헛된 욕심을 버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짝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합니다.
이곳이 교실 맞습니까?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교실은 분명한데 공부를 하는 녀석은 몇 안되고 완전히 놀이판의 모습입니다. 어제 밤 뭘 했길래 잠을 자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책상 위에 올라가 듣던 말든 노래를 부르는 모습 같기도 하고, 아니면 "선생님, 제네 싸워요."하고 이르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끼리끼리 어울려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남자 선생님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딴청을 피우시네요. 권위가 옷차림에만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여 선생님은 그 와중에도 아이를 가르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소란스럽고 어지럽지만 그 안에도 학업열 불타오르는 영민한 아이들은 있을 테니까요. 나이 성별 차이 없이 한 교실에서 함께 부딪끼며 배운 모습입니다.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는 아이들의 에너지와 호기심이 얀 스텐(Jan Steen)의 그림을 살려냅니다.
"이 녀석 이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
아이의 손은 벌써 눈가에 가 있습니다. 더듬거리며 읽는 아이 뒤에 서 있는 여자 아이는 이미 겁에 질렸습니다. 맨 앞에 앉은 아이는 여유있어 보입니다. 선생님 테스트에 패스했나 봅니다. 궁둥이 붙이고 앉은 자세가 훨씬 여유로워 보여 말이죠. 스테인 작품 속에는 특히 아이들의 표정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미 당대의 렘브란트 다음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작품 가격도 비교적 높았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BTx1WKNUh8
1648, 스텐은 헤이그에 있는 스승 호이옌의 집으로 이사합니다. 그리고 호이옌과 함께 작업을 합니다. 1649년 , 스물 세 살이 되던 해, 그는 호이옌의 딸 마그리트와 결혼합니다. 둘 사이에 여덟 명의 아이를 두었다고 합니다. 스테인은 1654년까지 호이옌과 함께 작업을 하다가 델프트로 이사를 합니다.
결혼은 기쁘고 즐거운 것이어야 하는데, 벌어진 상황은 그리 유쾌해 보이지 않습니다. 무릎을 끓고 신부를 간청하는 남자는 평판이 좋지 않은 귀족이거나 동네의 돈 많은 유지겠지요. 호시탐탐 이 집 아가씨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중매쟁이를 세워 결혼에 이르게 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 결혼이 못 마땅한 아버지는 신랑에게 주먹을 쥐어 보입니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아비를 곁에 있는 여인이 다독입니다. 딸아이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슬픔 그 자체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입니다. 반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람이나 문을 열고 너스레를 떨며 들어오는 남성의 입가에 벌써 미소가 걸렸습니다. 이 가정에 닥친 황당한 사연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델프트 폭발 사고로 미술 시장은 급격하게 축소됩니다. 그래도 생계는 중요해 양조장을 빌려 2년간 운영했지만 별 재미는 보지 못했습니다. 양조장을 접은 스테인은 다시 라이덴으로 이사를 가서 4년간 살다가 하를렘으로 옮겨 10년 간 머뭅니다. 라이덴괴 하를럼에서 사는 동안 스테인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합니다.
스테인은 의사와 환자를 소재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 환자의 맥을 짚고 있는 의사의 모습인데, 작품마다 담고 있는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작품 속 여인의 얼굴은 웃고 있어 환자 같지 않습니다. 여인은 지금 임신중이거든요. 한의사가 맥을 짚듯 17세기 네덜란드 의사들도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환한 여인의 얼굴이 이해가 되고요. 집안에 경사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김홍도의 그림으로 치자면 훈장님이 곰방대가 아닌 숟가락 같은 무기로 아이를 혼내시는 중입니다.
"손바닥 이리내!"
선생님 말씀에 벌써 부터 우는 시늉을 합니다. 녀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시험지에 이런 낙서만 잔뜩 해 놓았군요. 녀석은 상습범인가 봅니다. 엉엉 대고 우는 모습이 아니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눈치거든요. 그 걸 알고 있는지 옆에 소녀의 표정은 '아이, 셈통이다.'뭐 이런 표정입니다. 보고 있던 꼬맹이 표정이 사뭇 심각합니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걸 까요? 까만 눈에 통통한 볼살이 아주 귀엽습니다.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있는지 모자를 푹 눌러쓴 녀석 혼날까 봐 마음이 바쁩니다. 그 뒤에 머리 하나 큰 아이는 비상입니다. 친구 매 맞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거든요. 엎드려 답안지를 고치는 녀석도 있고. 아무튼 큰 시험이든 작은 시험이든 '시험'은 항상 불친절합니다.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니까요.
<Bean-feast>는 1년에 한 번 고용주가 한 턱 내는 것을 말합니다. 가운데 앉은 두 남녀가 오늘 연회를 열어 준 주인집 부부입니다. 흥이 오른 사내가 '개인기'를 선 보이고 취기가 오른 여인은 이미 온 몸을 의자에 맡겼습니다. 여전히 술병은 손에 쥔 채로 말입니다. 그 모습이 우스운지 개가 물끄러미 사내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악사는 연주보다 저 자리에 편안히 앉아 동료들과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들어오는 음식에 눈길이 멎는 걸 보면 말입니다. 왜 아니겠어요. 이런 자리는 고단한 사람들에게 기름기 들어간 음식 한 번 실컷 먹어볼 수 있는 손꼽아 기다린 날 아닙니까. 주인집 부부가 감탄하고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니 남자의 개인기는 오늘 성공한 것 같습니다.
술집 앞 풍경은 어디나 비슷한가 봅니다. 한 무리의 남녀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쏟아져 나옵니다. 한 남자는 이미 뱃전을 잡고 비몽사몽 잠에 골아 떨어진 지 오래이고요. 운하를 운행하는 배에 오른 사람들은 술 한 통 사들고 오는 남성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릅니다. 나무 밑에 자리를 잡은 여인은 이미 술에 취해 잠이 들었습니다. 붉은 천 위에 앉은 남녀는 남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표정이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혼자 노는 저 아이는 도대체 누구 집 아이죠? 떠들썩한 소리에 개까지 컹컹 짖으며 한 수 보탭니다. 나무 뒤편으로 카드놀이를 하는 한 무리의 남자들도 보이고 내려다보며 훈수 두는 남성도 보이네요. 창문 너머로 이 모든 것을 넘어다 보는 여인도 보입니다. 그녀 눈에 그들은 한심한 남자들일까요? 아니면 한몫 잡고 싶은 남자들일까요? 술집이 매력 있는 이유는 마음을 무장 해제 시키는 까닭이겠지요. 그림 속 이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관찰했는지 작가의 섬세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bBy2uvdNvA
인간 삶의 불행은 항상 연달아 옵니다. 1669년 하를렘(Haarlem)에서 사는 동안 스테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또 그 해 스테인은 약국을 갖게 되면서 10 플로린(네덜란드 은화의 단위)이라는 얼마 되지 않은 부채를 지게 되는데, 빚을 못 갚았는지 그림을 압수당하고 경매에 넘겨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스테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1670년 스테인은 자신의 고향 라이덴으로 다시 이사를 합니다.
성 니콜라우스는 오늘 날 산타클로스의 모델이라고 여져지는 인물입니다. 그를 기리는 축제가 성 니콜라우스 축제입니다. 당연히 오늘날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가져다주실 거라고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선물을 받은 여자 아니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울음보가 터졌네요. 벌써 알고 커튼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있는 뒤쪽 여인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한 젊은 아버지는 아마 저기 저 굴뚝을 통해 내려오셔라고 하시는지 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합니다.
라이덴(Leiden)으로 돌아 온 스테인은 1672년 선술집 허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달갑지 않은 일이 발생합니다. 소위 '재난의 해'라고 말해지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의 네덜란드 침공이 있었습니다. 이 사태로 인해 모든 예술과 관련된 가계와 극장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스테인은 1673년 서적상의 미망인이었던 에그문트와 재혼합니다. 둘 사이에 역시 아이가 하나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자신이 창립 멤버였던 라이덴의 성 루카 길드의 회장으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1679년 53세의 나이로 고향인 라이덴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당대 렘브란트를 제외하고 모든 네덜란드 화가들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평을 받은 화가로 말입니다.
Leiden, Hague, Delft,Haarlem으로 이곳저곳 이사를 다녔던 얀 스테인(Jan Steen). 새로운 스타일을 끝없이 추구했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천성이 밝고 사교적이라 여러 화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그의 작품의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중 아마 가장 즐거운 화가였을 것이라는 말도 있고요. 그의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받는 풍속화가 그를 더 인간적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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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6 - [지식&교양] - 50-95.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t Harmenszoon van Rijn,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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