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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살인미소! 웃는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도 해피하게 만들어 주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흰 백색의 털과 입 끝부분이 살짝 올라가서 생기는 미소가 특징인 사모예드(Samoyed)입니다. 사모예드는 시베리아 원산으로 순록의 사냥과 순록의 보호, 썰매 끌기 등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역견입니다. 현재는 특유의 신비스러운 미소와 백색의 털로 인해 가정견, 쇼독으로 인기가 많은 품종이 되었습니다. 

 

Samoyed/Daily Paws

 

 

 

러시아 북부 와 시베리아의 북극권 가까운 곳에 살았던 유목민인 사모예드족이 옛날부터 기르고 있던 썰매개로서 부족의 이름을 따서 개 품종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옛날부터 썰매견, 가정견, 애완용으로 많이 기른 견종입니다. 특히 이 지역의 남부에서는 털이 흰색이거나 검은색, 갈색의 두 가지 색으로 된 개를  순록 떼를 모는 용도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북부지역에서는 순백색의 피모를 가진 온화한 성격의 개를 사냥견이나 썰매견으로 키웠고요. 사모예드 족이 키운 개들은 주인과 가까이 지내며 집안에 서 함께 잠을 자기도 하고 , 사람의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해요.

 

 

러시아 지도/123RF

 

 

 

 

 

영국의 동물학자인 어니스트 킬번 스캇(Ernest Kiburn Scott)이 1889년에 사모예드 족과 3개월 정도 함께 생활한 후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사바르카(Sabarka)'라 불리던 갈색의 수컷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나중에는 우랄 산맥 서쪽 지역에서 '화이티 펫초라(Whitey Petchora)로 불리던 크림색 암컷과 시베리아에서 '무스티(Musti)'로 불리던 새하얀 수컷을 추가로 데려갔고요. 19세기는 탐험가들이 탐험에 혈안이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사모예드도 썰매견으로써 명성을 떨쳤다고 합니다.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아문센의 썰매견 중에서도 '에타'라는 이름의 사모예드가 있었다고 해요. 영웅들의 업적에 큰 기여를 하게 되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이 몇 안 되는 개채와 나중에 아메리카와 영국의 북극 탐험가들이 데려간 개들이 처음 서양 각국에 소개되었으며, 서구 지역에 사모예들(Samoyed)이 확산된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우아한 용모와 대담한 성격, 썰매용으로 단련된 강력한 힘을 인정받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표준은 1909년에 영국에서 최초로 확립되었고요. 

 

 

 

 

 

사모예드/나무위키

 

 

 

원산지: 러시아 시베리아

사모예드는 수컷 51-56cm/암컷 46-51cm

몸무게는 수컷 20-25kg/암컷 18-23kg정도 되는  중형견입니다.

근육질에 가슴은 깊고 다리가 적당히 길며 알맞게 굽은 뒷무릎

 

 

사모예드는 흰백색의 털과 입 끝 부분이 살짝 올라가서 생기는 스마일이 특징입니다. 순록의 사냥과 순록의 보호, 썰매 끌기 등 이누이트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개였지만 지금은 특유의 신비스러운 미소와 백색의 털로 인해 훌륭한 가정견과 쇼독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Ngr4d5kboI

 

 

 

 

사모예드의 머리는 쐐기 모양입니다. 눈은 어두운 색으로 깊게 우묵하고요. 귀는 곧게 서고 끝이 둥글며 몸통은 중간정도의 길이로 늑골이 잘 발달된 편입니다. 전체적인 모습이 매력적이고  힘과 지구력, 유연함 , 그리고  자신감이 느껴지는 견종입니다. 

 

 

 

사모예드의 털은 이중모로 되어 있습니다. 극지방에 사는 견종답게 굵고 유연한 털이 풍성하고 촘촘하게 자랍니다. 속털은 조밀하고 굵으며 양털처럼 부드러우나 표면의  털은 길고 다소 뻣뻣하며 목둘레와 앞가슴의 털은 우아합니다.목과 어깨 주변에 목 칼라와 같은 모양을 형성하고 이 부분을 토대로 머리의 윤곽이 결정됩니다. 특히 수컷에서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머리와 다리 앞면의 털은 짧고 매끄럽습니다. 귀 바깥 면은 짧고 매끄러운 털이 피부에서 직립한 형태로 자라고요.  귀 안쪽에도 털이 풍성하게 자랍니다.

 

 

 

허벅지 뒷부분에 덮인 털은 퀼로트 모양을 만듭니다. 발가락 사이사이에는 발을 보호할 수 있는 털이 자라고요. 꼬리도 털이 풍성하게 덮여있죠.  암컷은 털 길이가 수컷보다 짧고 질감도 더 보드라운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털에 윤기가 흐르고 광택이 느껴집니다. 털빛깔은 순백색이 유명하고 그 외에 크림색, 담갈색도 있습니다 .털이 조밀하며 두껍고 양털과 같이 부드럽지만 표면의 털은 길고 다소 뻣뻣합니다. 목둘레와 앞가슴 털이 특히 우아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VlloT36eI

 

 

 

 

사모예드는 사교성이 매우 뛰어나며 생기발랄합니다. 또한 솔직하고 기민하며 친근한 견종이고요. 일반적인 개들은 사람들하고 지내왔으나 이 견종은 썰매를 끌기 위해 같은 종끼리 생활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서열 정하기에 민감합니다. 다른 견종에 대해서도  배타적이고요. 사냥 본능은 거의 없습니다. 수줍어하지도 않지만, 공격적인 면도 없고요. 사교성이 뛰어나다 보니 경비견으로는 활용할 수 없습니다. 사모예드는 총명하고 충직하며, 역동적인편입니다. 외로움을 잘 타기도 하고요.

 

 

걸음걸이가 힘차고 자연스럽습니다. 걸을 때 큰 힘을 들이지 않고요. 보폭이 긴 편입니다. 앞다리를 멀리 내딛고 뒷다리에서 충분한 동력을 얻는 식으로 걷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강아지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모예드만 너무 예뻐라 하면 버릇이 나쁜 강아지로 자랄 수 있을 테니까요.

 

 

 

추운 북극에서 살던 사모예드는 이중모이기 때문에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는 약합니다. 옥외견으로 키울 경우에는 개집의 위치와 통풍에 유의해야 합니다. 

 

 

 

사모예드/ 위키백과

 

 

 

 

풍성한 털이 곰돌이 같고, 솜사탕 같아서 너무 귀엽습니다. 하지만 털바짐이 많은 견종이므로, 자주 브러싱해주셔야 털 빠짐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옆모습은 여우를 닮은 것 같기도 하네요. 사모예드는 스피츠와도 매우 흡사하게 생겼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제페니즈 스피츠나 독일 스피츠, 포메라니안의 선대 견종이 바로 사모예드랍니다. 일본에서 사모예드를 계량하여 7-11kg 몸무게를 지닌 중형견의 재페니즈 스피츠로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Samoyed/ 요미독

 

 

 

사모예드를 키우며 주의해야 할 질병으로 고관절 형성장애와 당뇨,백내장등이  있습니다.

고관절 이형성증은 고관절의 비정상적인 발달을 의미하며, 통증과 보행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전신성 낭성 복막염(PFS): 주로 젊은 사모예드에서 발견되며 복막에 염증과 낭종이 생기는 질병입니다.

심장질환: 일부 사모예드는 선천적 심장 질환의 위험이 있으며, 이는 평생 관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강 문제들은 사모예드를 분양 받기 전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분양받을 때는 건강 검진 기록과 부모 개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모예드는 적절한 관리와 사랑을 받을 때 가족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줄 겁니다. 견주로서 적절한 환경과 관리를 제공하는 것은 필수겠지요.   멋진 반려견의 주인이 책임 있는 견주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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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베르만은 독일의 국견입니다. 명칭은 맨 처음으로 도베르만을 개량항 독일인"프리드리히 루이 도베르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요. 19세기 후반 독일의 세금 징수원이었던 도베르만이 자신과 함께 할 충실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반려견을 원하게 됩니다. 로트와일러, 저먼 핀셔, 그레이하운드, 바이마라너 등의 다양한 견종을 선별하여 교배시킵니다.  주인에게 충성하고 가족을 보호할 길 바라는 견종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견종이 도베르만핀셔입니다.

 

 

중 대형견에 속한 도베르만은 탁월한 훈련 능력과 경계심, 충성심으로 세계대전에 독일의 군견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경찰견 및 품위 있는 외모로 인기를 받으며 세계적인 반려견으로 사랑받고 있는 견종입니다.

 

 

도베르만 핀셔/나무위키

 

 

 

도베르만 핀셔 갈색 새끼/iStock

 

 

 

도베르만은 세계애견협회 2그룹에 속하며 Pinscher계열로 분류됩니다. 핀셔(PINSCHER)는 독일의 경찰견 및 군견에 적합한 견종을 분류한 명칭입니다. 현재 도베르만은 한국 영화배우 배정남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유명인들의 반려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품종이죠.

수컷:68-72cm, 40-45kg

암컷 63-68cm, 32-35kg

 

머리 부분은 길게  생겼고, 날씬하면서 근육질인 몸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는 보통은 접혀 있고, 꼬리는 대부분 짤게 고정이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역할 때 부상을 당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단이와 단미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유럽 쪽에서는 현재 동물 학대로 판단하고 금지가 된 상태입니다. 

 

 

독일지도/Freepik

 

 

 

 

 

https://www.youtube.com/watch?v=O-9wllzPEF8

 

 

 

도베르만의 기질은 초기에 예민함과 사나운 성격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베르만은 개량하는데 기초가 된 견종이 로트바일러와 쉽독인데 사납기로 유명한 로트바일러의 유전자적 영향이 사나움과 경계심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보초를 서고, 메신저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도베르만은 고급스러운 외모로 인기를 끌면서 미국으로 넘어가 온순한 인기 반려견으로서 재탄생됩니다. 공격성을 갖춰야만 하는 용도로 쓰였던 도베르만은 더 이상 공격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애완견으로서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됩니다.

 

 

 

현재 도베르만은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으며, 차분하고 가족 구성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견종이 되었습니다. 뛰어난 지능은 기본적인 훈련을 쉽게 소화해 냅니다. 때로는 가족 보호 능력이 뛰어나 낯선 사람에게 경계의 신호를 보이기도 하고요..  걸음걸이는 너무 무겁지 않고 가벼움과 품위 있는 걸음걸이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군경과 경찰견으로 사육되기보다 가정에서 반려견으로서 길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심이 높은 견종으로서 본래의 용도에 맞게 목축견, 경찰견, 가드견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해낼 수 있는 견종입니다.

 

 

 

도베르만의 형태는 두 종류로 Ameican type과 European Type으로 나누어집니다. Ameican Type은 골격이 European Type보다 가늘고 쭉 뻗은 느낌의 품위를 강조하고요. 반면 European Type은 좀 더 강한 남성다운 느낌을 주고 머즐과 전체적인 골격이 Ameican Type보다 굵직 굵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RQhTejn99E

 

 

 

도베르만의 코트 색상은 먼저 생각보다 여러 가지의 색상을 가지고 있다.

블랙(Black)

블랙탄(Black-tan )

브라운(Brown)

화이트(White)

그레이(Gray)

이사벨라(Isabella) 등등하지만 정식으로 인정하는 도베르만 코트 색은 대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블랙탄과 브라운 두 색상만이 세계애견협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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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e Colors and Type of the Doberman Pinscher(with pictures)/ Doverman Planet

 

 

 

화이트 도베르만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희귀성 때문에 본래 색상이 아닌 화이트 도베르만을 종종 찾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흰색 도베르만은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돌연변이로 볼 수 있습니다. 상품가치가 높은 희귀한 동물은 큰돈이 되므로 간혹 잘못된 번식방법을 이용해 번식시키기도 합니다. 확률적으로 나오기 힘든 돌연변이 품종을 번식하기 위해 잘못된 브리더들이 흰색 열성인자끼리 교배를 시켜 잘못된 번식을 남용하기도 하지요.

 

 

 

  근친교배 등 잘못된 번식방법은 높은 유전적 장애를 불러옵니다. 갓 태어난 강아지가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들리거나 하는 등의 신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지적장애까지 갖고 태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거죠. 그렇게 장애를 갖고 태어난 강아지들은 곧 소리 소문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게 됩니다. 아무도 장애를 가진 강아지를 분양받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태어나자마자 그들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죽이는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털은  매우 짧아 털 빠짐 정도는 보통이라고 합니다. 피부에 밀착한 상태로 털이 자라나는데 윤기가 흐르며 부드럽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털의 죽은 털이 빠지면서 다시 자라는 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짧은 털을 가진 견종으로 추위에 취약하다는 점도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RcLhg3v53o

 

 

 

 

대형견 도베르만은 지능이 매우 높은 강아지로 똑똑한 강아지 견종 중 하나입니다. 이 대형견은 훈련을 제대로 하면 학습력이 빠르고 어떤 명령을 내리는지 이해를 하며, 순종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훌륭한 경찰견, 경비견 등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또한 충성심과 보호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과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여 자기의 가족을 보호해 줍니다. 타고난 보호 본능으로 도베르만핀셔는 온화하고 다정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는 다르게  온순하고 가족에게 다정함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사회화부터 시작하여 훈련만 잘해준다면 가족들과도 어린아이들과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턱시도 차림의 도베르만/Ko.aliexpress.com

 

균형 잡히고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함으로 도베르만핀셔의 건강을 유지해 주세요; 반려견의 나이, 크기, 활동 수준 등에 적합한 고품질 사료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고요. 정기적인 종합검진, 예방 접종, 기생충  예방 및 치아 관리 등 전반적으로 건강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도베르만이 조심해야 할 질병은 습진, 탈모, 피부염증, 심장병, 심장마비, 고관절 이형성, 선천성 지형 장애 등이 있습니다. 

 

 

 

도베르만은  누가 봐도 멋지고 품위 있는 견종입니다. 강직한 성격과 지능도 갖춘 팔방미인과 같은 도베르만은 기본적인 동물 관리 지식과 제대로 된 견주를 만났을 때 비로소 멋진 도베르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환경, 경제적 능력,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등 많은 고려 사항을 생각하고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제대로 된 기본적 지식 없이 도베르만을 분양하게 되었을 때 본성의 기질이 아닌 잘못된 기질을 가지게 돼 공격적이고 괴팍한 행동을 보일 수 있으므로 사전에 어느 정도의 기초지식을 갖추고 입양을 생각해 보길 권합니다.

 

 

 

 

2024.01.29 - [지식&교양] - 50-65. 미니어처 핀셔(Miniature Pinscher/미니핀, 19)

 

50-65. 미니어처 핀셔(Miniature Pinscher/미니핀,19)

늠름해 보이는 군견 도베르만을 축소한 것만 같은 외모를 가졌으나, 앙증맞은 작은 사이즈의 소형견 종류로 미니어처 핀셔가 있습니다. 이름처럼 작아서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견종이란 말이죠

sun-n5y2.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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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위키백과

 

 

강아지 이름이 럭셔리하게 길지요. 영국 출신의 견종입니다. 르네상스시대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지금은 사라진 토이 스태니얼의 후손들입니다. 영국의 찰스 2세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킹 찰스 스패니얼과 자주 혼동되어 이것과 구분하기 위해 영어의 고어에서 (knight)를 뜻하는 카발리에를 앞에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발리에'는 찰스 1세의 지지자들 또는 기사를 뜻하는 고어와 관련이 된 단어입니다. 카바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의 그룹은 논 스포팅(비수렵견, 실용견) 그룹이며  소형견에 속합니다.

 

 

 

 

 

 

 

디즈니의 클래식 애니메이션<레이디와 트램프>에 나오는 레이디의 견종이 바로 캐벌리어 킹 찰스 스패니얼이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A2ZDDU34gYw

 

 



카바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은 다수의 CF, 영화 등에 등장하며 애완견으로서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죠. 1920년 미국인 로스웰 엘드리지가 킹 찰스 스패니얼을 모델로 5년 동안 연구하여 1925년 개발한 품종입니다. 그는 17세기 찰스 1,2세가 사랑했던 킹 찰스 스패니얼과 닮은 '블렌하임 스패니얼'을 복원하는 자에게 상금을 제공하기로 하였죠. 이는 육종 가들 사이에서 예전 모습의 토이 스패니얼을 개량하기 위한 부흥을 일으켰고요. 그 결과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이 탄생하게 됩니다. 

 



 

 

Cavalier King Charles Spanierl Dogs/123RF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은 킹 찰스 스패니얼과 확연히 다릅니다. 킹 찰스 스패니얼보다 키도 크고 체중도 약간 더 무겁고 입이 깁니다. 몸이 탄탄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며 눈은 동그랗고 크며 짙은색을 띱니다. 귀는 길고 높이 위치해 있고 얼굴은 약간 찌그러진듯해 보입니다.

 

 

킹 찰스 스페니얼 VS 카발리에 킹 찰스 스페니얼

키:26cm-31cm                키:31cm-33cm

체중 3.6kg-6.3kg             체중: 5.4kg-8kg

차분함, 무뚝뚝함                        애교 많음

상황판단 빠름                       상황판단 느림

배움 속도 빠름                      배움속도 느림

 

 

 

 

둘 다 귓병과 피부병에 주의해 주세요.

 

 

 

 

 

Cavalier King Charles Spanierl Dogs/나무위키

 

 

 

 

 

 

털은 비단같이 부드러우며 물결 모양의 웨이브가 있습니다. 카발리네 킹 찰스 스패니얼의 윤기 나는 털을 유지시겨주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미용을 해 주면 더 좋습니다. 아니면 매일 빗질로 털 관리를 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털갈이는 봄과 가을, 비교적 가볍게 지나가기 때문에 털이 많이 빠졌나? 하고 알아채기 힘듭니다. 귀, 가슴, 다리에 장식털도 있고요. 털이 아름다우면서도 관리가 그다지 까다롭지 않지만 귀가 덮여있어 귀질환이 잘 생길 수 있으므로 귀를 자주 뒤집어서 환기시켜 주시고 귓속은 부드러운 솜에 세정제를 묻혀 부드럽게 닦아내 주시면 됩니다.

 

 

 

카바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은 모색의 종류가 4가지로 나뉩니다.

블랙탄: 짙은 블랙 색상이며 눈 위, 볼 위. 귀 안쪽, 가슴과 다리 위 꼬리의 안쪽에 탄 마킹이 있습니다. 탄은 밝은 색 이어야 하며 흰 마킹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루비: 전체가 진한 붉은색입니다. 흰 마킹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블랜하임: 진주빛 같은 흰 바탕 위에 진한 밤색 마킹이 잘 분산되어 있습니다. 머리 위는 마킹이 양쪽으로 마름모 모양의 마킹이 있는데 이는 블랜하임만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트라이: 블랙과 화이트가 적당하게 분산되어 있으며 탄 마킹은 눈 위, 볼 위, 귀 안쪽, 다리 안쪽, 꼬리 아래쪽에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mcGKN0R6WA

 

 

 



1957년부터 캐나다에서 명망 있는 종의 하나로 알려져 온 카바리에 킹 찰스  스파니엘은 색상이 다양하여 그만큼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꼬리가 약간 잘려있거나 몸통과의 균형을 고려해 잘려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다양한 빛깔을 가진 개들은 항상  흰색의 얼룩무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얼룩무늬의 색상에 따라 개의 꼬리를 자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자견일 때 결정하게 됩니다.

 



카바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은 줄여서 '캐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격이 활동적이고, 무서움이 없으며 모험심이 강합니다. 우호적인 성격을 띠기도 하고 쉽게 길들여지며 깔끔하고 똑똑해서 즐겁고 재밌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특유의 밝은 성격 덕에 활발해서 애완견으로 알맞고 함께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합니다. 아무나 잘 따르고 경계심이 적습니다. 수명은 9-14년 정도 됩니다. 카바리에  킹 찰스 스파니엘을 키우기 적합한 장소로는 아파트, 단독주택, 전원주책 등이 있으며 어린이, 젊은 층, 노년층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견종입니다.

 

 

보통은 집에 주로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반려견입니다. 카발리에는 포옹과 같은 사람과의 스킨십을 좋아하는 견종이거든요. 또한 붙임성이 과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죠. 사교적이라 사람은 물론 타 반려동물과도 사이좋게 지내는 견종입니다. 운동량은 보통이지만, 넓은 장소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므로 산책이나 운동을 자주 시키도록 합니다.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은 귀와 털이 길어 귓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항상 청결을 유지하도록 하며 눈병이나 슬개골 탈구 등에 유의해야 합니다. 또 근친 교배를 많이 해서 치명적인 심장질환 발생률이 높은 만큼 입양하기 전에 여러 세대 전까지의 병력을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털 빠짐도 꽤 있다고 하니 알레르기가 심한 분들이 키우기엔 부적합할 것 같습니다. 털이 장모이기 때문에 땅에  끌려서 더러워지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고무줄로 묶어주셔도 나름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끝으로 다른 것에 흥미가 생기면 달려들어 불러도 오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야외 활동 시 항상 리드줄을 풀지 마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55BmAsRk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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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하운드/Licensed by Google

 

'세상에나... 은둔의 고수인가?'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가 꼭 사람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사육할 수 있지만 사육하고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잘 만날 수 없는 드문 견종 중 하나입니다. 아프간에 테러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멋진 개의 고향이기도 하군요! 

 

 

아프간하운드는 전 세계의 강아지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역사가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에 탔던 강아지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 시작은 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현존하는 견종 중 가장 오래된 개입니다.

 

 

몸무게: 수컷 22kg/암컷 27kg

키: 수컷:66-75cm/암컷:60-68cm

털: 장모 

털빛: 황갈색, 황금색(골드) 브린들, 흰색(화이트), 붉은색(레드),

크림, 청색(블루), 회색, 트라이(도미노), 이 외 다양함

새끼수:6-8마리

 

 

 

 

아프가니스탄/iStock

 

 

 

산악 지대에서 수렵견과 목양견으로 지내오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사냥견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사냥견이라기보다는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외모로 감상적인 가치에 표준을 두어 도그쇼 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아프간 하운드/iStock

 

 

 

사냥견 출신입니다. 달리기가 엄청 빨라요. 시각도 매우 뛰어나 1km앞의 사냥감을 찾아 빠른 발로 추격해 잡는다고 합니다. 시각과 후각에 의한 사냥 능력을 높이기 위한 사이트 하운드 특유의 작은 얼굴, 처진 귀, 좁고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는 유선형 몸과 길게 뻗은 긴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늘고 보들보들한 장모는 중동 지역의 혹독한 바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달했습니다. 싱글코드이기 때문에 털 빠짐이 생각보다 덜 하다고 합니다. 평균 수명은 12-14세로 일반적인 대형견 수명에 비해 길지만 충분한 사랑과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이라면 더 오래 살 수 도 있겠죠. 

 

 

 

 

 

https://www.youtube.com/watch?v=K1E-Sb1ghto

 

 

 

 

 

 

지속적인 품종 개량으로  이전보다 많이 유순해진 편이지만 그래도  오랜 수렵견 습성이 강하게 남아 있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면이 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보호자가 옆에 없을 때 사고의 위험도 있고요.

 

 

 

 

위엄 있고 의연한 성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감정을 나타내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냥 강아지라 자립심 또한 매우 강한 견종입니다. 사이트 하운드의 사냥 특성상 명령하는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직접 판단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죠.  보호자에게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성격입니다.

 

 

 

 

완전히 코팅 처리된 아프간 하운드/위키백과

 

 

 

아프간하운드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하기 힘든 견종으로 불립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독립심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명령에는 절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교육이 어려운 아이도 있기 때문에 초보 보호자에게는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아한 용모를 한 아프간하운드에 매료되어 무조건 데려왔다간 견주나 강아지 양쪽에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훈련도 어려운 데다가 매일 관리하는 것이나 운동 등 다른 견종에 비해 신경 쓸 것이 많기 때문에 키우기 다소 어려운 견종임을 잊지 마십시오. 힘도 강하기 때문에 여성 혼자나 노령자가 기르기에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장발댕댕이 아프간 하운드/루리웹

 

 

 

 

주요 질병으로 백내장이 있습니다. 안구에서 빛을 모아주는 수정체가 흰색으로 혼탁해지는 질환입니다.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시야는 어두워지고 심해지면 실명에도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백내장의 크기도 작고 시력에 큰 영향도 없어 발견하기 어렵지만 수정체를 전부 덮는 '성숙 백내장'시기, 백내장 말기에는 시력 상실 외에도 녹내장 등 다른 안과 질환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고관절 이형성으로 골반뼈와 뒷다리 뼈 사이를 연결해 주는 뼈에 변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원인은 유전적인 성향이 크지만 급속한 체중 증가와 사료의 칼슘 및 영양분 과다 섭취, 관절염 등이 원인 일 수 있습니다. 증상으로는 뒷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걷거나,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고, 골반 쪽 근육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있는 자세가 불안정하고 통증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계단을 오르려 하지 않고요.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심한 경우에 수술을 받아야 하고 운동을 제한하고 식이요법으로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작은  유전적 다양성을 가진 견종으로 다양한 종류의 암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혈육 종관 골육종에 특히 노출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프간하운드/BAND

 

 

 

아프간 하운드를 잘 기르기 위한 사육환경과 사회화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내에서 사육하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마음껏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견종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뛰어다닐 수 있는 환경 하에 사육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대형견의 경우 '크니까 멋있다'. 혹은 '대형견을 산책시키면 멋있어 보인다.' 등과 같은 사심을 채우는 이유로 입양이 되어 '생각한 느낌과 달랐다'라는 이유로 파양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드시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 '키우고 나서'의 모습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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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랜드 쉽독(줄여서 '셸티')라고 부릅니다. 외모만 봤을 때는 '래쉬'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출현한 견종인 러프콜리 종류와 상당히 닮아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키워지고 있는 견종은 아니지만 한번 보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외모와 성격을 지닌 강아지 종류입니다.

 

 

세틀랜드 쉽독/더펫

 

 

 

러프 콜리와 셰틀랜드 쉽독 /Freepik

 

 

 

 

 

러프콜리와 셀티 (Sheltie)강아지는 둘 다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외형, 모색, 성격은 많은 부분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바로 크기입니다. 콜리 몸무게는 20kg 이상 나가는 대형견 종류이며 셀티는 7-9kg 정도가 나가는 중형견입니다. 또한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면 콜리의 액단(코)은 길게 쭉 늘어져 있고 다리가 길쭉한 반면, 셀티는 이마에서 코로 내려오는 악단이 살짝 꺾여있으며 몸통에 비해서 다리길이가 조금 짧은 것이 가장 큰 외모적 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셔틀랜드 쉽독(설티)/비마이펫라이프

 

 

 

원산지:영국(스코틀랜드)

체중:

수컷:6-9kg

암컷: 6-9kg

 

어깨까지의 높이:

수컷:40cm

암컷:35cm

수명:12-14년

털색: 검은색, 담비색, 흰색 혹은 황갈색 무의 가 섞여 있음

 

 

 

https://www.youtube.com/watch?v=Dw_fln1Vxbw

 

 

 

 

곁털과 속털로 이뤄진 더불코트, 즉 이중모를 가진 강아지 입니다. 모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요. 그로 인해서 셔틀랜드 쉽독 털 빠짐 또한 상당히 심한 편이랍니다. 모질은 상당히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고요. 길게 뻗은 직모이고 일정 수준 이상 자라나게 되면 굳이 미용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털이 빠지고 자라나는 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속털의 모량이 상당히 많기때문에 매일 빗질을 꼼꼼하게 해주지 않게 된다면 쉽게 엉켜버릴 수 있습니다. 특히나  1년에 2번씩 하는 털갈이 시기에는 셀티 털 빠짐 정도가 상당히 심각할 수 있으니 이때는 하루에 30분 이상싹 빗질을 꼭 해주셔야 한다는 점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Shetland Islands/헤럴드경제

 

 

 

셀티는 목장에서 가축을 모는 역할을 수행했던 사역견 강아지 종류입니다. 스코틀랜드 북부에 위치한 셔틀랜드 제도라는 섬에서 양몰이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지역의 험난한 환경과 희박한 초목으로 인해 작은 가축 종들을 선호했고, 그러한 작은 가축 떼를 몰 수 있는 작은 개를 선호했습니다. 과거 셰틀랜드 사람들에게 이 견종은 그들의 일에 도움을 주면서 훌륭한 동반자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섬의 폐쇄성으로 인하여 셰틀랜드 쉽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육지와 떨어진 생육환경으로 전 세계적으로 무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는 외부에서 이 품종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셀티는 당시의 대형 러프 콜리와 작은 몰이견들과 스파니엘들을 포함한 다른 섬 강아지들의 교배로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셀티종이 1700년대 경 탄생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품종은 스코틀랜드 내륙으로 수입된 후 개량되었습니다.

 

 

 

 

셀티는 1909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14년 셰틀랜드 섬의 콜리가 아닌 셰틀랜드 쉽독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견종 그룹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애견연맹(AKC)에서 정식적으로 품종 등록이 된 시점인 1911년입니다. "로드 스코트"라는 이름을 가진 견종이었죠. 로드 스코트는 뉴욕에 사는 죤 G. 셔먼이라는 사람이 세틀랜드 섬으로부터 수입한 견종이었습니다. 미국의 셰틀랜드 협회가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1929년 웨스트 미니스터 애견협회가 주관하는 전람회였습니다. 1933년에 셰틀랜드 쉽독 전람회가 개최되었고, 이때부터  미국이나 각 유럽국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널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in9IFjpUU

 

 

 

사람의 일을 도왔던 사역견 종류들의 특징이 활동성이 상당히 강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셀티 강아지도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넘치는 견종이고요. 만약 실내에서 양육하신다면 충분한 산책을 시켜주셔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된다면 집안에서 우당탕 뛰어다니면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게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 하루 1시간씩은 야외활동을 꼭 시켜주시면서 에너지 발산을 해주십시오.

 

 

 

 

산책 시에 오토바이나 킥보드, 자동차, 다른 개 등을 보고 짖거나 쫓아가려고 행동이 빈번히 나타나게 됩니다. 대부분의 목양견은 시각적으로도 예민한 편이라서 이러한 문제행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므로 어릴 떼부터 TV등과 같은 영상매체를 자주 보여줌으로써 시각의 둔감화 교육도 필수적으로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bwXTzFKr8

 

 

 

대부분 목양견 종류는 지능이 높기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셀티 또한 지능이 전체 개들 중 6위를 차지하고 요. 이처럼 머리가 좋다 보니 반려견으로써 키우기 쉬울 거라고 판단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요.  똑똑한 강아지들은 잘못 교육을 시키게 된다면 영리해지는 것이 아닌 영악해질 수도 있다는 점 명심해 주세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학습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잘 훈련을 시켜줌으로써 올바른 습관을 길들여주시길 바랍니다. 

 

 

 

 

셔틀랜드쉽독 강아지들은 귀가 서있다보니 청각적으로 민감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 보니 집 현관밖 아니 베란다 쪽에서 들려오는 외부 소음에 대해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경계성 짖음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에 대해 예민함을 없애주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소리에 노출시켜 줌으로써 둔감화 교육을 꼭 시켜주셔야 합니다. 또한 보호자난나 다른 개들에게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표현할 때 요구성 짖음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양견이라 원래 짖거나 가축의 뒷다리를 물거나 하여 무리를 유도해야 하므로 목양이 주 임무였던 셸티가 잘 짖고 잘 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본능입니다. 반려견으로서  짖음이 심하다면 공동생활을 하는 아파트나 빌라 등에서 거주하는  주변 이웃들에게 소음 피해를 입히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짖는 행동은 엄격히 훈육해주시는게 좋습니다. 헛짖음이 심한 경우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부득이 성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이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개가 셸티입니다. 

 

 

 

가족의 구성원에게는 상당히 친근하고 애교가 많은 편이지만 낯선 사람이나 다른개에게는 조금의 낯가림이 있으며 겁도 많은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성에 신경을 쓰며 양육하셔야 합니다. 어릴 때 여러 환경들을 다녀보면서 자극의 노출을 시켜주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성이 좋아져서 아무리 내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후천적으로 성격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j4PuxjIpvU

 

 

 

 

 

심장 사상충 약을 먹일 때 가려서 먹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콜리나 셸티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기생충을 죽이는 약한 독성이 있는 약이기 때문에 이버멕틴 계열의 약품들은 대부분의 목양견들에게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밀베마이신을 섭취시켜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버멕틴 계열의 경우에도 무조건 금기시되기보다는 각 견종에 따라, 체중이나 용량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정확한 것은 동물병원에서 처방받는 것이 좋으니 직접 병원을 방문하셔서 처방받으시면 됩니다. 바르는 약은 부작용이 덜하기 때문에 우려되시는 경우에는 먹는 약 말고 바르는 약을 로 진행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쉘티는 볼륨있고 긴 피모로 덮여 있기 때문에 주인이 피부질환을 아아 채기 어려운 견종입니다. 브러싱 시에는 피모를 헤치고, 피부의 붉은빛은 없는지, 탈모를 일으키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비듬이 나오 있지 않은지, 등 피부나 피모의 상태를 체크해 주도록 해주세요.

 

 

 

또한  셸티는 자외선을 과도하게 쬐어 피부에 염증을 일으키는 '일광성 과민증'이라는 질병을 일으키기 쉬운 견종입니다. 특히 콧등 피부에서 탈모, 탈색을 일으키는 경우를 '콜리노즈'라고 부르며 진행하면 딱지가 잘 낫지 않거나 궤양을 일으키게 됩니다.

 

 

 

콜리계의 견종에서 볼 수 있는 유전성 눈병입니다. 셰퍼드나 오스트레일리언 시프도그 등에서 도 볼 수 있지만 콜리계 견종에서 가장 높은 확률로 발병합니다. 눈 검사에서 눈 속 맥락막이라는 조직의 발달 이상이나 눈속 혈관의 이상 등이 검출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중에는 망막박리나 안내출혈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가벼운 것이라면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심한 것으로는 시각장애를 일으키거나 그중에는 실명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시점에서는 치료법이 없다고 합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갑상선에서 방출되는 '사이록신'이라는 호르몬의 부족해지는 질병입니다. 이 병의 원인의 대부분은 면역기능의 이상으로 스스로 자신의 갑상선을 파괴해 버리는 질병으로 유전적인 소인도 있다고 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은 몸의 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호르몬이므로 이 호르몬이 부족할 때에는 전신 곳곳에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 기운이 없어지고 움직임이 둔해진다.

-얼굴에 패기가 없어진다.

- 항상 멍하니 있다.

-춥지 않은데 추워한다. (저체온)

-체간부나 꼬리의 털이 빠진다.

- 식사 바꾸지 않았는데 살이 찐다(비만)

-피부가 늘어짐, 거무스름(색소 침착)

-피부병이 잘 낫지 않는다. 

 

이러한 증상이 보인 경우 혈액검사로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측정하고 진단합니다. 치료는 갑상선 호르몬 제재를 내복하여 부족한 갑상선 호르몬을 보충하는 식으로 말이죠. 약물의 양과 횟수가 적절하다면 대부분의 경우 증상이 개선됩니다. 진행하면 발작 등의 신경증상이나 기면 등의 의식장애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므로 조기 진단과 치로가 중요합니다. 또한 치료 시작 후에도 정기적으로 호르몬 값을 측정하고 투약의 내용의 확인과 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셸티는 콜리를 키우고 싶은데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 개를 본격적으로 훈련시켜보고 싶은 사람,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번견으로 키워보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견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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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rs at the Bar>,2001/CentriCentro

 

'헉'

'데벨로페(developpe)'자세: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서 완벽하게 균형을 맞추는 동작

'so what'

 

이 그림을 보며 떠 올랐던 단어들입니다. 앙증맞은 작은 발, 용케도 발끝으로 서 있습니다. 힘든 표정하나 없이 말입니다. 좀 짧고 굵을 뿐인데 우리들 미의 기준은 정 반대에 가있어 그녀의 이 모습이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정작 그녀는 무표정한 듯 당당하게 오히려 우리를 꾸짖는 듯하고요.

 

 

인류가 만들어 놓은 도시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메말라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화가는 건조한 현실에 풍성함과 풍만함,그리고 온화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풍선 같은 빵빵한 모습으로 비율을 왜곡시켜 리듬감을 만들어 냅니다. 2023년 9월에 돌아가신 페르난도 베테로 할아버지를 살펴볼까 합니다. 

 

 

 

 

예술은 즐거움을 줘야 합니다. 

 

 

 

페르난도 베테로(Fernando Botero,1932.4.19 -2023.9.15)는 콜롬비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입니다. 부풀려진 인물과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 등을 통해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과장된 인체 비례와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된 인물 그림으로 유명하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뚱뚱한 모나리자 그림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고요. 많은 사람들이 보테로의 그림을 보고 뚱뚱한 그림이라 말하지만 보테로는 자신은 한 번도 뚱보를 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색감과 볼륨을 중시하다 보니 이런 풍만함이 강조된 것이라고 합니다. 볼륨을 중요시 여겼던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악기>/디아티스트

 

 

 

 

악기에 구멍을 그리려는데
가운데 있는 구멍을
실제보다 작게 그려봤어요.
그러자
만돌린이 마치 폭발하듯이
사방팔방으로커졌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연상시키는 악기가 있는 보테로의 정물화 작품입니다.  화면 중앙에 만돌린, 호른, 북 등의 악기와 그 아래쪽에는 악보 몇 장이 놓여있습니다. 보테로는 사물의 양감을 강조하기 위해 만돌린 가운데에 있는 음향 구멍을 미세한 점으로 표현합니다. 이때의 경험 이후  사물의 양감을 과장하는 식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해 나갑니다.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 준다."

 

 

 

 

콜롬비아 메데인/South America Travel Centre

 

https://www.youtube.com/watch?v=fmF2-ZdWO8I

 

 

 

페르난도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인해 미술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12세 때 투우사 양성학교를 입학하며 투우를 배우기도 했지만 결국 그림을 선택했습니다. 외딴 지역에 자랐던 보테로는 현대회화를 접할 기회도  없었고요. 이후 유학을 하고  멕시코를 떠나 뉴욕에 거주하면서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터치의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Mona Lisa ,Age Twelve>/1959/Sartle

 

 

 

 

그림은 색채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었을 때에야
완벽을 이룰 수 있다.
여러분은 구성을 고민하겠지만,
사실 회화를 결정짓는 것은 색채이다.
모든 요소가 색채의 자리를 발견할 때 평화가 있다.
-페르난도 보테르-

 

 

 

 

 

아이의 시선에서 현대인들이 지닌 몸짱, 얼짱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의 나이 31살에 Mona Lisa를 패러디한 <12세의 모나리자>가 뉴욕 현대미술관에 알프레드 바에 의해 전시되면서 뉴욕의 인기 작가로 떠올랐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모나리자>가 처음으로 외국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으로 말이죠. 이소식은 삽시간에 미국내에 퍼지고 <모나리자>를 보겠다는  엄청난 인파가 근처로 몰려 들었습니다. 한편 경쟁구도에 있 던  MOMA(뉴욕 현대 미술관 The Museum of Modern Art)이 소장하고 있던 페르난도 보테르의 <12살의 모나리자> 작품을  옷 가게 디스플레이를 하듯 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뉴요커들의 눈에  더 재미있게 다가 온 모양입니다.  이때부터 보테르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며 상승곡선을 그립니다. (1959-1963)

 

 

 

본인은 "행운이었다."라고 말하지만 당시 뉴욕은 추상표현주의 와 팝 아트가 대세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잭슨 폴록이나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죠. 미국에서 만들어진 세계적인 양식으로 자신도 대세야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하던 스타일을 계속 고수해 야 할 지 젊은 남미의 화가 보테로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동네스타에서 전국구 스타가 되기까지 고민도 참 많았고 시행착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을 거쳐 파리에 왔을 때 보테르는 실망합니다. 당시 보테르가 유학 가던 해 파리에 유행하던 작품들이 피카소와 마티스가 대세인 흐름이었죠. 그런데 자신과 맞지 않았어요.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스타일의 양식을 과감히 거부하고 이탈리아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이 만들어 낸 인체의 아름다움과 바로크의 찬란한 색채 미술에  매료됩니다. 모사하고 연구하고 그리고 깨닫습니다. 위대한 예술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만으로 절대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요.

 

 

 

의기양양하게 고향에 돌아왔지만 , 미처 소화가 안 된 음식이 체하듯 자기 것도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닌 힘만 잔뜩 들어간 이상한 그림이 나오는 겁니다.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그림 말입니다. 그러다 '지오토'를 통해 공간감을 불어넣고, 멕시코의 벽화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을 통해 거대함을 융합시키기 시작합니다. 평면을 풍선처럼 부풀리는 것은 '지오토'로부터 가져왔고요. 거대하게 그리는 것은 '디에고 리베라 '로부터 가져옵니다. 이렇게 해서 보테로는 거대함을 통해 형태, 색채, 구조등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만들어 갑니다. 일명 '보테로 스타일'말입니다.

 

2023.12.30 - [지식&교양] - 50-58.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41)

 

50-58.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41)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1886년 멕시코 과나후아토(Guanajuato)에서 태어났습니다. 헌신적인 가톨릭 메스티조(스페인*북미 원주민이 섞인 라틴 아메리카 사람) 출신의 어머니와 크리올로(중남미

sun-n5y2.tistory.com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흉측하다." , '비만 작가', 그리고 키치(kitsch)'라는 비평을 줄곧 받았습니다. 타협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15년의 무명 시절을 버티어 냅니다. 지금은 60여 곳의 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몸 값 비싼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회화는 20억대를 넘고요, 드로잉 작품도 8천 -9천만 원이 넘습니다. 그의 그림 속 '보테로족'들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걷어 낸 친근하고 재미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라틴 아메리카 미술을 덕분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요. 

 

 

 

예술가는
자신의 영토에
뿌리를 깊게 내릴 때만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La Casa de las gemelas Arias>,1973/Artnet

 

 

 

위 작품은 보테로가 1973년에 그려낸 <La Casa de Las Gemelas Arias>라는 작품입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인물들이 살이 찌고 크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보테로의 그림은 실제 인물의 비율과는 다른 모습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캔버스 안을 가득 메우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주고요. 또한 인물들의 표정을 보면, 한 곳을 뚜렷이 응시하기보단 어디를 보는지 모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품을 감상할 때 표정에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수많은 미술 수집가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 2014년 경매에서 $2,105,000(한화 약 25억 원)에 거래되기도 하였습니다. 

 

 

 

 

<콜롬비아 댄스 Dancing in Colombia>,1980/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s://www.youtube.com/watch?v=TXGh4658ASg

 

 

 

 

 

<춤추는 사람들>/www.pinterest.jp

 

 

 

색색의 조명 아래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녀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담배를 물고 있는 그가 라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 분위기에 취해 찰나의 순간을 부비부비 몸으로 표현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나뒹구는 술병은 애교스러운 소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네요. 그나저나 빨간 리본 끈이 애교스럽습니다. 라틴 댄스는 멕시코 이남의 부족한 노동력을 충족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 된 흑인 노예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춤입니다. 보테로는 이러한 라틴 댄스를 소재로 다수의 작품을 그려왔습니다. 

 

 

 

 

 

<Monalisa>1978/Google Arts&Culture

 

 

 

 

보테로는 정통으로 미술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럽의 미술관에서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습득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벨라스케스, 반 아이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들의 작품을 패러디해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거장들의 작품을 패러디한 다는 것은 '존경한다.'라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합니다. 그들 누구나 아는 모나리자를 볼륨감 있는 형상으로 만든 작품은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깨고 새로운 양식을 혼합했습니다. 고전미술의 패러디한 보테로의 그림을 대중들은 흥미롭게 생각하면서 누구나 좋아하는 작품이 되었고요.

 

 

 

1978년 제작된 위 그림은, 기존의 모나리자가 가지고 있는 슬림한 곡선을 과감하게 확대해 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또한 원작과는 다르게 풍만하게 표현된 모나리자의 얼굴에서는 행복하고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고요. 모나리자의 시선처리는 보테로가 추구하는 대로, 표정에 집중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얼굴 같은 인체의 특정 부위는 확대해 놓았지만 손은 작게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유머러스함을 느끼게 합니다. 

 

 

 

 

< Mona Lisa>는 추상미술이 대세를 이루던 당시 뉴욕의 현대미술관인 MOMA에서 공식적으로 구입한 작품으로 현대인들의 불안한 우상성을 파괴했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과한 채 외모만 보고 거부감을 갖는 현명함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alog.auric.or.kr

 

 

벨기에의 유명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패러디한 작품입니다. 원작이 다소 어둡고 침착한 분위기라면, 페르난도 보테로의 스타일로 재탄생한 작품은 선명하고 밝은 색상을 통해서 작품 속 분위기를 한층 더 해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인물뿐만 아니라 인물의 주변 사물마저 모두 뚱뚱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남자의 모자를 크게 표현하면서 보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죠. 아래에 그려진 강아지도 작가는 잊지 않고  실제 그림보다 튼실하게 표현해 놓았네요.

 

 

 

 

 

 

<벨라스케즈를 따라서>/디아티스트

 

 

 

보테로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작품 역시 벨라스케스의 1656년 작품인 < 흰 옷의 왕녀 마르가리타>를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벨라스케스는 많은 왕족의 초상화를 그린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당시 펠리페 4세가 첫 결혼에서 얻은 자녀 열 명을 모두 잃고,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첫 아이인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무척이나 아꼈다고 합니다. 공주는 '작은 천사'라고 불리며 왕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요. 그런 만큼 벨라스케스도 2-3년이 멀다 하고 그녀의 초상화를 계속 그려야 했습니다. 빈에 있는 그녀의 외삼촌의 신부이기도 해서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들이 그려서 보내는 거죠. 자신의 신부가 잘 자라고 있는지 이런 식으로 확인을 하면서 말이죠.  합스부르크 왕가는 근친혼으로 유전병이 내려오고 있었어요. 이렇게 예쁜 마가리타 공주님도 10대가 되며 주걱턱이 되고 연약했죠. 16세에 시집을 가고 6년 동안 매년 임신을 하다 20대에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드레스는 대담하게 그렸지만, 공주의 얼굴만큼은 부드러운 깃털로 쓰다듬듯 조심스레 그렸 던 벨라스케스의 애정이 묻어나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보테로는 벨라스케로부터 질감이나 양감의 표현법을 배웠고, 그가 진정한 스승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기품 있는 인물과는 다르게 보테로는 마르가리타 공주를 큰 몸집에 유달리 작은 얼굴로서 비정상적인 비례의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공주'는 여러 버전으로 그릴만큼 매우 특별한 소재였습니다. 원작과는 달리 자신만의 마르가리타 공주를 창조해 냅니다. 

 

 

 

 

<얼굴>/동아일보

 

 

 

 

길이 2m가 넘는 캔버스를 꽉 채운 '얼굴'. 작은 얼굴이 대세라지만 이 무뚝뚝한 '얼큰'소녀를 사람들은 무척 좋아합니다.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 엽서 중 하나라고 하고요. 초록 머리띠에 빨강 귀고리, 살짝 화장한 소녀를 보고 또 보게 됩니다. 자꾸 보면 볼수록 정이 들지 않나요.

 

 

 

성별도 구별이 불가능하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작가의 인물은 의도적인 몰개성을 보여줍니다. 그림의 인물이 소녀라는 사실도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 머리띠, 복장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입은 꼭 다문 채 앞을 보고 있어 엄숙한 분위기의 초상화 같으나 옆으로 돌린 눈으로 인해 다소 희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A Love Letter to Latine America>/Opera Gallery

 

 

 

 

보테로 작품 속의 인물들은 무표정과 정자세로 정면을 바로 보는 것이 또 다른 포인트입니다. 인물의 이목구비는 누군지 구분을 하지 못하지만 헤어스타일과 옷의 색감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양감을 부각한 그림으로 독특한 조형세계를 만들었습니다. OHP라는 기계를 사용해 스케치를 한 그림을 벽면에 쏘면 비율이 커지는데, 그림을 그릴 때 보테로가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서커스 단원들> ,<곡예사>/공연의 모든것-플레이 DB

 

 

보테로는 공연 중인 광대의 기이한 모습을 담을 유화와 드로잉을 다수 남겼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공중제비 타는 곡예사가 관중으로 가득 찬 서커스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공중제비를 타는 곡예사의 위험한 자세는 마치 영구 정지된 것처럼 보입니다. 

 

 

 

 

<소풍>/서울신문

 

 

보테로는 풍경을 인물 못지않은 중요한 조형 요소로 간주합니다. 산, 마을, 숲의 선은 다소 복잡하게 처리하는  반면에, 인물은 부드러운 양감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남성의 무릎에 누워 있는 여성은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남성과의 심리적인 유대감을 보이지 않고, 냉소적인 표정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통령 가족>/제주도민일보

 

 

 

 

 페르난도 보테로는 멕시코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입체감 있는 형태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뒤, 과장되게 부풀어 오른 인간의 형상 및 정물화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보테로는 비율의 왜곡을 실험하는가 하면, 형태의 관능을 강화하기 위해 혹은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형태의 덩치를 크게 부풀렸습니다. 

 

 

<대통령 가족>은 전형적인 남미 상류층 가족에 대한 보테로의 풍자적 태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가족의 아들들은 각기 정치가, 군인, 교회 성직자가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서 있는 어머니의 목에 걸린 여우 목도리는 그녀의 부를 암시합니다. 왼쪽의 할머니는 가족 구성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녀를 무릎에 앉힌 채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 두 사람은 모두 곧 혼인할 나이에 접어든 장성한 아이들을 덤덤히 바라보고 있고요. 이와 동시에 할머니는 어린 소녀의 순결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다. 

 

 

 

보테로의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가족>은 유명 화가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형식상 고야의 <카를 로스 4세의 가족, 1800>의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 화가의 초상이 담긴 부분은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1656>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화가는 애완견을 고양이로 대체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바닥을 기어가는 뱀은 이 동물에 관한 중세의 도상학적 해석, 즉 근심을 몰고 오는 흉조라는 뱀의 의미를 보란 듯이 참조한 것 같습니다. 보테로가 유일하게 뚱뚱하게 그리지 않는 대상이 '뱀'이라고 합니다. 

 

 

 

보테로는 밝고  평평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남미의 대중 미술에 대한 작은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밝은 색채 사용을 통해 이 그림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탐욕과 부패에 대한 비판-역시 밝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0xKQUoCvsM

 

 

 

 

작가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면 더 이상 나아갈 때가 없어 곰팡이가 피듯 망가지기 쉽다고 합니다. 보테르 역시 매너리즘이 찾아왔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소재를 바꿉니다. 특히 1963, 64년 조소작품에 전념합니다.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 집을 구입에 살았습니다. 그곳은 구리 광산과 청동 주조 공방이 많은 곳이고, 또한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1992년 <Botero Monumental Sculpture>라는 이름으로 파리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에서부터 콩코드 광장까지 31개 조각상이 설치됩니다.  프랑스 출신도 아니고 생존 작가로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전시공간을 허락해 준 일도 파리시의 전무후무한 일이고요.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 'Raval'이라는 곳에 <CAT,1981> 작품이 설치되며 마약과 매춘으로 암울했던 도시 미관이 예술가의 조각상 하나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도시 재정비 사업이 시작되었고 이 작품을 보러 관광객들이 찾아오며 바르셀로나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공공미술이 도시정화를 하며 문화의 도시로 탈 바꿈 하게 된 거죠. 자신의 자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뭘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보테로는 자신의 재능을 길거리 작품으로 내 놓으며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갑니다.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하더라도
미술관은
엘리트를 위한 곳이다.
길바닥에
작품을 설치하면
모든 사람이 감동받을 수 있다.
- 페르난도 보테로, 피가로지 인터뷰 중- 

 

 

 

 

 

 

 

<셀레스티나(Celestina)>/google Arts&Culture

 

 

 

셀리스티나는 스페인 소설 <카리스토와 멜리베아의 희비극>의 등장인물 중 하나입니다. 피카소와 고야는 소설의 비극적인 면에 초점으로 맞춰 셀레스티나라는 작품을 남기고 있는 반면, 보테로는 특유의 희화화된 인물을 통하여 극의 해학적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귀족 명문가 아들 칼리스토가 멜리베아라는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거리>/아트인포

 

 

 

보테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거리를 통해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20세기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의 신사는 정치적 성향을 띤 인물로서 양복차림에 넥타이, 중절모까지 엄격하게 차려입고 있습니다. 수녀는 종교적 경직성을, 제복을 입은 채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경찰은 사회적 경직성을 상징합니다. 

 

 

 

 

 

<Death of Pablo Escobar>,1999/1st Art Gallery

 

 

https://www.youtube.com/watch?v=GwmegwCRiH8

 

 

 

 

보테로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났지만 스페인, 미국, 멕시코, 이탈리아로 옮겨 다니며 작업했습니다. 내전과 분쟁이 많았던 나라인 콜롬비아는 참혹한 현실과 싸울 수밖에 없었죠. 보테로는 '내 고향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라며 평화를 이야기했지만 콜롬비아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되면서 위협 때문에 콜롬비아에 자주 가지 못 했다고 합니다. 범죄에 얼룩져 가는 콜롬비아에 대해 안타까워한 보테로는 이렇게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Clown in His Trailer>,2007/Mutual Art

 

 

 

그의 작품들은 이처럼 인물들을 기존 인물화들의 비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가 인물들을 뚱뚱하게 그리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들의 색과 형태에서 나만의 유형이 시작되었다. 나는 단지 뚱보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즉 보테로는 그림에서 빛과 그림자가 아닌 형태와 색에 초점을 맞추고 작품 속에서 그의 방향을 만드는 것이었죠. 또한 보테로는 그림을 그릴 때, 색을 미리 계획해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붓을 집었을 때 순간적인 상상과 직감에 따라 색을 정한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 속 모든 색상은 그의 감각과 예술정신에서 비롯된다는  뜻이죠. 

 

 

 

 

페르난도 보테로 <자화상>,2009.6.29/연합뉴스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색채와 구성, 스로인, 형태 등이죠.
그런데
작가마다 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마티스나 반 고흐, 샤갈 같은 경우는
형태보다는 색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조토나 마사초 같은 화가들은
형태를 중요시했죠.
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같은 이탈리아 작가들은
색과 양감 모두를 중시했습니다.
저도 어떤 하나를 강조하기보다는 서로 그 요소들 간의 연결되는 부분을 찾고 있습니다. 



 

60년이 넘게 소재만 바뀌었을 뿐 그의 양감 가득한 그림 속 인물들은 죽을 때까지 그려졌습니다. 새우깡 과자의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질소를 가득 채우듯 그의 볼륨감 있는 스타일은 지금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 때 투우사 양성학교를 다니며 투우를 배웠던 그의 그림 앞에 선 노 화가의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만 보이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덜컹거렸을 여정에 기립박수 쳐드리고 싶습니다. 근본도 없고 계보도 없어 후계자도 없습니다. 스타일이 강하니 아류작이 되어버리기 쉬워 후배화가들이 감히 따라가고 싶어 하지 않지요. 그래도 풍선처럼 부풀려진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보테로의 이 말 한마디는 꼭 기억할 것 같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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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토종견 진돗개와 비슷하게 생긴 일본의 아키타견입니다. 일본의 시바견과도 닮았지만 시바견보다 더 큰 대형견에 속합니다. 

 

아키타는 일본 혼슈 지방 아키타현의 번주가 무사들에게 무예의 전통을 가르치기 위해 이 개를 투견으로 사용하며 알려졌다고 합니다. 아키타현은 일본에서 6번째로 큰 '현'이며 도쿄에서 북쪽으로 450km 떨어져 있습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주요 산업인 농업이 발달하여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지요. 아키타는 도호쿠 지방에서도 쌀 생산량 1위를 자랑하며 좋은 쌀과 깨끗한 물로 만든 사케도 일본 전국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아키타견/나무위키

 

 

16세기 '아키타 마타기'라고 불리는 사냥을 위해 길러진 토착견이 기원입니다. 본래 무사의 투지를 높이기 위해 '투견'으로 하사되었다고 전합니다. 주로 아키타현 북부의 오다테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 '오다테이누(오다테견)'라고도 불립니다.  

 

 

 

아키타현으로 유배간 어떤 귀족에 의해 지방견이었던 이 개가 더 커지고 사냥능력이 향상되도록 개량되었다고도 합니다. 한때 일본 왕실의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사육되었고, 거의 멸종 될 정도로 특권층에서만 기르다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일반인에게 퍼졌습니다. 1927년 아키타 클럽이 조직되어 혈통보전에 힘썼고, 1931년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에 반입되어 인기를 끌면서 일본개로는 처음으로 미국애견협회(AKC)의 공인을 받았습니다.

 

 

 

귀엽고 충성스러운 아키타/STAY AKITA

 

 

 

 

아키타의 원산지는 일본입니다.

몸높이 수컷64-70cm/암컷 58-64cm이고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보다 몸집이 크고 뼈가 튼튼한 대형견입니다. 높은 체고에 곧게 뻗은 다리, 근육질이면서 균형 잡힌 체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중:수컷 45kg/암컷:38kg 내외의 대형견입니다. 

 

 

 

 투견이었던 선조의 피를 받았습니다. 지금의 아키타는 전혀 물지도 않고 쓸데없이 짖지도 않는 영리하고 훈련 능력도 높은 견종입니다. 훈련하기는 비교적 쉽고, 계속 묶어 두면 스트레스로 인해 난폭해져서 사람을 물기도 하므로, 충분한 운동과 주인의 관심이 필요하답니다.

 

 

견주와 가족에게는 충실할 수 있어도 낯선 사람과 다른 개에게는 거친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어린 강아지 시절부터 제대로 된 사회화 교육은 필수입니다. 특히 물어뜯거나 짖는 버릇은 예기치 못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키타현/123RF

 

 

아키타견의 인기는'충견 하치코'라는 유명한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됩니다. 1920년 도쿄제국대학의 우에노 히데사부로라는 교수가 '하치코'라는 이름의 아키타견을 키웠다고 합니다. 하치코는 교수가 갑자기 사망한 후에도 여전히 매일 시부야역에 가서 주인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 미담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요. 지금은 세겨적으로도 유명한 '하치코'상이 시부야역에 세워져 있답니다. 이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 '하치 이야기'로 각색되어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답니다. 아키타견의 충성스러운 이미지도 사람들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지요. 

 

 

 

Haciko Square-Shibuya/Japan Travel

 

 

https://www.youtube.com/watch?v=Y6U7mAnPtw4

 

 

 

 

아키타는 힘이 세고 민첩하며 골격이 튼튼한편입니다. 꼬리는 힘차게 말려 올라가 있고, 귀는 바짝 서 있으며 코는 오뚝하고 검은 눈 때문에 날쌔고 사나워 보이기도 합니다. 아키타의 성격은 두려움이 없고 사냥에 능숙하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합니다. 사람에게 호의적이며 기억력이 좋고, 협동심이 좋은 반면 애교가 없고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2OoGacMNsLM

 

 

 

 

사냥개의 본성이 나타나기 전에 어려서부터 엄격하게 훈련시키면 성견이 된 뒤에 훈련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루 30-40분 운동을 해야 하며, 물을 많이 주면 몸매가 풀어져서 좋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호의적인 반면 다른 동물들에게는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가족에게는 자애로운 면모를 보이지만,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으니 어릴 때부터 서열을 확실히 하고 훈련시켜야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yKoRoK7q_w

 

 

 

사냥견으로서 충성스런 명성을 갖고 있고, 항상 위엄 있는 모습과 차분하고 신중을 기하는 성질의 아키타는 장점입니다. 사람이나, 그 밖의 모든 침입자로부터 영토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어려서 사회화 교육 잘 시키십시오.

 

 

 

아키타견/WINTER PLAY

 

 

 

아키타의  털색은 다양합니다. 황색 외에도 붉은색, 후추색, 흰색, 브린들(얼룩무늬)이 있습니다. 흰색을 제외한 다른 색깔의 개에게도 안쪽에는 흰색털이 있어야 합니다.  아키타는 털 빠짐이 많은 견종이라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키우는 걸 추천합니다. 추운 지역에서 살아온 아키타 견은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 약해서 여름에는 실내온도를 25도-28도 , 습도는 50-60%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풍성하고 빽빽한 이중모를 가지고 있어 매일 빗질을 해주는 것이 피부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봄과 가을에는 털갈이 시기이므로 이 기간에는 털 관리에 신경을 써 주세요.

 

 

 

아키타 견은 일반 반려견 분양숍에서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브리더를 통해서 분양을 받는 것이 제일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견에서 자주 발생하는 고관절 형성부전외에 포도막염, 안검내반증 등의 질병에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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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200년 가까이 완전히 잊혔졌던 화가입니다. 그러다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들과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 당시 시대상황,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림으로 그리는 장르화에 주목하면서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재조명받기 시작합니다.  페르메이르를 빼놓고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을 얘기할 수 없지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더 많이 알려져 있고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1632-1675)의 시간을 따라가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0BlJIV_29U

 

 

 

 

페르메르만큼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려운 거장도 드뭅니다. 제대로 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출생 신고서나 상속 관련 기록들 딱딱한 공문서가 전부입니다.1632년 네덜란드 중서부의 도시 델프트의 서민 가정 출신입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막바지에 치달았을 때 태어났죠.

 

 

유럽이 종교개혁 이후 신. 구교와의 종교를 내세운 힘겨루기로  어수선했습니다. 대부분의 북유럽지역이 개신교를 받아들였고 네덜란드 역시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투쟁을 벌여왔습니다. 1648(16살) 네덜란드가 전쟁에서 승리해 독립을 쟁취합니다. 중개무역을 통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던 상권이 북유럽의 네덜란드로 부가 이동하기 시작하고요. 이로 인해  네덜란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상당히 성공한 시기인  '황금시대'가 시작됩니다.

 

 

1653년 21살 때 델프트의 화가 길드에 가입하면서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같은해 '운명의 여인'카타리나 포르네스와 만나 결혼하고요.  돈 많은  가톨릭 집안의 딸과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개신교 집안 아들이 만나 살림을 시작합니다. 이 결혼을 반대했던 장모님도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위 페르메르를 아낍니다. 후에 장모님이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지요. 장모집 2층 작은 방 하나를 화실로 꾸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갑니다. 

 

 

 

페르메르와 카타리나는 결혼 후 22년동안 아이를 15명이나 낳았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평균적인 가정에서 아이를 3-4명 낳았던 걸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다산이지요. 페르메르는 아내와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페르메르가 남긴 작품은 35점 안팎입니다. 동시대에 살았던 렘브란트의 작품에 비하면 너무 적지요. 살아남은 11명의 자녀를 부양하느라 그림도 그리지만 수입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부업으로 여관도 운영하고 그 여관 벽에 그림도 걸어 미술상 역할도 하면서 생계유지에 허덕입니다. 작품 수가 적은 이유도 본업, 부업, 그리고 육아까지 겸했던  충분하지 못한  작업시간도 한몫했을 것 같습니다.  

 

 

 

렘브란트등 다른 화가들이 신화나 종교를 소재로 자주 그림을 그렸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작품 주제 대부분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베르메르는 실제 생활과 자기 작품을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베르메르의 집은 항상 엉망이었고 엄청나게 시끄러웠습니다. 애가 열 명이 넘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가 죽은 뒤 집을 찾아온 빚쟁이들은 "요람, 침대, 의자가 집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메르의 그림에 나오는 집들은 모두 완벽하게 정리돼 있고, 조용합니다. 그림을 사 갈 만한 부유한 고객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일 테지요. 아니면 어지러운 마음을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안에서 승화한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성 프라세디스 Saint Praxedic>,1655/wikipedia

 

 

 

 

페르메이르가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린 작품입니다. 20-30대의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스승이 누구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고요. 추측만 할 뿐이죠. 원래는 작품에 십자가를 더해 변화를 꾀했는데, 엑스레이 연구에 의하면 완성 후에 덧그렸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는 그림의 종교적 이미지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인물에 보다 강렬한 물리적 존재감을 부여하기 위해 원작보다 훨씬 고밀도로 색채를 강조했고요. 배경인 하늘에는 울트라 마린 물감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돈은 없지만 작품에 들어가는 재료는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파란색과 노란색이 자주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파란색은 청금석을 갈아 만든 울트라 마린이라는 안료를 사용합니다. 울트라 마린(바다를 건너왔다)이 안료는 엄청나게 구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청금석은 수입물품으로 아프가니스탄 이 있는 중동 지역에서 들어온 물건이라 금보다 더 비쌌다고 해요. 그래서 페르메이르는 이 안료를 구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빚을 지게 할 정도로 말이죠.

 

 

2014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620만 파운드(약 125억 원)에 낙찰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은 폴란드의 유명 컬렉터인 바바라 피아세카 존슨 소장품으로 1969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중산층 가정의 일상생활 모습을 주로 다룬 페르메이르 작품으로는 상당히 드문 종교화입니다. 그의 알려진 작품들 가운데 가장 초기작에 해당하고요. 화가가 1653년 결혼과 동시에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은 2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미 안료, 색채 등에 이해도가 높았음을 보여줍니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 /한국경제

 

 

 

베르메르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입니다. 왼쪽으로 열린 창문이 보입니다. 열린 창문에  반투명으로 반사된 소녀의 얼굴이 보이고요. 이 정도면 페르메이르의 관찰력에 엄지 척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창을 통해 들어온 아늑한 빛이 소녀의 이마, 머리, 둥근 어깨를 거쳐 편지를 읽고 있는 손에 잠시 머무르는 것 같습니다. 황록색 커튼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고요. 벽에 큐피드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애편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림 원본 위에 누군가 덧칠한 부분이 발견되었고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통해  2017년 독일 드레스덴 복원팀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본 큐피드의 모습입니다. 직물이 놓인 곳, 벽 쪽은 다소 어둡게 처리했습니다. 소녀가 서있는 곳은 빛을 통해 환한 모습으로 표현해 놓았고요. 충분히 넓지 않은 공간을 빛의 레이어를 두며 깊이감을 더 했습니다. 

 

 

 

 

 

 

<The Milkmaid>,1657-1658/wikipedia

 

 

페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인데도 고요함과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디선가 쪼르륵 우유 따르는 소리가 들려올 듯하고요. 일상적인 순간을 어찌 그리 잘 잡아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마치 중요한 아침 의식을 치르듯 흘러나오는 우유의 흰 빛과 따르는 손등에 떨어진 빛이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집중한 하녀의 얼굴과 옷의 색채 표현은 물론이고 왼쪽 벽은 회색으로, 오른쪽 벽은 흰색으로 칠한 명암 표현도 절묘합니다. 오른쪽 벽에 드문드문 뚫린 못자국 보이시나요. 바닥에 있는 데울 때 썼을 법한 작은 이동식 난로도 보이고요. 

 

 

 

 

엄청나게 비쌌던 청금석 갈아 만든 블루색을 하녀의 앞치마에 아낌없이 썼습니다.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 공화국을 침략해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면서 (프랑스-네덜란드전쟁) 심각한 경기 침체가 네덜란드를 강타한 뒤였습니다. 제일 먼저 미술 시장이 얼어붙어 그림을 팔 길이 막혔을 때도 페르메르는 고집합니다. 당시 유명화가들조차 붓을 꺾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며 힘들었을 때도 말이죠. 전형적인 장인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료만큼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델프트 풍경>,1660-1661/ARTPAGE

 

 

아침의 햇빛이 비치는 강변 풍경이 마치 사진처럼 묘사돼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페르메르가 세례 받았던 교회 건물도 보입니다. 그림과 달리 당시 이곳은 아침부터 들락거리는 배와 상인들로 매우 붐비고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에는 전혀 이런 사실이 드러나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베르메르는 고요를 사랑하고 갈망했었나 봅니다.

 

 

프랑스 위대한 문학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 그림을 매우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그림을 본 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봤다"라고 전했습니다.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인물은 그림 속 이 부분을 보며 숨을 거둡니다. 어두운 건물들 가운데 햇빛을 받아 홀로 빛나는 작은 노란색 벽면을 묘사한 부분 말입니다. 오른쪽 부분에 있으니 한 번 찾아보세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Meisje met de parel>,1665/나무위키

 

 

 

북부의 모나리자로 불립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신비로움으로 인해 문학, 미술, 영화 등 여러 분야에 끝없는 영감을 제공하는 작품이고요. 페르메이르의 대표작 중 한 점입니다. 소설, 영화, 끊임없는 과학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많은 이들이 이 그림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존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 매혹적인 눈망울과 오묘한 표정 등 신비로움과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어찌나 호기심을 유발하는지, 이 작품을 주제로 여러 소설이 쓰였을 정도입니다. 미국 유명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되었고요. 영국의 인기 낙서화가 뱅크시도 이 작품을 모티브로 벽화를 그렸습니다.

 

 

 

 

작품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과학적 분석도 꾸준히 이뤄져 왔습니다. 특히, 최근의 한 연구는 엑스레이, 디지털 현미경, 물감 표본 분석 같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 안료의 성분과 생산지는 물론, 세월에 의해 지워진 부분들까지 모두 밝혀냈습니다. 심지어 화가가 어떤 순서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내는 정도에 이르렀고요. 흥미로운 사실은 원래 바탕이 검은색이 아니라 녹색 커튼이었다는 점과 속눈썹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일부 미술사학자들이 손눈썹이 없는 점을 들어 실제 인물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물을 그린 것이라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터번을 두른 이 소녀가 누구인지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파란색의  터번을 두른 소녀의 복장은  당시 네덜란드의 옷이 아닙니다. 터번은 아랍 쪽과 터키에서 자주 입던 옷이죠. 이를 통해 그 당시 네덜란드가 중계무역으로 많이 번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장르화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당시 옷차림으로 변화하는  생활양식을 읽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가  43세에 죽었을 때  그의 스타일과 천재성을 상징하는 색채와 빛의 특정 효과, 안료의 정확한 혼합과 탁월한 배경 처리 기술은 그 누구에게도 전수되지 못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The Art of Painting>,1666-1668/wikipedia

 

 

 

이 작품은 페르메이르의 특징을 잘 소개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바로 카메라로 찍은 듯한 완벽한 거리 감과 빛, 그리고 구도입니다. 사실 그는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기술을 통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일종의 원시적인 카메라로, 당시에는 혁신적인 첨단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구도를 잡은 다음에도 그림을 굉장히 많이 고쳤습니다. 엑스레이 분석에 따르면 페르메르는 등장인물의 위치와 실내 인테리어 등을 자주 큰 폭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덕분에 페르메르의 그림에서는 원근법과 명암, 구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나무위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알레고리 작품입니다. 알레고리란 그림에 나오는 이미지에 하나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모델은 머리에 월계수 화관을 쓰고, 왼손에는 트럼펫을 , 오른쪽에는 책을 든 채 눈을 아래로 깔고 있습니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눈길을 끌고요. 월계관은 승리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 트럼펫은 명성을 뜻합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은 헤르도투스 또는 투키디데스의 책으로 , 역사를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모델은 화가의 승리를 가져다줄 '역사의 여신'즉 클리오(Clio)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물론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많습니다.) 가난에 굴하지 않고 베르메르는 믿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가 기어이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어 영예롭게 할 것임을 말입니다. <2023년 암스테르담 페르메르 전시회>에 엄청난 인원이 몰리며 표가 매진된 사례를 보면 페르메르가 그린 월계수의 의미처럼 승리를 한 듯도 싶습니다. 

 

 

 

 중앙 오른쪽에 등을 돌린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페르메이르 자신이죠. 당시의 최신 유행에 따라 상의는 절개된 의상을 걸쳤습니다. 하의는 붉은색 내의를 받쳐 입었고요. 화가 주변에는 유화물감이나 팔레트 등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가 없습니다. 이는 그림이 화가의 상상 속 장면을 그렸다는 걸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사실 베르메르는 이렇게 비싼 옷을 입고 좋은 작업실에서 일할만큼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작품 분위기는 고요하지만, 자식을 10명 넘게 뒀던 페르메르의 집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거든요. 15명의 아이중 11자녀가 살아남았어요. 그 녀석들 먹여 살리느라 아버지 페르메르는 스트레스가 가득입니다. 그래도 그림 속 페르메이르는 자신을 멋을 좀 아는 신사로 연출해 놓았습니다. 

 

 

 

 

 

 

왼쪽에 늘어진 커튼, 그 아래쪽 의자 등에 어두운 색깔을 자연스럽게 모델로 이끄는 르푸수아(repoussoir) 기법을 썼습니다. 커튼으로 살짝 가려진 탁자 위에는 석고 마스크, 옷감 한 무더기, 책 하나, 가죽 조각들이 놓여 있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적절히 활용하여 각각의 질감을 확실히 살리고 있습니다. 화가와 모델은 아주 선명한 반면에 이 사물들은 흐릿합니다. 어둠-창가 쪽으로부터 오는 빛-벽면의 어두움 이렇게 레이어를 주며 공간의 깊이감을 더합니다. 공간이 좁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바닥에는  대리석 타일이 깔려 있고, 줄무늬 천장이 그림 위쪽을 살짝 가로지르는 가운데, 황금색으로 빛나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습니다. 샹들리에는 아마도 화가의 고매한 예술 정신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상징성을 띠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 미술평론가는 "자연주의적 기법, 밝게 빛나는 공간, 복잡하지만 완벽하게 짜인 구성이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흠 없이 통합되어 있다"라고 격찬합니다. 처음에는 작업실을 방문하는 고객들한테 보여줄 작품으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화가가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 되었으며. 페르메이르는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을 평생 팔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다른 그림들보다 유독 이 그림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독일 국민 예술전의 도록으로 이 작품을 사용했죠.  결국 패망에 가까워 지자 히틀러는 자신이 뺏은 미술품 500만 점을 여러 장소에 나눠 숨기라고 지시합니다. 그것을 모뉴먼츠 맨이라는 특수부대가 찾아서 돌아옵니다. 이를 통해 페르메이르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A Young Woman Seated at the Virginals>,1670-1672/wikipedia

 

 

푸른 벨벳 의자에 앉은 젊은 여인이 버지널이라는 당대 유행하던 건반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하얀 공단 드레스 위에 노란 숄을 두른 그녀는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고요. 머리에는 빨강과 하얀색 리본 장식을 둘렀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당대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인물과 악기는 어김없이 왼쪽 벽을 향해 배치돼 있고요. 손바닥만 한 작은 작업실에서 그리다 보니 구성이 한정되어 보입니다. 제한된 구성이기는 해도 섬세하게 통일된 빛으로 인해 주변 장식 하나 없이도 공간과 깊이에 대한 분위기와 깊은 인상을 창조해 냈습니다.

 

 

 

 

이 작품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을 1904년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이아몬드 광산 재벌로 20세기 최고 컬렉터 중 한 사람인 알프레드 베이트가 자신의 소장품 책자를 발간하는 작업을 했지요. 그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여러 점 소장, 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는데, '버지널 앞에 앉은 젊은 여인'은 자신이 개인 소장했던 작품입니다. 그가 타계하면서 이 작품은 동생에게 넘겨졌고, 이후 동생이 자신의 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겼죠. 이 아들이 1960년 런던 화상에게 판매 의뢰한 것을 브뤼셀의 한 화상이 구매, 40년 넘게 소장했습니다. 화상이 2002년에 죽으면서 그의 유가족에 의해 경매에 나오게 된 작품입니다.

 

 

발견 이래 오랫동안 모작으로 여겨졌던 작품이기도 하고요. 안료 성분 분석 등 급격히 발전한 과학적 연구에 힘입어 진품으로 판명되는 행운을 얻은 작품입니다.  2004년 경매에서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350억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낙찰됩니다.

 

 

 

 

<천문학자>,/ARTSBEE

 

 

 

책생 위에 놓인 물건은 지구본이 아니라 별자리를 표시한 천구본입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천구본을 거쳐 천문학자의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지식의 빛이 천구본을 통해 천문학자의 통찰로 들어오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지요. 앞에 놓인 직물천을 통해 보는 이들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람객 사이의 거리 다시 그림과 그림 안의 인물과의 거리 이런 식으로 말이죠. 사적인 공간을 더 강조하면서 깊이감을 준 연출법입니다.  왼쪽 창문을 통해 실내를 비쳐주는 감싸 안은 빛이 천구본의 둥근 부분, 책, 학자의 얼굴, 손등으로 부드럽게 떨어집니다. 뭔가를 찾아낸 듯 몰입하는 모습이 사뭇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  The allegory of faith>, 1670/그림닷컴

 

 

 

 

페르메르가 말년에 그린  <믿음의 알레고리>라는 작품입니다. 이전의 주제가 주로 중산층의 실내 모습을  그렸다면  말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완전히 다른 형태 그림입니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른쪽에 않아 있는 여인입니다. 여인은 믿음을 의인화한 모습으로 믿음을 상징하는 흰색과 진리를 뜻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믿음의 증거 자세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있고요. 또한 그녀는 인간 세상의 욕망을 상징하는 지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진리가 지상의 모든 세속적 욕망을 없애고, 진리가 재배할 것을 나타냅니다. 여인의 발 앞에는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악(뱀)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과 승리를 말합니다. 바로 뱀을 내리친 돌은 교회의 초석인 그리스도를 상징하고요. 악을 물리치고 세워질 하느님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룩된 하느님의 세계는 여인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있는 천장 유리구 속에 담겨 있습니다. 작고 투명한 유리구는 세상 모든 것을을 비추고 담을 수 있기 때문이죠. 페르메르가 1675년 갑작스럽게 사망하기까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재정적으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세속적인 가치와 신앙 사이에서 묵상을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프랑스와의 전쟁 동안
그는 자기 작품을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지 못해 슬펐고요.
그는 좌절감에 빠져
갑자기 하루 이틀 만에
건강을 잃고 죽어버렸습니다.
빚 좀 깎아 주세요.

 

 

 

 

작품이 시장에 많이 나와서 활발하게 거래되어야 명성이 쌓이는데, 그리기만 하면 사던 사람이 바로 구입해 가는 바람에 인지도가 쌓일 틈이 없었습니다. 당시 경제 위기로 네덜란드를 떠나거나 파산하는 화가들이 많았습니다. 당장 미술시장부터 얼어붙으니까요.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니 선택지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생활고, 스트레스,  격무에 시달렸습니다. 네덜란드 황금 시기에 태어 난 43살의 천재 화가는 가장의 임무에 충실하려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다. 그의 아내도 오래 살 지 못했고요. 남은 11명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는지 , 본인들이 페르메르라는 화가의 아이들로 잘 커 갔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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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대저택에서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잔잔한 일상에 묻혀 사는 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가들은 귀족들의 사치와 풍요로움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주력했습니다.

 

 

당시 왕이 살 던 베르사이유궁전은 파리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왕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귀족들이나 관리들은 궁전까지 왕복을 하려니 힘이 들고요. 그래서 파리를 포기하고 왕이 거쳐하는 베르사유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왕의 궁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름답고 우아하게 실내장식을 하고픈 안 주인들의 염원에 따라 여성스럽고 섬세하고 우아하고 장식적인 양식의 로코코 (Rococo) 미술이  유행을 하게 됩니다. 

 

 

샤르댕은  18세기 로코코 양식이 유행하던 시절 소재 면에서 다른 화가들과 엄격히 다른 세계를 추구했습니다. 귀족들의 호사스러움에 휩쓸려 다녔던 당대의 화가들과 달리 그는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함을 모티브로 합니다. 가령 평소 사용하던 사물들 냄비, 주전자 등의 소박한 주방도구와 생선, 달걀 등 음식 재료를 늘어놓고 정물화를 그리는 식으로 말이죠. 

 

 

샤르댕이 활동하던 시절 막강한 권위를 가진 프랑스 아카데미는 그림의 주제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규칙을 정했습니다.  그림에도 서열이 있었다는 말이죠. 역사화, 초상화, 장르화(,풍속화,풍경화), 정물화 등으로 말입니다.

 

역사화는 신, 성자, 영웅의 서사등을 펼쳐 보입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특별함과 도덕적 위대함을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역사화를 잘 그리려면 실기 능력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 종교사, 고전, 신화 등과 관련된 지적 소양도 동시에 갖춰야 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역사화는 최상급 대우를 받았죠.

 

 

초상화는  왕과 귀족의 위세를 주로 기록했습니다. 인간의 형상을 묘사했기 때문에 상위 등급을 받습니다. 반면 세속적 주제인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와 인간의 지배를 받는 자연이 주제인 풍경화는 하위 등급으로 분류됐습니다. 장르화라고 불립니다. 

 

일상의 사물, 과일, 꽃 등 움직이지 않는 (죽은)대상이 주제인 정물화는 최하위 등급이었고요.

 

당시 모든 화가가 역사화가로 성공하는 꿈을 꿨습니다. 역사화가로 명성을 얻으면 작품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그림도 비싸게 팔 수 있었거든요. 화가들에게 역사화는 출세의 지름길인 동시에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습니다.

 

샤르댕은 다른 화가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움직이는 것을 그리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기질에도 맞지 않았고요. '화가는 모든 것을 자기 머릿속에서 찾아 구상을 해야 한다.'라는 역사화의 대의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이젤 앞에 놓아두고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정물화를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돈벌이와 정 반대의 노선을 걸어간 거죠.

 

 

 

Saint-Germain-des-Pres/O'Bon Paris

 

 

 

 

 

https://www.youtube.com/watch?v=Y9sD-S2tNro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은 가구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구인 생 제르멩 데 프레 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정규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단아 였습니다. 18세기 프랑스 화단은 에로틱한 누드화, 정원의 밀회, 귀족들의 침실 등 유혹적인 장면을 표현한 그림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던 시절입니다. 그렇다고 프랑스 화단에서 왕따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는 당시 제 3계급(1급: 왕, 귀족/ 2급:성직자)으로 치부당했던 검소한 생활을 하 던 시민들의 모습을 자신의 화폭 위에 재현해 냅니다. 로코코의 화려함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려 진 풍속화와 정물화로 말입니다. 

 

 

 

 

 

<The Ray>,1725-26/wikipedia

 

 

 

그것은 인간의 표현과
묘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그것의 놀라운 얼굴 묘사는
정확히
똑같은 그 생선의 살, 피부, 피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비평가 ,드니 디드로(Dennis Diderot)

 

 

 

 

< The Ray(La Raie),1725-26>

 

이 작품의 중심에 내장이 제거된 가오리 (홍어(skate)로도 알려짐)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 상처와 반투명 살은 내부 구조를 드러내고요. 흰색 표면과 배를 갈라 드러난 연분홍색의 내장이 생선 장수 눈에는 '고놈, 참 실하다.'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식가라면 막걸리 한 사발에 홍어 삼합을 떠 올릴지도 모르고요. 제 눈에 벽에 저 자세로 걸려 있으니, 눈과 입처럼 보이면서 핼러윈 파티에 뒤집어쓴 유령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이 그림 앞에 선 다른 이들도 가오리의 멍한 유령 같은 눈빛이  경악스러웠나 봅니다. 굴 몇 개와 생선 두 마리도 보입니다. 비린 생선 냄새를 맡고 용케 찾아들어 온 고양이 녀석이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우는 걸 보니 '너 , 오늘 딱걸렸어.'하는 앙칼진 표정입니다.  왼쪽에서 쏟아지는 빛 덕분에 부엌에 있는 모두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은 실제 오브제들을 이와 같은 구도로 배열해 놓고 그린 것이 아닙니다. 샤르댕이 구도를 먼저 스케치한 후 그 구도에 맞는 사물들을 상상하여 배열한 후 그린 '구성 연습을 위한 거짓 정물'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입니다.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리셉션을 위해 제작된 작품입니다. 그의 후기 작품 <찬장,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The Buffet,1728)>과 함께 제시된 작품 이지요.  <The Ray>로 인해 샤르댕이 '동물과 과일에 재능이 있는 화가'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첫 걸작으로 간주하는 작품이고요. 이 작품으로 인해 25살의 샤르댕은 프랑스 최고로 권위 있었던 예술 기관으로부터 정식으로 아카데미 회원자격이 주어집니다. 정물화라는 가장 인정받지 못한 분야에서 종종 단순한 '기술'로 무시받 던 분야에서 공식적 인정을 받았다는 말이죠.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주는 실제와 흡사한 현실감은 이후 화가들에게 있어 하나의 전형적인 '정물'의 규칙처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샤르댕이 그 림 속 가오리를 그리는 사실적인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죠. 흩어진 굴 껍데기를 가볍게 밟으면서 등을 아치형으로 구부리고 털을 곤두세운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왼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모양의 생명 없는 수척함이 뚜렷이 부각되고요. 생사를 막론하고 집결된 대상들은 모두 왼쪽에 모여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주방 기구들이 모여 있고요.

 

 

 

이 작품은 아카데미가 소장하고 있다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루부르 박물관에 소장되게 됩니다. 미술계에 세잔, 마티스, 마네 등에게 영향을 줍니다. 마티스는 샤르댕에게 '사물의 감정을 그릴 줄 아는 화가'라며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이 그림을 보고 간 문학계에 드니 디드로, 마르셀 프루스트 등에 영향을 끼칩니다.

 

 

 

17세기의 이름없는 네덜란드 화가들처럼  샤르댕 또한 반사광선의 처리를 연구하였습니다. 따뜻하고 밝은 색의 바탕칠과 인물의 머리 부분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술적 방법을 베르메르의 그림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림물감을 충분히 이용하여 연속해서 칠하고 그 위에 불투명한 색을 정교하게 사용하여 스컴블(scumble) 효과를 주는 등 매우 깊이 있는 색조를 만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또한 정취가 부족한 네덜란드 회화의 사실주의에  세부적인 유사함과는 구별되는 프랑스적 특징인 간결함과 직접성을 더하기도 하지요. 

 

 

 

 

 

 

<Lady Sealing a Letter>,1732/Canvas Replicas

 

 

샤르댕은 1731년 마르게리트 생타르와 혼인합니다. 2년 뒤 최초의 인물화인 <편지를 봉하고 있는 부인>을 발표했고요. 그때부터 샤르댕은 정물화나 <식사전의 기도>와 같은 가정생활을 다룬 실내화와 <팽이를 들고 있는 아이>와 같이 일이나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남녀를 다룬 반인물화를 번갈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같은 주제를 자주 되풀이 해서 그렸습니다. 같은 유형의 작품들을 여러 점 남겼고요. 1735년 그의 아내가 죽은 뒤 작성된 재산목록은 그들이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무렵에는 이미 샤르댕이 화가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Woman Drawing Water from an Urn>,1733/Meister Drucke

 

 

 

구리 물통이 인상적입니다. 오늘날 똑같은 모양새로 여름철에 자주 사용하는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의 물통 생각이 났습니다. 물이나 청량 음료 등을  만들어 다수의 모임에 들고 가기도 하거든요. 덕분에 18세기 프랑스 어느 중산층 가정의  세간살이를 엿볼 수 있어 좋습니다. 어느 시대나 가사노동과 육아로 고단했을 여성들의 삶을 생각하게 되고요. 

 

 

 

<The Washerwoman>,1733/Artvee

 

 

 

<빨래하는 여인>과 같은 장면들은 샤르댕이 나중에 장르화인 풍속화로 전향하면서 그려진 작품입니다. 샤르댕은 정물화 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수익성 차원에서 좀 더 윗단계인 장르화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있 던 정물 속에 움직임이 있는 사람을 그려 넣어 소재를 확대하기 시작합니다.그 당시에는 성공한 화가들에게 필수적인 기술로 여겨졌습니다. 이 그림들은 난이도와 정교함 때문에 더 놓이 평가되었죠.

 

 

 

빨래를 널기 시작하는 뒷 모습의 여인이 보입니다. 약간 산만해진 순간에 옆으로 눈을 돌린, 한 여성의 발그레한 볼도 인상적이고요. 빨래로 가득 찬 큰 통에 손을 담근 채 무엇이 그녀의 시선을 잡았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한참 호기심 많을 나이의 아이를 흥미로운 놀잇거리 하나 들려 서로의 시간을 한 공간에 묶어 놓습니다. 놀거리가 마땅찮으니 거품놀이면 어떻습니까? 하루종일 엄마 옆에 붙어 있을 수 있는걸요. 준비된 낮은 의자에 걸터앉아 진지하게 거품놀이를 시작해 봅니다.   단순한 이 놀이가 뭐라고 대롱 끝에 불어지는 풍선 모양의 거품은 빛을 받아 온갖 색으로 물들기도 하고 가볍게 떠 하늘로 오르기도 하며 꿈이라도 실어 볼까 싶으면 이내 터트려져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녀석도 은근 이 공간의 터줏대감인가 봅니다. 배경처럼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죠. 당시 쥐들이 많아 가정집에서 많이 키웠던 모양입니다. 살아있는 조연 역할 톡톡히 하는 것 같습니다. 

 

 

 

 

 

<Soap Bubbles>,1733-1734/wikipedia

 

 

 

 

샤르댕의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만큼 상징과 알레고리를 내세워 지나치게 의미를 전달하려  애쓰거나 교훈을 주고자 설교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있는 사물과 사람들의 일상을  포착해 자연스럽게 보여줄 뿐이죠.

 

 

 

비눗방울 놀이를 하기에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소년이 두터운 벽돌 난간에 기대어 긴 대롱으로 비누 거품을 불고 있습니다. 오른 팔꿈치 옆에는 비눗물이 든 작은 유리컵이 놓여 있고요. 소년의 머리는 가지런히 묶여 뒤로 넘겨져 있습니다. 대롱을 쥔 오른손과 이마에는 밝은 빛이 부서져 어둡게 칠해진 벽돌 난간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모자를 쓴 작은 꼬마가 비누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있나 봅니다. 오히려 비누방울 놀이는 이 아이에게 더 어울릴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갈색을 띤 재킷의 옷주름, 하얀 셔츠의 색조는 조화롭고 풍요롭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 인물과 정물들은 의도된 균형감으로 잘 배치되어 정교한 구성미를 느끼게 하고요.

 

 

 

구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순수함, 덧없음, 그리고 찰나의 젊음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샤르댕은 이 작품에서 인물을 사각형 모양의 돌로 만든 창문에  배치하였습니다. 창문 난간 밖을 향해 걸친 팔과 머리는 큰 삼각형을 이루고 있고요. 키 작은 어린 소년의 모자에서 또 다른 작은 삼각형이 반복됩니다. 구성의 초점은 전체 캔버스에 덮여있는 따뜻한 갈색 색조의 바탕 위에 방금 만들어진 동그란 형태의 투명하게 반짝이는 비누 거품으로 수렴됩니다.

 

 

 

이 작품은 샤르댕이 서른 중반에 그린 작품입니다. 갓 결혼하여 딸 마그리트-아그네스와 아들 장-페에르가 태어난 후였죠. 겨우 걸음마를 떼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아버지가 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붓질을 했을까요? 이 작품 속 인물은 그림을 그릴 당시의 실제 모델이라기 보다 작가의 내면세계에 그 자신과 아들의 초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 장-피에르는 자라서 아버지에 이어 화가가 됩니다. 그는 당시 화가 지망생들이 동경하던 아카데미의 로마상을 획득하고 이탈리아 유학까지 떠났으나, 결국 베니스의 운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지요. 샤르댕이 죽기 7년 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죽음과 삶의 허무를 엄숙하고 절제된 필치로 그려내던 화가의  아들은 베니스의 밝은 햇빛 아래 그림 속 반짝이는 비누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The Governess>,1738/ArtUK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곡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가정 교사인 듯한 그녀는 밖에 나갈 때 쓸 모자를 털려다 아이에게 한 소리 하나 봅니다. " 학교 가야 하는 데 , 너 언제까지 저런 것들 가지고 놀거니? "뭐 이런 식의 훈계를 듣는 모양입니다. 불만스럽지만 다소곳이 눈을 깔고 듣고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옆에 놓인 반짇고리가 한 깔끔 , 한 성질 하실 것 같아요. 

 

 

 

 

샤르댕은  단순한 색채와 부드러운 조명으로 고요한 집안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그의 작은 화면 속에 두 개로 갈라진 상반된 세계들이 존재합니다. 열린 문 너머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바깥세상과 가정교사가 굳겐하게 지키고 있는 가정의 질서, 장난감들이 주는 쾌락의 세계와 맞은편에 놓인 반짇고리가 상징하는 성실한 노동의 가치, 그리고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아이와 교양을 갖춘 중산층 출신의 가정교사가 그들입니다. 샤르댕은 위대한 업적만을 그리던 이전의 미술에서 도외시했던 것들, 즉 가정과 여성, 중산층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어린아이들을 온전한 사회의 일꾼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 바로 이들이었으니까요. 양육과 훈육을 책임진 '가정의 여성'이 '어머니'가 아니라 점이 특이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까지 상류층 자녀의 양육은 유모와 가정교사의 몫이었습니다. 과거의 많은 위인들이 모두 '아줌마'들 손에서 자란 셈이죠. 

 

 

 

 

<The Little Schoolmistress>,1735-36/Art.U.K

 

 

 

 

놀고 싶은데 볼그레한 볼을 가진 포동한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무엇인가 가리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리키는 글자가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네요. '어제 그렇게 ~가르쳐 줬는데 그것도 몰라 '하는 불호령이 깐깐한 그녀에게서 떨어질 것 같습니다. 웅얼거리는 아이가 그녀 역시 답답한 모양이고요. 전체적인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 않은 걸 보면 말이죠. 머리에 쓴 장식이 참 독특합니다. 

 

 

 

샤르댕은 가벼운 붓터치와 우아한 색채로 정물화와 장르화를 많이 제작했습니다. 샤르댕 그림의 원류는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시대 네덜란드 회화는 독특한 시각적 명확성을 지니고 있었죠. 크기가 작고 불필요한 내용이 없었거든요.이 작품 역시 십 대로 추정되는 한 소녀가 아이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많은 샤르댕의 그림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엄숙한 침묵입니다. 배경이 되고 있는 장식이 없는 평범한 실내는 프랑스의 중산계급 시민의 검소한 가정생활을 보여줍니다. 어떤 배경도 두 주인공 사이의 관계에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샤르댕의 작품들의 단순함은  18세기 동시대 화가 프랑수아 부셰가 전형적으로 묘사한 로코코 양식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살롱에서 샤르댕의 장르화 그림이 점점 인기가 많아지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과 왕족들의 수집품들에 들어가는 것 또한 막지 못했고요. 그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의 작품들 중 많은 작품이 판화로 복제되었습니다. 

 

 

 

 

 

<Girl with a Racquet>,1737/wikipedia

 

 

 

 

 

샤르뎅의 일상을 담은 작품 중에  <셔틀콕을 들고 있는 소녀>입니다. 이 작품은 살롱전에 출품하여 엄청난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뺨에 홍조를 띤 소녀가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을 쥐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부드럽게 퍼져 있는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쓰고 있는 레이스 모자와 밤색의 드레스 위에 입은 하얀 앞치마는 소녀가 하녀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소녀의 푸른색의 드레스 리본에는 가위와 바늘쌈이 매달려 있어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은 운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부드럽게 퍼져 있는 드레스와 나무 의자, 라켓과 소녀는 단순한 녹색의 배경과 대비되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가위와 셔틀콕 등 세부 묘사가 뛰어난 작품입니다.

 

 

 

<Boy with a Spinning-Top>,1738/wikipedia

 

 

 

<시장으로부터의 귀가(The Return from the Market)>,1739/wikipedia

 

 

 

이 그림은 1739년 살롱전에 전시된 것으로 특히, 구성이 돋보입니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구리 물통 때문에 소녀가 그림 앞으로 더 바짝 다가와 있는 듯 느껴집니다. 생각에 잠긴 소녀는 단조로운 현실의 일상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듯 넋이 나간 표정을 을 짓고 있습니다.

 

시장 봐서 부엌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입니다. 살짝 바랜 푸른색 앞치마 차림의 그녀는 한 손에 고깃 덩어리 다른 한 손에 커다란 빵을 들고 탁자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문을 열고 또 다른 손님을 맞는 어린 가정부에게 쏠려 있고요. 빵, 포도주병, 접시, 도기그릇, 왼쪽의 구리 물통들까지 샤르댕이 부엌 정물화를 통해 자주 그리던 것들입니다. 정물화에 대한 샤르댕의 자신감이 잘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특히 빵과 포도주병 그리고 바닥의 그릇은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로 그림의 균형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샤르댕이 치밀한 계산하에 물건을 배치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소한 풍경에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샤르댕의 장르화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판화로도 제작돼 많은 사람들에게 팔렸습니다. 

 

 

 

 

<Saying Grace(La Benedicite)>,1740/wikipedia

 

 

프랑스 중산층 어느 가정집에서나 벌어지고 있을 법한 장면입니다. 식탁보의 청결함이 만져질 듯 합니다. 식기의 부딪힘이 들릴 듯하고요. 기도를 마치고 식탁에 앉은  큰 아이는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 음식을 식기 전에  빨리 먹고 싶습니다. 엄마의 시선은 어린 동생에게 가 있고요. 북을 가지고 놀랐 던 아이는  더 놀고 싶은 데 '얼른 기도 안 하고 뭐 하니?' 하는 엄마의 시선이 따갑습니다. 엄마는 가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을 때가 있습니다. 아마 감사기도를 할 때까지 동시에 다른 일을 하면서 시선을 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저 음식이 식기 전에 얼른 기도를 마쳐야 할 텐데 말입니다. 샤르댕의 그림은 이렇듯 무겁지 않은 주제로 관람자가 더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합니다. 

 

 

 

18세기 특유의 가족의 부드러움을 가미시킨 그의 작품은 교훈적인 무거움이나 과도한 감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가라앉은 색 구성과 조용한 조명에 의해 더 강조됩니다. 샤르댕은 그의 그림들의 다양한 요소들의 배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구성은 세밀하고, 세 인물의 삼각형 구조에서 만들어진 안정성 또한 그 장면의 고요함을 더합니다. 

 

 

그는<Saying Grace>의 여러 버전을 그렸는데 그중 세 작품은 1740, 1746년, 1761년에 살롱에 전시되었습니다. 1740년 완성된 원본은 왕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 그림은 루이 15세 사망 후 10년간 잊혔고요. 그러다 1845년 재발견됩니다. 1869년 성공한 의사이자 예술품 애호가였던 루이 라 카즈(Louis La Caze)의 위대한 기증품을 통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게 됩니다. 1761년 살롱에 전시되었던 수평 구성 버전은 현재 분실된 상태입니다.

 

 

 

 

 

 

<The Hard-working Mother>,1740/wikipedia

 

 

 

<Basket of Wild Strawberries(Le Panier de fraises des bois)>,1761/wikipedia

 

 

 

 

 

그는 이 부차적인 장르를 최고,
가장 놀라운 예술 상태로 끌어 올렸다.
아주 흔한 물체를
간단히 다루어
렌더링의 마력을 통해
아름답게 변모시키는
재료 그림의 증진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평론가 에드몽(Edmond)와 쥘 드 콩쿠르(Jules de Goncourt) 형제-

 

 

 

 

 

 

 

 

 

 

 

소복하게 쌓아 올린 과일 바구니를 잡채로 대체해 놓으면 얼마나 먹임 직스러울까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음식을 저렇게 쌓아 놓으면 먹음직스럽거든요. 보기도 좋고요.

 

 

<산딸기 바구니>는 그의 후기 정물화 시대의 모범입니다. 화가는 일상적이고 가정적인 물건들의 단순함에 여전히 집중합니다. 이제는 기하학적인 구성에 좀 더 정교한 눈으로 접근하고요. 부드러운 딸기 피라미드는 배경의 부드럽게 완화시킨 갈색과 대조적으로 빛, 짙은 빨강, 그리고 드문드문 섞인 녹색을 잡아내며 캔버스 중앙에 번쩍입니다. 한쌍의 카네이션의 밝은 흰색은 딸기의 붉은색을 훨씬 더 극명하게  드러내고요. 이러한 색깔의 파열 덕분에  그림이 활기차졌습니다.

 

 

 

샤르댕의 후기 정물화의 물체들은 우연히 배열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카운터의 수평은 유리잔의 물, 고리버들 바구니의 가장자리, 그리고 오른쪽의 작은 과일 그룹에 의해 형성되는 두 번째 평행 평면에 의해 강화됩니다. 중앙을 약간 벗어난 카네이션을 테이블 가장자리에 의도적으로 위태로운 위치에 배치했네요. 시각적으로 물리적으로 살짝 혼란을 일으 킵니다. 또한 딸기의 삼각구도는 유리잔이나 복숭아로 형성된 더 큰 피라미드의 정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것의 배가된 기하학적 구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0년의 연습 끝에, 샤르댕은 형식적인 요소들로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정물화의 장르를 완벽하게 마스터했습니다. 유리잔의 번쩍거리는 물과 활짝 핀 꽃의 부드러운 꽃잎들이 그의 전문성을 더욱 입증하는 놀라운 자연주의로 표현됩니다. 

 

 

 

<self-portrait with Spectacles>,1771/Drouot.com

 

 

 

파스텔 화랑으로 가서
그가 70대에 그린 샤르댕의 자화상을 보시오.
그의 코 끝에
미끄러져 내린 두 개의 새 렌즈 사이에
끼어 있는 대형 안경 위에
둔감한 눈동자를 가진 그의 피곤한 눈이 있다.
눈은 마치 많이 보고,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한 것처럼 보이고,
부드럽고 자랑스러운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응, 나는 늙었어!
나이가 들면서
둔탁해진 흐릿한 달콤함 뒤에는 아직도 빛이 난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bst)-





샤르댕의 인생 후반기에 그린 자화상들 중 하나입니다. 날카로운 갈색 눈을 가지고 우리를 향해 한 마디 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외모의 솔직한 묘사가 눈에 들어오고요. 그의 코에 섬세하게 자리 잡은 안경, 화려하고 기하학적 무늬의 스카프, 복잡하게 얽힌 파란색과 흰색 모자!!! 패션니스타가 따로 없네요.  고집스럽지만 당당한 노 화가의 모습이 근사합니다. 

 

 

 

 샤르댕의 시력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항상 일했던 납 성분이 함유된 유화 물감으로 인해 악화되어 갑니다.  경력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는   파스텔로 눈을 돌립니다. 파스텔은 그에게 최대한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1771년 살롱에 다른 여러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 이 파스텔 작품의 등장은 그의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의 후기 파스텔 초상화들은 놀라울 정도로 친밀하고 작품 속 모델들의 심리적인 깊이를 전달합니다. 그의 얼굴에 있는 음색의 병렬 배치로 인해 그는 조각적이고 거의 실물처럼 보입니다. 샤르댕은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예술계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다음 세기가 되어서야 프랑스 예술계의 대열에 오를 수 있었고요.  

 

 

 

 

 

말년에는 파스텔 초상화를 그렸고, 1775년 살롱에 파스텔로 그린 2점의 자화상과 아내의 초상화 루브르 박물관)를 출품했습니다. 샤르댕은 자기 작품의 복제 판화로 생전에 명성을 누렸고요.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샤르댕의 작품은 견고한 추상성을 가진 구도 때문에 높이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하나의 사조를 형성하기도 했고요. 그는 정물화에서는 적어도 세잔의 출현 이전에 최고의  가장 위대한 순수화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입체주의에서부터 추상표현주의까지 많은 현대의 예술운동은 그에게서 영감을 얻기 때문이죠.

 

 

 

 

약 200여 점 정도의 작품만을 남긴 샤르댕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꼼꼼히 제작하던 작업방식 탓인지 다작의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에는 아카데미 회원으로 오십여 년 간 활동하며, 만 여든의 나이로 루브르 근처에서 세상을 떠난 화가가 그린 삶의 흔적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샤르댕의 작품에는 18세기 미술이 가진 많은 것이 없었습니다. 도덕적 교훈주의, 관능적인 유혹, 로코코의 낭만적인 환상, 내러티브와 이념, 상징과 알레고리, 그리고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는 스택터클이 없었습니다. 서민과 중산층의 묵묵한 일상을 조용하고 소박하게 담은 화가였죠. 또 순진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소박하고 진지하게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한 화가였습니다. 화면을 구조적으로 단순화시키고 대상으로서의 사물과 정경 그 자체가 전하는 순수하고 단단한 진실을 담고자 애썼던 화가입니다. 그런 덕분에 화가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그림은 그의 시대를 벗어나 계몽주의를 너머 근대의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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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에너지 넘칩니다. 스탠다드 슈나우저의 모든 재미, 에너지, 그리고 풍성한 수염을 가지고 있고요. 미니어처 슈나우저의 덥수룩한 턱수염, 긴 눈썹, 접힌 귀는 사교성, 적응력, 지능과 함께 이 품종의 대표적인 특징들입니다.

 

 

원래 이름은 '미니어처 와이어 헤어드 핀셔'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생지는 이름에서 풍기듯이 독일이고요. 기묘한 눈썹과 덥수룩한 턱수염 때문에 어린 미니어처 슈나우저라도 노신사 같은 모습입니다. 실크 조끼와 회중시계만 있으면 말입니다.

 

 

white miniature schnauzer/wikipedia

 

 

 

 

크기에 따라

 

미니어처 슈나우저(체고:30-35cm, 체중:4-6kg)

스탠다드 슈나우저(체고 : 42-50cm, 체중 :16kg 내외)

자이언트 슈나우저(체고: 60-71cm, 체중: 32kg 내외)

 

크게 3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미니어처 슈나우저는 긴 콧수염, 사각턱, 턱수염이 조상인 스탠더드 슈나우저와 닮았습니다. 모든 슈나우저 품종은 턱수염이 덥수룩한 주둥이가 가장 특징입니다. 그래서 주둥이를 뜻하는 독일어 '슈나우제'에서 품종명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유럽의 독일 지도/Freepik

 

 

스탠다드 슈나우저는 14세기 독일에서 탄생했습니다.  원래 농장에서 쥐와 같은 유해 동물을 잡기 위해 길러졌습니다. 미니어처 슈나우저는 푸들, 아펜핀셔, 미니어처 핀셔 또는 폭스테리어 및 스코티시 테리어와의 교배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이 견종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미니어처 슈나우저 품종이 1888년 독일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899년 도그쇼에서 독립된 품종으로 선보였고요. 이후로 현대 가족이 좋아하는 품종으로 진화했습니다.

 

 

 

슈나우저는 독일의 오랜역사를 가진 품종이기도 합니다. 14세기 미쉐린버그에서는 사냥꾼과 그의 발 및에 웅크리고 있는 슈나우저의 동상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1620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유명한 "Night-Watchman"동상은 작품에 나타난 최초의 슈나우저 중 하나입니다. 

 

 

미니어처 슈나우저/펫페

 

 

대부분 활발한 성격입니다. 머리도 다른 개들에 비해 상당히 좋은 편이고요. 지능지수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우수한 지능 지수를 갖추고 있습니다. (AKC:미국 애견 협회) 탄탄한 몸을 가진 테리어답게 활동량이 많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죠. 장난치기도 좋아하고요.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경비견으로서의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슈나우저는 이름처럼 주둥이로 물어뜯는 버릇이 심한 편입니다. 이 버릇만 조심하면 다른 견종들보다 훨씬 키우기 쉬운 편입니다. 집안에 물어뜯을 만한 것을 사전에 정리하고 대신 장난감이나 개껌을 주어 물어뜯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의 작은 물건들이 모두 뜯겨 있는 불상사가 벌어질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f4E1vsCRPVM

 

 

 

 

농장에서  작은 동물을 잡던 습성이 있어 낯선 방문객이나 작은 동물을 보고 사납게 짖어 다소 시끄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을 지키기에는 안성 맞춤이죠. 작은 동물을 쉽게 잘 무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은 부적합합니다. 쥐를 잡던 개라 햄스터나 작은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1ARNR28ws8

 

 

 

 

V자 모양의 앞으로 접힌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덥수룩한 턱수염과 진한 눈 주위의 눈썹을 가지고 있고요. 흰색, 검은색, 블랙 앤 실버 또는 희끗희끗한 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모로 뻣뻣한 겉털과 부드러운 속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생기 넘치는 칼 모양의 꼬리를 가지고 있고요. 며칠에 한 번씩 빗질을 하고, 5-8주 마다 미용사를 방문하여 다듬으면 미니어처 슈나우저의 뻣뻣한 겉털과 부드러운 속털의 두꺼운 이중모를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털이 잘 빠지지 않는 편이라 실내생활에 적합하지만 산책을 좋아하므로 자주 산책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집안에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미용은 등을 짧게 밀고 얼굴과 가슴에 난 털은 조금 길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턱수염과 구레나룻, 눈썹 등은 깎지 마시고요. 다리와 발바닥도 마찬가지입니다. 털이 슈나우저 감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죠. 털이 긴 부분은 뭉치지 않도록 항상 빗질을 해주시는 것 잊지 마시고요. 산책 후에 털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해 주어야 털이 엉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출처:애니멀 러브

 

시각 장애견, 노견을 위한 엔젤링/제라미펫

 

 

 

 

 

더위와 추위에 약합니다. 겨울에는 옷을 입혀서 보온에 신경써 주셔야 합니다. 유전적으로 진행성 망막 위축증(Reitnal Atrophy)이라는 치명적인 유전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막 혈관들이 감소되어 빛을 흡수하고 반사, 감지 역할을 하는 망막이 위축되고 변성되어 서서히 시력을 소실하는 병입니다. 원인은 유전적 변성이며 미니어처 슈나우저에게 가장 잘 나타납니다.푸들, 닥스훈트, 시베리안 허스키, 코카스파니엘, 레트리버 등 강아지들과 고양이에게서도 나타나는 질병입니다.

 

 

 

 

항산화제와 같은 약을 통해 진행을 늦출 수는 있으나 실명이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발병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8살 때 일어날 수 있으며 진행도는 반려동물에 따라 다릅니다. 발병 이후에는 녹내장, 백내장, 등 안 질환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케어가 필요합니다. 안과 전문 수의사님께 검사를 받아보세요. 또 다른 안 질환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강한 햇빛을 피하게 하시고 시력 관련 항산화 보조제를 먹이면 좋다고 합니다.

 

 

 

시각 말고도  후각과 청각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서서히 생활에 적응해 갈 겁니다. 빠른 적응을 위해 보호자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집안 구조 변경은 삼가 주세요.

2. 반려동물을 만질 때 놀라지 않도록 머리 위로 던지지 마시고 먼저 이름을 부르고 코밑으로 손을 가져가 냄새를 맡게 한 후 천천히 다가가세요.

3. 활동성이 많을 경우 넥 카라나 시각장애견을 위한 보조 기구 에인절링을 이용해 부딪침을 방지해 주세요.

4. 날카로운 곳이나 자주 부딪히는 곳에는 모서리 보호대와 같은 것을 붙여주세요.

5. 산책 시 줄을 매시고 다른 강아지와의 접촉을 삼가 주세요.

6. 안구 질환에 대해 꾸준한 관리를 해주시고 강한 자외선은 피해 주세요. 

 

 

 장애가 있더라도 반려인의 지속적인 보살핌으로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hqEL4cP5yc

 

 

 

 

 

 

미니어처 슈나우저의 작은 크기는 규칙적인 운동만 한다면 도시견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 견종은 가족 친화적인 품종으로 보호자만 함께 있으면 거의 모든 곳에서 살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훌륭한 반려견으로 키울 수 있으니 도전해 보세요. 선천적으로 영리한 품종이니 교육이나 훈련을 받았을 때 성과가 아주 빠르게 나타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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